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애매한 재능'에도 박수를

세상의 대부분은 애매한 사람들이므로
글 입력 2020.12.06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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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보던 만화 몇 편에서도 취향은 확연하게 드러나곤 했다. 일관되게 금발머리 캐릭터만 좋아하는 친구가 있는가 하면, 능글맞은 미남 캐릭터만 좋아하는 친구도 있었다. 그런 면에서 마찬가지로 확고한 취향을 가지고 있었던 나는 천재형 캐릭터를 좋아했다. 이들은 어딘가 냉철하고 지적인 분위기를 풍기며 등장하여 주로 초반부에서 시청자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비록 주인공 격인 노력형 인물과 대조되어 주인공의 노력을 더욱 돋보이게 하기 위한 인물일지라도 나는 언제나 '열혈노력파'보다 천재파가 좋았다. 특히 예술에 있어서 그랬다.


재능이 넘쳐서 누구에게나 눈에 띄는 사람, 애써 스스로를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 나도 그런 존재이고 싶었다. 번쩍 하는 순간 찾아오는 영감과 거기서부터 시작되는 창작, 그리고 어딘가 이상하지만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 예술가 같은 건 얼마나 매력적인 이야기였는지. 그런 이야기에 매료되고 그런 사람들을 선망했던 내가 그 반대편에 있는 이들에게 묘한 반감을 가졌던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을 것이다.

 

평이한 음색을 지닌 오디션 참가자나, 평단과 독자의 반응 모두 미미한 작가처럼 프로라기엔 2퍼센트 부족해 보이는 이들. 최근 유행하는 말로 '애매한 재능'을 가진 이들이 여기에 속했다. 그들에게서 애쓰는 모습이 너무 드러날 때면 응원하기보다 어쩐지 외면하고 싶었다.


더 나아가 나는 그들을 함부로 단언했다. 걸작과 졸작, 휼륭한 것과 구린 것을 심사위원이라도 되는 것마냥 칼같이 구분했다. 겉으로 대놓고 누군가를 깎아내린 적은 적은 없지만, 마음속으로는 늘 평가자의 자리에 있는 걸 즐겼다. 생각은 아무도 해치지 않는다고 믿었다. 빈정거리는 말들, 모진 말들이 머릿속에서 자라나고 시들기를 반복했다. 어느덧 그건 습관이자 놀이가 되었다. 내가 간과한 부분이 있다면 말이 되지 않은 생각이 가장 먼저 닿는 곳은 내 마음속이라는 것이다. 그걸 최근에야 깨달았다.


내 안에서 솟아난 생각은 곧장 내게로 돌진했다. 무언가를 시작하는 것, 나 자신과 내가 만든 것들을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게 언젠가부터 두려워졌다. 내가 그들을 함부로 평가했듯 다른 사람들도 나를 그렇게 평가할 것이고, 나 역시 애매한 사람으로 읽힐 거라는 생각이 나를 움츠러들게 했다. 내가 비틀린 시선으로 가장 집요하게 괴롭히고 있었던 건 다름 아닌 나 자신의 가장 상처받기 쉬운 부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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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렇게 쉽게 다른 사람들을 평가하던 배경에는 인정하고 싶지 않은 강렬한 감정이 있었다. 부끄럽지만 그것은 질투였다. 이유는 간단했다. 내가 쉽게 평가하는 이들에게는 내게 없는 용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야기 속 천재와 달리 현실을 사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끊임없이 자신을 증명해야 하는 환경에 처해 있다. 특히 예술가, 더 넓게 말하자면 무언가를 만드는 이들은 어떻게든 세상에 자신을 드러내 보일 수밖에 없는 부류의 사람들이다. 거기에는 엄청난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한 번이라도 무언가를 만들어본 사람은 알 것이다. 결과가 어떻든 무언가를 계속 만들어내는 이들은 매번 그 두려움을 극복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나는 그들처럼 되고 싶었다. 무언가를 만들어내고, 그 결과물을 통해 나를 드러내고 싶었다. 그러나 용기가 부족한 나는 그렇게 용기를 내는 사람들을 마음 깊이 질투했다. 평가는 질투를 숨기기 위한 스스로의 방어기제였을 것이다. 그렇게 하면 잠깐은 상처받지 않을 수 있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내 세계를 작고 납작하게 찌그러뜨리는 일이었다. 그들은 질투와 열등감에 휩싸인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또 무언가를 만들고, 앞으로 나아갔다. 그들은 현실에서 자신의 자리를 만들어가는 사람이었고 나는 아니었다.

 

 

나는 무엇보다도 비범한 개인이 홀로 훌륭한 글을 쓴다는 명제가 허구임을, 적어도 그 명제가 더 이상 통용되지 않는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 내 생각에 재능이란 이끌림인 것 같다. 어떤 것에 강하게 이끌리는 마음. 좋아하는 마음. 왜 그런지 모르지만 자꾸 하고 싶고, 하지 않고는 못 견디는 마음. 그 마음의 강도.

 

『혼돈삽화』 122쪽, 김세희 '요즘 작가들은 옛날이랑은 완전히 다르네요...'中

 


우연히 읽게 된 이 글에서 김세희 작가는 자신도 끊임없이 평범하다는 생각과 싸워야 했다고 고백했다. 하지만 그는 나름대로의 결론을 내렸고, 오랫동안 많은 이들을 고뇌하고 좌절하게 했던 '재능'이라는 개념을 새롭게 정의했다. 그것은 '무언가에 자꾸 이끌리고 기우는 마음'이라고. 이 대목을 읽고 어쩐지 울고 싶어졌던 이유는 무엇일까.

 

세상은 뛰어난 것에 주목한다. 사람들은 언제나 천재에게 열광할 준비가 되어 있다. 하지만 이 세상의 대부분은 특별하다고 단언하기는 어려운 사람들과, 그들이 만들어내는 결과물로 이루어져 있다. 스스로를 의심하고 불안해하면서도 무언가를 만들어내고, 그 결과물로 세상으로 뛰어드는 사람들은 어디에나 존재한다.

 

공모전에 계속해서 떨어지면서도 창작을 놓지 않는 사람, 스스로를 지망생이라고 소개하는 데 망설임이 없는 사람. 평가자의 자리에서 나는 그들을 미련하다고 생각하곤 했다. 하지만 그것이야말로 재능이고, 그들이야말로 가장 용기 있는 사람이 아닐까 요즘은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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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과해야 할 사람은 그동안 마음속으로 남몰래 평가해온 이들만이 아니다. 내 마음의 소리를 필터 없이 고스란히 들어야 했던 나의 가장 취약한 일부에게도 사과를 해야 한다. 나는 나를 포함해 무언가를 만들어내는(만들려는) 사람 대부분에게 너무 모질게 굴어왔다. 천재를 둘러싼 이야기는 여전히 매력적이지만 이제는 더 현실적인 이야기들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싶다. 한 사람의 천재를 골라내는 눈보다 여러 평범한 사람이 지닌 각각의 가치를 발견하는 눈을 가지고 싶다.

 

거만한 평가의 목소리를 내는 대신 그 사람이 냈을 작은 용기를 짐작해보는 일이 새로운 습관으로 자리 잡을 때, 나는 비로소 나 자신도 좀 더 애정 어린 눈으로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스스로에게 실망할지라도 끝내 무언가를 만들어낼 용기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김선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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