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생각의 연상이 시가 되는 마법 [문학]

자동기술법으로 쓰여진 앙드레 브르통의 시
글 입력 2020.11.26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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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과 현실은 일치하지 않는다. 대부분 현실은 이상의 발목을 잡는 장애물이 된다. 다양한 각기 각색의 삶을 전체적으로 요약해 보면, 장애물을 대하는 개인의 태도에 따라 삶의 가치관과 성패는 좌우된다. 타파하느냐, 극복하느냐, 외면하느냐, 굴복하는가.

 

이러한 삶의 과제는 20대 초입, 본격적인 삶의 궤도에 들어선 나에게 많은 고민을 안겨 준다. 고난과 시련에 대해 현명하게 대처하고 싶지만, 다양한 문제 유형에서 언제나 정답만 내 놓을 수는 없는 법이다. 무엇이 정답이고, 무엇이 오답일까, 최소한 내가 생각한 답들 중 무엇이 제일 정답에 가까울까? 계속 해결책을 찾기 위해 전전긍긍했다.

 

초현실주의는 이런 딱딱한 사고방식에 폭탄을 던졌다. '현실과 이상은 결합될 수 있다. 미래는 이상을 현실과 합치시키기 위해 나아가야 한다'

 

 

131.jpg


 

나를 초현실주의의 세계로 이끈 것은 르네 마그리트의 작품들이었다.

 

일상적인 사물들의 기이한 배치, 상식을 뛰어넘는 대상과 구도, 혁명적인 이념들을 보면서, 퍼즐을 맞추어가는 듯한 흥미진진함을 경험했다. <꿈의 거울> 책을 통해 시에도 초현실주의를 표방하는 분야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가장 인상깊었던 부분은 바로 초현실주의를 시작한 앙드레 브르통의 자동기술법 이었다.

 

앙드레 브르통은 신경 정신의학 수련을 하면서, 광기와 비광기의 경계가 매우 상대적이며, 분명하거나 절대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그는 수포와 함께 시를 집필했다. 함께 쓰기, 번갈아 쓰기, 각자 쓰기 등 다양한 방식을 채택해 시를 쓰는 사람의 수와 방식에 따라, 어떠한 변화를 만들어 내는지 관찰한다.

 

이뿐만 아니라 속도를 각기 다르게 하여 시를 썼다. 총 다섯 단계로 속도의 차이를 규정하고, 이 규정에 따라 시를 써 내려갔다. 각각의 속도에 따라 구성, 내용등의 방면에서 일정한 특징들을 나타냈고, 브르통과 수포는 의도에 따라 속도의 차이를 시쓰기에 적용했다.

 

느림

I

V': 한 남자가 어린 시적의 기억을 이야기하는 데 적합한 속도

 

V'(초현실주의의 기준속도): 절망의 의도된 소통적 분위기를 유지

 

V'''': 총 2단계로 구성. 1단계는 글의 앞부분에 사용하며 기차처럼 빨리 달리는 효과가 있다. 2단계는 글의 뒷부분에 사용하며 기차가 점점 멈추는 것과 유사한 효과를 준다.

 

V''': 자신의 기억을 회피하고자 하는 한 남자의 기억을 표출하는 속도

 

V'': 주제의 일식(겹침)을 표현하기 위해

I

빠름

 

꿈의 거울 p.g 147 발췌

 

가장 느린 속도 V' 로 쓰여진, <계절들>과 가장 빠른 속도 V''로 쓰인 <일식들>을 보면 극명한 대조를 경험할 수 있다.

 

 
<계절들>

나는 이른 아침 할아버지와 돌로의 방들을 떠난다. 아이는 놀라움을 원한다. 이 싸구려 나팔들은 내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여인숙 주인의 이름은 티랑이다.

 

Je quitte les salles Dolo de bon matin avec grand père. Le petit voudrait une surprise. Ces cornets d’un sou n’ont pas été sans grande influence sur ma vie. L’aubergistes s’appelle Tyran.

 

 

연속되는 이미지들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소설처럼 전과 후가 매끄럽게 연결되지는 않지만, 유추를 통해 그 흐름이 하나로 연결된다. 과거로부터 비롯된 추억과 동심, 희미한 생각과 느낌들을 조각조각 붙여 놓은 느낌이다. 산뜻한 신선함이 느껴진다.

 

 

<일식들>

 

우화적인 인사들의 색채는 가장 작은 헐떡거림에 이르기까지 어두워 진다. 상대적인 한숨들의 고요, 응고된 피와 우유 냄새에도 불구하고 도약의 서커스는 애수 어린 순간들로 가득하다. 그러나 조금 멀리에는 깊이가 없는 구멍이 있다 우리의 온갖 눈길을 사로잡은 알려진 여인, 그것은 반복된 기쁨의 파이프오르간이다.

 

La couleur des saluts fabuleux obscurcit jusqu'au moindre râle: calme des soupirs relatifs. Le cirque des bonds malgré l'odeur de lait et de sang caillé est plein de secondes mélancoliques. Il y a cependant un peu plus loin un trou sans profondeur connue qui attire tous nos regrads, c'est un orgue de joies répétées.

  

 

한참의 시간을 거쳐 고민하고, 생각해야 했다. 맨 처음에는 그저 혼란스러웠다. 상충되는 문장들, 서로 다른 분위기의 이질적인 단어들, 극단의 표현들이 한 곳에 섞여 있었다. 두 번째에는 눈에 띄는 단어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우화적, 한숨, 고요, 응고된 피, 서커스, 파이프 오르간. 이미 아는, 친숙한 단어들이 초면인 것처럼 느껴졌다.

 

세 번째에는 분위기가 느껴지고, 이미지들이 떠올랐다. 광기에 찬 서커스, 음흉한 음모와 가학, 그 중심에 서 있는 한 여인. 네 번째에는 줄거리가 만들어졌다. 내 이미지들의 중심에 있는 대상은 한 여인이었다. 어쩐 문장에 집중 하는가에 따라 여인은 두 가지 상충된 의미를 지닌 채 내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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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6 남관 태양이 비친 허물어진 고적

 

 

앞의 ‘깊이가 없는 구멍’ 에 집중하면 사람의 공허한 텅 빈 눈동자가 연상되었다. ‘눈길을 사로잡는다’ 에서 과격하고 폭력적, 초월적인 악마의 이미지가 떠올랐다. 이런 구절들에 집중했을 때, 여인은 잔인무도한 범죄자가 되었다.

 

‘응고된 피와 우유 냄새에도 불구하고’/ ‘애수 어린 순간들로 가득하다’라는 표현에서 폭력, 학대의 흔적과 그 흔적 속에서 의미를 잃어버린 일상의 평범한 존재들을 느꼈다. 이 때, 여인은 참담한 범죄의 희생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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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 남관 옛뜰 인상

 

 

이것으로 시에 대한 이미지의 연상은 완성된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그것은 반복된 기쁨의 파이프오르간’ 이다 라는 한 문장은 잔혹함으로 상기되었던 이미지들을 산산조각 내었다. 읽으면 읽을수록, 시의 의미와 느낌은 다르게 다가왔다.

 

자동기술법 시의 독자는 수용자의 입장에서 그냥 받아들이기만 하는 것이 아니다. 구절들을 느끼고, 회상하며 가장 마음에 와 닿는 이미지들을 선택해 각자 다른 의미를 구성해 나간다. 작가, 독자로 이분 화된 경계를 무너뜨리고 수용자가 작품 속에서 능동적, 주체적인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한다. 자동 기술법 시들은 개인의 경험에 의해 구성된다.

 

자동기술법 시들은, 이성과 광기, 합리와 비합리, 일상과 혁명, 문명과 미개 등 제도화되고 분리된 다양한 대립 개념의 모든 경계를 무너뜨림으로써 억압된 무의식과 욕망을 해방하고자 했다. 일반성, 규범성에서 벗어난 표현들은 독자를 혼란스럽게도 하지만 동시에 기존의 질서에서 해방시켜 준다. 창의성을 기르는 하나의 방법으로, 의식 전환과 정신의 휴식을 위한 하나의 방법으로, 자동기술법 시들을 읽어볼 것을 추천한다.

 

 

[박은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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