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미술 작품을 바라보는 또 다른 관점 – 예술가의 손끝에서 과학자의 손길로 [도서]

예술과 과학 그 사이, 보존과학의 세계를 소개합니다.
글 입력 2020.12.17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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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의 손끝에서 과학자의 손길로_표지_평면.jpg


 

살면서 우리는 수많은 선택의 갈림길과 마주한다. 선택한 이후엔 다른 선택지를 다시는 마주할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다른 선택을 했을 평행우주의 나를 상상하기도 하고, 나와 다른 삶을 살고 있는 누군가의 삶을 동경에 찬 눈빛으로 바라보기도 한다. 내게 이 책은 그런 존재였다.


『예술가의 손끝에서 과학자의 손길로』는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미술보존가로 일하고 있는 김은진 학예연구사가 보존과학의 세계를 소개하는 책이다. 저자는 총 3부의 구성으로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작품들에 숨겨진 복원 이야기와 예술과 과학이 만나는 순간, 그리고 작품 보존을 위한 미술관의 비밀들을 차례로 소개한다.

 

내가 원래 하고 싶던 공부도 보존과학이었다. 전공인 미술사를 선택했던 이유도 보존과학 때문이었다. 하지만 두 학문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많이 달랐고 미술사를 공부하면서 보존과학의 꿈은 조금씩 잊혀졌다. 그래서 이 책을 접했을 때 미술품 보존을 꿈꿨던 옛날의 내가 떠올랐다. 다른 선택했다면 내 삶은 어떻게 바뀌었을지 상상하며 책을 펼쳤다.


 

 

보존과학, 그게 뭔데?


 

보존과학이라 하면 왠지 과학적 데이터를 기반으로 명료한 결과값을 얻어내는 학문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정반대다. 보존과학자는 무엇을 보존해야 하는지, 어떻게 보존해야 하는지, 보존하는 과정에서 훼손되지 말아야 할 본질은 무엇인지 끊임없는 모호함과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과학적 데이터는 수많은 맥락과 윤리적 갈등 안에서 정보를 제공하는 일종의 수단이 되는 셈이다.

 

저자의 비유에 따르면 보존가 또는 보존과학자는 작품의 상처를 치료하는 ‘미술품 의사’로 작품의 재료가 무엇인지, 왜 지금의 상태에 이르렀는지, 치료를 위해 어떤 방법이 필요한지를 고민한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적 맥락보다는 작품의 물성에 더 집중하는 학문이다. 그렇다고 과학적인 데이터만 다루는 것도 아니다. 치료 대상인 미술 작품은 예술의 영역에 속하기 때문에 역사적 맥락도 파악해야 하는 복합적인 학문이기도 하다.

 

 

 

예술가와 과학자 사이, 미술보존가의 고뇌


 

책의 가장 처음엔 보존과학자들이 마주하는 여러 갈등 속에서도 반드시 지켜야 할 미술품 복원의 원칙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복원을 거듭하여 처음의 모습과 달라진 작품을 제작되었을 당시의 작품과 동일하다고 볼 수 있을까? 지금 털어내는 먼지가 반드시 필요한 작업일까? 복원 작업이 작가의 의도에 반하는 것은 아닐까?

 

끊임없는 반문과 함께할 수밖에 없는 보존가들은 보존의 원칙 몇 가지를 정했다. 작품의 원형을 존중하는 것, 지금의 처리가 미래에도 다시 처리할 수 있도록 방해가 되면 안 된다는 것, 작품의 재질과 유형에 따라 알맞은 전문가에게 처리를 맡기는 것, 그리고 모든 과정을 철저히 기록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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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켈란젤로, 시스티나 예배당 천장화의 일부 복원 전(왼쪽 상단)과 복원 후(오른쪽 하단) 모습

(출처: Michaelangelo,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원칙을 정했다고 해도 복원은 쉽지 않다.

 

1부의 복원 이야기를 예시로 들자면, 시스티나 성당 미켈란젤로의 천장화는 전문가들이 오랜 고민 끝에 정한 방법에 따라 복원했음에도 너무 깨끗해진 모습에 논란이 일었다. 구본웅의 <친구의 초상>은 잘못된 복원으로 원래의 창백한 모습이 생기 있고 강렬한 초상으로 바뀌어 버렸다. 빠르게 발전하는 기술로 단종되는 부품이 늘어나는 미디어 아트 작품의 경우 적절한 복원 방법을 다시 찾아야 한다. 개념을 다루거나 퍼포먼스, 다양한 매체를 작품으로 활용하는 현대미술의 경우 보존과 복원의 문제는 더 복잡하다.

 

보존가들이 만나는 작품들의 형태와 상태는 제각각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작품은 유일무이하다. 한 순간의 실수는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가져온다. 그렇기 때문에 보존가들은 작품마다 가장 최적의 보존 방법을 선택하는데 신중할 수밖에 없다. 그와 동시에 필연적인 변화 속에서도 지켜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 끝없이 고민한다. 시간과 경험이 쌓여도 쉽게 가벼워지지 않을 이런 고민들은 책 속에서 부단히 언급되며 책장을 넘기는 나의 머릿속에도 내내 맴돌았다.

 

 

 

예술 작품이 대중들에게 공개되기까지


 

1부의 복원 이야기 이후 2부에서는 미술관에서 활용되는 과학적 실험과 분석에 대한 내용을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이야기한다. 예를 들어 단 한 개뿐인 작품의 완벽한 클리닝을 위해 비슷한 상태의 모크업mock-up을 만들어 복원 실험을 하고, X선 투과 촬영으로 그림의 내부를 조사해 작품에 대한 정보를 알아낸다. 그 덕에 숨겨져 있던 작품의 행방을 밝혀내기도 한다. 이런 절차를 거친 후에야 비로소 작품은 안정적인 상태로 대중들에게 공개된다.

 

작품이 대중에게 공개될 준비가 되었다고 해도 미술품을 보관하고 외부에 공개되기까지의 과정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3부에 서술되는 내용들을 읽고 나면 관람객으로 미술관을 방문할 땐 미처 알지 못했던 비밀들과 만나게 된다. 화재에 대비해 건물에 설치되는 스프링쿨러는 물에 취약한 미술품들을 보호하기 위해 최후의 보루로 사용되거나 설치하지 않는다. 벌레라는 또 다른 위협으로부터 작품을 보호하기 위한 훈증 처리 과정도 존재한다. 작품이 대여를 위해 반출될 땐 특별히 제작된 ‘터틀Turtle’ 가방이나 '크레이트create'라는 나무 상자에 견고하고 꼼꼼히 포장한다.

 

작가의 안내에 따라 미술품 보존의 세계를 돌아보고 나면 시간의 흐름 속에서 오래도록 작품을 보존하고자 하는 보존과학자들과 미술관의 노력을 자연스레 깨닫게 된다. 그리고 작품 전시와 문화 경험을 위한 공간으로 여겨지던 미술관은 어느새 미술품들을 보호하려 고군분투하는 치열한 공간으로 확장된다.

 

 

“미술 복원에 대해서 알게 되면 우리가 오늘 눈앞에서 보고 있는 예술 작품이 시간의 흐름 속에서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 더 깊게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미술 작품이 겉으로 보여 주는 이야기와 속으로 품고 있는 이야기가 더해져 관람객들이 더 풍부한 미술 세계를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이다.”

 

p.6 프롤로그


 

내가 보존과학을 처음 접했던 고등학교 시절엔 관련 정보를 거의 찾아보기 힘들었지만 요즘은 박물관 한 켠에서 작품의 복원 과정을 보여주는 전시 판넬을 발견하거나 보존과학 관련 전시도 종종 기획된다. 청주에는 개방형 수장고가 있는 국립현대미술관이 개관하며 일반 대중들에게도 미술품 보존이라는 분야가 점차 가시화되고 접근성도 낮아지고 있다.

 

그럼에도 보존과학은 우리에게 꽤나 낯선 학문이다. 보존가가 다루는 작품들은 짧게는 수 년에서 길게는 수천 년에 제작됐다. 세월의 풍파를 겪은 작품들은 외부의 노출에 매우 취약하다. 때문에 보존가의 작업은 일반 대중에게 보여지기보단 미술관 안 깊숙한 곳에서 이루어진다. 그래서 이 분야 자체가 알려지기 어려웠고 전문가의 수도 많지 않을뿐더러 관련 서적이나 정보도 다른 분야에 비해 드문 편이다. 그런 이유로 미술품을 연구하는 많은 분야 중 보존과학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유독 낯설게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작가의 말처럼 예술 작품을 더 깊고 풍부하게 이해하기 위해서, 또 유구한 가치를 지닌 예술 작품을 함께 지켜나가기 위해서 미술 복원에 대해 우리가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작가가 들려주는 익숙하면서도 새로운 이야기를 읽어나가다 보면 역사나 미학의 관점이 아닌 보존과학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예술 작품의 새로운 면모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과거와 현재, 미래를 잇고 예술과 과학을 넘나드는 미술보존가의 매력까지도 말이다.

 

 

 

신소연.jpg



[신소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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