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관계의 무저갱 속에 갇힌 영웅 - 영화 '안티고네'

글 입력 2020.11.16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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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혹하다. 상실을 겪지 않은 영웅이란 없다. 그 이름의 영광스러움과 사명 의식과는 달리 그 누구도 자신을 영웅이라 지칭하지도 않는다. 아마도 영웅으로 떠오른 수많은 이들은 자신이 영웅이라 불리길 원치 않았다. 그 누구도 상처입고 희생하며 생을 이어나가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그저 자신이 잃어버렸던 미미한 행복을 되찾고 싶었을 뿐이다. 그리고 여기, 아주 사소한 삶을 지키려 발악하는 작은 영웅이 있다. 그녀의 이름은 그리스 신화의 인물 안티고네. 그리고 영화의 이름도 <안티고네>다.

 

난민으로 캐나다에 들어와 단란하게 살아가는 안티고네의 가족에게 큰 바람이 불어닥친다. 첫째 오빠가 경찰의 과잉 진압으로 총에 맞아 사망하고, 둘째 오빠는 그 장면을 목격하고 경찰에게 대항하다 추방당할 위기에 처한 것. 안티고네는 캐나다에 들어오기 전 부모의 시체가 거대한 모포에 쌓여 집 앞에 내던져지던 장면을 아직도 잊을 수 없었다. 그녀는 가족을 잃은 아품을 너무도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기에 그 일이 반복되도록 둘 수는 없었다. 첫째 오빠마저 갑작스럽게 떠나보낸 지금 둘째 오빠까지 잃는다면 그녀를 지탱하는 거대한 세계가 무너질 것만 같았다.

 

그래서 대학에서 우등생으로 여겨지던 안티고네는 형제를 위해 일생일대의 일탈을 저지른다. 자신은 아직 미성년자이므로 범법자로 판결이 나더라도 처벌이 약할 것이라는 데 주목한다. 감옥에 갇힌 둘째 오빠를 탈옥시기로 결심했다. 탐스럽게 곱슬거리던 머리를 잘라 소년처럼 보이게 하고 양 팔에는 오빠가 속했던 갱단의 문신을 새긴다. 고통과 분노가 일렁이는 눈물을 머금고 거울을 바라보던 안티고네의 얼굴이 잊혀지지 않는다. 너무도 치기 어린 선택이었지만 대단히 용기 있는 행동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 누가 알았을까. 그녀가 지키고자 했던 세계는 침몰하는 세계였음을.

 

 

 

진실을 밝혀내는 진심, 연대는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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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티고네가 둘째 오빠를 탈옥시키고 자신이 감옥에 들어간 이후 새로운 재판이 시작된다. 경찰과 검사는 사실 첫째 오빠와 둘째 오빠 모두 갱단에 소속돼 악질 범죄를 저지르던 이들이었음을 폭로하며, 안티고네에게 그들을 굳이 보호하지 말라고 회유한다. 그럴 가치가 없는 이들이라고. 하지만 그녀는 그 말을 듣지 않는다. 대체 그렇게 희생하면서까지 그들을 지키려는 이유가 뭔지 묻는 경찰의 말에 안티고네는 대답한다. 어릴 적의 오빠를 떠올린다고. 부모님을 잃고 낯선 타국에 와야만 했던 어린 아이를 떠올린다고. 영화는 이를 포함해 다양한 사회 구조적 문제를 짚으며 시사점을 확장한다.

 

이어 사건이 촉발된 이민자에 대한 차별 대우와 경찰의 과잉 진압 문제를 바탕으로 익명성을 내세운 미디어의 문제가 부각된다. 안티고네에게 프레임을 쓰우고 거짓을 사실처럼 날조하며, 익명의 힘으로 개인을 향한 모욕을 서슴치 않는 모습들. 하지만 오히려 안티고네의 담당 변호인은 오히려 미디어를 활용해 안티고네의 사연을 퍼뜨리고 오빠를 구하려는 영웅으로 묘사한다. 그녀의 남자친구는 그녀를 상징하는 심볼을 만들고 그라피티와 굿즈 등으로 사람들의 참여를 유도한다. 미디어는 순기능을 발휘하기 시작한다. 온라인 콘텐츠를 통해 떠나간 이를 추모하고 시위를 하나의 문화 요소나 엔터테인먼트의 일환으로 확장하는 현 시대의 모습이 흥미롭다.

 

이렇게 다양한 이들의 관심을 모으기 시작한 안티고네의 이야기는 사회 전반으로 확산된다. 작은 목소리가 모이자 큰 힘을 냈다. 접근 금지 명령을 받은 할머니는 안티고네가 머무는 보호소 외부에서 그녀를 위한 노래를 매일같이 부르고, 지나가는 이들뿐 아니라 동일한 상처를 안고 있는 가족의 참여를 불러일으켜 점차 많은 이들을 동참시킨다. 날서있던 보호소 아이들마저도 가족을 구하려는 안티고네의 진심에 변화하기 시작한다. 머리를 안티고네처럼 짧게 자르고 그녀를 상징하는 붉은색으로 염색해 나타난 것. 단순하고 어린 치기일 수도 있지만 결국 진심을 굽히지 않자 그녀의 진실이 밝혀지게 됐다.

 

 

 

관계의 무저갱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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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작은 오빠에 대한 사건이 마무리되기 직전. 외국으로 도망치라고 떠나보냈던 그가 술집에서 검거됐음을 알고 안티고네는 완전히 무너진다. 그녀는 법과 투쟁하는 동안 자신이 사랑했던 가족의 모습이 눈에 보이는 것 그 이상의 어두움을 가지고 있을지 모른다고 충분히 짐작하고 있었다. 워낙 망나니처럼 하고 돌아다니던 둘째 오빠는 말할 것도 없고, 늘 믿음직스럽게 곁을 지키며 성실하고 멋진 모습만 보여줬던 첫째 오빠 마저도 갱단의 높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족이기에 사랑했다. 하지만 안정적으로 보장된 자신의 삶을 내다버릴 정도로 큰 결심을 하고 작은 오빠를 도망보냈으나 고작 술집에서 잡혀들어오다니. 고작 저런 인간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 것이라니.

 

그녀가 모르는 가족의 모습을 감내하는 것은 너무도 힘든 일이었다. 자신이 사랑한 가족은 대체 무엇이었을까. 어쩌면 그녀는 자신이 사랑한다는 그들의 가족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던 걸지도 모른다.

 

그렇게 열심히 투쟁해온 그녀는 하루 아침에 무너져버린다.

 

 

 

모래성이었던 그녀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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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혀들어온 오빠를 보고 고통에 몸부림치며 발악하는 그녀는 독실에 갇혀버리고, 꿈을 꾼다. 상담사와의 꿈이다. 나이가 지긋하고 두 눈이 희게 먼 상담사는 안티고네가 무엇을 두려워하는 건지 묻는다. 안티고네는 늘 비참한 모습으로 세상을 떠난 부모님을 상기하고 있었다. 자신이 처한 현실보다 죽음 너머에 있는 그들의 판단이 더 무섭다고 대답한다. 그리고 상담사는 감았던 눈을 번쩍 떠 무섭게 말한다. 너는 결코 벗어날 수 없을 거라고.

 

그녀의 용기 있는 행동의 동기는 가족을 향한 사랑이었을까, 혹은 긴 시간을 거쳐 오며 목표를 잃어버린 집착일 뿐이었을까. 이 부분에서 안티고네를 바라보는 시각이 극적으로 전환된다. 과거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삶을 새롭게 시작하려고 한 그녀의 언니와 상반된 길, 그 길은 가족에 대한 고통과 집착에 가까웠다. 그녀는 과거에 매어 있었고 한시도 그곳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결국 할머니마저도 작은 오빠와 함께 추방의 길을 선택한다. 죽음을 각오한 길이다. 그리고 세상을 잃어버릴 수 없었던 안티고네도 그 길을 선택한다. 출국을 위해 공항으로 나가는 길, 안티고네는 형제들과 함께 공포에 질린 눈으로 사방을 돌아보던 어린 시절의 자신과 마주한다. 그러다 등 너머 들려오는 소란스러운 응원 소리를 느낀다. 자신의 이름을 외치며 응원해주는 이들이 이곳까지 찾아왔다. 그녀가 뒤돌아보는 순간 영화가 막을 내린다.

 

그녀는 마지막의 마지막에서 어떤 선택을 내렸을까? 그리스 신화에서 안티고네는 가족애를 상징하는 인물이지만 동시에 인간적 계명과 신적 계명의 충돌을 상징하는 인물이기도 했다. 그녀의 이야기 역시 먼 과거 멈춰버린 신화와 다르지 않았을 것만 같아 불안하고 씁쓸해진다. 가족을 지탱하는 용기 있는 영웅은 결말에 이르러 과거의 트라우마에 사로잡힌 불쌍한 한 소녀로 남아버렸다. 삶이란 이토록 가혹하다.

 

 

[신은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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