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그 사람이 싫은 이유는... [사람]

그 원인이 상대가 아닌 나에게 있을 수 있다.
글 입력 2020.12.13 1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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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친구 지수의 이야기

 

지수(가명)는 칭찬을 잘한다. 되도록 상대방의 좋은 점을 보려고 하고, 그것에 대해서 칭찬하기를 좋아한다. 어느 정도냐고 묻는다면, 짜장면을 시키면 같이 따라오는 단무지처럼, 그녀를 만날 때마다 칭찬이 함께 따라온다. 언제나, 항상, 자주.


"어머, 오늘 네가 입은 바지가 정말 너와 잘 어울린다."

"와, 그런 일을 하다니 정말 멋있어!"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해? 정말 대단해~"


늘 입던 바지도, 별것 아닌 일에도, 아무도 칭찬하지 않는 생각에도, 그녀는 태어나서 그걸 처음 본 어린아이 같은 표정을 지으며, 흥분과 들뜬 감정을 목소리에 담아 칭찬한다. 열심히 사람들을 칭찬한다.


칭찬은 듣는 사람을 기쁘게도 하고, 우쭐하게도 한다. 하지만, 너무 자주 따라오는 그녀의 칭찬은 점차 짜장면을 시키면 당연하게 따라오는 단무지처럼 일상이 된다. 짜장면을 주문했는데 단무지가 오지 않으면 화가 나는 것처럼, 지수를 만났는데 칭찬을 하지 않으면 오늘따라 지수가 건방져 보인다.


이제 친구들은 지수의 칭찬에 기뻐하지 않는다. 오히려 당연하게 여긴다. 심지어 어떤 친구는 지수를 무시하기 시작한다. 지수는 나를 항상 우러러보는 친구야. 그래서, 나를 칭찬하는 것은 당연해. 내가 지수 보다 잘났으니까. 지수가 상대를 배려하고 존중하기 위해 시작한 따뜻한 칭찬은 그렇게 한없이 가벼운 말로 전락한다. 안타까운 일이다.


그런데 사실 그녀의 칭찬에는 상대를 위한 마음보다, 자신을 위하는 마음이 더 많이 담겨있었다. 친구들은 그저 지수를 착한 친구, 칭찬을 잘하는 친구, 만만한 친구로 볼 뿐이다. 지수가 칭찬하는 이유는 단지 자기가 멋지기 때문이라 생각할 것이다. 아니면, 지수가 원래 착하고 따뜻한 마음씨를 가졌기 때문이라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그녀의 칭찬에는 그런 이유도 있고, 저런 이유도 있다. 그리고 자기 자신을 위한 이유도 있었다.


지수가 칭찬하는 이유는 사랑받고 싶었기 때문이다. 지수는 몸은 어른이지만, 마음은 어린아이였다. 어린 시절, 엄마의 사랑과 칭찬을 받지 못해서 슬퍼하는 어린아이. 그래서 이미 어른이 된 그녀의 성숙한 몸도 결핍된 마음을 이길 수 없었다. 어른이 되지 못한 마음은 여전히 외로웠던 과거에 살고 있었다.


어린 시절 지수는 칭찬하면 엄마가 기뻐할 것을 알았다. 마음에 안 드는 것도 꾹 참으며, 그녀는 좋은 말만 했다. 사랑을 애타게 바라는 그녀는 엄마에게 열심히 칭찬했다. 그러다 칭찬하는 것이 점차 습관이 되었고, 엄마에게만 했던 칭찬을 어느샌가 모든 사람에게 하기 시작했다. 사랑받고 싶고, 관심받고 싶고, 따뜻한 애정을 갈망했다. 엄마에게 원했던 사랑은 점차 모든 사람에게로 범위가 넓어졌다.

 

지수는 이제 자신을 보살펴 줄 엄마가 없어도 괜찮은 어른이 되었다. 스스로 자신의 삶을 개척해나갈 힘이 충분히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여전히 사랑을 갈망한다. 그렇게 마음은 어린아이인 채로, 몸만 어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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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수가 참 싫었다. 친구로 지낸 지 3년이 넘었지만 그녀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3년의 세월 동안 지수와 나는, 2살의 나이 차이를 잊고 서로를 이름으로 부를 만큼 가까워진 사이가 되었지만, 여전히 나는 그녀를 좋아하지 않았다. 그녀가 내게 피해를 준 적이 없는데도 나는 그녀가 싫었다.

 

물론 그렇다고 무례하게 눈앞에서 그녀를 모욕한다거나, 비난한다거나, 미워하는 말이나 상처 주는 말을 한 적은 없다. 우리는 서로 꽤 괜찮은 친구다. 다만 내 마음이 그녀를 거부했을 뿐이다.


최근에 지수의 진솔한 이야기를 듣게 되면서, 비로소 내가 왜 그렇게 그녀를 싫어했는지 깨닫게 되었다. 그녀가 나와 너무 닮았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내가 가장 싫어하는 나의 모습을 닮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녀를 볼 때마다 보기 싫은 나의 모습이 떠올랐다. 잊고 싶은 과거의 내가 떠올랐다. 싫어하는 마음의 원인은 그녀에게 있지 않았다. 나 자신에게 있었다.


때때로 그 사람이 싫은 이유는, 상대가 아닌 나에게 있는 경우가 있다. 이 사실을 깨닫게 된 이후로, 나는 누군가를 싫어하는 마음이 들 때 상대를 탓하기보다 내 마음을 살피게 되었다. 그리고 자기 자신에게 묻는다. '혹시 저 사람을 통해서, 어쩌면 나 자신을 보고 있는 게 아닐까?'


그리고 점차 나의 부끄러운 모습들, 보기 싫은 나의 모습들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이해할 수 있게 되면서, 나는 더이상 지수를 싫어하지 않게 되었다. 자존감을 이야기하는 책에서 흔히 등장하는 구절이 문득 떠올랐다.

 

"나 자신을 사랑해야만, 진정으로 타인을 사랑할 수 있다."

 

지금은 지수가 싫지 않다. 다만, 그녀의 마음이 조금씩 어른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 자신이 얼마나 아름답고 강한 사람인지 깨닫게 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나 자신도, 그럴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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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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