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영화 '조제'를 기다리는 우리들, 김종관 감독의 영화

우리가 사랑하는, 사랑 할 감독의 필모그래피
글 입력 2020.12.04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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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편적인 취향에 대해


 

취향을 말한다는 것이 조금 꺼려지기 시작한다. 어떤 장르, 어떤 행위를 말해야 할지 고민이 되는 요즘이다. 취향마저 스펙이 된다고 느껴서일까, 남들에게 인정을 받아야 한다는 욕구가 취미와 사생활에까지 미치기 시작하는 것 같다. 그래도 다행히 나에겐 몇 가지의 취미가 있다. 상당히 보편적인 것들이다. 책 읽기, 영화 보기, 가끔씩 기타를 치면서 유명한 노래들을 한 번씩 읊조려 보는 행위. 타인의 창작물을 향유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나의 취향을 찾게 되는 것 같다. 애정하는 감독, 작가, 배우들이 마음속 은연중에 정해지게 되고 나만의 개인적인 필모그래피에 하나씩 작품이 쌓이게 된다.

 

보편적인 취미를 갖고 있다는 사실은 일상을 살아가면서 종종 도움이 되곤 한다. 처음 만난 누군가와 첫 대화를 시작하기에 적절하고, 오랜만에 만난 지인과 어색함을 풀기 위해서도 효과적으로 사용되곤 한다. 나는 대화의 주제로 보통 영화를 선택하곤 한다. 동일한 관심사는 상대와의 어색한 기류를 틀어준다. 특히나 방구석의 주 활동 범위가 되는 요즘, 영화를 보는 취미는 그 가치를 더해가고 있다.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고 문화예술을 향유할 수 있는 기술에 감사함을 또 느낀다.

 

한동안 매일 한 편의 영화를 봤다. 영화 스트리밍 어플리케이션 덕분에 내 취향을 찾는 알고리즘을 적극적으로 활용했고, 무색을 띠었던 내 취향이 조금씩 색을 갖고 있다는 느낌을 받곤 했다. 새로운 영화를 찾아보다 보면 재밌는 경험을 할 때가 있다. 예전엔 영화를 보기 전에 항상 체크했던 것들이 있다. 출연 배우, 사람들이 매긴 평점, 간단한 로그라인 정도를 확인하면 영화에 대한 기대감을 갖을 수 있었다. 그러다 보니 어떤 영화를 보면 전에 봤던 영화의 결이 느껴지는 경우가 있다. 전혀 연관 없는 스토리와 배경이지만 유독 형제와 같은 유대감이 느껴지는 작품이 있었다.

 

특히 '리처드 링클레이이터' 감독의 작품이 그랬다. '비포 시리즈'를 감상하며 감탄을 했던 난, 얼마 뒤 우연히 '보이후드'를 보게 되었고 엔딩크레딧을 보지 않더라도 감독의 이름을 유추할 수 있었다. 영화에서 느껴지는 감독 특유의 페르소나 존재에 대한 자각은 영화 애호가로서의 제 2막을 열어주었다.

 

오늘은 내가 반하게 된 한 감독의 필모그래피를 이야기해보려 한다. 2020년 12월 10일 개봉을 앞둔 영화 '조제'의 감독 '김종관' 감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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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제, 그리고 영석


 

영화 '조제'는 원작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를 리메이크한 작품이다. 원작에 대한 대중들의 평가가 워낙 높았고, 리메이크작의 배우 캐스팅이 화려한 점 덕분에 대중들의 기대치가 매우 높은 작품이다. 원작의 주인공인 '조제'는 동명으로, '츠네오'는 '영석'이라는 이름으로 변경되었다. 작품 특유의 애틋하고 씁쓸한 이야기를 어떻게 새롭게 풀어나갈지 걱정 반, 기대 반의 마음이다.

 

하지만 우리를 충분히 기대시킬 수 있는 요인이 하나 있다. 바로 '김종관' 감독이다. 영화 '폴라로이드 작동법', '최악의 하루', '페르소나', '더 테이블' 등 자신만의 색을 짙게 보여준 그의 필모그래피를 보고 있자면 개봉예정작에 대한 기대감이 더욱 커진다. 아마 이 글을 읽고 있는 많은 문화 애호가분들도 영화 '조제'를 기대하고,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조제'의 감독을 맡은 '김종관' 감독의 대표적인 작품 몇 가지를 함께 나눠보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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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악의 하루


 

영화는 독백으로 시작한다.

 

 

긴긴 하루였어요. 하느님이 내 인생을 망치려고 작정한 날이에요. 안 그러면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나겠어요.

 

그쪽이 저한테 뭘 원하시는지는 모르겠지만.. 전 원하는 걸 드릴 수도 있지만.. 그게 진짜는 아닐거에요.

 

진짜라는게 뭘까요? 전.. 사실 다 솔직했는걸요. 

 

커피 좋아해요?

전 커피 좋아해요.

진하게, 진한 각성.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하거든요.

 

당신들을 믿게 하기 위해서는

 

 

영화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알아차릴 수 있는 독백이다. 영화의 주인공 '은희'는 무명 배우이다. 연기 수업을 듣고 나온 은희는 일본에서 출장을 온 작가 '료헤이'를 만나 도와주게 된다. 이후 은희는 연인인 '현오'를 만나러 남산에 가게 되고, 전 애인 '운철'까지 만나게 된다. 서로가 뒤에서 다른 사람을 만나고 있는 거짓된 관계인 그들의 이야기는 웃음을 유발하기도, 최악의 하루라는 직관적인 영화의 제목을 이해할 수 있게 한다.

 

영화 내용의 대부분이 거짓으로 감싸져 있다. 초반에 들려오는 료헤이의 내레이션인 '여행지에서 이야기를 하나 생각했다. 곤경에 처한 여자에 관한 이야기다.' 라는 말로 모든 영화의 내용이 상상이라고 유추할 수도 있다. 현실세계와 가상세계의 불분명한 구분이 영화의 매력을 더욱 짙게 만들어준다. 거짓을 쓰는 소설가, 거짓을 연기하는 배우라는 주인공들의 직업 선정도 감독의 세심한 연출이라 생각된다.

 

영화를 눈여겨볼 만한 특징은 주인공 '은희'의 하루 동안 일어난 일을 담았다는 것이다. 배경도 남산 주변과 서촌이 전부다. 한정된 시간과 배경 안에서 감독은 일상적인 소재를 찾고자 했다는 것이 느껴졌다. 특히나 '은희'의 모습을 통해 거짓이 아니면 살아갈 수 없는 현실을 보여주는 것이 느껴졌다. 한국으로 여행을 온 '료헤이'와의 대화에서만 은희는 사실을 말했으니 요즘 날 많은 사람이 여행을 선호하고 선망하는 이유를 알 것만 같다는 생각도 든다. 여행자는 거짓말을 할 필요가 없으니깐. 거짓이 익숙해진 우리의 모습을 되돌아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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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테이블


 

'최악의 하루'보다 한정된 공간에서의 대화가 이루어지고, 영화는 4번의 대화로 구성된다. 하루라는 시간이 지나가는 것을 4번의 옴니버스 형식의 대화가 진행되는 동안 창밖으로 들어오는 햇빛의 양으로 우린 알 수가 있다. 같은 공간, 탁자에서 연결고리 없이 이어지는 4편의 단편선이다.

 

4번의 대화는 모두 높은 밀도를 보여준다. 전혀 연결되지 않는 내용이지만 각각의 에피소드들이 굉장히 인상 깊고 정반대의 인간상을 보여주는 등 관객들이 빠져들 수밖에 없는 대화의 내용이었다. 화려한 효과나 자극적인 상황 없이 높은 수준의 영화를 만들 수 있다는 가능성을 '더 테이블'에서 느낄 수 있었다.

 

영화 속 주인공들은 친절하게 자신의 상황을 설명해주지 않는다. 대화의 내용 속에서 관객들이 유추하고 공감할 뿐이었다. 완벽한 타인이지만 어느 순간 당신을 이해하게 되는 영화, '더 테이블'이라는 영화의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영화의 런닝타임이 끝나갈 무렵, 나도 누군가와 저 카페에 방문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와 당신이 음료를 시킨다면 어떤 종류의 음료가 나올까 하는 상상을 하게 된다. 그리고 어떤 대화를 나눌까. '더 테이블'의 감상은 짙은 여운을 남겼다.

 

 

"왜 마음 가는 길이랑 사람 가는 길이 달라지는 건지 모르겠어."

 

 

마지막 에피소드의 '혜경'이 하는 말이다. 그렇게 말이다. 왜 마음 가는 길을 따라가는 일이 이렇게 힘든지 모르겠다는 공감을 하게 된다. 서로 다른 대화를 하는 8명이지만 다들 마음속에 짙은 사랑의 흔적이 남아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라 영화의 많은 대사가 기억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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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소나


 

단편영화의 매력은 단편 소설집과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비록 런닝타임은 짧지만, 그 짧은 순간 우리의 삶의 무게를 바꾼다. 들뜬 마음이 순식간에 가라앉기도, 무거운 마음의 짐을 눈물과 함께 증발시켜버리기도 한다. 아이유를 4편의 다른 시선으로 바라본 모든 작품이 흥미로웠지만 죽음과 사랑을 다룬 김종관 감독의 '밤을 걷다'는 특히나 인상 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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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도 죽음도 정처가 없네, 가는 데 없이 잊힐 거야.'

 

 

영상은 흑백으로 처리되었다. 단순한 사랑 이야기가 아닌 관념적인 이야기를 아이유와 '정준원' 배우의 내레이션으로 채운다. 아이유는 남자가 꿈속에서만 만날 수 있는 존재다. 그리워하는 존재를 꿈속에서나마 만날 수 있다는 기쁨과 애절함, 그리고 조바심과 슬픔이 배우들의 연기로 느껴졌다.

 

꿈속의 장면을 잊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남자의 모습은 절박하게, 그리고 아름답게 느껴졌다. 꿈이라는 상황 설정 탓에 사랑하는 사람의 잊힘을 과거가 아닌 현재로 받아들이게 되었고 관객들은 남자의 내적 고통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평소에 자주 걷던 길거리를 다시 걷는 그들의 뒷모습에서 위로를 받는다. 익숙한 길거리도 눈에 띈다. 일상적인 소재에서 공감을 주는 감독의 스타일이 여실히 느껴진다. 흔한 담쟁이 덩굴이 둘 사이를 이어주는 연결고리처럼만 보인다. 꿈이 깨면 잊혀질 순간의 기억을 영화 속에서 영원히 잡아놓고만 싶어진다.

 

*

 

김종관 감독의 작품 중 대중적으로 알려진 3편의 작품을 이야기했다. 우리나라 단편영화의 거장이라 불리는 감독의 작품을 여러 편 향유 했다는 사실은 실로 큰 축복이라 여겨진다. 일상에서 찾을 수 있는 공감과 위로를 보여준 앞선 3편의 영화는 김종관 감독의 다음 작품 '조제'가 더욱 기대되는 특별한 이유라 생각한다. 과연 '조제'의 목소리가 우리의 마음까지 닿을지 앞으로 지켜보면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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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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