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생각의 기쁨, 유병욱 [도서]

글 입력 2020.12.03 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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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부터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책.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유명 광고 회사 TBWA의 크리에티브 디렉터이자 카피라이터 유병욱의 에세이다.

 

생각이 많아서 고통받는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은 상상력이 넘치게 뛰어나서 늘 한발 앞선 걱정을 하는데 도가 트였다. 그리고 혼자 고민하고 괴로워하다가 또 밀려오는 다른 수많은 생각 때문에 금방 잊어버리는 일을 반복한다.

 

그런 사람이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럼에도 생각이 많아서 불행하다고 느낀 적은 거의 없다. 사서 하는 걱정에 밤새 잠 못 이룰 때 빼고는. 생각의 홍수에 푹 잠겨 있는 시간들이 좋았다. 걱정도 많이 했지만, 행복한 상상도 많이 했다. 이뤄지지 않는 상상이라도 내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재생될 때 재밌었다. 먼 미래의 일이라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일들이 많이 있었다.

 

그래서 가끔 주변인들이 "넌 생각이 너무 많아"라며 걱정 아닌 걱정을 할 때, (보통 상대방에게 걱정거리를 털어놓았을 때 들었던 말이다. 쓸데없는 걱정 좀 하지 말라는 뜻이다.) 불행한 쪽으로는 생각의 가지가 더 뻗어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생각의 카테고리를 내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렇게 할 수 없어서 안타깝다고 생각했고, 인간의 뇌는 지구상에서 가장 복잡하고 알 수 없는 것이라서 나조차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보통 이런 식으로 생각의 흐름이 뻗어 가는 편이다.(정신 차리고 보면 우주의 끝까지 가있을 때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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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기쁨'이라는 명사와 명사의 조합이 그렇게 사랑스러울 수가 없었다. '그래! 생각하는 게 얼마나 기쁜 일인데!' 속으로 괜히 뿌듯해하며 구매했던 책이다. 물론 평소에 관심 있었던 TBWA의 카피라이터가 저자라는 점도 한몫했다.

 

 

“생각의 기쁨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에 있다!”

 

“유병욱의 이야기는 천둥 번개로 오지 않는다. 가랑비로 온다. 다행스러운 일이다. 좋은 것들은 대부분 천둥 번개처럼 명료하게 오는 무엇이 아니라, 가랑비처럼 있는 듯 없는 듯 모호하게 오는 무엇이기 때문이다." 

 

박웅현 (TBWA KOREA CCO)

 

 

여기까지 쓰고 나는 노트북을 잠시 접었었다. 글 쓰는 것보다 더 중요한 할 일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볼일을 마치고 집에 들어오는 길에 서점에 들렀다. 수많은 책들 중에 내 발길을 사로잡은 것은 다름 아닌 <생각이 너무 많아서 찾아왔습니다.>라는 책이었다. 인간은 이토록 모순적이다. 그 책을 집어 들면서 마저 쓰지 못하고 두고 나온 이 글을 떠올렸다. 스스로도 인간은 알 수 없는 모순덩어리라고 생각하며 당당하게 계산대로 갔다.

 

새로 산 책을 읽고 난 뒤에는 또 생각이 어떻게 바뀌어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유병욱의 <생각의 기쁨>은 읽는 내내 내게 기분 좋은 뿌듯함을 안겨줬다는 것이다. 그의 생각에 공감하는 일이 곧 언젠가 나의 사소한 생각들로 인해 나도 그처럼 이렇게 읽는 사람의 기분을 좋아지게 하는 책을 쓰게끔 하겠구나 기대하는 일과 같게 느껴졌다. 

 

또 한 가지 이 책이 더더더 마음에 드는 이유는 중간중간 삽입된 명언? 카피? 때문이다. 나는 마음을 뭉클하게 하거나 머리를 띵-하게 만드는 구절을 좋아한다. 그런 구절만 모으고 또 모아서 나만의 뭉-클 모음집을 만들고 싶지만, 생각만 있고 아직까지 실천하지 못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수많은 데이터 베이스가 있어야 하는데 그만큼 많은 글과 책을 읽지 못했고 또 그런 구절을 찾기 위해 좋은 책만 찾아서 읽다 보니 책을 고르는데 시간을 다 쓰고 지쳐버리는 일이 많았다.

 

이 책 중간중간에 삽입된 그런 구절들은 내가 굳이 찾아 나서지 않아도 모든 문장이 나에게로 와닿았으며 이 책 자체로 나의 뭉-클 모음집이 되었다. 그 뭉-클 모음집에는 정말 누가 들어도 감동적인 명언도 있었지만 곱씹어 생각해보면 되게 웃긴 문장들도 있었다. 그중 내 마음에 더 깊게 남았던 문장을 소개하고 싶다.


"세상엔 두 종류의 깻잎이 있다. 삼겹살의 외투가 되는 깻잎과 아우라를 뿜는 깻잎" - 유병욱

 

일본의 주방에서 발견한 깻잎 장인을 보고 작가가 떠올린 문장이다. 깻잎 한 장을 튀기는 작은 일에도 온 진심과 정성을 다하는 일본의 요리사를 보고 아무리 작은 일일지라도 나의 태도에 따라서 그 일은 삼겹살의 외투가 될 수도 아우라를 뽐내는 무언가가 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이런 사소한 장면에서 캐치해내는 삶의 교훈들이 너무 좋고 또 감동적이다.


또 유명한 문장도 수록되어 있다. 예를 들면, "별이 태어나려면 혼란이 있어야 한다" - 프리드리히 니체

 

이 명언은 생각하는 자의 입장에서 보면 '별이 태어나려면 정체를 알 수 없는 우주 먼지들의 덩어리에 빅뱅이라는 강력한 스파크가 필요한 것처럼, 좋은 생각이 태어나려면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우리 안에 쌓여 경험과 지식과 지혜의 덩어리들이 미리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라고 해석할 수 있다.

 

내가 하고 있는 이 수많은 공상들도 언젠가 팡! 하고 터질 빅뱅의 재료들이니 소중히 생각하라는 말로 들린다. 어쩌면 세상에 쓸모없는 생각은 없을지도 모른다. 모든 생각은 마인드맵처럼 이어지고 또 이어지니까 갑자기 나타나는 별의 탄생 같은 순간도 어쩌면 우리 머릿속에서 하나하나 계획하고 준비했던 일이기에 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 이렇게 생각하니 나의 공상력에 뿌듯함이 더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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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면서 내내 기분 좋았던 이유가 여기에 있었던 것이다.

 

작가는 계속해서 일상 속 사소한 생각과 태도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 어떤 놀라운 아이디어도 혼자서 뿅! 나타나지는 않는다는 이야기다. 그의 말에 동의하고 그렇다고 믿고 싶다. 지금껏 내게 찾아왔던 모든 생각들 역시 어느 순간의 빅뱅 이후에 나타날 별을 위한 것이라고. 아니, 알고 보면 그 작은 생각들 하나하나가 이미 수많은 별로 태어나 밤을 수놓고 있었다고 믿는다.

  

생각이란 건 그 어떤 마약성 물질보다 강력하고 끈질기다. 심지어 태울 연료도, 필요한 원동력도 그 어떤 물질적인 것도 필요치 않으니 이 얼마나 위대하고 합법적인 마약인가. 생각의 연속을 피할 수 없다면 즐기는 것이 상책이니 나는 앞으로도 이 멀고도 방대한 여정에 스스로를 온전히 맡길 수밖에 없다. 그 여정에는 후회와 아쉬움과 두려움도 있겠지만, 나는 늘 생각하는 기쁨에 더 감사하며 살아보기로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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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요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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