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잊은 것이 아니야, 가슴 속에 품고 살아가는 거야 - 죽음을 그린 화가들, 순간 속 영원을 담다

죽음을 비로소 가치 있게 만드는 것들
글 입력 2020.12.12 0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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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이 빛 바래가는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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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무거운 만큼 죽음 또한 그렇다. 한 사람의 죽음은 수많은 타인의 삶과 맞닿아 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다는 상실감은 때로 추억마저 왜곡시킨다. 행복했던 기억보다 후회스러운 일들이 먼저 떠오르는 것이 죽음을 받아들이는 보편적인 태도이기 때문이다.

 

뭉크의 <죽은 어머니와 어린이>에서 아이는 귀를 막고 어머니의 죽음을 외면하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 침대에 누워있는 어머니보다 더 선명하게 그려진 아이의 얼굴은 남아있는 사람의 고통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뭉크는 실제로 다섯 살 때 어머니를 잃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한 시간보다 더 긴 시간을 순간의 좋았던 기억만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은 얼마나 잔혹한가.

 

나는 '있을 때 잘하라'라는 말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죽음은 누구나 겪는 삶의 과정일 뿐, 그 자체로 살아온 날들에 대한 가치를 바꿀 수는 없기 때문이다. 남아있는 이들에게 죽음에 대한 책임을 지우는 것은 한 사람의 끝을 무의미하게 만든다. 나의 죽음이 타인에게 고통이 될 것이 두려워 떠나지 못하는 삶은 허무하기 그지없다.

 

사랑하는 이와의 단절은 물론 가슴 아픈 일이다. 그러나 죽음이 있기에 함께한 삶은 비로소 아름답다. 개인은 죽음을 죄의식과 고통스러움의 시작이 아닌, 남아있는 인생을 더욱 가치 있게 만드는 추억들의 빛 바래가는 과정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죽음 앞의 '공정함'이라는 '불공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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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드리안 반 위트레흐트의 <해골과 꽃다발이 있는 정물화>는 삶에서 죽음에 이르기까지 과정을 그려냈다. 만개한 꽃은 인간의 유한한 영광, 해골은 피할 수 없는 죽음, 그리고 연기는 인생의 허무함을 의미한다.

 

죽음 앞에서 우리는 모두 평등하다. 살아생전 얻고자 발버둥 쳤던 부와 명예도 죽음의 순간에는 무의미해지기 때문이다. 자신의 삶을 너무나 사랑해서 불로초를 찾으러 다녔던 진시황도 결국은 죽음을 피하지 못했다. 오히려 죽지 않으려고 집착했던 과정이 더 의미 있게 보낼 수 있었던 그의 삶을 두려움과 공포로 잠식했다.

 

누구도 죽음을 피하거나 예상할 수 없다는 사실은 무엇보다 죽음을 공평하게 만들지만, 이것은 곧 죽음의 불공정함과도 연관된다.

 

살고자 노력하는 사람은 예기치 않게 죽음을 맞이하기도 하고, 살아있음으로써 타인을 고통스럽게 만드는 사람이 누구보다 오래 살기도 한다. 죽음은 인간의 능력이 닿지 않는 영역이다.

 

오늘날 '만약 남아있는 삶의 일수를 알 수 있다면?'이라는 소재로 수많은 영화나 드라마가 등장하지만 절대 빼놓지 않는 전개가 있다. 삶이 얼마 남지 않은 사람들은 타인의 존엄성을 해치면서까지 개인의 이익을 추구하고, 남은 인생이 긴 사람은 나태하게 살아간다.

 

죽음이 언제 다가올지 모르기에 개인의 인생은 치열해진다. 베일에 싸인 죽음 앞에서 후회하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인생은 순간을 가치 있게 만든다.

 

 

 

죽음 앞에서도 변함없는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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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터 랭글리의 <저녁이 가면 아침이 오지만, 가슴은 무너지는구나>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슬퍼하는 여인과 그녀를 달래주는 또 다른 여인의 모습을 담고 있다. 죽음에 대한 상실감과 짙은 위로가 동시에 묻어나오는 작품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낸 개인은 불안하고 두려울 수밖에 없다. 이제 볼 수 없다는 슬픔, 그리고 남은 인생을 부재를 체감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것은 당연히 고통스럽다. 이러한 상황에서 아픔을 극복하는 힘은 또 다른 사랑하는 사람의 위로이다.

 

'산 사람은 살아야지', 죽음을 삶의 과정이라 일컫는 이유는 죽은 이후에도 나 없는 세상은 변함없이 흘러가기 때문이다. 남아있는 사람끼리 상처를 치유하고 서로에게 원동력을 불어넣으며 살다 보면 언젠가는 부재로 인한 슬픔이 추억으로 바뀌는 순간이 온다. 그때서야 비로소 개인은 온전한 죽음을 맞이한다.

 

그것은 '잊히는 것'이 아닌, '사랑했던 사람들의 가슴 한쪽에 영원히 살아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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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향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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