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신은 질문하는 자, 답은 그대들이 찾아라 [문화 전반]

신은 여전히 듣고 있지 않으니, 투덜대기에. 기억을 지운 신의 뜻이 있겠지, 넘겨짚기에.
글 입력 2020.11.29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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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과 함께


 

'도깨비', '신과 함께'부터 '호텔 델루나'까지. 초월적인 존재가 나오는 영화나 드라마는 매번 같은 플롯이지만 꾸준히 사랑받아왔다.

 

인간의 능력이 닿지 않는 범위의 것들을 관장하는 신과, 그런 신들의 사랑을 받는 인간들. 그리고 그들은 신화 속 먼 존재가 아니라 인간처럼 행동하고, 감정을 느끼고 사랑을 한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유난히 인간의 모습을 한 신에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판타지 영화나 드라마는 허무맹랑한 이야기인데도 불구하고 어째서 인기를 끄는가?

 

 


너 점지할 때, 행복했거든


 

[크기변환]삼신 할머니.PNG

TVN 도깨비

 

 

삼신할머니는 한국형 판타지 하면 대부분 등장하는 단골이다. 신화에서는 인간이 태어나도록 아이를 점지해주는 탄생 신으로, 모든 아이의 정신적 어머니 역할이라고 설명되어 있다.

 

드라마 '도깨비'에서는 그런 삼신할머니가 기존의 노인이라는 고정적인 이미지를 깨고 젊고 아름다운 여성으로 등장한다. 그녀는 부모, 친구 자기편 하나 없이 외롭게 살아가는 주인공 지은탁 옆에서 알게 모르게 늘 도움을 준다.

 

사실 우리 주변에 지은탁 같은 사연을 가진 사람들은 많다. '신이 나를 버렸나?',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기구한 운명을 가진 이들.

 

그러나 현실에서 이런 사람들을 구제해주는 삼신할머니 같은 존재는 당연히 없다. 오히려 삼신할머니가 나를 왜 점지했는지 모르겠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로 우리가 사는 세상은 드라마와 거리가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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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N 도깨비 (목화 꽃말 : 어머니의 사랑)

 

 

그런데도 사람들이 삼신할머니의 이야기에 열광하는 이유는 초월적인 존재로부터 위로를 받는 주인공의 모습에서 자신의 모습을 보기 때문이다. 전부 허상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드라마를 볼 때면 '나에게도 삼신 할머니가 있지 않을까? 나도 살아가는 이유가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오히려 실존하는 사람에게 의지하는 것보다 각자의 가슴 속에 품고 있는, 나의 외로움과 결핍을 채워줄 초인적인 존재가 더 힘이 되는 경우가 많다. 모든 사람은 얼마나 나이가 들었든지 간에 나의 모든 것을 품어주고 응원해 주는 부모님의 사랑을 그리워한다.

 

 

 

저승사자는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로 찾아온답니다


 

인터넷에서 떠도는 일화 중, 저승사자는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로 죽은 이를 데리러 온다는 말이 있다. 그래서 죽고 나서야 자신이 누구를 진정으로 사랑했는지 깨닫게 되기도 하고, 살아가는 내내 가슴 속에 품고 살았던 사람과 만나기도 한다.

 

옛날 신화에서 저승사자는 두려운 존재였다. 검은 갓과 검은 한복을 입고 사람들을 죽음으로 이끄는, 마치 인간이 결코 건드릴 수 없는 생사의 영역에 대한 공포를 대변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131.jpg

TVN 도깨비

 

 

그러나 오늘날의 드라마나 영화는 저승사자를 인간에 가까운 모습으로 그리고 있다. 인간처럼 사랑하고, 원하지 않게 운명한 사람을 데리러 갈 때는 슬픔을 느끼는 등 오히려 저승사자가 살아있는 사람보다 더 인간적인 경우가 많다.

 

선조들에게는 두려움의 대상이었던 저승사자가 이렇게 친근한 존재가 된 것은 죽음에 대한 거부감을 잊기 위해서인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로 찾아온다는 것 또한 죽음을 조금 더 편안하게 만드는 인간들의 자기 합리화가 반영된 설화라고도 할 수 있다.

 

 


떠나야 하는 사람의 마지막을 아름답게 만들어 준다는 것


 

'호텔 델루나'는 죽은 영혼들이 머무는 곳이다. 망자들을 편안하게 보내주기 위해 최상급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이 호텔은 서울 도심 한복판에 있지만 사람들의 눈에는 띄지 않는다. 지배인 장만월은 어마무시한 힘을 갖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인간의 일에 관여할 수 있을 만한 초인적인 능력을 갖고 있다.

 


[크기변환]호텔 델루나.jpg


 

드라마가 각별한 사랑을 받았던 이유는 현재 사회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일들을 담았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권선징악'이라는 말이 존재하지만 그것이 실현되는 경우는 드물다. 악한 사람은 잘 살고, 선한 사람은 고통받는다. 악에 받친 피해자의 외침은 가해자의 인생에 어떠한 영향도 미치지 않는다.

 

호텔 델루나는 인간을 뛰어넘은 존재가 개입해 악인들에게 대신 벌을 내린다. 현실이라면 절대 일어나지 않을 일들이다. 따라서 사람들은 드라마를 통해 언젠가 선한 사람은 빛을 보고 악한 사람은 무너지게 될 것이라는 위로를 받는다.

 

 

 

49일의 재판


 

민감한 문제지만, 사회적으로 '죽음이 면죄부다'라는 말이 간혹 등장하는 경우가 있다. 죽고 나면 어떠한 삶을 살았든간에 무효가 된다는 뜻이다.

 

모든 인간이 언젠가 죽게 된다면, 살면서 타인을 사랑하고 배려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삶에 대한 책임이 두려워지면 죽음으로 도망치면 되는 것 아닌가. '신과 함께'에서는 죽음은 또 다른 삶의 시작이라고 말한다.

 

살아있는 동안 저지른 죄와 덕들이 쌓여, 49일의 재판을 하는 동안 누군가는 지옥에 떨어지기도 하고, 누군가는 무사히 통과하기도 한다. 영화가 아닌 주호민 작가의 원작에서는 살면서 아무것도 지니지 않고 남에게 베풀며 가난하게 살아온 할머니가 저승에서는 호화로운 배를 타고 강을 건너는 모습이 그려진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정직한 인생이 죽은 후에라도 보상받게 된다는 사실은 올바르게 살아갈 용기를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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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신과 함께 '인과 연'

 

 

저승의 관리자인 '염라대왕'은 사실 앞서 등장한 모든 존재 중에 가장 강력한 신일 것이다. 염라대왕의 앞에 서면 어떤 거짓도 변명도 통하지 않는다. 살아가는 동안에는 누구도 개인의 인생에 간섭하지 않는다. 이는 다시 말하면 인생을 가꿔온 나의 노력이 인정받지 못한다는 말과 같다.

 

그러나 염라대왕의 앞에서는 모든 인간이 살아온 인생 그대로를 평가받는다. 죽음 뒤에 더 거대한 세상이 있다는 사실은 보이지 않는 질서가 되기도 한다.

 

 

 

삶이라는 질문, 인생이라는 대답


 

이처럼 우리는 때때로 비현실적인 것으로부터 위로를 받기도 한다.

 

위로와 희망이 있는 삶이란 이처럼 살아갈 만하다.

 


[허향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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