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붉은색 없는 붉은색 - 앙리 마티스 특별전

고통을 소거한 고통
글 입력 2020.11.24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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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프 인테리어 좀 한다, 싶은 사람들이라면 한 번쯤은 이런 느낌의 그림들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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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름도 유명한 앙리 마티스의 그림이다. 이미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그 이름. 너무 유명해서 좀 거부감이 들기도 했음을 고백한다. 그러던 내가 전시관을 나오며 벅차오르는 가슴을 안고 눈물이 그렁그렁해지리라곤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일이었다.
 
*작품 감상은 윤석화 도슨트의 작품 해설을 기반으로 함을 밝힙니다.
 
서양 미술을 전공했다는 윤석화 도슨트는 '그림'이란 인간이 가장 먼저 배우는 형태의 언어, 즉 언어 이전의 언어라는 말로 설명을 시작했다. 그러고는 총 다섯 섹션으로 구성되는 전시를 보는 동안 '무엇으로 그렸는가', '무엇을 그렸는가', '무슨 말을 하려는가' 이 세 가지를 생각하는 것이 감상에 더 도움될 것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무엇으로'는 표현 방식, '무엇을'은 표현 대상, '무슨 말을'은 작가의 의도와 대응된다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
 
 
 
가장 자연스러운 순간을 포착하는 소통의 현장
section1. 오달리스크 드로잉

 

첫 번째 섹션은 '오달리스크(터키 궁정의 궁녀, 하렘의 여인을 의미)'를 그린 그림들이었다.

 

마티스는 모델과의 소통을 중시해 모델과 충분한 교류 끝에 모델의 가장 자연스럽고 본인 다운 순간들을 포착해 화폭에 옮겼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색이 하나도 없는 흑백의 스케치 속에서조차 모델의 표정, 햇살의 온도, 공기의 분위기 등이 느껴지는 듯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연스러운 그들의 모습에서 고요한 생명력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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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k by Henri Matisse ©Succession H.Matisse

 

 
또 한 가지 흥미로웠던 점은 모델들의 배경으로 자리하고 있는 이국적인 문양들이었다. 마티스는 한창 동방을 여행하며 아라베스크 직물들을 수집했다고 하는데 그때 접한 이국적인 모양들이 그의 마음을 완전히 사로잡았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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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사원의 아라베스크 문양
 
 
 
직관적이고 즉흥적인
section2. <재즈>와 컷아웃

  

다음으로는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화풍의 마티스의 그림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두 번째 섹션에서는 '무엇으로' 그림을 그렸는지에 대한 답이 무척 독특했다. 바로 '가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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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익숙한 마티스의 그림들.
출처_텐바이텐
 
 
마티스는 노년에 십이지장 암 수술을 받고 쇠약해져 이젤 앞에 앉기도 힘들어지자 누워서도 그림을 그릴 수 있는 방법을 고안해냈다고 한다. 바로 가위로 종이를 오려 붙이는 것. 스케치 없이 오직 직관으로만 형태를 오리는 작업은 순간을 포착해내는 순발력을 상당하게 요하는 작업이라고 한다.
 
실제로 전시의 마지막 장소에 직접 가위로 색종이를 오려 붙여 나만의 작품을 만들어보는 활동 부스가 있었는데 조금만 종이를 다른 곳에 붙여도 그림의 느낌이 완전히 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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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체험 때 시도해본 컷아웃 기법.  쉽지 않다.
 
 
작품은 정해진 답이 없이 자유롭게 읽힐 수 있다는 점에서도 상당히 매력적이었는데 해석의 다양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작품으로 <이카루스>를 들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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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k by Henri Matisse ©Succession H.Matisse

 

 
우선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이카루스 신화이다. 아버지 다이달로스와 크레타섬을 탈출하기 위해 밀랍으로 깃털을 이어부터 날개를 펴고 날아가지만 태양에 너무 가까이 가는 바람에 떨어져 버린 이카루스의 이야기.
 
생명력과 색채, 그리고 빛을 열망한 앙리 마티스 본인을 그린 것일 수도 있고 2차 세계 대전 대 전사했던 공군 비행사의 순간을 기린다고도 읽힐 수 있다. 또 프랑스어로 공중묘기가 '이카리즘'이라는 사실을 염두에 둔다면 그가 어릴 적 동경하던 서커스의 세계를 묘사했다고 볼 수도 있겠다.
 
그는 이와 같이 가위로 그린 그림들에 <재즈>라고 제목 붙였다. 정해진 답이 없는 그의 작품과 즉흥적인 그의 작업 방식에 매우 어울리는 제목이다. 세계를 그대로 모방하거나 답습하는 것이 아니라 보는 이의 상상력을 제한하지 않는 자유로움을 주는 방식에서 "화가는 모든 대상을 처음 본 것처럼 바라보아야 한다."는 그의 철학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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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는 모든 대상을 처음 본 것처럼 바라보아야 한다."
 
 
마티스의 작품은 색채가 눈에 띄게 강렬하다. 당시 시대상에서 원색과 화려함은 물질주의와 천박함을 대표하는 자유주의적 성격을 의미해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킬 정도였다고 한다. 그러나 그의 삶을 듣고 나니 그가 원색을 사랑하게 된 데에는 반항아적인 이유 말고도 다른 핵심적인 요인이 자리한 것이 아닌가 싶었다.
 
도슨트의 말에 의하면 그는 '하늘이 납처럼 무거운' 프랑스 북부에 살았다고 한다. 이러한 환경적 요인과 병약한 신체 속에서 그가 얼마나 생명력을, 빛을, 뜨거움을 갈구하게 했는지를 작품의 강렬한 색채가 소리치듯 표현하고 있는 것 같아 눈시울이 붉어졌다.
 
 
 
실로 그린 그림
section3. 발레 <나이팅게일의 노래>

 

알고 보니 그의 몸에는 피 대신 실이 흐르고 있었다. 무슨 말이냐면 그는 방직공 집안의 아들이었던 것이다. 섹션1에서 말했던 아라베스크 직물 수집이 괜히 생긴 취미가 아니었다.

 

2D의 작품을 3D로 구현할 수 있게 된 그는 전통적 의상에 자신만의 독특한 작품 세계를 구현하였다. 실제로 관람한 무대 의상에는 앞구르기를 하며 봐도 마티스 작품임을 알아챌 만큼 그의 개성이 잔뜩 묻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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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 놀랐던 점은 그가 디자인한 의상이 지금 당장 무대에 올린다 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세련되었다는 것이었다. 오늘날 인테리어계에 '마티스 홀릭'이 이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언어와 미술
section4. 낭만주의 시와 마티스 삽화

 

마티스의 하루 일과 중에는 놀랍게도 '편지 쓰기'가 있었다고 한다. 수많은 문장을 품어 온 사람이기에 그림으로 전환이 가능했을 것이라는 도슨트의 설명은 근래 언어의 한계에 대해 생각하던 나의 마음에 큰 울림을 주었다.

 

앞서 도슨트가 이야기했듯 언어 이전의 언어로 표현한 감정의 언어는 참으로 아름다웠다. 더불어 마티스가 삽화를 그린 시의 내용도 아름다워 원문인 불어 버전으로 직접 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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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프랑스어 잘하는 사람 없나요.

 

 

 

붉은색 없는 붉은색
section5. 로사리오 성당

 

다섯 번째는 내게 가장 큰 감동을 주었던 마티스 말년의 작품을 구현한 섹션이었다.
 
마티스는 자신의 간병인이었던 자크 마리 수녀의 부탁으로 1948년부터 4년 동안 프랑스의 로사리오 성당의 건축 및 디자인을 담당한다. 이전에 <나이팅게일의 노래>의 무대 의상으로 자신의 작품세계를 화폭에서 꺼내놨다면 이제는 아예 그의 철학이 가득 담긴 '공간' 즉 작은 세계를 구현하기에 이른다.
 
그는 건출 설계부터 스테인드 글라스와 실내벽화, 실내장식, 사제복 등 모든 부분에 직접 관여하였다고 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특히 기획자들의 뼈를 갈아(?) 재현한 스테인드글라스가 단연 압도적인 볼거리였다. 가위로 종이를 오리던 자신의 작품 <재즈>처럼 이번에는 빛을 오려냈다는 도슨트의 설명이 기억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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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은 자연과 함께일 때 비로소 완성된다고 한다. 바로 붉은색을 하나도 쓰지 않았지만 스테인드글라스에 비친 태양 빛의 색이 섞여 붉은색을 볼 수 있다는 것.
 
일평생을 불면증과 암 등의 지병으로 고통스러웠으나 자신의 고통을 일체 숨기고 편안한 안락의자와 같은 예술을 선물한 마티스 자체와도 닮아있다. 그의 일생을 알고 이야기를 알아야만 그의 작품에는 전혀 보이지 않는 듯한 붉은빛의 외로움과 열망, 고통 등을 볼 수 있는 것이다.
 
지나치게 유명하고 부유한 느낌이 든다는 이유로 그의 그림에 거부감을 가졌던 지난날의 내가 부끄러웠다. 자신의 고통과 완전히 직면하고 그것을 있는 그대로 표현한 화가 프리다 칼로가 떠올랐다. 둘의 표현 방식은 극명히 다르지만 고통을 아는 사람에게 뜨거운 위로의 언어를 건넨다는 사실만큼은 닮아있다.
 
마티스는 죽기 하루 전 날에도 드로잉 네 점을 남기고 세상을 떴다고 한다. 도슨트가 전한 그의 말이 마지막까지 기억에 남는다.
 
 
"내 그림에는 고통이 소거되고
봄철의 따뜻한 한철만 남아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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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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