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스트레이트1 [사람]

가장 완벽한 스트레이트를 위하여.
글 입력 2020.11.13 1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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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레이트.

 

쭉 뻗어 치는 뒷손. 오른손 주먹이 쏘아내는 직선 궤적의 펀치, 호쾌함이 돋보이는 펀치다. 궤적이 지나치게 단순해, 진행 선상에서 나의 반대편 왼손이나 상대의 뻗어 나오려는 손에 걸리는 일이 부지기수이긴 하지만, 가장 강력한 펀치라고, 개인적으로는 생각한다.


`오소독스`, 오른손잡이인 나로서는 격투기 스탠스를 잡을 때 왼손과 왼발이 앞으로 나와 있다. 복싱이건 킥복싱이건, 이 기본자세는 꼭 같다. 물론 다리를 사용하는 여부에 따라 발끝부터 손끝까지의 세밀한 포지셔닝은 다르지만, 그래도 큰 틀에서 보았을 때 왼손 왼발이 앞에 가 있는 이 형태만은 꼭 같다.


오른손잡이가 왼손을 앞에 두는 것, 달리 말해 오른손을 뒤에 두는 그 까닭은 평소에 자주 사용하는 이 오른손이 더 강력한 손이기 때문이다. 펀치는 비거리에 비례하여 파괴력이 나오는 까닭, 반례를 들어보자면 브루스 리의 그 유명한 `원인치 펀치`가 있겠다. 더 강력한 손을 더욱 강력히 쓸 수 있도록 셋-업하는 것, 이것이 기본 스탠스의 요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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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레이트는 이 뒷손을 가지고 치는 강력한 한 방이다. 앞발을 내딛으며 발생하는 전신의 `추진력`과 뒤에서 손이 출발하며 마련되는 충분한 `비거리`, 그리고 뒷발끝으로부터 시작해 골반을 타고 오르며 어깨에까지 전달되는 `회전력`이 합일을 이룸으로써 완성되는 스트레이트. `미트`가 되었건 `샌드백`이 되었건, 정말 잘 된 스트레이트는 닿았을 때 크고 아름답고 청량한 소리를 자아낸다.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이 운동의 보상이다.


가장 완벽한 스트레이트를 위해서 필요한 것이 이렇게나 많기에, 나로서는 거듭 치고 또 칠 수밖에 없다. 펀칭의 그 순간 내가 설정한 거리에 따라서, 글러브의 접촉부위에 따라서, 미묘한 자세에 따라서, 펀칭은 쉽사리 어긋나버리곤 하는 것이다. 1cm 차이로 펀치는 결정되는 것, 딱 그만큼만 가까워도 안 되고, 딱 그만큼만 멀어도 닿지 않는다.


그래서 샌드백이 되었건 미트가 되었건, 그 앞에서 계속 원투를 반복하게 되는 것이다. 누가 되었건 해낼 수 있는 가장 완벽한 스트레이트를 `느끼고 나면` 그렇게 되는 것이다. 내 신체에서 뿜어 나왔다고는 실감 나지 않는 그 풍성한 힘과 그 순간 목전에서 분수처럼 터져 나오는 청량한 소리를……. 혹자는 지겹지 않냐고 나 대신 진저리를 치기도 하지만, 그런 그조차도 성공한 스트레이트 앞에서는 나 대신 환희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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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계속 반복하게 되는 것이다, 한 번 성공한 펀치는 돌아오지 않기에. 심지어 곧바로 반복해보아도 직전의 펀치와는 무언가 다른 펀치가 완성된다. 펀치는 매 순간 조금씩 다르다. 내가 아주 미세한 단위까지 전신을 통제할 수 없다는, 바로 그 인간적 한계에 까닭이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체육관에 가면 귀에 이어폰을 낀 채로, 전신에 감각의 촉수를 곤두세우며 겁거듭 새로운 펀치를 만들어본다. 앞발이 나아간 거리만큼 멀어지는 두 다리 간격과 그 중간 어디쯤에 새로이 형성되는 몸의 중심을 가장 먼저 살핀다. 그다음, 앞발이 대지를 잘 디디고서 탄탄히 고정되었는지를 느낀다. 이 처음이 실패하면 그다음은 볼 것이 없다. 가장 완벽한 펀칭은 전신을 가장 훌륭히 기동한 결과값이기에, 전신의 기반인 몸의 중심과 지지축을 잘 형성해두어야 그다음 행동이 의미를 가질 수 있다.

 

그런 다음에야 뒷발로부터 시작되는 회전력에 의미가 생기고, 그와 동시에 앞으로 곧게 뻗는 오른손의 힘찬 전진에 의미가 생긴다. 하나의 스트레이트를 위해 필요한 것이 이렇게나 많다. 샌드백을 친다는 것은, 결국 가장 완벽한 한 번의 펀칭을 위하는 것. 또한 그 한 번에 감동하고서, 거듭 그를 찾아가는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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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리는 것도 싫고, 맞는 것은 더 싫은 내가 격투기를 애정 하는 까닭이란 이런 것이다. 어차피 실용성(?)일랑 없는 이 펀치에, 흠뻑 매료된 것이 이유가 되어서 그 찰나를 찾아 계속 반복하며 나아가는 것. 완성한 펀치는 돌아오지 않아서, 순간만큼만 왔다가 가는 그 완성을 향해 계속 나아가는 것. 그 과정에서 나는 비로소 몸을 느낀다. 관심을 가지고 바라보면 드디어, 잘 느껴지지 않던 발끝의 감각에서 출발해 허벅다리의 텐션, 허리와 복부의 적당한 긴장, 광배근과 승모근의 이완에까지 온통 감각이 미친다.


가장 완벽한 스트레이트를 위하여, 나는 잘 느껴지지 않던 내 몸 구석구석을 비로소 바라본다. 모든 것이 다 잘 되었다 싶은 다음에도 기대한 펀치가 나오지 않으면, 몸 바깥을 살피어도 본다. 아깝다. 조금 가까웠거나, 조금 멀었구나. 아주 조금, 1cm 남짓한 만큼만 멀거나 가까웠구나. 그러면서 또다시 펀칭을 반복하는 것이다. 끝없을 이 짓을 제자리 걸음 하듯 반복하다 보면, 그 시간이 세월이 되어 쌓이곤 어느 순간 돌아볼 때에 아아, 이만큼 걸어 나왔구나 알게 되는 것. 내게 격투기는 그런 운동이다.


운동을 마치면 밤이 퍽 깊다. 돌아오는 길은 땀으로 가득 차, 이런 날씨면 아무래도 조금 쌀쌀하다. 운동을 마치고 체육관을 나서면 그제야 집업 후드 안쪽에 가득 차오른 열기와 땀이 식어간다. 추운 와중 돌아오는 길 위에서도 나는 오늘의 펀칭을 또 곱씹어보고, 잘 된 순간을 생각하며 저 혼자 피식 좋은 기분을 흘리며 그렇게 하루를 마친다.


오늘의 스트레이트는 얼마나 아름다웠던가. 뒷손 스트레이트는 직선으로 곧게 뻗는, 정직하고도 호쾌한 펀치. 내 생각하기론 가장 강한 펀치다. 가장 강한 주먹의 완벽한 한순간을 위해서 나는 어제도 오늘도, 아마 내일까지도 계속 이러고 있을 것이다. 찰나에 스러질 그 순간에 매료되어, 나는 그를 위해 언제까지고 계속 이러고 있을 것이다. 그러는 와중에 나는 여기 잊혀있던 내 몸을 보고, 느끼고, 어루만져도 본다. 그러는 와중에 내 던진 주먹 개수는 시간과 함께 쌓이고, 조금씩 완벽함의 순간으로 다가간다. 아마 거기 다가가는 만큼, 그는 내게 더 가까이, 더 자주 선보일 것이다.

 

가장 완벽한 스트레이트를 찾아가는 먼 길,

격투기는 내게 이런 운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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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상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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