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새롭게 날아오른 그의 결말 - 버드맨 [영화]

날자, 날자, 한 번만 더 날아 보자꾸나.
글 입력 2020.11.30 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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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는 글입니다.

 

 

영화 <버드맨>은, 예전엔 엄청난 인기를 꾸렸지만, 지금은 시대가 바뀌어 잊힌 퇴물 슈퍼히어로를 연기한 리건의 이야기이다.

 

영화 속에서 리건은 그 과거의 명성을 되찾기 위해 자신이 총괄하고 주연으로 나오는 연극의 첫 상연을 앞두고 있다. 하지만 점점 그의 연극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그 속에서 리건은 반드시 극을 무대에 올리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리건 톰슨'의 의식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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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버드맨>은 ‘한물간 슈퍼히어로 배우’가 영화 속 주인공이듯이, 매년 속출하는 할리우드 슈퍼히어로 영화를 비꼬기도 한다.

 

제레미 레너를 가리키면서 ‘그 녀석에게도 망토를 씌웠어?’라고 하거나,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를 ‘깡통 배우’라고 하는 둥. 또한 클라이맥스 장면에서 무대 위에서 춤추는 스파이더맨과 아이언맨, 트랜스포머가 나오기도 한다. 요즘 할리우드의 자본주의 시스템을 대표하는 슈퍼히어로 무비를 풍자하는 해학의 묘미를 느낄 수 있는 작품이며, 여러 블랙코미디 적 요소들이 등장한다.

 

하지만 이 영화가 궁극적으로 주목하는 것은 자본주의적 할리우드 시스템이 아니다. 할리우드 시스템에 대한 비판은, 단지 리건의 삶을 좀 더 비춰주는 도구로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단순한 배경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영화는 단지 ‘리건’이라는 남자에게 초점을 맞춘다. 롱테이크씬과 그에 맞춰 계속 들리는 드럼 소리는 그의 의식의 흐름을 그대로 따라가듯, 영화 상영 중에 끊임없이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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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극 중 리건의 의식은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 불안해 보인다. 자신의 연극에서 본인의 역이 ‘난 사랑 받기를 원했어’라고 하듯이, 리건은 대중이나 가족의 사랑을 갈망한다.

 

그래서 ‘난 그 이상이야’라고 말하면서, 현재 모두에게 잊히는 자신의 존재와 굳건함을 연극으로 증명하려 한다. 하지만 평론가의 말을 듣고, 결국 자신이 되고자 하는 것이 될 수 없음을 수용한 리건은 무대에서 방아쇠를 당긴다.

 

죽으려고 들어간 바다에 해파리가 쏘아대 결국 살아났다는 일화답게, 연극의 결말은 그의 죽음으로 끝나지 않는다. 오히려 평론가의 극찬을 받고 화제에 오르게 되고, 코를 잃고 새로운 코를 얻게된다. 그리고 마치 가면처럼 생긴 붕대를 풀고 버드맨을 제친 채 리건은 날아오른다.

 

 


버드맨의 원제와 영화의 결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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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드맨의 원제는 Birdman, or이다. 즉 진짜 제목은 Birdman, Or The Unexpected Virtue of Ignorance으로 이 제목은 버드맨이 아닌 다른 것으로 알려지고 싶은 리건을 대표한다.


리건은 리건 톰슨, 아버지, 또는 버드맨이 아닌 새로운 상징이 되고자 한다. 리건이 코를 잃고 새로운 코를 얻듯이, 그는 자신 내면 속 버드맨의 부리 (예전 코, 붕대) 를 벗고 새로운 부리 (새로 얻은 코) 를 얻게 된다.


계속 외부사람에게까지는 미치지 않았던 리건의 환상은 그의 딸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리건은 '버드맨' 이 아닌 또 다른 상징으로 날아올랐다는 것을 보여준다. 바로 신문의 제목인 'unexpected virtue of ignorance'와 같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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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버드맨>의 마지막 장면은 이상의 <날개>의 한 구절을 떠올리게 한다.

 

리건의 의식을 그대로 쭉 따라가는 영화의 롱테이크 때문일까, 또는 마지막의 두 주인공의 모습이 비슷해서 그런 것일까. 그런 점에서 <버드맨>의 결말은 <날개> 의 이 구절과 더욱더 새로운 주체로 도약하는 리건을 보여줌으로써 아름다운 결말을 보여주고 있는 듯하다.

 

 

"날개야 다시 돋아라. 날자·날자·날자. 한 번만 더 날자꾸나. 한 번만 더 날아 보자꾸나."

 

- 이상, <날개>

 

 

앰뷸런스 소리가 들린다, 결국 자살한 것이라는 결말에 대한 해석은 어느 정도 상통하고 있다. 하지만 감독은 의도적으로 정확한 사실을 드러내지 않는다.

 

처절하게 마지막까지 날아오르려 한 리건에 대한 예우라고 볼 수 있을까. 또는 유행에 의해 안타깝게 뒤처져버린 할리우드 배우들의 상징을 응원하는 걸까. 결코 <버드맨>의 마지막 장면은, 리건의 결말은 그가 죽었다고 말하기엔 너무나 아쉬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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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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