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21세기의 타임머신, 어디로든 문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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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혹은 소설, 만화 등에서 ‘미래’를 보여줄 때 절대 빠질 수 없는 요소인 타임머신.
물론 타임머신은 픽션에만 존재할 수 있는 실현 불가능한 일이라며 공상 과학으로 여겨지지만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지는 한정적인 것을 대표하는 ‘시간’을 여행할 수 있을 거라는 상상만으로도 설레곤 한다.
그러나 당연한 말일지 모르지만 21세기의 약 5분의 1이 지난 현재도 타임머신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우리에게는 ‘음악’이 있다. 우리는 음악을 들으며 작년의 나를 행복하게 해주었던 겨울바람을 다시 만나기도 하고, 가보지 못했던 곳의 분위기를 상상하기도 한다.
오늘은 도라에몽의 ‘어디로든 문’ 역할을 하는 음악들을 소개해보고자 한다.
La fessée - Claire Laffut
햇살이 좌르르 떨어지는 파리의 여름 느낌이 물씬 나는 곡이다. (물론 나는 파리에 가본 적이 없다)
나는 ‘영화 속’ 여름의 분위기를 무척이나 좋아한다. 현실의 여름은 끈적이고, 나가기 싫고, 나를 무척 예민하게 만드는 계절이지만 영화 속의 여름은 클레르 라퓌의 모습처럼 너무나도 한가롭고 노이즈가 잔뜩 섞인 듯한 아름다운 색감이 유독 돋보인다.
이 곡은 영화 속 그 여름의 풍경을 떠올리게 한다.
Sunburnt Through the Glass - PREP
‘La fessée’와 같이 환상적인 여름을 떠올리는 곡이다.
이 곡을 들을 때면 언젠가 수영장 선베드에 앉아 해가 지는 모습을 보았을 때가 생각난다. 야외 풀 속에서 놀던 사람들이 다 떠난 뒤 붉게 물들어 떨어지는 해가 수면 위에서 반짝이는 모습은 무척이나 예뻤다.
사실 이때까지 내가 보던 앨범 아트는 구름 한 점 없는 창밖에서 실내로 햇살이 쨍하게 들어오는 그림이라 몰랐는데 위의 앨범 아트가 곡의 분위기를 무척이나 잘 표현한 것 같다.
Home - Bruno Major
제목 그대로 나를 완전한 집으로 데려다주는 음악이다.
‘현생’이라는 게 너무 힘들다 보면 집에 있어도 집에 가고 싶을 때가 있다. 보통 집이라고 하는 것은 그 공간 혹은 우리 가족을 뜻하는 말일 수도 있지만 '내가 가장 편안하게 느끼는 곳'이라는 의미도 있다.
분명히 우리 집은 지금 내가 발붙이고 있는 여기가 맞지만 늘 피곤함에 찌들어 있으니 정말 진정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편안한 집으로 가고 싶은 느낌? 가만히 누워서 이 곡을 듣고 있자면 그 순간만큼은 어떤 것도 나에게 스트레스를 주지 않고 평화로움만 가득한 집에 누워 쉬는 듯하다.
Maroon 5 - Shoot Love
이번 곡부터는 조금 더 상세한 나의 추억 이야기이다.
중학교 3학년 때 집이랑 학원 사이가 버스를 타기엔 너무 가깝고, 걸어가기엔 조금 먼 거리였다. 나는 추운 것보다 더운 걸 훨씬 싫어하기에 여름에는 거의 버스를 탔고 겨울에는 주로 걸어 다녔는데 그때 많이 들었던 곡이다.
사실 밖에서 이어폰을 꽂고 노래를 듣는 게 드문 일도 아닌데 왜 이때까지 들었던 수많은 곡 중에 유독 이 곡의 이미지가 생생한지는 모르겠다. 왠지 이 곡만 들으면 학원 가느라 지겹게 지나다녔던 평범한 길의 모습이 단박에 떠오른다.
어둠이 내려앉은 길을 비추는 가로등과 차의 불빛들, 길에서 가장 환하게 빛났던 마트, 학원에 늦을까 봐 초조하게 기다렸던 횡단보도가 생생하게 기억나는 곡이다.
Christopher - Bad
한국에서 큰 히트를 쳤던 곡인 크리스토퍼의 'Bad'에는 나의 학창 시절이 담겨 있다. (학창 시절이라고 하니 오래전 일 같지만 불과 작년이다)
시작이 무엇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갑자기 ‘Bad’에 꽂혔던 나와 내 친구들은 학교에서 틈만 나면 “So! (선창) Predictable~ (후창) You’re! an animal~ I! can’t let you go~”를 부르기 시작했다. 참고로 우리는 고3의 스트레스를 목청으로 풀었다.
학교에서 식사 시간 마다 파티를 열었다. 그래서 이 곡을 들을 때마다 교실 맨 뒤 창가에 옹기종기 모여서 ‘Bad’ 떼창을 했던 것이 기억난다. 크리스토퍼가 내한 공연을 왔을 때 한국 팬들의 떼창 문화에 놀라서 너무 좋아하는 걸 봤는데 거기에 우리가 없었다는 게 아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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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읽고 나면 분명 여러분들도 머릿속에 떠오르는 곡들이 있을 것이다. '아 그거 나 놀러 갈 때 많이 들었었는데!', '이 곡 들을 때마다 눈 내렸던 날로 돌아가는 것 같아!'와 같이 말이다.
우리가 살아있는 동안은 정말 시간을 거슬러 과거로 가거나, 미래의 내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슬쩍 보고 올 일은 없겠지만 그래도 가만히 노래를 들으면서 상상 정도는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유소은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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