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스트레이트2 [사람]

묵직한 한 방을 위한 수많은 잔손
글 입력 2020.11.29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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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시간에는 스트레이트라는 펀치에 대해 소개했다.(스트레이트1) 스트레이트는 쭉 뻗어 치는 뒷손. 오른손 주먹이 쏘아내는 직선 궤적의 펀치이자, 호쾌함이 돋보이는 펀치다. 분명 가장 강력한 펀치이지만, 궤적이 단순하고 느려 막히는 일이 많다. 처음에는 내 스트레이트가 너무 느려서 그런가 하는 생각에 무작정 스트레이트만 연습했더랬다. 더 많이, 더 빨리.


나는 몇 번의 계절을 보내왔는지도 다 모르겠다. 어제까지, 그리고 당연히 오늘도 나는 체육관에 도착하면, 몸을 풀고 자세를 잡는다. 스트레이트는 뒷손에서 나가는 펀치, 오른손잡이는 오른손과 발을 뒤에, 왼손잡이는 왼손·왼발을 뒤에 둘 것이다. 그러면 자연히 반대편 손발은 앞에 나와 있다.


왼손과 왼발을 앞쪽에, 오른손·오른발을 뒤쪽에 두고 나는 자세를 잡는다. 이제 팔을 몸쪽으로 잔뜩 웅크리면, 그 끝의 꽉 쥔 주먹은 턱 언저리에 자리한다. 스트레이트는 뒷손에서 나가는 펀치, 오른손잡이인 내가 오른손을 뒤에 두어 스트레이트를 준비한다는 것은, 그것이 더 강한 펀치인 까닭, 고로 더 멀리서부터 쭈욱- 뻗어내기 위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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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신기하지, 스트레이트만을 먼저 뻗어보아서는 주먹이 옳게 되지 않는다. 나는 이를 이상하게 생각해왔다. 샌드백 앞에 자리하고서, 전신을 체크하고 이제 스트레이트부터 한번 뻗어보면, 이상하게도 주먹이 샌드백에 감겨들어가지 않는다. 겉면에 여른 마찰을 일어내곤 틱-, 맥없이 튕겨 나오는 것이다. 스트레이트는 언제나 앞손의 잽과 함께, 잽에 뒤이어 나가는 것. 잽을 친 다음 바로 매끄럽게 이어서 스트레이트를 치는 이것을 두고 우리는 `원·투`라고 부른다.


복싱을 가장 처음 배웠을 적부터 질리게 들어온 `잽-원투`는 왼손 두 번 그리고 오른손 한 번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이제의 내게는 마치 한가지 동작처럼 인식된다. 그것이 한 뭉텅이가 되어 내 몸에 스며 베인 것일까. 스트레이트는 분명 강한 펀치, 그러나 곧잘 스트레이트부터 뻗어보면 늘 어수룩한 것이 되어버렸다.

 

*


아 참, `잽`에 대한 소개가 늦었구나.


잽은 앞발·앞손으로부터 나가는 펀치, 비거리가 짧기에 응당 그리 강력한 펀치가 아니다. 그러나 가장 빠른 펀치, 비거리가 짧아서 빠르기도 하거니와 어차피 강하지 않기에 빠르게 치기로 하는 펀치이다.


뒷손 스트레이트가 단단히 잡힌 몸의 중심을 기반으로, 뒷발끝으로부터 전신을 회전시키어 앞으로 쏘아내는 펀치라면, 잽은 훨씬 가볍다. 그것은 앞발을 내어 딛음과 거의 동시에 쏘는 펀치, 발과 몸이 앞으로 나아가는 추진력을 이용하여 빠르고 경쾌하게 치는 펀치, 그리고 그렇게나마 최소한의 힘을 가질 수가 있는 펀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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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복싱을 배우면, 잽을 배우고 곧바로 원투를 배운다. 잽과 원투가 각각 어느 정도 기본을 갖추면, 그때부터는 `잽-원투`, `잽-잽-원투`를 시킨다. 그러니 처음 배우는 입장에서 재미가 없을밖에. 처음 하는 입장에선 왜 계속 똑같은 걸 시키는가 싶다. 그때 드는 생각이란, 왜 하는 것이 잽이랑 스트레이트뿐인가 하는 지루하고 불만스러운 것.


그러나 이를 오래도록 반복하다 보면, 그것이 전부 다른 움직임을 자아냄을, 더 나아가선 조금씩 다른 몸의 운용을 필요로 함을 느끼게 된다. 어찌 되었건, 보시다시피 스트레이트만 따로 치는 경우는 좀체 없다. 상대방의 펀치를 되받아치는, `카운터`가 아니라면 말이다.

 

*


원-투는 그러므로 `하나의 움직임`이다. 더러 잽만 치는 경우가 훨씬 많지마는, 적어도 스트레이트는 잽과 함께 움직인다. 어느 날은 문득, 그것에 대해 궁금해 본 나머지 몸을 한번 깊숙이 바라본 적이 있었다. 며칠·몇 번을 반복했을까, 이윽고 느껴지는 것이 하나 있더라.


잽은 소개드렸다시피, 빠르고 약한 펀치이다. 동 체급끼리의 대련에서 잽을 맞고 아프다는 생각이 드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러나 가장 빈번히 이루어지는 잽, 이유라면 그것이 빠르기 때문이기도 했지마는, 잽이 `셋-업` 펀치인 까닭이다.


잽은 왼발을 앞으로 내어 딛음과 동시에 치는 왼손, 치고 난 직후 가만 멈추어 바라보면, 앞발과 뒷발의 간격이 적당히 벌어져 있음을 알게 된다. 직립 자세 보다 안정적인, 하프-런지 자세이다. 중심이 안정적인 고로, 전신을 운용하기에 적합하다. 그리고 이때 왼손과 왼 어깨를 앞으로 쭈욱 뻗어낸 만큼, 정면을 45도 사선으로 바라보고 있던 몸은 완전히 오른쪽을 향하게 되고, 그 몸으로부터 이어져 있는 오른 어깨와 오른손은 완전히 뒤쪽으로 젖혀져 있다. 막 튀어나가기 위해 움츠린 용수철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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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상황에다가 잽을 친 다음 왼손을 거두어 당기는 힘까지 적절히 섞어 오른손을 튕기듯 뻗어내면, 좋은 스트레이트가 나온다. 하나의 몸에 이어진 두 팔을 고루 느끼는 것이다. 왼팔을 당기며 오른팔을 밀면, 중심인 몸은 앞으로 치우침이 없이 곧고 빠르게 회전한다. 물론 모든 원투를 이렇게 세밀히 신경 쓰지는 못하지만, 적어도 1만 번 정도 반복하다가 보면 어느새 몸에 스미게 될 일. 물론 그렇게 쳐놓고서도 그 `느낌`을 까먹는 때가 오지만은, 그런 때면 다시금 몸을 가만 살펴본 뒤 되찾는다.


샌드백을 죽도록 치며 연습한 것을 가지고, 이따금은 스파링도 해본다. 결국 연습의 완성은 실전이라고, 격투기를 체력 단련과 다이어트의 목적으로 하는 사람들은 샌드백과 미트를 반복하지만, 나아가 격투기를 더욱 잘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은 모여서 스파링을 하게 된다.


스트레이트는 분명 가장 강력한 펀치, 가드 위로 맞아도 전신이 쿠-웅 울린다. 그러나 이 강력한 것을 계속 쏘아내는 것은 또 안 될 일이니, 스트레이트는 반드시 잽의 `셋-업`에 뒤이어 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잽이 셋-업하는 것은 앞서 말한 `스트레이트에 적합한 자세`이기도 하지만, 비교적 무겁고 느린 스트레이트를 적중시키는 데 필요한 `틈새`이기도 하다. 빙글빙글 돌며 상대의 가드와 허점에다가 잽을 쏘다가 보면, 벌려지는 상대방 가드의 `틈새`.


잽으로 열린 그 순간의 틈새를 포착해 그대로 쏘아내는 뒷손, 그것이 스트레이트이고 그것이 가장 강력한 펀치의 목적이다. 찰나의 타이밍을 잘 잡아, 잘 나아간 스트레이트는 이제 여남은 상대의 가드 틈새를 부수고 들어가 비로소 상대에게 닿는다. 그러면 헤드기어 위로 맞아도 머리가 띵-하니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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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강한 펀치를 위하여, 필요한 것이 이렇게나 많다. 사정이 이러니 복싱을 배울 때면 `원투`만 주구장창 가르칠밖에. 원투는 어느 정도 배워서 끝이나는 것이 아니라, 아마 복싱을 그만두는 때까지 계속 배워가야 하는 펀치이다. 샌드백을 치다가 보면 어느 새부턴가 아무 생각도 없이, `잽-원투-백스텝-잽-잽-원투`를 치고 있는 나를 느닷 발견한다. 이렇게 쓰고 보니, 나 또한 스트레이트를 위해 얼마나 많은 잽을 쏘아냈던가, 감회가 새롭다.


나는 스트레이트를 가장 좋아하지만, 그를 위해 얼마나 많은 잽을 쏘았는지에 대해서는 잊고 있었다. 스트레이트는 잽에 뒤이어야 하는 것, 나아가서 무수한 잽을 통해 상대방에 틈새를 만들고서야 나가는 것. 묵직한 한방을 위해 내가 그 얼마나 많은 잔 펀치를 쏘았는지에 대해 떠올려본다.


얼른 강해지고 싶다는 조급한 마음은, 자꾸만 스트레이트를 뻗어낸다. 더 많이, 더 빨리. 그러나 그래서는 스파링에서 신나게 두들겨 맞을 뿐이었다. 내가 상대방을 겨누면 상대방도 나를 겨누고 있기에. `더 세게 뒷손을 뻗어내 맞추면 그만 아니냐` 하는 생각으로 서두르다가는, 상대방의 무수한 잽에 내 가드가 깨질 뿐이다.


그렇게 써놓고 보니 격투기가 재밌는 까닭은 여기, 냉정함에 있지 않나 싶다. 더 잘하고 싶을수록 더욱 냉정해야 한다는 것. 딴에 어떤 일들은 정열과 맹목만으로도 잘 되는 것 같더라마는, 격투기에서 그렇게 들이댔다가는 신나게 두들겨 맞고 말뿐이다. 무수한 잽에 결국 가드가 뚫리고, 계속 잽을 허용하다가는 이윽고 시야가 흔들려 정신을 못 차리게 된다. 그러다가 스트레이트 한 방, 쾅. 물론 경험담이다.


충천하는 자존심과 고집, 그러니까 예컨대 `나는 더욱 센 펀치로 강해지겠다`는 등의 아집은 결국 수일 밤 내 꺾이고, 반성의 시간을 맞이하게끔 되어 있다. 처음에야 분기에 분분하지, 거듭 패하다가 보면 못내 인정하다가 또, 마침내는 받아들이게 되더라는 것이다. 거의 손쓰지도 못한 채 신나게 두들겨 맞은 다음의 귀로 위에서는, 머리에 가득 찬 체육관의 열기가 가시면서 바야흐로 `뭐가 잘못된 게지` 질문해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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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방`을 위하여, 결국에 무수한 잔손이 필요함을 몸으로 먼저 배운다. 잽이 안 아픈 것 같아도, 계속 빠르게 툭툭 쳐대다가 보면 견고한 상대방의 가드를 부수고, 시야를 어지럽히고, 틈새를 만드는 것이다. 묵직한 한방은 그때서나 기회를 허락하는 것. 마음 급한 내 요즘의 나날, 이런 때면 역시 가드 굳히고 뒷손을 잘 벼루인 채로 '짠 손' 깨나 툭툭, 던져 보아야겠다. 틈새를 찾을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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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상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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