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시에게 반하다 - 시가 나에게 살라고 한다 [도서]

글 입력 2020.11.29 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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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 나태주, 풀꽃

 

 

어디선가 한 번쯤 본 시구절이다. 지나가면서 누군가 걸어둔 캘리그래피(calligraphy)에서, 혹은 버스 정류장에서 보았던 걸까? 슬며시 입가에 미소를 돋게 하는 시다. 잔잔하면서 서정적인 시의 한 구절 한 구절을 곱씹으니 마음에 스며드는 따뜻함이 참 좋다. 따스한 시의 분위기 덕분에 지금처럼 쌀쌀한 날씨, 꽁꽁 언 마음이 사르르 녹았다.

 

 

시가 나에게 살라고 한다_평면.jpg

 

 

나태주 시인의 ‘풀꽃’은 사람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은 시다. 이토록 대중적인 시로 자리매김한 것에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그중 가장 큰 이유는 우리에게 ‘울림’을 전하기 때문일 것이다. 때로 우리는 스스로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잊고 산다. 풀꽃은 ‘내’가 소중해지는 느낌을 받게 했다. 무척 당연함에도 삶에 치여 잊고 살았던 자존감을 찾아줬다.


프랑스의 철학자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기며 자신의 존재를 증명했다. 그런데도 사람은 언제나 ‘나는 어떤 존재인가’ 하며 의문을 품는 경우가 있다. 세상과 부딪힐수록 그렇다. 이에 풀꽃은 척박하고 지친 마음에 오아시스와도 같은 위로를 건넸다. ‘나’라는 사람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게 하는 위로였다. 나태주 시인의 ‘풀꽃’은 그랬다.

 



교직을 거친 시인, 나태주


 

시인 나태주는 1945년 충남 서천군에서 태어났다. 충남대 교육대학원을 졸업하고 43년 동안 초등학교 교사로 재직했다. 공주의 한 초등학교에서 교장직을 수행하고, 그 기나긴 교직 생활의 끝을 마쳤다. 그 후 지금까지 시인의 길을 걷고 있다. 현재는 공주에서 공주풀꽃문학관을 설립·운영 중이다.


1971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서 ‘대숲 아래서’가 당선되며 문단에 첫 등단했다. 50여 년간 끊임없는 창작 활동으로 수천 편에 이르는 시를 발표하면서,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시로 ‘풀꽃’이 선정되기도 했다.


<시가 나에게 살라고 한다>는 시인 나태주가 모진 병마와 싸우며 죽음의 문턱에 이르는 극한의 상황 속에 자신을 일으켰던 국내 시 114편을 담고 있다. 윤동주 시인의 ‘별 헤는 밤’부터 이병률 시인의 ‘내 마음의 지도’까지, 총 114편의 시마다 나태주 시인의 개인적인 경험·에피소드를 한데 엮었다. 시인이 꼽은 114편의 시와 나태주 시인의 감상평을 읽고 있노라면, 따뜻한 위로와 감동을 받는다.

 

 

 

시가 준, 위로


 

나태주 시인의 대표 시로 꼽히는 ‘풀꽃’도 많은 위로가 되었지만, <시가 나에게 살라고 한다> 시집을 읽으면서 잊고 살았던 시들을 다시 보게 됐다. 중·고등학교 시절이 생각나기도 했다. 당시 시인의 의도를 파악해야 한다는 말을 지겹도록 들었다. 국어 시간에 자주 접했던 문학 시부터 처음 보는 낯선 시도 있었다. 낯설지만 새로운 감상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114편의 시가 감동적이고 지친 삶에 힘을 불어넣어 줬지만, 읽으며 가장 인상 깊었던 2편을 소개해볼까 한다.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헬 듯합니다.


가슴 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별을

이제 다 못 헤는 것은

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요,

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요,

아직 나의 청춘이 다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 윤동주, 별 헤는 밤

 

 

윤동주 시인의 ‘별 헤는 밤’은 모든 구절이 좋으나, 읽으면서 가장 감동한 일부분을 발췌했다. ‘별 헤는 밤’은 1946년 윤동주 시인의 유고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에 수록된 시다. 시 자체는 연희전문학교 시절(1941년)에 완성했지만, 일제의 검열로 시인 사후에 발표되었다고 한다.


‘별 헤는 밤’에는 다양한 사람과 생물·사물의 이름들이 언급된다. 그러나 정작 자신의 이름은 일제에 의해 강제로 개명된 일본식 이름이다. 윤동주 시인은 이 이름을 차마 쓸 수가 없어 흙으로 덮어버린다는 표현을 썼다. 그리고 부끄러워했다.


한글이 아니라 영어·일본어·중국어로 이름 석 자를 써야 했다면…상상하기도 싫다. “윤동주 시인처럼 부끄럽긴 했을까? 바꿀 수 없는 현실에 마냥 안주하고 있진 않을까?”란 생각이 든다. 또 젊은 나이에 부모님과 멀리 떨어져 생활해야 했던 시인의 마음도 절절하게 와닿는다.


필자도 공부로 인해 자취생활을 했다. 부모님과 떨어져 지내면서 아플 때, 가장 힘들었을 때, 내 옆에 아무도 없는 것이 그렇게 제일 서러웠다. ‘윤동주 시인도 그렇지 않았을까?’라는 동감이 들었다. 부모님이 그리운 순수한 마음을 시로 녹인 윤동주 시인의 글 솜씨에 다시금 감탄했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안동현, 너에게 묻는다

 

 

안동현 시인의 ‘너에게 묻는다’도 교과서에 자주 등재됐던 시다. 그만큼 짧으면서도 강한 울림을 전하는 힘 있는 시다. 1994년 <외롭고 높고 쓸쓸한>이라는 시집에 수록되었으며, 연탄재를 비유로 누군가의 희생과 헌신적인 사랑을 강조하고 있다.


요즘 같은 시대에 조건 없는 희생과 헌신을 하는 사람이 있을까. 있긴 할까? 예수님과 같은 아가페 사랑을 실천한 성인만 있는 건 아닐까.


사실, 멀리 가지 않아도 우리 옆에 있긴 하다. 부모님이다. 부모님은 자식에게 아무것을 바라지 않는다. 조용히 뒤에서 물심양면 자식을 돕는다. 물론 모든 부모님이 그런 것은 아니다. 이따금 뉴스에는 친족 간의 불화로 살인까지 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조건 없는 사랑’하면 여전히 부모님이 떠오른다.


부모님처럼 나는 누군가에게 희생과 헌신을 했는지도 성찰하게 된다. 안동현 시인이 말한 ‘누구’는 비단 사람만이 아닐 것이다. ‘모든 일에 그러한가? 모든 일에 열정을 가지고 뜨거웠나?’ 생각하게 된다. 사람이든, 일이든, 모든 일에 진심으로 최선을 다하자고 결심했다.

 

 

 

시에는 힘이 있다


 

나태주 시인은 <시가 나에게 살라고 한다> 서론에서 말한다.


 

이 책에 모은 글들이 그렇습니다. 많이 힘들고 고달픈 날들, 나를 살리고 나를 위로해 준 시들이 이 책을 읽는 분들도 살려주고 일으켜주고 용기 또한 빌려줄 것으로 믿습니다.

 

 

지구상 누구에게나 힘든 순간이 있지만, 나태주 시인은 ‘시’를 통해 그 슬픔과 힘듦을 이겨냈다. 자신을 살려준 시가 또 누군가를 살려주길 바란다. 예전이었다면 공감할 수 없었을 것이다. 시를 좋아하는 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시에 이토록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가 있다.


좋아하고 존경하는 멘토 선생님이 문학을 매우 좋아한다. 문학에서 시를 가장 좋아했다. 그래서 시 작품을 여럿 많이 쓰고 발간도 했다. 그래서 없던 관심이 생겼다. “왜 많고 많은 문학 중에 시를 저렇게 좋아하실까?”하고.


관심을 가지고 시를 감상하니, 시에 대해 안 보이는 ‘감동’과 ‘울림’이 보이기 시작했다. 중·고등학교 때 국어 공부하듯 쪼개서 보는 게 아니라, 시에 대해 이해해 보려고 노력했다. 일반 글들은 기나긴 글로 감동을 전하지만, 시는 짧은 함축적 의미를 통해 깊은 감동을 전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 뒤부터 제일 싫었던 시를 좋아하기 시작했다.


그렇다. 시에는 그런 힘이 있다. 짧은 문장 속에서 공감 감동을 주기도, 마음에 깊은 울림을 전하기도 한다. 요즘같이 쌀쌀한 이때, 이 책 속의 시들이 누군가의 얼음장과 같은 마음을 봄볕처럼 녹여주길 바란다.

 

 

 

박신영_컬쳐리스트.jpg

 

 

[박신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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