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View] 기타 치는 철학자의 사색, 박준하의 음악 Part 1

글 입력 2020.12.07 2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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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전에 사고 치기



글 - 작곡가 오상훈(Dike)

  
 
"형, 이 음악 한 번 들어보실래요?"     
 
같이 인디 View를 진행하고 있는 찰리파크가 문득 나에게 음악을 추천한 날이 있었다. 자신의 고등학교 때 기타 선생님이라며 [WAVE]라는 곡을 들려주었다. 그리고 듣자마자 세련된 유럽의 감성이 파도처럼 밀려들어왔다. 갑자기 이 아티스트가 궁금해져서 모든 앨범을 다 들어보았다. 나도 기타를 치면서 음악을 시작했기 때문에 느낄 수 있는 것이 하나 있었다. 이 음악은 기타를 치는 사람들이 가장 동경하는 형태의 음악이라는 걸.
 
작곡가가 만나는 인디 아티스트들의 이야기, <인디 View>. 서른한 번째 주인공인 박준하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박준하의 [WAVE] MV
 
 
Q. 본인 소개를 부탁합니다.
 
A. 박준하 : 싱어송라이터 박준하입니다. 원래는 기타리스트고 싱어송라이터 외에도 작곡, 편곡 활동을 하고 있는 뮤지션입니다.
 
 
Q. 올해 8월에 싱글 [WAVE]가 발표됐었어요. 그 이후의 요즘 근황은 어떤가요?
 
A. 박준하 : 기타 연주 활동을 주로 하고 있고 공연보다는 영상으로 대중과 소통을 할 수 있는 작업을 하고 있어요. 그리고 레코딩 세션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Q. 인디 View의 고정 질문입니다. 성장과정이 궁금해요. 본인의 일생을 짧게 얘기해 준다면.
 
A. 박준하 : 사진을 하시는 할아버지와 아버지 밑에서 자랐어요. 음악을 할 거라고는 전혀 생각을 못했는데 중학교 때 드럼을 시작하면서 음악을 시작했어요. 원래는 만화를 좋아해서 그림을 먼저 그렸는데 재능이 없다는 걸 일찍 알았어요. 그런데 뮤지션들이 만화에서 튀어나온 사람들 같았어요. 예정의 LA메탈을 하는 뮤지션들을 봐도 그렇고 당시에 MTV 같은 음악채널들을 보면서 뮤지션들을 동경했어요.
 
고등학교 즈음에 진로를 결정하는 것에 대해 특별한 생각이 없었다가 고3 때 실용음악과 진학을 준비하는 선배들을 보면서 음악을 하고 싶다고 느꼈고 드럼과 기타 중에서 고민을 했어요. 그때는 대학교의 전공이 평생직업이라고 생각을 하던 때니까 많이 고민을 했죠. 학교는 조금 늦게 갔는데 운이 좋게 군악대를 가면서 군문제가 빨리 해결이 돼서 뒤쳐진다는 느낌은 없었던 것 같아요. 서른이 될 즈음에 내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앞에 있는 찰리파크를 가르칠 때 즈음에(인디 view 에디터 찰리파크의 선생님이다) 어떤 생각을 했냐면 많은 사람들이 음악을 하지만 자기 음악으로 생업을 유지하기보다는 음악 산업 안에서 일을 하고 있다 보니 이러려고 기타를 친 게 아니데, 라는 생각을 했고 그래서 첫 앨범을 냈어요. 기타리스트들은 다들 공감하겠지만 노래 욕심(?)이 다들 좀 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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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범을 만들다 보니 내가 좋아하는 음악이나 하고 싶은 음악에 대해 솔직해지기도 하더라고요. 그 전에는 전공을 하다 보니 좋아하는 척을 했던 음악도 있었거든요. 나는 뒤처지지 않은 뮤지션이야,라고 보이기 위해서였던 것 같아요. 어렸을 때 어머니가 청소를 할 때 카펜터스를 많이 틀어주셨어요. 그래서 머릿속에 그런 소프트한 밴드의 팝 음악에 좋은 음악이라는 이상향이 있던 것 같아요. 레퍼런스로 최신의 곡들을 골라놔도 마음에 안 들어서 예전 음악들을 옮기다 보니까 내 이상향이 이쪽에 있다고 발견을 하게 됐어요.
 
내 음악을 하겠다고는 늦게 생각하게 된 것 같고 실용음악과를 갈 때도 뮤지션이 직업이 될 수 있다는 거였지 내 음악을 어떻게 하겠다는 것에 대한 청사진은 학교에선 발견하지 못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군대를 갔을 때 시간이 많잖아요. 군악대라서 악기가 늘 곁에 있었고 음악을 할 수 있는 부대에 있었어요. 근무를 나가면 곡에 대한 상상을 많이 했어요. 어차피 시간을 보내야 하니까 새벽하늘을 보면서 제가 지금 발표한 곡들의 거의 1/3을 그때 썼어요. 원래 작가들이나 예술가들이 문명과 멀리 지고 다른 생각을 안 할 때 더 영감과 가까워지곤 하잖아요. 보이스 레코더에 제대를 할 때 파일이 900개 정도가 있었어요. 그런데 제대 후에 집에서 세탁기에 한번 돌아가면서 다 날아가고(웃음) 기억에 남아있는 멜로디들이 지금 발표한 곡들이에요.
 
기타리스트로 일을 하다 보니 앨범을 만든다는 것이 품도 들어가고 활동을 하면 일종의 자회사를 차리는 셈이잖아요. 자신이 제작을 하고 가수가 되는 일이니까 이게 괜찮나? 하는 고민을 많이 했어요. 이게 돈이 되는 일인지 나에게 어떤 보탬이 될지 고민하면서 곡은 다 써놓고 발표를 하겠다는 마음을 먹는데 오래 걸렸어요. 당시 시기가 제 주변의 뮤지션들이 곡을 많이 발표하는 시기였어요. 안녕하신가영이라는 친구와 선우정아 님도 그랬어요. 그런 걸 보면서 자극을 받았어요. 데드라인을 서른이라고 결정을 내리고 그때부터 앨범을 만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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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ke : 20대 시절에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궁금해요.
 
박준하 : 대학교를 처음엔 들어가서 짧게 1학기만 다녔어요. 뭔가 제가 생각한 유토피아가 아니었어요. 예체능을 하는 친구들이 모이면 서로 시기하고 질투하고 음악에 대한 얘기만 해도 모자랄 판에 지식으로 음악을 겨루려는 모습을 보면서 내가 생각했던 음악과가 이게 맞나 싶었어요. 물론 좋은 교수님과 선배들이 있었고 그래서 주말에 같이 연주하러 가자는 얘기도 들었어요. 그런 기회를 통해 오히려 밖에서 많이 배웠어요. 학교가 있었기 때문에 그런 기회가 있던 거니까요.
 
군대를 빨리 다녀왔어요. 다른 부대랑 좀 달랐던 게 군악대에 기타가 저 혼자만 있었어요. 그래서 말년휴가 나가기 전까지 행사를 나갔던 기억이 있어요.(웃음) 그렇게 제대를 하고 다시 학교를 복학을 하니까 많은 게 바뀌어 있었어요. 싱어송라이터 전공이 만들어져 있었고 불독맨션의 이한철 교수님이 계셨어요. 교수님이 ‘니 기타 치면서 노래하지? 나와 봐라’라고 하시면서 수업 시간 외의 공강 시간에 보컬리스트가 아닌 악기를 연주하면서 노래하는 친구들을 모아서 시간을 보내고는 하셨는데 그게 너무 좋았어요. 현실적인 조언을 많이 들었어요. 음악을 발표하는 게 어려운 일은 아니지만 맘은 먹어야 한다, 라는 얘기 같은 것들이에요. 많이 배웠어요. 저는 고등학교 때 불독맨션이나 롤러코스터, 언니네 이발관 등 지금의 힙하다고 말하는 팀들을 동경했었는데 그 사람과 실제로 대화를 하는 거니까 즐거웠어요.
 
졸업을 하고 나서는 많이 맴돌았어요. 세션맨으로 살다 보면 기회만 기다리는 경우가 있는데 저는 학교를 가서 가르치는 일을 하게 됐어요. 학교를 다니면서도 연주를 할 기회가 있었는데 어떤 직업이 있다는 게 연주 활동을 하는데 걸림돌이 되는 부분이 있었어요. 가장 크게 느꼈던 건 아침 6시에 일어나서 출근을 하고 4시에 퇴근을 해서 저녁 7시쯤에 클럽에 올라가면 새벽 3,4시쯤에 오는 피곤함이 무대에서 왔어요. 손이 떨리고 얼굴이 화끈거리는데 이러다 그만두겠구나 싶었어요. 이런 고민들을 선생님에게 말씀드렸더니 그럼 아직 제가 가르칠 때는 아니라면서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하라고 하시더라고요.
 
어린 친구들이 잘하는 걸 보면서 자극도 받았던 것 같아요. 건강한 자극은 아니었던 것 같아요. 충격을 받은 부분도 있었어요. 또 학생들이 어떤 고민을 하는지 잘 알고 있는 부분도 있지만 제가 당시에 27, 28 정도의 나이였는데 학부모님들과 상담을 할 때 난감했어요. 음악을 해서 굶어 죽는 세상은 아닌데 잘 사는 건 다른 문제인 것 같다는 말을 했었는데 그 말을 하면서도 저도 고민을 했던 것 같아요.
 
어쨌든 앨범이 나오고 전에 없던 자극을 받고 다녔어요. 기타리스트 박주원 형님이 연주를 끝내고 제가 CD를 드렸는데 그분이면 주변에 기타를 치는 후배들이 얼마나 많겠어요. 그런데 처음엔 연주곡인 줄 아셨다가 나중에 페이스북으로 쪽지가 오셔서 라디오에서 제 음악을 틀고 싶은데 방송국에 CD가 없다고 전화가 오셨어요. 그땐 제가 심의가 뭔지 몰랐거든요. 앨범이 나오고 3개월이 지나서 심의를 넣었어요. 오다가다 마주치면 현실적인 조언도 많이 해주셨어요. 지금도 병행을 하고 있지만 자기 음악을 하는 것과 세션으로 음악산업 안에 있는 것은 다르다는 걸 많이 배웠고 밸런스를 유지하는 것을 지금도 신경 쓰고 있어요.
 
회사와의 계약 기간이 끝나고 앞으로 어떻게 할 지에 관해 다시 한번 도전을 받았어요. 그러다가 서울시나 국가의 지원사업도 있고 나름의 청사진을 투명하게 그려봤어요. 이전에는 회사가 있어서 유토피아적인 상상을 했다면 이제는 파트 별로 잘 나눠서 유지할 수 있는 부분들을 고민하고 있어요. 큰 욕심은 내지 말고 1년에 2, 3곡 정도를 발매하자고 생각하고 있고 그렇게 하니까 도와주겠다는 분들이 있어서 지금까지 하고 있습니다.

 

박준하의 [Pink Rain] Live @EBS스페이스 공감
 
 
Q. 2014년에 미니앨범 [내 이름은 연애]로 데뷔했어요. 앨범 제목이 재밌어요.(웃음) 한 아티스트의 데뷔 앨범이라고 생각했을 때 어떤 앨범들을 짙은 예술가의 냄새를 강하게 풍기는 앨범들이 있어요. 제가 들었을 땐 이 앨범이 그런 앨범이었거든요. 수록 곡들이 모두 잘 설계된 곡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차갑고 세련된 유럽 느낌의 사운드라고 느껴지고요. 또 어떤 곡은 ‘대한민국’스럽고요.(웃음) 무엇보다 무엇을 담았고 어떻게 만들어졌는지에 대한 설명이 앨범 설명에 굉장히 친절하게 잘 쓰여있더라고요. 이 앨범에서 가장 애정이 있는 곡은 어떤 곡일까요?
 
A. 박준하 : [Pink Rain]이라는 가장 열심히 만들었어요. [산본러브송]은 가장 러프하게 만든 곡이었고요. 수록곡이 모두 아끼는 곡인데 [우리는 서로의 착각이었네]를 만들면서는 나도 발라드를 쓸 수 있구나를 처음 깨달았던 곡입니다. 그전에는 발라드라는 장르가 진부하고 진지한 척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그게 싫었어요. 처음 만들 때는 좀 더 빠른 템포였는데 안정화를 시켰던 것 같아요. [내 이름은 연애]는 기타 리프를 만들면서부터 이 곡은 앨범의 첫 트랙이었으면 좋겠다는 욕심이 있어서 앨범 제목으로까지 간 것 같아요.
 
[Pink Rain]는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 중에 'Rain'이라는 작품이 있거든요. 사람이 떨어지는 건데 간단히 설명하자면 보고 싶어서 네가 비처럼 보인다는 의미를 담고 있어요.
 
Dike : 또 앨범 설명에 워낙 잘 쓰여있어서.(웃음)
 
박준하 : 해명하는 걸 좋아해서요.(웃음)
 
Dike : 그런 큐레이션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잘 되어 있어서 좋았어요. 사실 예술의 어느 분야든 작가의 의도를 알고 싶은데 그걸 설명해주는 큐레이션이 우리나라가 잘 안되어 있는 편이잖아요.
 
박준하 : 모든 뮤지션들이 난감해하는 것 같아요. 이걸 누가 볼까 싶기도 하고. 그런데 보는 분들은 깊게 팬이 되는 경우가 많다 보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심을 하죠. 거의 가사를 쓰는 정도의 노동력을 투자하는 것 같아요.

 

박준하의 [저녁이 올 때마다]
 
 
Q. 민트페이퍼에서 주관하는 Bright#3 앨범에 [저녁이 올 때마다]가 수록됐어요. 등용문을 제대로 통과해온 느낌이네요. 이 곡은 어떤 곡인가요?
 
A. 박준하 : 저는 영국 음악을 좋아해요. 그래서 이런 곡을 쓰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영어가 아니면 맛있게 잘 써지지가 않더라고요. [내 이름은 연애] EP앨범을 작업할 때 만들어져 있는 상태였는데 가사를 완성하지 못해서 못쓰고 있었어요. 나중에 녹음실을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상황이 되어서 소외 제가 동경하는 밴드들이 하는 실험들도 많이 해본 곡이에요. 마이크도 이것저것 써보고 기타도 드럼도 악기들 바꿔가며 써보고 그랬어요. 곡이 완성이 된 시기랑 상황이 맞물려서 발표가 됐던 곡이에요.
 
 
Q. 준하 님은 얼핏 그냥 느끼기에도 철학자의 모습이 보여요.(웃음) 저의 주관적인 감상이지만 어쨌든 음악을 대해는 철학도 자신만의 것이 분명히 있을 것 같은 사람으로 느껴졌어요. 그런 부분들이 음악에서 들리는 것 같고요. 그게 뭘까요?
 
A. 박준하 : 약간 뒤집는 얘기일 수도 있는데 예전 20대 초반에 한 모임자리에서 패션 디자이너 분과 얘기를 한 적이 있어요. 그분이 저에게 예술을 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에 그 사람이 다 파악되게 하면 안 된다고, 매력이 없어진다고 얘기하신 적이 있어요. 이게 뭔지는 살면서 제가 고민을 해보라고 하더라고요. 근데 그게 와 닿았어요. 한 번에 매력이 파악되면 가벼워 보일 수 있잖아요. 신비주의라기보다는 뭐가 더 있을까, 궁금하게 만드는 것이 더 매력적이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음악이나 사진 등에 그런 장치들을 넣으려고 하는 것 같아요. 편곡이나 연주를 하면서도 다른 친구들과 부딪히는 부분이 제가 너무 드러내는 걸 별로 안 좋아하거든요. 작정하고 드러내는 것 있잖아요. 그런 부분 때문에 그렇게 느껴지시는 게 아닐까 싶어요.

 

박준하의 [잘못된 안녕] MV
 
 
Q. 2016년 초에는 첫 정규앨범 [달이 말라 가는 저녁]을 발표했어요. 다양한 장르의 음악이 담긴 앨범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타이틀곡 [잘못된 안녕]은 블루스 음악이면서도 박준하라는 사람의 특유의 정체성이 잘 담긴 곡처럼 들려서 좋았어요. 이 곡은 어떻게 나온 곡인지 알려주세요.
 
A. 박준하 : 사실 그 곡이 타이틑 곡이 아니었는데 그렇게 선정이 됐어요. 그 곡은 엄청 빨리 써졌고 가사만 뺀 채로 편곡까지 3일 만에 했어요. 원 맨 밴드를 하는 느낌으로 드럼이나 베이스 등의 다른 파트들의 연주도 머릿속에서 이미 설계를 끝내 놨었어요. 그 시기부터 약간 대놓고 로우 파이(Lo-fi)에 대한 것들이 유행을 했다고 생각해요. 요즘에 나온 음반인데 더 러프한 것들이 많았어요. 그리고 더 블랙 키스(The Black Keys)나 화이트 스트라입스(White Stripes) 같은 편성이 작은 2인조 밴드 작은 팀들을 많이 들었어요. 그리고 여러 가지 이미지를 가져오고 싶었는데 프랑스의 프랑소와 아르디 같은 분위기를 내고 싶었어요. 드럼이 나오되 절대 무겁지 않은. 약간 모순이긴 한데 락밴드의 편성을 가지고 락처럼 들리면 안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편곡을 했던 것 같아요.
 
제 기분에서는 정규앨범이 [내 이름은 연애] 앨범보다 장르적으로는 더 좁은 앨범이에요. 정규라서 한 가지 제시되는 색이 있었어야 했어요. 앨범 커버도 매트한 검은색을 가져가려고 노력했어요.
 
 
Q. 음악을 하는 사람에게 같이하는 믿을만한 파트너가 있다는 건 굉장히 든든하고 행복한 일일 거예요. 데뷔 때부터 지금까지 작사가 강그늘 님과 함께 하고 계시잖아요. 아티스트가 자신의 언어를 전적으로 다른 특정한 한 사람에게 맡긴다는 건 굉장히 특별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강그늘 님의 존재는 준하 님에게 어떤 존재인가요?
 
A. 박준하 : 사촌 형이고요.(웃음) 형 때문에 음악을 시작한 것도 있어요. 기타를 시작한 것도 형 집에 안 쓰는 기타가 있어서였어요. 형 때문에 록 음악을 알았는데 어느 날 제가 한창 록 음악을 듣고 있는데 ‘이게 미래다’라고 하면서 투팍의 앨범을...(웃음) 형은 힙합을 했던 사람이라서 가사를 쓰는 것에 라임을 맞춘다거나 하는 게 쉬워요. 발라드를 쓸 때 되게 쉽게 써요. 글을 쓰는 일도 계속하고 있고 문창과 출신이거든요. 주변 사람들이 저는 왜 가사를 안 쓰는데 많이 물어봐요. 저는 초기에 더 그랬던 것 같은데 뮤지션들이 쓰는 가사를 좋아하지 않았어요. 가사를 위한 가사라고 해야 하나? 정형화된 가사를 낼 바에는 안 내겠다는 마인드였어요. 우연히 형에서 가사를 한번 붙여봐 달라고 한 게 시작점이 돼서 지금까지 해오고 있어요.
 
제가 곡에 대한 얘기를 해줘요. 곡을 쓸 때의 감정이나 상황을 얘기해주면 초안을 서로 보내고 가사가 점점 수정이 돼요. 곡의 키도 수정을 해보고 라임을 맞출 부분들을 다시 수정하는 식으로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Dike : 의외로 가사 쪽에서 디테일한 작업이 굉장히 있네요?
 
박준하 : 네. 가사노동이라고 하잖아요.(웃음)

 

박준하의 [Siesta (feat. 김윤주 of 옥상달빛)]
 
 
Q. [Siesta (Feat. 김윤주 Of 옥상달빛)]은 옥상달빛의 김윤주 님이 참여한 곡이에요, 그리고 좀 독특한 곡이기도 한 것 같아요. 어떻게 김윤주 님과 함께 작업을 하게 됐는지 궁금해요. 그리고 이 곡이 어떤 곡인지 알려주세요.
 
A. 박준하 : 김윤주 님은 회사 대표님과 친분이 있었고 저와도 학교 동기예요. 노래를 들으시고 맘에 드신다고 흔쾌히 해주셨고 녹음도 진짜 빨리 끝났어요. 역시 3집 가수는 다르구나 하면서 녹음했어요. 노래를 잘하는 사람보다는 목소리가 좋은 사람이 이 곡을 기록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윤주누나를 선택했어요.
 
이 곡이 있었기 때문에 시공소년이 연장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이 곡은 거의 랩탑으로 썼다고 할 수 있을 정도예요. 기타도 컴퓨터에 연결해서 그때그때 나오는 걸로 했고요. 마지막 믹스 데이터를 보내기 전에도 카페에서 마무리했어요. 저에겐 이렇게 포터블 하게 작업을 할 수 있다는 걸 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다른 곡이에요. 밴드니까 무조건 녹음실에 가야만 한다는 게 아니라 요즘 시대에 맞는 작업방식이었던 곡이죠. 다른 의미로 공부가 많이 됐어요.
 
 
Q. 평소엔 음악 외의 어떤 다른 일들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나요?
 
A. 박준하 : 많이들 그러겠지만 핸드폰을 봐요. 그리고 사진을 찍어요. 요즘엔 잘 못하는데 예전엔 해외를 갈 기회가 있으면 부지런히 찍고 다녔어요. 사진도 약간 CD나 LP를 사는 느낌이랑 비슷해요. 핸드폰으로도 정말 잘 나오거든요. 그런데 필름을 쓰면 컷당 돈이 드니까 판단력이 예민해져요. 그 기분이 음악을 할 때와 연장선이 있는 것 같아서 좋은 취미로 여기고 있어요. 할아버지랑 아버지가 사진을 하셨기 때문에 그 영향도 없지 않아 있는데 절대 직업은 되지 않으려고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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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XT

 

기타 치는 철학자의 사색,

박준하의 음악 Part 2

  

화려하진 않아도 영원히 남는 색






오상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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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듀싱팀 Vlinds의 작곡가이자 인디레이블 캔들인유어스(Candle In Yours)의 공동대표.


자아가 생길 때부터 밴드음악에 빠져 일렉기타를 치며 음악을 시작한 인디덕후.


사실 음악보다 글 쓰는 일을 더 좋아해서 아티스트들의 이야기를 글로 쓰는 중이다.

 

 

[박형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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