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원한의 화살촉

미워하는 마음에 대하여
글 입력 2020.11.15 0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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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다리로 땅을 무겁게 밟아 선다. 턱을 내리고 허리를 곧게 편다. 심호흡을 하고 활시위를 있는 힘껏 당긴다. 시선은 과녁을 향해 있다. 숨을 멈추고 시위를 놓는다. 화살이 창공을 가르며 날아간다. 방금 쏘아 올린 것은 다름 아닌 내 원한이었다. 내 원한의 화살촉은 어디로 날아가 박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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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 보니, 나를 아프게 하는 것이 새삼 참으로 많다는 것을 느낀다. 마음 같지 않은 일들이 세상에는 숱하게 널려 있었다. 마음대로 골라잡을 수 없는 일들이 마치 날 약 올리기라도 하듯 타인의 손에는 너무도 쉽게 안착하곤 하는 일도 부지기수다.

 

정말 모든 게, 내 바람 같지 않다. 그중에서도 가장 어려운 것은 사람이었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옛 말이 정말이지 딱이다. 내 속도 모르는데 옆 사람 속을 들여다볼 수 있을 리가 없다. 말 백 마디를 나눠도 갑자기 토라지면 속 시원히 털어놓지 않는 이상 관계가 차갑게 얼어붙기란 너무도 쉬운 일이다.

 

그래서 인간은 서로를 쉬이 오해한다. 그것을 우리 스스로도 잘 알고 있다. 내가 무엇을 어떻게 오해하고 있는 것인지는 몰라도, 어찌 되었든 어느 하나라도 잘못 받아들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염두한다. 그러나 이것이 늘 자신의 오해를 시인하는 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잘못된 번역임을 알지만 문맥을 따라 '적당히' 수긍하고 넘기거나, 혹은 다른 때는 몰라도 '이번만큼은' 잘못 이해하지 않았다는 근거 없는 믿음이 불쑥 솟기도 한다.

 

그렇게 오해가 넘치는 세상에 오해와 함께 번식하는 것은 바로 '미움'이다. 미움은 참으로 이상하고도 무서운 감정이다. 이유 없이 태어나는 미움도 있으며, 한 번 미움을 느끼면 그 어떤 예쁜 짓을 해도 영원히 밉기도 하는 것이다. 세상에는 미움이 만연해 있다. 앞서 말했듯 오해로 인해 가장 번식하기 쉬운 종자이며, 밑도 끝도 없이 파생되더라도 '내가 싫다는데 뭐'라고 외치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누구나 어떤 감정을 가지고 살아가든 그것은 본인의 자유이며, 본능이다. 아주 강한 의지가 있다면 모를까, 쉽게 통제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나는 이 미움이라는 감정을 내 손안에 쥐고 함부로 자라나지 않도록 늘 주의해야겠다고 다짐했다. 미움이 얼마나 무서운 감정인지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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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나는 타인에 대해 증오의 감정을 오래 품는 사람은 아니다. 매우 단순하며, 머리 아픈 일에 골몰할 만큼 집중력이 좋지도 못하다. 화가 나는 일이 있어도 한숨 자고 일어나면 잊어버리곤 한다. 그런 내가 처음으로 '아주 밉다'고 생각하게 되는 사람을 만났다. 그 이유를 간단히 설명하자면, 그 사람은 내가 절대 가질 수 없는 것, 하지만 곧 죽어도 가지고 싶은 것을 가질 수 있고, 가졌기 때문이었다.

 

맞다. 질투에서 출발한 미움이었다. 그렇지만 평소, 원체 남을 부러워하는 일에는 관심도, 흥미도 없었던 나인지라 이 모든 부정적인 감정이 쉽게 소화되지 않았다. 몸속 어딘가에 돌이라도 얹힌 것처럼 체기가 가시질 않았다.

 

이 미움은 아주 오래 이어졌다. 그동안 나는 아주 피폐해졌다. 나의 미움이 그 사람에게 어떠한 영향도 미치지 못함을 알고 있었기에 죄책감도 없이 있는 힘껏 미워했다. 그러나 같은 사실로 인해 짙고 무거운 무력함을 동시에 느껴야 했다. 무력. 나의 힘이 어디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것을 몇 년이 지나도록 체감하며 등에 지고 있는 삶이, 결코 건강하게 이어질 리가 없었다. 나는 그렇게 영영 자라지 못하는 아이로 지냈다. 논리적인 생각이 전혀 불가능하도록 뇌가 마비된 것만 같았다.

 

밉고, 서럽고, 그래서 모든 것들을 포기하고 싶었던 어느 날이었다. 나를 아프게 하는 건 그 사람의 존재라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부메랑처럼 되돌아오는 나의 미움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것을 받아들이는 과정도 어려웠지만, 받아들이고 난 후에도 힘겨워 아주 많이 울었던 기억이 난다. 지난 수년이 잿더미가 되어 내 숨을 앗아가려고 애쓰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그 사람이 미웠던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가진 것을 나 역시 가지고 싶었던 것뿐이었다. 그것을 가지지 못하는 나 자신이 미웠던 것일지도 모른다. 내 원한의 화살촉은 애먼 곳으로 쏘아졌지만, 결국엔 제자리를 찾아 날아와 정가운데 꽂혔다. 등 뒤로 퍼지는 아픔이 내 것인 줄도 모르고, 증오를 하염없이 쏟아내기만 했다.

 

마지막 남은 미움의 감정까지도 모조리 내려놓기 위해서 나는 분투했다. 내 안에 쌓인 모든 게 닳아 없어질 때까지 일기를 썼고, 숨길 수 없는 기침을 토하듯 울음을 뱉었다. 가장 어려웠던 것은 내가 간절히 원하던 '그것'이 내 것이 아님을 인정하는 일이었다. 그 사람이 내 것을 앗아가 버린 것이 아니라 애초에 내 것이 아니었다고 스스로를 끝없이 달래야만 했다. 정말 바보 같지만, 성숙하지 못한 나를 이해시키려면 감내해야 하는 일이었다.

 

돌아보니 숱한 오해로 점철된 미움이었다. 그 사람이 내 것을 훔쳤다는 오해, 내 것이 될 수도 있었다는 오해, 그 사람의 존재가 나를 아프게 한다는 오해, 그리고 나의 미움이 그 사람으로부터 나를 지킬 수 있을 것이라는 대단히 큰 오해. 나의 착각으로 세상을 함부로 오역했다. 그 결과와 대가로 나는 내가 얼마나 날카로운 마음을 지니고 있었는지를 한껏 다치고 나서야 알았다.

 

뾰족하다 못해 이리저리 뒤틀린 마음을 함부로 속에 담아두면 결국 상처 받는 것은 자신이다. 미움은 대개 오해에서 발화한다지만, 설사 그렇지 않은 '나에게는 정당하고 이유 있는' 미움이라 하더라도 말이다. 나는 조각나고 다 타버린 오래되고 낡은 감정을 버리고 한결 홀가분해졌다. 아직도 여전히 세상과 그 사람을 차마 다 이해하지는 못했을지라도 그 무엇도 나 자신보다 소중하지는 않다는 것을 분명히 알기 때문이다.

 

다시는 함부로 원한과 증오와 미움과 분노를 통해 스스로를 고통받게 두지 않을 것이다. 그 화살촉이 향하는 곳이 어딘지를 늘 상기하며 나 자신이 온전하고도 둥근 세계 속에서 성장할 수 있을 만큼, 딱 그만큼만 예민하게 굴며 살고 싶다.

 

 



[고민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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