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진짜 '밥' 좀 주세요 [사람]

글 입력 2020.11.27 1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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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쓸데없는 걱정은 연예인 걱정이다.”


지난 2월, 한 라디오 방송에서 개그우먼 박미선이 한 말이다. 본인의 의사와 불편함을 확실하게 표현하고 여성 개그우먼으로서 무너져가는 입지를 되세운 박미선. 그녀가 한 말이라면 무엇이든 따르고 싶다. 하지만 이번만은 거역하고 연예인 걱정 좀 해야겠다. 연예인 걱정이 곧 ‘내’ 걱정이 되는 사안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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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원 구조의 세트장 (출처 : JTBC)


 

2017년, 한 예능 프로그램은 여성 아이돌의 먹는 행위를 전시했다. ‘걸그룹’ 멤버들은 수십 명의 방청객에게 둘러싸인 채, 주어진 음식을 ‘맛깔나게!’, ‘예쁘게!’ 먹으라는 주문을 받았다.

 

하지만 여기에 몇 가지 미션이 더 해졌으니, 주어진 음식을 해치우는 데 10분 남짓한 시간과 2-3인분을 먹으라는 미션이 주어진다. 그리고는 정확한 기준을 모를 투표가 시작되었고, 실시간 문자투표와 방청객 투표를 합산한 1등에게는 ‘먹방요정’이라는 타이틀을 수여했다.

 

 


너희는 맛있게, 예쁘게 먹어라, 우리는 즐길 테니



 

1. 쌀이나 보리 따위의 곡식을 씻어 솥 따위에 안친 후, 물을 붓고 낟알이 풀어지지 않을 만큼 끓여서 익힌 음식

2. 동물이 살아가기 위하여 먹어야 할 거리

 


지금까지 여자 아이돌에게 ‘밥’을 차려준 콘텐츠는 많았다. 하지만 우리는 그들에게 ‘동물이 살아가기 위하여 먹어야 할 거리’로서 밥을 줬던 걸까? 아니다. 우리는 ‘밥’을 우리의 오락거리로 줬다. 그 증거는 식어서 말라비틀어진 만두와 바삭거리는 효과음의 괴리에서부터 찾을 수 있었다. 즉, 우리는 밥을 차려준 뒤 그들을 관음하고 요구했다.


그리고 화들짝 놀라기도 했다.


“여자 아이돌이 닭발을 먹어?” “어떻게 여자 아이돌이 이렇게 많은 양을 먹을 수가 있어?”


샐러드와 이슬만 먹을 것 같고 ‘닭발’ 따위는 먹지 못할 것 같은 여자 아이돌이, 알고 보니 본인보다 많이 먹는다니! 이러한 반응은 기본적으로 ‘여성은 적게 먹어도 말랐다’는 고정관념에서부터 시작된다.

 

보통은 미디어가 만들어온 이미지다. 본인들의 기괴한 판타지에 따라 여성을 수동적으로 그려온 것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권력’을 가진 본인(미디어)이 씌운 이미지를 걸그룹이 깼다는 것에, 그들에게 또다시 ‘도발적’인 매력과 의외성 즉, ‘반전매력’을 느낀다.


한 예로, 한 지상파 프로그램은 출연진들에게 ‘자장면 빨리 먹기’ 대결을 시켰다. 한 걸그룹 멤버가 1등을 하자, 하단에는 이와 같은 자막이 등장한다. ‘40초도 안 돼 자장면 한 그릇을 비운 아이돌 소녀’. <40초, 자장면 한 그릇, 아이돌과 소녀>. ‘절대’ 한 문장에 등장하지 않을 것 같은 세 단어를 조합하며, 미디어는 대중들이 문장에서 아이러니를 느끼게 한다. 그리고 이 아이러니에 대중은 열광한다.


미디어는 지금까지 걸그룹에게 자연의 섭리를 거스를 것을 요구해왔다. 모두가 알고 있듯 체질적인 상황을 제외하고는, 많이 먹으면 체중이 늘 수밖에 없다. 먹으면서도 마른 몸을 유지하라고? 하지만 말도 안 되는 상황에 맞추기 위해 걸그룹 멤버들은 굶기를 일상화해왔다.

 

 


희망은 있다


 

유튜브 채널 나나랜드 K-밥 STAR가 걸그룹을 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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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장부터 편안한 분위기다.

(출처 : K-밥 STAR)


 

할머니 집 마당 같은 촬영장에서 회장 이영자와 총무 김숙은 걸그룹에게 진정한 밥을 차려준다. 물론 제작진이 먹는 모습을 촬영하지만, 동물원처럼 그들을 가두고 감시하는 시스템은 아니다. 식어서 말라비틀어지고 퉁퉁 불은 면이 아닌, 소고기, 해산물 등 고급 식재료를 따뜻하다 못해 뜨겁게 조리하여 내어준다.


중요한 것은 절대 많이, 예쁘게 먹을 것을 강요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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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급 인서트로 식욕을 돋운다

(출처 : K-밥 STAR)

 

 

음식은 보통 솥뚜껑 위에 100인분씩 준비된다. 하지만 이는 ‘포식하라’가 아닌 음식의 양과 아이돌에 대한 애정이 비례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수단이자 시각적으로 시청자를 자극할 수 있는 그림을 연출하기 위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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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게 먹는 법에도 연륜이 담겨있다.

(출처 : K-밥 STAR)

 

 

해당 콘텐츠가 걸그룹의 먹방을 전시하지 않는다는 것은, 김숙과 이영자의 먹는 모습에서 볼 수 있다. 김숙과 이영자는 음식을 해주다가도 ‘우리도 한입 먹어볼까?’하고 한 입 먹거나, 아이돌 멤버가 그들의 입에 넣어 주는 등 출연진은 따뜻한 음식이 주는 맛과 행복을 공유한다.

 

진정한 ‘먹방’이다. 사람의 먹는 행위를 보여주기 위함이 아닌 인간의 기본 욕구를 채우는 모습을 자연스럽게 풀어내는 프로그램이다.

 

 

 

여자 아이돌, 걸그룹 = 여성


 

지금까지 써내려온 글에서 여자 아이돌, 걸그룹을 여성으로 치환해도 말이 된다. 즉, 여자 아이돌에게만 국한된 문제가 아닌 한국에서 살아가는 여성에게 일어나는 일인 것이다. 하지만 점점 고정관념이 깨지고 시각이 바뀌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다행이다)


따라서 지금까지 한 연예인 걱정은, 미디어의 기괴한 강요에서 벗어나기 위한 내 걱정이었다.


하나의 행동, 사안에 대해서 ‘이것이 인권과 기본권에 저해되는 것인가’를 판단할 때는 ‘역지사지’를 떠올리자! 수십 명의 사람이 나를 지켜보는 가운데, 맛없는 음식을 예쁘게, 많이 먹고 다음날 살이 쪄있지 않아야 한다면? 불가능하고 비인간적이다.


그러니 이제 여자 아이돌에게 진짜 ‘밥’을 주고, 우리도 진짜 밥을 먹자.

 

 

[신재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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