[Review] 예술이 구원한 그의 삶 - 쿠사마 야요이: 무한의 세계 [영화]

화려한 수식어로 가려진 쿠사마 야요이의 작품 세계를 재조명하다
글 입력 2020.12.21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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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내용이 일부 포함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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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아티스트 역대 경매 낙찰가 1위 (2014년 710만 달러)

2020년 3분기 국내 미술품 경매 낙찰가 해외 아티스트 1위

세계 최다 관람객 동원해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아티스트 등극

2016년 타임지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에 선정

L.A 카운티 미술관, 뉴욕 현대미술관, 프랑스 파리 퐁피두 센터, 런던 테이트 모던 미술관, 미국 빅토리아 미로 갤러리 등 전 세계 유명 미술관에서 전시회 개최

 

 

어마어마한 경력과 수식어로 점철된 이 사람은 일본 현대미술 작가 쿠사마 야요이다.

 

검은색 물방울 무늬가 노란 호박 위에 촘촘히 그려진 거대한 설치작품 <호박>과 빛나는 점들이 무한히 확장되는 <무한 거울의 방>을 다들 한번쯤 본 적 있을 것이다. 쿠사마 야요이는 세계적인 명성에 걸맞게 전 세계에서 가장 잘 팔리는 예술가, 전 세계 모든 대륙에서 작품이 판매되는 유일한 작가라는 타이틀을 거머쥐고 루이비통, 아우디, 랑콤, 코카콜라 등 세계적인 브랜드와의 협업도 지속적으로 이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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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쿠사마 야요이를 처음 알게 된 것은 제주 본태미술관의 <무한 거울의 방> 때문이었다. 실제로 작품을 본 것은 아니지만 둥근 점이 무한히 펼쳐지는 공간을 가득 채운 작품 사진은 비록 사진이었지만 감탄을 자아내기 충분했다. 우주 한복판에 서 있는 것 같이 어떤 공간을 경계 없이 확장시킨 이 작품을 꼭 보러 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쿠사마 야요이의 대표작 <호박>으로 그의 이름을 다시 접했을 때는 이 작가는 도대체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졌다. 한눈에 보아도 그의 작품이란 걸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독특한 그의 작품 세계는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그래서 쿠사마 야요이의 영화가 개봉한다고 했을 때 망설임 없이 관람을 결정했다.


 

 

어린시절의 트라우마로 시작된 예술가의 꿈


 

영화는 쿠사마 야요이의 어린시절 이야기로 시작된다.

 

쿠사마 야요이는 1929년 일본 나가노현 마쓰모토시에서 태어나 유년기를 전쟁 속에서 보냈다. 전쟁이라는 불안하고 위태로운 분위기 속에서 마주한 아버지의 외도와 그에 대한 분노를 쿠사마 야요이에게 풀었던 어머니의 집착과 폭력으로 그는 안정적인 정신을 유지하기 힘들었다. 그런 쿠사마가 유일하게 현실로부터 도피할 수 있는 순간은 그림을 그릴 때였다. 불행한 유년기로 시작된 트라우마는 쿠사마가 가진 예술성을 일깨웠고, 그렇게 예술가가 되겠다는 꿈도 시작되었다.

 

예절학교에 다니며 교양을 쌓은 후 부잣집에 시집가기를 바랐던 보수적인 집안 분위기 속에서도 쿠사마는 예술에 대한 굳은 의지를 보였다. 일례로, 쿠사마는 어머니에게 예절학교에 갈 테니 미술학원에 갈 수 있게 해달라 이야기 해놓고 예절학교에 단 한번도 가지 않았다. 이 사실이 들통나자 그녀의 어머니는 그녀가 그리던 그림을 빼앗았고 이 사건이 큰 트라우마로 남아 쿠사마는 집요하고 강박적으로 작품 활동을 이어간다.


억압적이고 보수적인 가정에서도 그림에 손을 놓지 않던 쿠사마는 미국 현대미술계에서 여성 작가로 작품활동을 하던 조지아 오키프의 그림을 보고 크게 감명받아 그녀에게 자신의 작품과 함께 편지를 보낸다. 기대하지 않았던 조지아 오키프의 답장을 받고 뉴욕으로 가기로 결정하며 그때까지 그린 2천 점의 그림을 모두 불태웠다. 앞으로는 이것보다 훨씬 더 잘 그리겠다고 굳은 다짐을 하며 그는 모든 것을 걸고 뉴욕으로 떠났다.

 

 

 

아시아 여성으로 뉴욕 현대예술계에서 살아가기, 그리고 마주한 고난


 

서양 남성 위주였던 현대 미술계에서 쿠사마가 작품을 갤러리에 전시하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럼에도 어린 시절부터 보였던 당돌함과 용기로 아시안 여성이라는 정체성에서 비롯된 성차별, 인종 차별에 맞섰다.

 

한 갤러리에 자신의 작품을 보내놓고 사람들에게 이미 전시가 열리고 있다고 이야기 해서 그녀의 작품을 보러 갤러리에 사람들이 찾아와 직원을 당황시키기도 했다. 아트 페어에 참석하면 자신을 후원해줄 사람을 적극적으로 찾았고, 중요한 자리에서는 기모노를 입어서 쿠사마에게 가해지는 편견과 차별에 보란 듯이 응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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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계의 무관심과 가난 앞에서도 쿠사마는 작품 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유년기의 트라우마에서 비롯된 집요함과 강박은 <그물>이라는 작품으로 태어났다. 외도를 일삼던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의자를 부드러운 돌기로 빼곡히 채운 라는 작품으로 표현됐다. 베니스 비엔날레에서는 정식으로 초대받지 않았음에도, 이탈리아관 옆의 정원에서 은색 공을 2달러에 판매하는 <나르시스 가든>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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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의 세계에서 비롯된 작품 세계는 동시대로도 확장됐다. 바디 페인팅 축제, 미국 최초의 동성애자 결혼식, 반전시위 등 전위예술에도 적극적이었다. 백인 여성도 성공하기 힘든 현대예술계에서 쿠사마는 그 누구도 시도하지 않은 독특한 작품 세계를 세상에 당당히 드러냈다.

 

그럼에도 1950년대의 미국에서 아시아 여성 작가라는 정체성을 넘어서기엔 역부족이었다. 오히려 앤디 워홀, 클래스 올덴버그 등 동시대 남성 현대미술 작가들이 쿠사마의 아이디어를 표절한다. 쿠사마가 받아야 할 스포트라이트는 그들에게 돌아갔고, 동료라 믿었던 이들에게 크게 상심해서 자살 시도를 한다.

 

그 후로 서양 남성 작가 위주의 예술계에 환멸을 느끼고 일본으로 돌아가지만 그의 작업에 부정적인 반응만 돌아오자 정신 질환이 악화되어 결국 정신병원에 자진해서 입원한다.

 

 

 

고난 끝에 세계적인 작가가 되기까지


 

정신병원에 입원한 후로 16년이라는 긴 공백기가 있었다. 모두가 쿠사마 야요이를 잊어간 그 시점에 뉴욕에서 회고전 개최하였는데, 이 전시를 계기로 그의 작품들이 재평가 받기 시작한다.

 

그 뒤로 도둑 전시를 했던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일본 대표로 초청되어 일본 최초 개인전을 개최하고, 세계 각지 유명 미술관에서 전시를 열었다. 어두웠던 과거와 달리 그는 이제 세상의 모든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세계적인 현대미술가로 자리매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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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난 유명세를 얻은 지금도 쿠사마는 정신 질환 치료를 위해 정신병원에서 작업실을 오가며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그는 “내가 정신병원에 사는 것은 내가 아프기 때문이다. 혼자 있기 힘들다. 난 사람들 사이에서 더 편안하게 느껴진다. 병원에 살지 않는다면, 그림을 계속 그릴 수 없을 것이다.”라고 이야기한다.

 

자신의 정신 질환을 인정하고 그것을 스스로 다스릴 줄 아는 능력, 그리고 이를 꾸준한 작업으로 이끌어낸 성실함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쿠사마 야요이가 있을 수 있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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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사마의 어두웠던 과거를 포함해 성차별, 인종 차별, 정신 질환을 극복하고 예술가가 되겠다는 꿈을 좇아온 개척자로의 쿠사마 야요이를 알리고 싶었다"는 감독 헤더 렌즈의 시선 속에서 쿠사마는 다시 재조명 된다. 영화를 통해 나는 <호박>, <무한 거울의 방>같이 작품에서 보여지는 화려함과 쿠사마를 수식하는 무수한 타이틀로는 설명할 수 없는 그의 삶에 대한 투쟁을 엿볼 수 있었다.

 

그 뒤에 바라본 쿠사마의 작품들은 이전과 달랐다. 집념과 강박 속에 숨겨진 쿠사마의 고통을 마주했다. 죽지 않기 위해 밀려오는 환영과 공포를 예술로 승화시킨 그의 의지를 보았다. 그리고 그 모든 고통과 불안을 예술로 표현해낸 그의 작품들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세상의 편견과 차별에 당당히 목소리를 내고 그것을 이겨낸 쿠사마의 삶은 지금 그와 같은 차별을 목도하고 편견에 맞서 싸우고 있는 사람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건넨다. 쿠사마의 작품이 우리에게 주는 독특하고 즐거운 경험을 넘어서, 그의 삶의 서사가 건네는 진정성과 따뜻함을 느끼고 싶은 이들에게 이 영화를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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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소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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