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겨울이 싫은 내가 겨울을 맞이하는 방법 [사람]

사실 겨울의 추위보다 더 싫었던 건 나 자신이었다.
글 입력 2020.12.02 2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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콧속으로 차가운 공기가 들어온다. 겨울 냄새가 난다. 올해도 다시 돌아온 겨울을 실감한다. 계절마다 냄새가 있다지만 겨울만큼 선명한 계절이 있을까. 차가워진 공기에 옷은 점점 두꺼워지고 맨 살이 드러나지 않게 온몸을 꽁꽁 싸맨다.




겨울이 싫은 이유



나는 겨울이 싫다. 모든 계절 중에 가장 싫어한다. 나는 추위에 정말 취약한 사람이라 한여름에도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하고 차가운 음료도 잘 마시지 않는다. 몸이 쉽게 차가워져서 겨울엔 두꺼운 양말과 네다섯 겹의 옷은 필수다.


추위도 싫지만 더 견디기 힘든 건 무기력이다. 바깥을 오래 산책할 수도 없고 따뜻한 볕을 쬐는 건 꿈도 못 꾼다. 내가 활기를 얻는 대부분의 일을 겨울엔 할 수 없다. 추위가 싫어 집 안에만 있다 보면 따뜻한 침대 안을 좀처럼 벗어나기 힘들었다. 종일 방 안에 누워있는 게으른 나 자신을 발견할 때면 자기 혐오에 빠지기도 했다. 그러다 나중엔 계절성 우울까지 찾아왔다.


그렇게 몇 번의 겨울이 지났다. 지난한 시간들이 쌓이자 겨울이 다가오는 낌새라도 보이면 막막해졌다. 또 다시 무기력의 늪에 허우적거릴 내가 눈에 선해서 두려움부터 앞섰다.


그리고 몇 년 전, 내가 사랑하는 여름을 지나 가을이 올 무렵이었다. 교환학생을 준비하고 다시 복학해 학교를 다니는데 일상이 점점 힘들어졌다. 졸업을 앞두고 여전히 막막한 미래, 그 상황에서 다시 해외로 가는 게 옳은 선택일지에 대한 반문으로 자꾸만 나 자신이 작아졌다.

 

잠을 제때 자지 못했고 밥 챙겨먹는 것보다 잠이 더 고파 한 끼만 먹고 하루를 보내기도 했다. 일상을 잘 지내지 못하면 더 나빠질 것을 알았지만 잠에 빠져들어 현실을 도피하는 것이 더 달콤했다. 상담도 받아봤지만 이렇다 할 소득은 없었다. 최악의 겨울이었다.

 

 


두려움을 즐거운 기억으로



그 상태로 교환학생을 위해 홀로 낯선 이국 땅에 도착했다. 내가 살던 곳은 스페인 남부, 아프리카에서 아주 가까운 도시였다. 날씨는 엄청나게 덥거나 따뜻했고 가로수는 야자수, 바다가 근처에 있는 휴양지 같은 곳이었다.

 

그렇게 그립던 햇빛이 가득한 곳이었지만 이미 만성이 되어버린 무기력과 공허는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따뜻한 날씨에도 괜찮아지지 않는다면 아예 다른 곳을 가는 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오로라를 보러 북극과 아주 가까운 노르웨이 북부 도시로 여행을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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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항 밖으로 나오자마자 부는 찬 바람에 놀랐지만, 그보다 더 놀라웠던 건 눈앞에 펼쳐진 풍경이었다. 깨끗하고 청명한 하늘과 쌓인 눈으로 새하얀 산, 그 아래로 유유히 흘러가는 바다가 보였다. 생경한 풍경에 추위보다 경이로움이 앞섰다.


날씨가 추운 이 나라는 실외보다 실내가 더 추운 스페인과 달리 건물에 단열이 잘 되어 있었다. 체감상 스페인보다 더 따뜻했다. 길을 걸으면 스페인과도, 한국과도 전혀 다른 옷차림이 보였다. 방수가 되는 튼튼한 워커, 털모자, 목도리, 경량패딩과 방수바지를 입은 사람들이 걸어 다녔다. 환경에 적응해서 살아가는, 추위가 익숙한 이들의 모습이 신기했다.


밖에 나가면 추워서 몸이 절로 움츠러들었지만 오랜만에 보는 눈 덮인 풍경과 새로운 곳에 왔다는 기대감에 마냥 신이 났다. 강풍으로 타려던 케이블카가 운행을 중지해서 그 뒤의 설산을 엉금엉금 오르는데 추운 줄도 모르고 즐겁기만 했다. 여행의 목표였던 오로라는 궂은 날씨로 선명히 보지 못했지만 만족스러운 여행이었다. 또 다시 겨울 나라로 여행을 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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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몇 달 뒤 아이슬란드로 여행을 떠났다. 이맘때쯤 떠난 여행이라 춥기도 추웠고 해는 열시반쯤 떠서 세네 시면 졌다. 해가 짧으니 투어를 다녀오려면 깜깜한 아침부터 채비를 해서 나와야 했다. 아침의 게으름을 이기고 돌아본 투어에는 비현실적인 설경과 아파트 높이만큼 분출하는 간헐천,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폭포가 있었다. 자연 앞에 감탄하느라 손이 떨어져 나갈 것 같은 추위에도 그리 괴롭지 않았다.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온천이었다. 추운 날의 따뜻함만큼 행복한 게 있을까. 샤워장에서 최대한 빠르게 뛰어 야외 노천탕에 들어가는 순간, 추위로 경직됐던 몸은 녹아 내릴 것 같이 노곤해졌다. 그렇게 아이슬란드에 머문 5일 중 4일을 온천을 하며 보냈다. 이제 예전만큼 추위가 싫지 않았다.




싫어하는 무언가를 피할 수 없다면



올해도 어김없이 겨울이 돌아왔다. 나는 여전히 여름이 그립고 추위가 싫다. 하지만 올해는 겨울을 맞이하는 마음가짐이 조금 다르다. 일년 간 뭐가 달라진 걸까 고민하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추위가 문제가 아니라 심리적인 문제였을지도 모르겠다는 것.


매년 돌아오지 않길만을 바랐던 한국의 겨울과 달리, 작년 스페인에서 맞이한 겨울은 꽤 따뜻했다. 그리고 추운 나라에 다녀왔던 것은 나의 선택이었다. 그래서 추위를 받아들일 준비를 충분히 한 상태였고, 그렇게 마주한 겨울은 오히려 즐거웠다. 펑펑 내리는 눈과 새하얀 거리, 따뜻한 코코아와 핫도그, 온천과 오로라. 겨울에만 할 수 있는 것들로 겨울을 채웠다.


그 동안 내가 겨울을 싫어했던 것도 결국은 겨울의 나 자신과 그때의 기억이 싫었기 때문이었다. 끔찍하지 않은, 오히려 행복했던 겨울을 보내고 나니 다가올 겨울도 두렵지 않아졌다. 그러니 올해의 겨울을 맞이하는 나의 마음가짐은 이렇다. 올 겨울도 좋아하는 사람들과 좋아하는 것들을 하며 행복한 기억을 쌓아가겠다고.


점점 심해지는 코로나에 사람 없는 텅 빈 거리와 얼어붙은 마음들로 올 겨울은 유난히 힘들 것 같지만, 이 상황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작은 행복들을 찾아낸다면 조금 견디기 수월하지 않을까. 따뜻한 방 안에서 귤을 까먹으며 넷플릭스를 보거나, 랜선으로 그리운 얼굴들과 만나거나, 차갑고 조용한 겨울 밤에 어울리는 음악을 들으면서. 겨울의 초입에 들어선 지금, 올해의 겨울이 부디 무탈히 지나가길, 그리고 내년의 겨울을 즐거운 마음으로 맞이할 수 있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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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소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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