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불편하죠, 그래도 계속 보아야 해요 [문화 전반]

자연의 섭리를 따르는 자연농, 그리고 인간의 이기주의
글 입력 2020.12.16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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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지구라는 화두


  

2020년은 당면한 전 지구적 재난 상황에 이제까지 당연히 여겼던 체계, 통념, 관습의 문제가 수면위로 떠오르며 이를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나아가 유효한 행동을 요구하는 적극적인 움직임이 포착된 한 해였다.


무엇보다, 근대의 산물인 자본주의 경제체제와 대량생산의 목적 아래 경시되어온 자연과 생명을 향한 파괴에 제동을 걸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이미 몇 해 전부터 예술계의 화두였던 ‘인류세(Anthropocene)*’는 베니스 비엔날레 2019, 이스탄불 비엔날레 2019, 타이베이 비엔날레 2020에서 다양한 형태의 작업으로 드러나며 미술계가 인간의 생태적 책임을 지속적으로 촉구해야 함을 시사했다.

 

 

그린뉴딜.jpg

 

 

정치, 경제면에서도 환경과 인간이 중심이 되는 지속가능한 발전 정책으로서 ‘그린뉴딜(Green New Deal)’을 내세워 환경에 투자하며 저탄소 경제구조로의 전환을 꾀하는 모습을 공공연히 드러낸 바 있다.


이러한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와 가까운 곳에서는 자연이 도구이고 장식이라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 대량생산을 위해 자동화된 농업이 대지를 황폐화하는 현상에는 의문을 품지 않으며, 도시의 가로환경 조성이라는 명목하에 관리가 유용한 수종을 맘대로 옮겨심고, 병들면 베어내는 상황에는 분노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식생활과 맞닿은 농업이라는 주제에서 다소 극단적으로 여겨질 수 있는 ‘자연농*’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시청하며 떠오른 생각을 가감 없이 담아보고, 결국 우리에게 필요한 태도는 무엇인지 고찰해보고자 한다.

 

 


다큐멘터리 ‘자연농(final stra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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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다큐멘터리에서 기교 하나 없이, 있는 그대로 담긴 자연의 모습은 그 자체로 달가웠다. 자연스러운 빛깔을 디지털 화면으로만 보고 있자니 묘한 감정이 마음에 일었다.


농사의 방법이나 철학, 나아가 인간문명과 지구에 대한 생각을 이야기하는 인터뷰가 진행되며 단순히 농사라는 행위를 넘어 이 세계를, 개인의 삶을 대하는 태도를 논하는 이들이 스스로 살아내는 행위로써 신념에 힘을 더하는 모습이 부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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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얼마나 더 인간 중심적으로 세상을 바꾸려 들까. 자연의 재생력이 한계에 도달했다는 사실을 절감하는 지금도 여전히 개발은 진행되고 있으며, 본토에서 쫓겨나는 것은 비인간 개체들이다.

 

 

다큐멘터리의 인터뷰 내용 중 “세상 어디에서도 변치 않는 자연농의 기본 법칙은 ‘땅을 경작하지 않는 것’, ‘풀과 벌레를 적으로 여기지 않는 것’, ‘비료는 사용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언급한 장면이 꽤 인상 깊었다.

 

이것만 지킨다면, 토질의 특성과 기후에 따라 그저 맞춰가며 그 어디에서든 농사를 지을 수 있다는 사실은 우리가 지금까지 간과한 자연의 순리를 떠올리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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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인위적 질서 아래 놓을 게 아니라, 거대한 자연의 질서 아래 인간이 순응하며 사는 것이 응당한 사실임을 왜 생각지 못했을까. 단 한 번도 농사를 위해 땅을 경작하는 행위가 인간 중심적이라 생각해본 적이 없기에 충격이었다.

 

 


인간중심적 사고, 이기주의



이렇듯 우리의 생각과 사고 이면에는 우리도 모르는 새 심겨 있는 인간 중심적 시선이 그득하고, 들춰낼수록 드러난다.

 

이미 도시로 가득하고 기계 문명이 지배한 세계에서 이제 와 이런 생각을 드러내려는 시도는 굉장히 피곤해 보일 수 있다. 나 자신도 인간 중심적 가치관에 익숙해진 사고를 해체하려는 과정이 너무도 피로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면, 이 불편한 감정은 우리의 편리만을 생각하는 이기적인 태도가 당연히 고려되어야 할 과정을 얼마나 생략한 채 이 땅을 개발해왔는지, 얼마나 많은 개체의 맥락을 제거한 채 우리의 공간으로 들여왔는지를 드러내는 반증이며, 이로 인해 곳곳에서 터져 나온 고름의 흔적이다.

 

 

 

전시되는 자연



최근엔 자연을 닮은 실내장식이나 조경이 유행이다.

 

이 흐름은 사람들이 콘크리트 벽 사이에 식물을 심고, 이를 배경 삼아 커피를 마시거나 소비하며 자연의 싱그러운 생명력을 향한 갈증을 해소하려는 시도의 결과물인가? 혹은 생명의 잔흔조차 없는 공간에 생명력을 ‘억지로’ 불어넣고자 하는 지극히 인간 중심적 사고의 산물일까.

 

어느 쪽이건, 자연은 인간에 의해 정제된 상태로 전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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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은 단순히 인테리어 트렌드나 미세먼지 방패막이로 여겨진다. 출처- 제일기획 블로그

 

 

도심 속에서 어떻게든 자연을 찾아내려는 이러한 인간의 심리는 참 묘하다. 다름 아닌 인간의 편리와 발전을 위해 밀어낸 자연을 인간의 편리를 위해 다시 들인다니.


자연은 별 고민없이 ‘도구’로 활용되고, 인간은 자연이 생과 사를 지닌 생명체의 유기적 관계망으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점점 망각하는 중이다.

 

 


이제는 마주해야 할 때



이 다큐멘터리에 나오는 모든 내용에 공감하거나 동의하진 않으며, 이렇게 이야기하는 나조차 도시에서 나고 자란 아파트 키즈라 자조 섞인 의문을 몇 번이나 던진 것은 사실이다.


다만 확실한 것은 이제까지 인간이 인간의 입맛대로 생략해온 많은 부분이 그리 단순히 생략될 수 있는 것이 아니었음을 조금이나마 깨달았다는 점과, 앞으로도 꾸준히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경각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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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는 인간이 독점할 수 있는 소모품이 아니다. 지구를 철저히 근대적 인간의 시각으로 ‘사용’하려 한다면, 자연이 수용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선 인간의 탐욕 어린 발전을 이 행성이 언제까지고 견뎌주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우리의 편리를 위해 미뤄두고, 못 본 체했던 문제를 이제는 용기 내 마주할 차례다. 각자의 자리에서 조금씩이라도 이 행성의 원래 속도를 되찾기 위해 노력하고, 다름 아닌 인간에 의해 반대 극단으로 밀려났던 자연을 겸허히 맞이할 준비를 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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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Final Straw(자연농)'는 홈페이지에서 구입하면 다운로드하는 방식으로 배포된다. 이 또한 환경오염을 최소화하기 위한 방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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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세는 인간 활동이 지구 전체에 끼치는 영향을 과학적으로 입증하고 그에 따른 책임을 촉구하기 위해 파울 크뤼천 Paul Crutzen이 제안한 가설적 개념으로, 과학계를 넘어 여러 분야에서 반향을 일으켰다. (윤원화, GQ 코리아)

 

*자연농 : 자연에 대한 개입을 최소화하는 농사로 경운과 제초등 기존 농업에서 이행하는 인공적 과정을 거부하는 방식.

 

 

[김현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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