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두려워도 괜찮아

글 입력 2020.11.29 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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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을 맞이하는 겨울, 인생 첫 타투를 했다. 망설임은 없었다. 아주 오랫동안 고대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짧은 레터링이라 작업은 금방 끝이 났다. 거울을 보고, 내 몸에 새겨진 글자를 만족스럽게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때 새긴 'Fearless'(두려움이 없는)는 여전히 선명하게 팔꿈치 위에 자리하고 있다.

 

*

 

가끔 친구들이 내 타투의 의미에 대해 물을 땐, 조금은 어색하다. 대단한 의미를 기대하고 물어보는 것은 당연히 아니겠지만, 왠지 혼자만의 다짐 따위의 것을 자랑스레 외치는 것 같은 기분이 괜스레 들기 때문인 것 같다. 필기체로 흩날려 적힌 '두려움이 없는' 글자. 나에게 있어 '두려움'이란 내 삶을 관통하는, 피할 수 없이 그 존재감이 거대한 것이었다. 두려움을 물리칠 수 있을까, 없을까 고민하는 것이 이 생의 숙제처럼 느껴지는 나날을 보내며, 단 한 번도 도달한 적 없었던 '두려움이 없는' 상태를 타투로 새겼다는 말을 하기가 다소 민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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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두려움이라는 감정에 대해 고민하게 된 것은 아주 오래된 일이다. 어렸을 적부터 성격이 소심하고, 내성적인 탓에 나는 늘 긴장해 있었고, 경직되어 있었다. 그렇게 딱딱하게 굳은 내 마음속에 두려움이 자리잡기란 너무도 쉬운 일이었을 것이다. 세상은, 그리고 많은 사람들은 나의 안쓰러운 상태를 보듬기엔 너무도 바빴고, 또 그런 배려를 해줄 의무 같은 건 지니지 않았다. 그 속에서 나는 자꾸만 위축되어 갔다. 아무리 어깨를 펴고 고개를 빳빳이 들고 싶어도 사람들의 눈을 마주치기가 버거웠다. 나는 모든 게 두렵고 무서웠다. 두려움의 대상은 비단 사람과 사물에 그치지 않았다.

 

한 번은 콘서트를 보러 갔다. 3일 동안 진행되는 콘서트였는데 운이 좋게도 소위 말하는 '올콘'(콘서트 전일을 감상하는 것을 뜻한다)을 뛰게 되었다. 첫날, 둘째 날은 정말 기쁘고 신이 났다. 같은 공연을 거듭 보게 되는 것 인데도 불구하고 이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셋째 날, 나는 조금 당황스러움을 느꼈다. 공연이 시작되기 30분 전부터 이상한 기류를 감지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당황스러운 마음을 가다듬으며 친구에게 문자를 전송했다. '나비가 뱃속을 뒤덮은 것 같아.'

 

나비가 뱃속을 뒤덮다. 언뜻 보면 무슨 말인가 싶지만, 정말 딱 이 말로밖에 표현할 수 없는 상태였다. 무언가 아주 통제할 수 없는 감정이 당장이라도 뿜어져 나올 것만 같았다. 나는 공연이 끝나고 정체모를 '나비'에 대해 한참을 생각했다. 그리고 그 '나비'는 나의 두려움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마지막이라는 두려움, 다시는 볼 수 없을 것이라는 두려움. 손에 잡히지도 않고, 눈으로 볼 수도 없는 연기 같은 감정에 기꺼이 잠식되어버린 것이다.

 

이 일로 나는 불완전하고, 불확실한 것들에 대해서라면 내가 가장 좋아하고 사랑해 마지않는 것들조차도 두려움 속에 던져 넣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만큼 나는 두려움에 취약한 사람이었다. 그 생각에 이르자, 세상의 온갖 것들이 더 무서워졌다. 마치 커다란 지구라도 등에 이고 떨어뜨릴까, 깨뜨릴까 전전긍긍하는 듯한 모양새였다. 모든 것들이 내 손 안에서 부서져버릴 것만 같았다.

 

이런 나의 상태는 시간이 흐르며 조금씩 나아지는 듯 보였으나 실은 원래 자리로부터 몇 발짝 떨어진 것 밖에 되지 않았다. 오히려 본질에서 멀어져, 두려움의 실체를 잃고 두려워하는 마음까지도 두렵게 되었다. 실체 없는 두려움에 질려가던 나는 다시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내가 정말 두려워하는 것이 무엇인가. 그것 하나만을 알아내기 위해 아주 많은 글을 써 내려갔다.

 

그리고 마침내 원하던 답을 찾을 수 있었다. 결론은 '없다'였다. 허무하지만 사실이었다. 내 두려움의 실체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허구와 망상일 뿐이었다. 감정에 매몰되고, 상황에 압도된 것뿐이었다. 누구도 나를 해치려고 하지 않았고, 어떤 것도 나를 절벽 끝으로 몰아세우지 않았다. 나는 제 발로 함정에 걸어 들어갔던 것이다. '나를 지키기 위해서'라는 모순의 끝을 달리는 이유를 앞세우며 말이다. 나의 간절한 바람이 담긴 '두려움이 없는' 글자를 다시 매만졌다. 이제는 바라기만 하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했다. 정말 두려움 같은 건 떨쳐내고 싶었다. 행동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래야 숨이 트이고, 사람답게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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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움을 버리기 위해 내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상황과 사람을 객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이었다. 나의 감정에 파묻힌 채로 바라보는 세상은 내가 쓴 색안경의 색깔로 한껏 물들어 있다. 안경을 벗어던지고 '진짜'를 보고 싶었다. 그렇게 바라본 세상은 별거 없었다. 대부분의 일이 인과에 따라 일어나거나, 아니면 정말 별거 없이 우연히 일어난 일일 뿐이었다. 대개 나의 지나친 잘못과 서투름으로 저질러진 실수가 아니었다. 다만 '그렇게 될 일'이었다.

 

상황이 있는 그대로 보이기 시작하자, 나는 그다음으로 '합리성'을 따져보기 시작했다. 이 상황에서 이런 사고방식을 갖는 것이 과연 옳은가? 합리적인가? 논리적인가? 대개는 아니었다. 너무 화가 나거나, 너무 슬퍼하거나, 너무 기뻐하는 감정에 매몰되어서는 합리적인 사고방식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중요한 과정을 건너뛰고 결론짓거나, 아예 엉뚱한 경로의 생각에 빠져 전혀 말도 안 되는 결과에 실망하는 경우가 많았던 것이다.

 

나는 점차 그동안 내가 보지 못했던 새로운 세상을 접하며 하나둘씩 '괜찮아져도 될' 이유를 찾아갔다. 그리고 종국에는 이 노력과 의지의 '시작'을 수정하기에 이르렀다. 무슨 말이냐 하면, 두려움이 없는 상태에 대한 집착을 버리기로 했다는 뜻이다.

 

색안경 없이 세상을 바라보자, 그 안에 같이 머물고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그동안 내가 사람들을 무서워한 것은 나와 전혀 다른, 이성적이고 완벽한 존재로 보았기 때문이었다는 것을 알았다. 모두가 나와 엇비슷한 사람들이었다. 나와 같이 조금씩 서투르고, 가끔은 모나기도 하고, 대개는 자신에게 애틋한, 그런 존재들. 그래서 그들도 모두 다 '두려움'이라는 감정에 쉽게 치이며 살고 있었다.

 

나는 나만 이렇게 두려운 줄 알았지만, 아니었다. 모두가 두려워하고 있었다. 다만 나와 다른 점이 있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일을 실행했다는 것. 그 사실을 알고 난 후에야 내가 무엇에 집중해야 하는 지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두려움이 없는 상태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 생각과 태도를 가지고 살아야 하는가? 두려운 마음이 들 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두렵다는 것은, 그만큼 진실하고 절실하다는 뜻이었다. 돌아보면 정말 그랬다. 대학 입시를 열심히 준비했을 당시 나는 원하는 학교 딱 하나만을 목표로 일 년을 달려왔다. 그래서 면접을 보러 학교에 갔을 때 내가 원했던 학교와 그렇지 않은 학교에서의 반응이 정말 상반됐다. 정말 간절했던 학교에 발을 딛었을 때는, 몸과 마음이 너무 떨려서 이건 긴장되는 것이 아니라 추위 때문이라고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최면을 걸어야 했던 반면, 그렇지 않은 학교에 도착했을 때는 마치 매일 하던 일인 듯 물 흘러가듯 모든 절차를 끝내고 돌아왔을 뿐이었다.

 

*

 

그래서 이제는 두려운 마음이 들면 그냥 이렇게 생각하고 만다. '나 이거 진짜 좋아하나 봐. 정말 하고 싶은가봐. 그럼 꼭 해줘야지.' 중요한 것은 그 감정에 매몰되지 않는 것. 내 진심만 알아채 주면 된다. 그 이상도 이하도 필요치 않다. 이 마음을 천천히 연습하다 보니 이제는 두려움이 '긴장'이 아닌, '설렘'으로 느껴진다. 와, 내가 나설 때가 되었어.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할 때가 되었어! 하는 마음이 나를 더 부추기곤 한다.

 

두려움을 버리고 싶다면, 두려움을 버리기를 포기해야 한다. 가장 진심의 마음으로, 가장 두려운 순간에 목표를 향해 달려 나가야 한다. 그때야말로 내가 가장 강할 때이고, 가장 용기 낼 수 있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이런 마인드로 지내다 보니 역설적으로 '두려움이 없는' 상태에 가까워지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두려워? 그럼 뭐 어때, 그냥 하면 되지! 참 아이러니하다. 어쨌든, 두려움을 버리기를 포기하자. 그게 답이다.

 

 

[고민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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