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글과 편지; 문장을 주고받는 기쁨에 대하여 [문학]

편지와 관련된 개인적 경험과 사색을 나누다.
글 입력 2020.11.18 1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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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는 행위에는 다양한 목적이 있으나, 누군가에게 보내기 위해 글을 쓰는 건 특히 설렌다. 편지를 받는 이를 생각하며 붙이고 떼어내고 꿰맨 단어의 조각보는 보낸 이의 마음을 고이 담아 하나뿐인 형태로 도달하기 때문이다.

 

아트인사이트 에디터에 지원할 당시, 나의 개인적인 취향과 생각을 나누고 싶어서 공개된 사생활, ‘공적 사생활’ 시리즈를 매주 기고하고 싶다고 적었었고, 그 첫 이야기를 어떻게 시작할지 고민하다 편지로 정하게 된 이유도 위와 같다. 나의 서툰 글을 곱게 담아 보내면, 당신에게 닿길 바란다.

 

 

 

편지 쓰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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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을 주고받는 건 기쁜 일이다.
왼쪽은 직접 만든 엽서,
오른쪽은 존경하고 좋아하는 분이
선물해주신 책과 편지.

 

 

나는 쉽게 흥분하는 편이라 말보다 글이 더 편하고, 직설적인 표현보다 여러모로 함축적인 단어와 문장을 선호한다. 그래서 마음을 전할 일이 있을 땐 글로 써서 보낸다.

 

몇 번씩 소리 내 읽으며 자연스럽게 이어질 때까지 손으로 쓰다, 부담스러운 마음이 정돈되고 어설픈 단어의 나열마저 온전한 나의 문장이 되었을 때, 편지를 봉투에 넣어 전달한다.

 

물론 때로는 더할 나위 없는 누군가의 문장을 빌려 적기도 하고, 노래 가사를 통째로 써 보내기도, 떠오르는 대로 쓰기도 하지만 어쨌든 편지를 보내기 직전까지 종이에 올라가는 문장을 읽고, 또 읽어본다. 마음이 잘 담겼을까 몇 번이나 확인하며 읽는 건 나만의 습관이고, 받는 이를 향한 애정이다.

 

 

 

편지 쓰기는 편지지로부터 ; 글월


 

보통 편지를 쓰기 전에 편지지를 잔뜩 산다. 최근엔 시간이 촉박한 경우가 많아 편지를 보내기 며칠 전부터 휴대폰 메모장에 틈틈이 써두고 완성해서 한 번에 종이에 옮겨적지만, 종이에 마구 쓰고 찍- 그어가며 수정을 반복하는 과정을 결코 포기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편지지를 고르는 것부터가 굉장한 고민인데, 받을 사람을 생각하며 가장 적절한 편지지를 고르는 일은 그리 쉽지 않다.

 

일반 문구점에 있는 편지지는 질감이나 디자인이 취향과 달라서 직접 편지지나 엽서를 만들어 사용하기도 하는데, 나의 게으른 심성 때문에 취향에 맞는 편지지를 판매하는 곳을 찾아다녔었다. 그러다 발견한 곳이 연희동에 위치한 작은 편지 가게 “글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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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월에서 찍은 사진과 인스타그램 피드.
따뜻하고 정갈한 곳이다.

 

 

글월은 편지를 높이는 순우리말을 그대로 사용한 곳으로, 우연히 인스타그램에서 발견했다. 편지지를 주로 다룬다는 사실과 담담하게 꾸려진 공간에 매료되어 직접 찾아갔는데, 실제로 마주한 공간은 편지를 향한 애정이 곳곳에 듬뿍 담겨 있는 게 느껴져 속으로 환호성을 질렀다.

 

편지지와 옛 우표부터 연필과 펜, 펜 케이스까지 아날로그를 사랑하는 이들에겐 더할 나위 없는 곳이다. 더욱이 이곳에서는 편지지를 사면 마련된 자리에서 편지를 쓸 수 있도록 안내해주고, 레터 서비스를 신청하면 정해진 날에 글월에서 편지를 발송해주는데, 편지와 글을 쓰는 행위에 대한 애정이 없다면 생각지 못할 세심한 서비스에 마음이 잔뜩 부풀었다.

 

 

 

편지를 엮어 만든 책 "조금 더 쓰면 울어버릴 것 같다. 내일 또 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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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꾸 생각나던 문장이 담긴 편지들,
"조금 더 쓰면 울어버릴 것 같다. 내일 또 쓰지."

 

 

글월은 편지와 관련한 전시를 진행하거나 책을 소개하기도 하는데, “봉투북스”라는 출판사를 설립해 ‘눈부신 습작’을 직접 출간하기 시작했다. 그 첫 번째 책은 “조금 더 쓰면 울어버릴 것 같다. 내일 또 쓰지.”다. 평범하게 사랑한 이들이 나눈 과거의 러브레터를 그의 자녀가 엮은 것인데, 기획부터 디자인까지 가족이 함께했다는 점이 나름의 의미를 지닌다.

 

이 책을 글월에서 발견했을 때, 누군가의 연애편지를 훔쳐본 기분이 들어 괜히 웃음이 났고, 그 후에도 자꾸 생각나 결국 다시 가서 구매했다. 마치 일기 같은 편지를 찬찬히 읽다 보니 보고 싶다고 투정 부리는 말에 마음이 간질거리고, 어쩔 수 없는 이별을 말하는 문장엔 내 마음도 깊이 내려앉는 걸 느끼며 이 편지의 수신인이 된 것 같은 기분을 만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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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하, 2019, "조금 더 쓰면 울어 버릴 것 같다, 내일 또 쓰지.", 봉투북스

 

 

“편지 좀 자주 해라. 보고 싶다, 많이”라는 한 구절을 읽으며 문득, 전화기조차 낯설던 시절의 사람들에게 이 불편하고도 오래 걸리는 편지 한 통이 어떤 의미였을지 생각해보게 되었다. 편지를 보내고 나서도 제대로 도착했는지, 받긴 받았는지, 답장은 한 건지 알 수 없어 답답하고도 설레는 그때만의 감정은 ‘읽음’, 혹은 ‘활동 중’이 적나라하게 표시되는 스마트폰 시대의 가벼움과는 비교할 수 없을 테다.

 

이제는 문자로 빠르게 주고받을 수 있음에도 내가 편지를 자주 쓰는 이유는 이 가벼움을 거부하는 일종의 반항이다. 실시간으로 말이 오가는 것보다 생각하고 기다리는 시간이, 단문으로 끊어 여러번 보내기보다 문장을 엮어 보내는 과정이 만드는 절대적 깊이는 편지를 쓰는 내게도 지난 시간을 반추하게 하며, 받은 편지를 읽을 때도 조급함 없이 찬찬히 들여다볼 수 있는 시간을 제공한다.

 

 

 

편지는 마음을 잘 정리하는 일


 

그러므로 내게 편지를 쓰는 행위는 마음을 잘 정리하는 일의 또 다른 이름이다. 지난(至難)한 계절의 끝자락에서 더는 후회하지 않으려 편지를 쓸 때도 있고, 너무 사랑해서 떠나보내지 못한 이에게 마지막 배웅을 하기 위해 편지를 쓰기도 한다. 마지막 문장을 끝맺을 때 즈음엔 복잡한 기억의 잔향만이 나를 맴돌고 어느새 담담히 편지를 봉투에 넣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그래서일까, 편지를 보낼 이에게 새겨질 한줄 한줄을 고민하는 시간에 온 마음을 쏟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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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여름, 인턴생활이 끝날 즈음에
고마운 분들에게 마음을 전하기 위해
글월에서 편지를 썼다.

 

 

지난봄에는 함께한 친구들을 위한 편지를 썼는데, 편지지와 봉투를 고르고 좋아하는 공간에서 따뜻한 차를 마시며 편지를 쓰는 과정이 일종의 의식처럼 느껴졌다. 힘겨운 봄을 지나는 친구들에게 가닿을 문장을 쓰다 보니 그 문장이 다름 아닌 나를 위로하고, 편지를 쓰는 시간만큼 천천히 내 마음이 정돈되어 그랬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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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정리되지 않는 마음도 있다.
1년 전 세상을 떠난 할아버지에게 쓴 편지는
아직 한참을 더 고쳐야 할 것 같다.


 

코로나 사태로 인해 만남은 더 힘겨워졌다. ‘언제 한번 밥 먹자’는 인사가 불편하게 들리기 시작했고, 만나서 이야기를 나눠도 마스크 너머로 눈을 열심히 깜빡이며 최대한 표현해보려 하지만 얼굴의 반을 가린 채 대화하는 건 쉽지 않다. 이런 상황에 편지를 쓴다는 건 상대방을 향한 배려와 애정의 새로운 방법이 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비록 우리 만날 순 없지만, 서로를 위해 떠올린 단어와 문장을 가득 담아 진심이 전해지길 바라는 마음을 편지는 기억할 테니 말이다.

 

지금이라도 편지를 써보자. 마음을 전하고픈 누군가를 떠올리고, 그와 당신의 취향에 맞는 편지지를 사러 떠나보자. 당신의 문장이 받는 이에게 어떤 기억과 향기를 선물할지 즐겁게 고민하고, 망설임 없이 적어나가면 된다. 틀려도 죽 그어버리고 다시 써도 되니, 어렵게 생각 말고 당신만의 방식으로 마음을 담아 보내길 바란다.

 

간혹 편지를 쓰고 나서 후회할 말을 적었나 걱정이 된다면, “조금 더 쓰면 울어버릴 것 같다. 내일 또 쓰지.”의 보낸 이 ‘남하’가 비슷한 질문에 대해 답변한 내용이 위안과 용기가 될 것 같다.

 

 

A. 남하: 편지를 일기처럼 쓴 것 같습니다. 매일의 기록처럼요. 여러 가지 상황과 감정들이 섞였을 것 같아요. 다만, 가급적 상대방의 입장에서 쓰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내 마음에 들지 않은 말들도 했을 것 같아요. 그렇지만 서로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진정한 사람들이라면 이러한 다소 서운한 마음도 이해해 줄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솔직함은 상대방과 나를 연결해 주는 최고의 고리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 글을 맺고 나면 사랑하는 친구의 생일을 축하하는 편지를 쓰려 한다. 내가 보낼 문장들이 친구에게 어떤 향기로 남아 곁을 맴돌지 고민하는 시간이 벌써 즐겁다.

 

이 글을 읽고 마음이 움직였다면, 편지 쓰는 즐거움을 함께 누리게 되어 반갑다는 인사를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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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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