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예술보존, 그 숨은 예술가들의 이야기 - 예술가의 손끝에서 과학자의 손길로

글 입력 2020.12.09 1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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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 발달은 예술의 경계를 무너뜨렸다. 예술에 대한 접근과 생산이 자유로운 현대사회에서는 모든 것이 예술이 될 수 있고, 누구든 예술가가 될 수 있다. 현대예술에 이르러서는 개념이나 행위로 존재하기도 한다. 예술 '작품'의 여러 애매한 문제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예술의 표현 방식이 비교적 적었을 때 예술 작품은 하나의 '완성품' 즉, 하나의 물질로서 취급받아 왔다. 하지만 현대예술에 이르러서는 '하나'의 '작품'이라고 쉽게 말할 수 없게 되었다.

 

반고흐의 작품은 하나만 존재하며, 보존해야 할 대상도 명백하다. 반면 기술적 접근이 다양해진 오늘날의 작품은 그렇지 않다. 무한 복제 가능한 사진 작품은 원본이라는 개념 자체가 모호하고, 시간적 제약이나 행위에 초점을 맞춘 작품들은 형태조차 없는 경우가 많다.

 

작품 형태의 역동적인 변화에 따라 보존과학도 이전과 비교해 역할의 범위가 훨씬 넓어지게 되었다. 보존은 재료의 수명연장과 실질적인 처리에 중점을 두어 진행되었다면, 현대예술 작품의 출현 이후 보존은 작가의 의도와 관련된 개념적 문제에 대한 더 많은 고찰이 필요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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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 다다익선

 

 

<예술가의 손끝에서 과학자의 손길로>는 시대적 변화를 마주하고 있는 예술 보존가의 이야기를 담은 글이다. 책은 앞서 기술한 보존예술의 개념 변화와 다양한 성공과 실패사례를 쉽고 재미있는 언어로 전달하고 있다. 책은 예술가이자 과학자로서의 예술 보존가를 대중들에게 소개하고, 그들이 마주하고 있는 문제가 무엇인지 기술한다.

 

저자는 현대예술 작품 보존 문제에서 흥미로운 사례를 하나 소개한다. 백남준의 텔레비전 작품은 기술 매체가 이미지를 대중적으로 복사하여 반사하는 시대적 변화을 반영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이전 회화나 조각 작품과 달리 텔레비전이라는 기술 매체를 활용했다는 점에서 독특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작품에 사용한 텔레비전을 관리할 기술자가 없어지게 되었다. 너무 오래된 기술 탓에 작품의 보존이 어려워진 것이다.

 

백남준의 작품에 대해 보존가들은 텔레비전 송출 화면을 LED 화면으로 바꾸자는 의견을 냈다. 이 경우 보존을 위해 작품은 온전히 개조된다. 작가 본인의 의견을 들으면 좋겠지만, 이런 보존 이슈를 가진 작품들 대부분은 작가들이 살아있지 않은 경우가 많다.

 

작품의 보존이라는 측면에서 텔레비전 작품을 개조하는 것은 옳은 일인가? 겉표면을 남기고 백남준의 시대라는 맥락을 일부 수정하는 것이 용인되는가? '물질의 재료'를 보존하는 기술과 과학으로만 답할 수 없는 문제고, 상대적으로 표현 매체가 다양하지 않았던 이전 시대에 제기되지 않았던 문제다.

 

이처럼 책은 전체적으로 예술 작품의 보존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지만, 결코 기술과 직업을 충실히 전달하는 것에서 멈추지 않는다. 저자는 이 짧은 책에서 '보존은 무엇인가'부터 시작해 '예술 작품을 보존'하는 것, 혹은 '감상의 경험'을 보존하는 것에 대한 고민을 이어나간다. 책의 마지막에 실려있는 에필로그에서 그는 '부족함이 여실히 드러났다'라고 고백한다.

 

독자들은 책을 통해 과학자보다는 예술가로서의 예술 보존가를 알아가게 된다.번역가가 작품에 생기를 불어넣는 것처럼, 작품을 대하는 능동성과 창조성은 예술가의 태도에 가깝다. 저자는 예술 보존가를 예술가도 과학자도 아닌 애매한 위치로 정의하는 세간의 의견을 적극 방어하지 않는다. 아마 그가 그랬던 것은 그의 직업이 예술가이기도, 과학자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마지막 글인 '액자도 작품이 될 수 있을까'는 어떤 로맨틱한 비유처럼 느껴졌다. 액자는 작품을 전시하기 위한 하나의 틀이다. 작품의 맥락, 과학적 보존과 같은 다양한 요소를 고려한 액자는 철저한 설계로 제시된다. 액자라는 형식은 보존과 맞닿아 있다.

 

액자 자체에 가치를 부여하고 보존하고 애쓰려는 노력은 보잘것없는 것으로 취급받기도 한다. 하지만 액자는 작품을 보존하고 후대 관람객에게 이어질 하나의 다리다. 작품의 특성을 이해한 액자나 틀 없이 작품은 보존 및 전시될 수 없다. 단순히 유지하는 것뿐만 아니라, 액자는 때로 작품의 의미를 확장시킨다.

 

그래서 인류의 문화가 보존되길 바라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보존가에게 감사할 필요가 있다. 현실에서 작품을 만들어낸 그 순간을 영원하게 만드는 것은 예술의 가치가 아닌 보존가들의 치열한 노력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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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적인 태도로 책을 읽었다. 감성이 적절히 섞인 칼럼 같은 글 덕분이기도 하지만, 저자의 태도가 개인적으로 감명 깊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현대사회에서 사람들은 혁신을 요구받는다. 화면에 떠오르는 수많은 마케팅 전략과 짧은 주기로 바뀌는 트랜드는 이미 현대인을 중독시켰다. 때로 우리는 '신상품'과 '인생xx', 혹은 '레전드'에 미친 사람처럼 군다.

 

현대사회에서 그래서 새로운 건 유일무이한 가치처럼 떠오른다. 그런 시대에 세상에 존재하는 가치들을 지키는 것을 자처하는 저자를 만나니 이상한 감동이 밀려왔다. 때로는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것보다 세상에 존재하는 것을 지키고 조금씩 개선시키는 것이 때로 더 복잡하고 가치 있다.

 

스쳐 지나가기 쉽지만, 지금까지의 오늘을 지켜왔던 힘들이다. 그래서 이 책에서 만난 예술 보존가는, 내가 접해온 그 어떤 예술 보존가보다 매력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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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의 손끝에서 과학자의 손길로

- 과거의 시간을 현재로 그리고 다시 미래로 -

 

 

지은이

김은진

 

출판사 : 생각의힘

 

분야

교양과학

 

규격

140*215mm

 

쪽 수 : 304쪽

 

발행일

2020년 11월 06일

 

정가 : 17,000원


ISBN

979-11-90955-03-4 (03600)

 



[손진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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