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세련된 사랑 노래 [음악]

느끼한 가사를 읊어도 리듬감을 잃지 않는 노래들과 개인적인 이야기
글 입력 2020.12.01 10:58
댓글 1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너를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우리는 작품을 같이 했다. 그리 만족스럽지 않은 끝을 맺고 다 함께 마라탕 집에 갔다. 너는 내 맞은편에 앉았다. 나는 마라탕을 먹으면 콧물이 많이 나는 사람이라 자리에 앉은 순간부터 부끄러웠었다.

 

마라탕 집에서는 한 남자 가수가 목이 터지라 부른 발라드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널 사랑하고 그리워하고 절대 못 잊고 평생의 사랑이고 어쩌고 내용이었는데, 메뉴가 마라탕이어서 망정이지 느끼해서 속이 거북할 지경이었다. 너는 대체 저런 노래를 왜 부르는 거냐며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목을 젖히고 한탄했다.


그 한탄을 듣고 사실 같은 생각이었음에도 조금 항변하고 싶어졌는데, 날 사랑했던 애인들에게 그런 대사를 종종 들은 적 있기 때문이었다. 널 너무 사랑해서 이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느니, 결혼하고 싶다느니 하는 대사들 말이다.

 

솔직히 말하면 내가 말한 적도 많다. 저 노래를 비판하는 의견보다 그런 의견을 내는 너를 소리치고 싶어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네 찡그린 얼굴을 보고 나도 그런 대사를 싫어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너와 연애를 시작했다. 너무 느끼한 대사를 하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너와는 유독 세련된 사랑 노래 같은 사랑을 하고 싶었다. 음정의 높낮이가 많지 않은, 무심한, 따뜻하면서 리듬감을 잃지 않는 사랑. 넌 태생적으로 그런 감각이 있는 것 같았다. 벽을 페인트로 직접 칠하고 주운 가구를 들여놓은 네 방에서는 향이 타고 있었다. 나도 그런 방식으로 세련되고 싶었다. 함께 듣는 스피커에 내 핸드폰을 연결할 때마다 긴장해서 음악을 골랐다.


어느 날은 네 차에서 Something about us를 틀었다. 넌 "이 노래 좋지!" 라며 먼저 반응하고 나섰다. 기분이 좋아졌다. 노래의 가사가 내가 우리의 관계를 생각할 때와 너무 비슷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무렵 자주 들었던 노래였다.

 

  

Something-About-Us-Love-Theme-From-Interstella-5555-3-picture.jpg

 

 

It might not be the right time

I might not be the right one

But there's something about us I want to say

Cause there's something between us anyway

 

난 딱 맞는 사람은 아닐 거야

지금이 딱 좋을 때는 아닐 거야

하지만 우리 사이에 관해 말하고 싶은 게 있어

우리 사이엔 뭔가가 있지

 

I need you more than anything in my life

I want you more than anything in my life

I'll miss you more than anyone in my life

I love you more than anyone in my life

 

난 내 삶의 무엇보다 너를 바라

내 삶의 무엇보다 너를 보고 싶어 할거고

 

내 삶의 무엇보다 너를 사랑해


| Draft Punk, 〈Something about us〉, 2001

 

 

"내가 네게 딱 맞는 사람도 아니고 지금이 딱 좋을 때도 아니지만" 으로 시작해서 "내 삶의 무엇보다 너를 사랑한다"고 끝나는 이 노래를 너도 좋아한다는 사실이 반가웠다. 너에게 그런 사랑을 받고 있는 게 다름 아닌 나라는 사실을 확인받고 싶었다. 그래서 "그치! 가사가 너무 좋지!" 하며 호들갑을 떨었다. 너는 가사를 한 번도 인지해본 적이 없다고 했다.

 

넌 우리 사이를 정의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그게 세련된 사랑처럼 느껴졌다. 너와 미술관에 갔을 때, 입구에서 난처한 설문조사에 참여했다. 네 설문 조사지는 휙휙 넘어가는데 난 첫 장에서 막히고 말았다. 누구와 미술관에 왔냐는 질문의 선지는 네 개였다.

 

[가족 / 친구 / 애인 / 기타]

 

[친구 / 애인 / 기타] 사이에서 한참 고민했다. 그러다 ‘친구’에 동그라미를 쳤다. 사실 네 설문지를 들춰서 뭐라고 답했는지 보고 싶었다.

 

너와 나 사이의 something을 정의하고 싶었다. 이름 붙이고 싶었다. 그러지 않으면 something이 금방 달아날 것 같았다. 친구 말고 기타 말고 애인이라고, 사랑이라고 이름 붙이고 싶었다. 그런 난처한 질문을 하지 말라고 화내는 대신 그냥 대답하고 싶었다. 혹은 싸운다면, 같은 목적으로 싸우고 싶었다.

 

하지만 나를 사랑하냐는 질문은 리듬감도 없이 느끼하기만 할 게 분명했다. 고개를 젖히며 탄식하는 너를 쉽게 상상할 수 있었다.

 

 

3bb2da53626c8b1fba3d3656269388f9.1000x1000x1.jpg

 

 

I can't bear to be without ya

Life just ain't the same without ya

 

I can't fall asleep without ya

Food don't taste the same without ya

 

네가 함께 있지 않으면 견딜 수 없어.

너 없이는 잘 수 없어. 음식도 예전 같지 않을 거야.


| Honne, 〈can't bear to be without you〉, 2020

 

 

네가 얼마 전 작품에 삽입한 Honne의 음악은 죄다 느끼한 가사로 채워져 있다. 앨범 이름부터 《no song without you》인데. 네가 듣는 세련된 노래 속에 사실 그런 가사가 숨겨져 있다는 걸 아는지, 이 가사를 알고 나서도 그 노래가 좋은지 묻고 싶었다. 세련되어 보이는 삶 속에서도 그런 게 널려 있다. 나도 이런 느끼한 가사를 세련된 리듬에 숨겨 건네주고 싶었다.

 

너에게 헤어지자는 말을 들었지만 너는 내 메일링 서비스 구독자이기 때문에 공교롭게 계속 일방적인 연락을 해야 했다. 헤어진 다음 날 핸드폰만 보다가 생각 없이 결제한 책더미를 열심히 뒤져 내가 찾을 수 있는 가장 세련된 사랑의 문장을 찾았다. 〈“무제”(완벽한 사랑)〉이라는 현대 미술 작품에 관한 비평이었다.


131.jpg


 

벽에 나란히 걸린 두 개의 원형시계가 정확히 같은 시간, 분, 초를 가리키며 움직인다. <“무제”(완벽한 사랑)>(1987-1990)는 쿠바 태생의 미국 작가 펠릭스 곤잘레스 토레스가 그의 연인 로스를 생각하면서 만든 작품이다.

(...)

곤잘레스 토레스의 연인 로스는 긴 투병 끝에 일찍 세상을 떠났다.

(...)

두 개의 시계가 초 단위까지 똑같이 가기는 쉽지 않다. 완벽한 연인의 마음을 표현하려면 시곗바늘이 똑같이 움직여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 시계는 매번 새로 맞춰진다. 따라서 우리가 전시장에서 보는 두 개의 시계는 곤잘레스 토레스와 로스의 과거 시간에 머물러 있지 않고, 우리의 지금에 맞춰진 새로운 시간을 가리키게 된다.


| 『태도가 작품이 될 때』, 박보나, 바다출판사

 


내가 생각하는 가장 세련된 사랑의 메시지를 읽고 전화를 거는 너를 상상했다.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유보미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댓글1
  •  
  • 볼살천사
    • something about us 노래 찾아서 듣고 있어요 !

      좋은 글을 통해 큰 영감 얻고 갑니다 :-)
    • 0 0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3.28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