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내 인생을 편집하려 합니다 [사람]

취업을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글 입력 2020.12.18 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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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편집의 시대이다. 최근 많은 이들의 꿈으로 부상하고 있는 유튜버는 세련되고 참신하게 편집된 영상을 통해 인기를 끈다. 실제로 잘 알려지지 않은 출연진이더라도 참신한 편집으로 인기를 얻은 경우도 생겼다.


구인 사이트에 들어가 보면 영상 편집자를 구하는 공고가 수없이 많이 올라와 있다. 각종 강의 사이트나 블로그에서도 영상 편집 과정이나 보정에 대해 다루는 포스트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제 편집은 시대의 필수적 경쟁력으로 당당히 자리 잡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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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내가 초등학생이었을 때만 해도 편집은 중요한 경쟁력으로서 주목받지 못했다. 스마트폰은커녕 이제 막 가정에 데스크탑 한 대씩이 보급된 이후였기 때문에, 사람들은 TV 방송을 시청하며 영상을 접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당시의 경쟁력은 지상파 채널이 꽉 쥐고 있었고, 그중에서도 주말의 황금 시간대, 출연진의 유명세가 시청률을 올리는 주요한 요소로 여겨졌다. 당시의 편집은 방송을 더욱 매끄럽게 흘러가게 해줄 윤활유 역할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어, 재미를 끌어내는 수단으로 여겨지지 않았던 것 같다. 더군다나 방송사의 관례나 여러 이해관계가 얽혀있는 TV방송 상, 편집자가 자유롭게 편집을 뽐낼 기회 역시 적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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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던 방송계에서 편집으로 처음 주목받기 시작한 것이 ‘무한도전’이다. 지금은 종영된 프로그램이지만 당시 무한도전의 인기는 굉장했다. 각기 출연진의 캐릭터에 맞춘 자막 폰트와 크기, 충격을 받았을 때 나오는 해골, 출연자의 행동을 놀리며 적절히 치고 빠지는 자막 등은 마치 시청자의 생각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처럼 친근감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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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무한도전 ‘짤’은 어마어마한 인기를 자랑한다. 짤은 재미있거나 실생활에서 쓰일 법한 유머 있는 장면을 캡처한 사진이다. 이는 모바일로 대화를 나눌 때 단순한 텍스트보다도 한 장의 짤이 주는 의미와 웃음이 더욱 클 때가 있다. ‘고독한 연예인 방’이라는 존재를 통해 사람들이 ‘짤’을 얼마나 애용하고 즐기는지 알 수 있다.


이렇게 적절한 편집을 통해 방송계의 큰 획을 그은 무한도전은, 수많은 프로그램이 넘쳐나는 지금도 고유한 정체성을 가지고 있으며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의 그리움을 사고 있는 것 같다.


이후 스마트폰이 발달하면서 언제 어디서든 간편하게 접근할 수 있는 영상 사이트가 주목을 받았다. 그중에서도 구글 계정만 있다면 손쉽게 영상을 시작할 수 있는 유튜브에 많은 사람이 뛰어들게 된다. 지금 유튜브는 치열한 레드오션이다. 각기 채널들은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신선한 기획과 쟁쟁한 출연진 등 여러 방법으로 주목을 꾀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것이 편집 기술이다. 출연진이 유명하지 않아도, 흔한 기획과 설정이어도 유능한 편집 기술을 통해 얼마든지 기존의 느낌과 다른 참신함을 준다. 그리고 여기서 새로운 재미를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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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인상 깊었던 채널은 장성규가 출연하는 ‘워크맨’이다. 이 채널 역시 무한도전과 마찬가지로 지금까지 본 적 없는 참신한 자막과 빠른 전개, 선을 넘을 듯 말 듯한 아슬아슬한 멘트가 매력 포인트다. 개인적으로 가장 신선했던 것은 자막이었다. 특정 자리에 고정된 것이 보통이었던 자막이 사람의 손을 따라 움직이거나, 사람의 눈을 자음 ‘ㅇ’으로 이용하는 등 기존의 틀을 깬다.

 

결국, 이러한 신선함을 앞세워 워크맨은 올해 상반기 대세라고 할 만큼 화제를 모았고, 출연자 장성규는 TV 프로그램의 고정 패널로 출연할 만큼 이름을 알리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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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나는 내 인생을 편집하고 있다. 소위 말하는 취준생이 되어, 눈을 뜨면 취업 사이트에 들어가 공고를 살펴보고 직무에 맞는 공부를 하는 일상을 반복하고 있다. 자기소개서도 열심히 쓰고 있는데 문득 이 과정이 내 인생을 편집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직무 요건을 살펴보고 자기소개서의 항목을 살펴보면서 나라는 사람이 걸어왔던 길을 찬찬히 돌아본다. 인생의 어떤 부분을 덜어내고 어떤 부분을 강조해야 할지. 조금이라도 더 매력적인 인생을 보여주기 위해 그야말로 인생을 자르고 붙여내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사실 처음 대학교에 처음 들어왔을 때는 전공을 꼭 살려야 한다는 의무감 비슷한 것이 있었다. 좋아해서 들어온 전공이기도 했고, 번역가라는 꿈이 있었기 때문이다. 복수전공도 그와 맞는 전공을 택하며 4년간 열심히 수업을 들었다. 하지만 실제로 경험해본 직무는 나의 기대와 달랐다. 일하면서 재미는커녕 스트레스만 쌓이고 점점 이 언어가 싫어지는 거다. 전공을 살린 다른 직무를 찾아보려 해도 좀처럼 마음에 드는 공고가 없었다.


그럼에도 쉬이 다른 곳으로 고개를 돌리지 못하고 전공에 맞춰 취업하기를 고집했던 것은, 지금까지 전공을 공부해 온 나의 시간과 노력, 그리고 등록금이 전부 먼지가 되어 사라질 것만 같은 허무함 때문이었다. 마음을 다잡고 새로운 직무와 관련된 공고를 찾아보아도 관련된 경험이 없다는 두려움 역시 나의 발을 꽁꽁 묶어두었다.


하지만 전혀 직종과 상관없는 경험이어도 내가 어떤 역할을 했고 어떤 것을 느꼈는지, 어떤 선택으로 이어졌는지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관련 직무자의 말을 듣고 깨달았다. 관련이 있으면 더 좋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금까지 해온 것들이 아무 쓸모 없는 것은 아니라는 것. 당연한 사실을 잊은 채 지내고 있었구나. 혼자만의 생각에 갇혀 있었구나. 당장 눈앞의 것에 압도되어 전체를 보지 못하고 있던 나의 시야를 넓혀주는 말이었다.


최근에는 어떻게 ‘편집’할 것이냐가 더욱 중요하다는 생각을 최근에 하게 되었다. 대부분 영상은 원본만으로 내보낼 수 없다. 무미건조한 원본을 찬찬히 살펴보고 필요한 부분만을 선별해 알맞은 음향과 자막을 삽입한 후에야, 영상은 비로소 사람들에게 전해지는 완전한 콘텐츠가 된다. 내 인생은 아직 투박한 원본이다.

 

세심한 보듬음을 통해 하나의 작품이 될 나의, 여러 인생들에.

 

응원의 찬가를!

 

 

[최예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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