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고통스러운 삶에 확실한 대안이 있다면 - 인생에 대하여

글 입력 2020.12.10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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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무엇인가. 너무 오래되고 진부해서, 누군가에게는 더는 아무런 의미도 울림도 주지 못하는 질문이다. 그리고 그 ‘누군가’에는 분명 나도 포함된다. 나는 늘 인간의 삶을 이끄는 ‘의식’이란 (다른 모든 동식물과 마찬가지로) 물질이 유기적으로 조직되어 만들어진 인간이라는 개체에 발생한 설명할 수 없는 사고나 우연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내가 보기에 삶은 곧 생존이었고, 더 나아가 생존 이상이기 어려운 무언가였다. 살기 위해서, 다시 말하자면 더 ‘잘’ 살기 위해서 끝없이 빼앗고 이기는 인간의 삶은 비둘기나 모기나 사슴의 그것과 다를 바 없어 보였으며, 모두가 같은 삶의 법칙을 공유하고 있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나는 그것이 순리라고 생각했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동물이고, 어쩔 수 없이 날 때부터 이기적이며, 누구도 거기에 대해 어떤 해법도 제시할 수 없다고 말이다.

 

내가 그렇게 생각하게 된 것이 최근의 일은 아니다. 기억도 나지 않는 어린 시절부터 교회에 다녀야 했던 나는 더 큰 목적을 가지고 이웃을 위해 기꺼이 희생하고자 한다는 이들의 삶이 그 누구의 삶보다 세속적이고 더 없이 인간적임을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사랑을 실천하는 이들은 거의 없었다. 나는 내가 본 대로 믿었다. 신과 이웃을 향한 사랑이 인간에게 참된 행복을 가져다준다는 교리는 너무 오래된 것 같았고, 전혀 진실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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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톨스토이는 오히려 동물적 개체로서의 생존이 절대 진정한 인생이 아니라고 말한다. 내 앞에 놓인 것이 분명해 보이는 이 삶이 삶일 수 없다니, 처음 읽을 때는 어딘가 미심쩍을 뿐이었다.

 

오래된 현자들의 가르침을 해석하여 도출한 그의 철학은 어린 내가 처음 마주했던 기독교의 이상적인 교리와 비슷하게만 보였다. 그의 사상이 성경을 바탕으로 하고 있으니 당연한 일이겠지만, 바로 그 이유로 나는 톨스토이의 말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다. 괜한 오기와 거부감을 안은 나는 ‘그럼 이건 왜 이런 건데?’ 하는 삐딱한 마음가짐을 가진 채 계속 책을 읽어나갔다.

 

그러나 내가 기독교적 교리에 얼마나 동의하는지와는 별개로 톨스토이의 말은 아주 논리적이었다. 그는 모든 문장에서 확신에 차 있었다. 한 번에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톨스토이는 모든 사람을 대상으로 이 책을 썼고, 그런 만큼 그의 철학을 다양한 비유를 통해 여러 번 설명한다.

 

그래도 여전히, 완전히 소화하기는 어려웠지만, 핵심을 들여다보기에는 충분했다. 톨스토이는 이 책에서 생명과 사랑, 죽음에 대해 차례대로 이야기한다. 그중 내게 가장 와 닿았던 내용은 인생의 진정한 목적과 거기에서 비롯되는 모순에 대한 것이었다.


 

인간이 생명, 즉 인생의 목적으로 가장 먼저 떠올릴 수 있는 유일한 것은 한 개체로서 자신의 행복이지만 개체의 행복은 있을 수가 없다. 행복과 유사한 그 무언가가 있다 하더라도 인생은, 개체로서의 인간의 생명은 한 번 움직이고 숨을 쉴 때마다 고통을 향하여, 악을 향하여, 죽음과 파멸을 향하여 불가항력적으로 끌려들어가고 있다. - p. 36

 

이성적 의식은 인간의 개체성 속에서 모르는 사이에 자라나 개체로서의 생명이 불가능한 것이 될 정도까지 성장한다.…인간이 이성적 의식을 각성하였다는 것에는 아무런 모순이 없으며 오직 새로운 존재의 탄생, 이성적 의식과 동물적 존재의 새로운 관계만이 존재할 뿐이다. - p. 74, 75

 


톨스토이의 말마따나 나는 ‘수많은 필요를 가지고 있으며, 그러한 필요를 충족하는 데에 나의 행복이 있다고 가르침 받아온’ 대중의 일부이다. 매체에서 흘러나오는 온갖 목소리는 내 안에 있는지조차 알지 못했던 욕구까지 집어내며 더 많이 원하고 더 많이 소비하라고 부추긴다.

 

더 큰 행복을 위해서는 더 많은 물질이 필요하다는 가르침 아래 우리는 부를 얻기 위해, 사회에서 더 높고 멋진 자리에 앉기 위해 노력한다. 나를 비롯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런 것을 원하는 까닭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내 생각에 가장 큰 이유는 우리가 그간 보고 들으며 자란 모든 행복이 거기에 있기 때문이고, 두 번째로는 그런 삶에 그럭저럭 적응하고 순응하며 사는 것이 이미 만들어진 모든 행복의 기준에 반기를 들기보다 더 쉽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돈을 지불하고 얻는 대상이 무엇이든 간에 돈을 쓰는 것은 더없이 즐겁고,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우리가 믿어 의심치 않고 행하는 모든 행위는 분명 행복감을 주지만, 톨스토이는 그것이 행복의 헛된 유사품이라고 말한다. 내면에서는 우리 또한 그것이 영원히 지속될 수 없음을 잘 알고 있다.

 

톨스토이는 행복을 위해 우리가 매 순간 행하고 있는 모든 활동이 다른 존재의 불행과 착취를 전제하고 있으며, 그러므로 반대로 보면 우리 스스로가 타인의 행복을 위해 착취되거나 제거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 삶의 고통과 모순이 발생한다고 말한다. 게다가 그렇게 얻어진 행복은 절대 지속할 수 있지 않은데, 왜냐하면 모든 인간의 삶은 지금 이 순간에도 불가항력적으로 죽음을 향해 가고 있기 때문이다.

 

손에 잡히는 삶, 동물적인 인간의 삶이 전부이고 그 이상은 없다고 생각해왔지만, 그런 믿음은 분명 허망하다.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행복이 좋은 집과 많은 돈에 있다면, 죽음 앞에서 나의 삶과 모든 행위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책의 후반에서 톨스토이가 설명하듯, ‘고통이나 죽음에 의해 파괴되지 않는 행복’이라는 생명의 진정한 지향점, 그리고 사랑이라는 생명의 활동에 대해 이해하지 못할 때, 우리는 육체가 언젠가는 필연적으로 맞게 될 죽음을 두려워하게 된다.

 

물질적 쾌락으로의 이끌림이나 죽음에 대한 공포가 인간의 당연한 본능이며, 인간에게 주어진 숙명이라는 다소 우울한 생각은 보편적이다. 톨스토이는 우리의 삶이 그런 식으로 나아갈 필요가 전혀 없으며, 오히려 그것이 우리 이성의 본능에 반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의 말이 이상적이고 희망적이지만, 동시에 더없이 현실적으로 다가오는 것은 그가 자신이 쓴 대로 삶을 살았기 때문일 것이다.

 

*

 

‘인생에 대하여’는 모두가 마음 깊은 곳에서는 알고 있지만, 진정으로 믿지는 못하는 진리, 선명한 진실에 대해 말한다. 인간의 삶, 그리고 생명에 어떤 목적과 법칙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일까? 분명 끝내기 어려운 책이지만, 한 번 펼친 뒤에는 책장에, 그리고 내면에 아주 오래도록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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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다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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