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날것 그대로'의 글 - 찰스 부코스키, '와인으로 얼룩진 단상들' [도서]

글 입력 2020.11.16 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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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타자기는 내 기관총이고 장전이 되었다.”(168쪽)

  

‘미국 주류 문단의 이단아’라고 불리는, 20세기 가장 충격적이고 문제적인 작가 찰스 부코스키(1920~1994)의 작품들을 엮은 또 한 권의 신간이 국내 번역되어 발간됐다. 그에 대한 평론이 작품의 출간을 따라가지 못할 정도로 다작을 했던 것에 반해, 국내에는 얼마 소개되지 않은 부코스키의 작품들이기에 더욱 값지다. 이미 국내에도 열광적인 독자층을 마련한 부코스키이지만, 어쩌면 더욱 많은 사람들에게 국내 가수 ‘매드클라운’의 노래 ‘사랑은 지옥에서 온 개’와 동명의 제목으로 그의 대표 시선집이 알려져 있을 수도 있겠다. 과감한 표현들과 음주, 섹스, 폭력 등이 주요 모티프가 되는 부코스키의 작품들은 주류 문단에서는 지나치게 ‘음란한’ 것으로 받아들여졌으나, 그 파격성은 고상한 문학에 지쳐있던 당대 독자들을 곧바로 뒤흔들었다.


1920년 독일 출생의 찰스 부코스키는 어린 시절 미국으로 이민간 뒤 평생을 로스앤젤레스에서 지냈다. 대학을 중퇴하고 독학으로 작가가 된 그는 로스앤젤레스 시립 중앙도서관에서 도스토옙스키, 투르게네프, 니체, D. H. 로렌스, 헤밍웨이 등을 읽으며 영향을 받았다. 스물 네 살 때, 단편 〈긴 거절 편지의 여파〉가 당시 대표적 문학 잡지 《스토리》에 실리며 등단하게 된 후 창고와 공장을 전전하며 일을 하다, 우체국에서 우편 분류와 배달 직원으로 12년간 일한 후에야 전업으로 글을 쓰기 시작한다. 그는 시, 에세이, 소설의 장르를 넘나들며 전분야에 걸쳐 뛰어난 평가를 받고 있다. 현재 ‘미국 서점에서 가장 많이 도난당하는 책의 작가’라는 영예로운(?) 타이틀까지 가지고 있다. 국내 번역출판된 부코스키의 단행본으로는 《우체국》, 《호밀빵 햄 샌드위치》 등과 같은 소설들을 포함하여 《망할 놈의 예술을 한답시고》, 《사랑은 지옥에서 온 개》 등의 시집, 《위대한 작가가 되는 법》 등의 에세이들이 있으며, 최근 더욱 활발히 출간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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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도서출판 잔’에서 출간된 《와인으로 얼룩진 단상들》은 부코스키의 짧은 글들과, 음란하다는 이유로 세상에 나오지 못했던 미출판 작품들을 담고있다. 등단작 <긴 거절 편지의 여파>를 비롯한 초기작들과, 생애 마지막으로 쓴 단편(〈또다른 나〉) 및 수필(〈작가 훈련〉), 60년대에서 90년대에 이르기까지 각종 신문에 게재한 《음탕한 늙은이의 비망록》 시리즈의 초기작들까지, 부코스키의 생애, 중요한 주제들과 미학적 관점 등이 집약되어 있다. 싸구려 와인과 축음기에서 나오는 모차르트의 음악이 울려퍼지는 배경에 흠뻑 빠진 채, 부코스키의 내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여정이 될 것이다.

 

 

 

그마저도 ‘부코스키적’인 시론: “타자기는 내 기관총이고 장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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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으로 얼룩진 단상들》의 곳곳에서 우리는 찰스 부코스키의 시론을 만날 수 있다. ‘시론’이라는 거창한 말 앞에 부코스키가 화를 낼 지도 모르겠다. 그의 시론에는 그 어떤 학술적이고 딱딱한 어휘가 없다. 직관적인 비유와 당대 문단을 향한 날카로운 독설 앞에 다소간 당황하다가 피식 웃고 말게 될 것이다. 차마 익숙해지기 쉽지 않을 정도로 직설적인, 그래서 거친 느낌마저 주는 정제되지 않은 언어들 사이사이에 스며든 자조적인 유머. 부코스키는 시에 대한 논의 역시 ‘부코스키적’이라는 형용사로밖에 표현할 수 없는, 자신의 스타일대로 펼쳐나간다.

 

 

난 기능적으로 글을 쓴다. 안 그러면 병으로 죽을 것이다. 글쓰기는 간이나 창자처럼 신체 기능의 일부이고 간이나 창자처럼 멋지다. (59쪽)

 

 

부코스키는 그 어떤 “머리를 오래 긁적거려야 이해할 수 있는 말”로써 시가 쓰이는 것을 경계한다. 그러나 그가 보기에 현대 미국 문단은 미사여구와 고차원적 양식에 뒤덮인 말장난에 점령당하고 있었다. 자신이 얼마나 ‘있어 보이게’ 글을 쓸 수 있는지에 대해 잘난 척 하는데 급급하다고 당시의 시인들을 맹렬히 비난한다. 그가 가장 싫어하는 것은 정식 대학교육을 받은 ‘고학력의 지식인’ 시인들이다.


부코스키는 “천재는 단순한 방식으로 완전한 걸 말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지식이 부족해도, 시적 표현들에 익숙하지 않아도 곧바로 마음으로 이해될 수 있는 것, 그것이 부코스키가 말하는 시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렵고 복잡한, 독창적으로 보이는 표현들을 ‘개발’하는 데 급급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날것 그대로”를 드러내야 한다. 양식은 단순하고, 그래서 부코스키는 자신의 ‘날것’을 여과 없이 독자에게 보여준다.


그 날것이란 무엇인가. 부코스키에게 그것은 영혼이다. 그러나 하나의 영혼이 세상에 나올 때, 그것은 세상에 일격을 가해야 한다. 적어도 살아있는 영혼이라면 부코스키가 보기에 죽어있는 거나 다름 없는 세상에 엄청난 파열을 가져올 것이다. 그러나 부코스키가 보는 당대의 시들은 “안전한 세상이고 안전한 방식”에 머물러 있다. 그가 생각하는 시는 정확히 그 반대가 되어야 했다. 그는 말한다. 그의 타자기는 자신의 기관총이고, 장전이 되었다고(168쪽). 그는 배배 꼬지 않고, 자신이 가진 마음 속의 영혼을 세상을 향해 발사하고자 한다. 그것이 그가 말하는 시다.


 

 

고통에 처한 사람들의 이야기: “나는 활동가가 아니라 인생을 찍는 사진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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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사실상 부코스키가 주류 문단 대다수의 ‘죽어 있는’ 시들을 비판한 것은, 단순히 그의 미적 취향의 문제만은 아니었다. ‘시가 어떻게 말하는가’에 못지않게 그에게 중요했던 것은 ‘시가 무엇을 말하는가’에 대한 문제이기도 했다. 《와인으로 얼룩진 단상들》 속 많은 작품들을 차지하고 있는 또 다른 중요한 테마는 사회를 향한 부코스키의 가시 돋힌 시선이다. 이 시선 역시 겉치레 하지 않는 부코스키의 직설적인 문체로 쓰여있다. 이 시선은 너무나 날것 그대로이기 때문에 이따금 부코스키가 보여주는 사회 비판에 전에 없을 통쾌함을 느끼기도 하지만, 다소 이해할 수 없는 정체성 규정과 혐오적 발언에는 이따금 의아함과 불편함이 올라오기도 한다.


예컨대, 부코스키는 모든 종류의 기득권층을 적대시하면서도 정작 정치에 대해서는 관여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펼친다. 반대 대상이 명확함에도 정치적 행동을 취하지 않고자 하는, ‘선택하지 않음을 택하는’ 그의 태도에 일단 한번 주춤하게 된다. 그러나 짚고 넘어가야할 것은, 그가 스스로 정치적 무견해를 표방했더라도 1960년대 지하출간물을 옹호하며 연설의 자유를 옹호했던 그의 행보는 어쨌거나 그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정치성을 띠고 있었다는 점이다.

 

 

난 실질적으로 죽음과 오르락내리락 시소를 타고 있는데 그들은 창가에서 컵케이크 따위나 이야기하다니! (79쪽)

 

 

어쨌거나 그의 말에 의하면, 그는 대항하는 주체로서 행동하기를 자처하지 않는다(그러나 언급했듯이 그는 대항적 주체로서의 면모를 다분히 보여주어왔다). 다만 그가 명확히 밝히는 것은 스스로 “애국자가 아니지만 이 수많은 부당함”을 포착하고 인식하고자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당시의 문학 기득권층이 외면한 “가난한 사람, 정신이상자, 실직자, 사회 밑바닥의 백수, 알코올 중독자, 부적응자, 학대받는 어린이, 일용직 노동자 등 가장 큰 고통에 처한 사람들”(12)의 이야기를 하겠다고 말한다.


그가 바라는 것은 오직 그 고통에 처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하는 것, 그리고 자신과 그들의 자유가 보장되는 것 뿐이다.

 

 

그러니 내게 말해주기를. 당신이 이긴 뒤 반정부에 관한 글을 써도 될까? 공원과 거리에 서서 내 생각을 말해도 될까? (중략) 내가 쓴 모든 글, 음악, 그림이 미국의 자산이 될까? 공원 벤치에 눕고 작은 방에서 빈둥거리며 오인을 마시고 몽상을 하고 편안하고 즐겁게 지내도 될까? (144쪽)

 

 

정치적 입장을 둘러싼 논란을 배제하고서, 이러한 부코스키의 지향점은 어쨌거나 시대가 지나도 여전히 울림을 준다. 그의 작품이 궁극적으로 향하는 곳 역시 부코스키가 말하는 “공원 벤치에 눕고 작은 방에서 빈둥거리며 오인을 마시고 몽상을 하고 편안하고 즐겁게 지내”도 되는 그 삶일 것이다.


한편으로 부코스키는 도저히 반박할 수밖에 없는 언행을 보여주기도 한다. 스스로 ‘밑바닥’을 자처하면서도 그 누구보다 동성애, 여성 등 자신이 속하지 않는(다고 여기는) 집단에 대해서는 그 누구보다 혐오를 넘어 공격적인 태도를 취하는 그의 글쓰기에 반기마저 들게 된다.


어쨌거나 이 모든 것을 그는 적어도 위선의 가면 없이 솔직하게 드러낸다. 물론 그 솔직함은 솔직했다는 이유만으로 추앙받아서는 절대 안될 것이다. 어쨌거나 부코스키는 자신을 ’까발렸고’, 이제 그 평가의 주체는 한 시대를 지나 우리에게 넘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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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부코스키의 비문 '애쓰지 마라(Don't try)'

 

 

이외에도 《와인으로 얼룩진 단상들》에서는 부코스키 작품의 주요한 테마들이 다양한 형식을 빌어 실려 있다.  종말론적인 세계관(〈와인으로 얼룩진 단상들〉, 〈사건의 경위〉), 시대를 막론한 다른 작가들에 대한 평가(〈어떤 유형의 시, 어떤 유형의 삶, 언젠가 죽을 피로 채워진 어떤 유형의 생명체에 대한 변호〉), 역사적 사건들에 대한 부코스키의 독특한 견해들, 도스토예프스키적 모티프 등등. 그리고 그 글들은 모두 한결같이 ‘세다’. 적어도 부코스키가 스스로 내세운 ‘기관총’으로서의 언어의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일부는 몇 십 년이 지난 지금에서도 다소 충격적일 정도로 파격적이다. 머리를 울릴 정도로 공감 가는 문장도 있고, 당장 글 속으로 들어가 반박하고 싶은 문장들도 있다. 글 전체에서 과시적이다 싶을 정도로까지 풍기는 싸구려 와인의 향기 앞에 간혹 정신이 혼미해질 것 같기도 하다. 어쨌거나 그 향기가 부쩍 추워진 요즈음에 썩 어울리는 것 같기도 하다. 그 누구보다 ‘충격적인’ 작가 찰스 부코스키의 ‘날것’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싶다면 《와인으로 얼룩진 단상들》을 읽으며 부코스키가 선사하는 숙취에 취해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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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은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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