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내가 끔찍하게 부족한 사람으로 느껴질 때 [문학]

정확하게 위로하는 문학, 『벨 자』
글 입력 2020.11.14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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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그룹에 속하기에 자신이 너무나 불충분하다는 생각만큼 사람을 괴롭히는 게 있을까? 생각이 꼬리를 이어가며 길어지는 동안 쌓이는 열등감, 자기혐오는 사람을 망가뜨리기에 십상이다. 이런 상황에서 자신을 객관화해 글을 쓰는 의지는 위대하다. 그렇게 위대한 소설이 『벨 자』이다.


『벨 자』는 실비아 플라스의 유일한 소설이다. 실비아 플라스는 사후에 출시된 시집 중 유일하게 노벨문학상을 탄 『실비아 플라스 시 전집』 작가이자 삶 동안 정신병에 맞선 인물이다. 『벨 자』는 모범생 에스더 그린우드가 잡지사 인턴으로 뉴욕에 가면서 생긴 사건과 심경 변화를 주인공 1인칭 시점으로 다룬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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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솜씨가 뛰어난 학생으로 뉴욕 유명 잡지사 인턴에 선발된 에스더는 희망에 부풀어 뉴욕으로 향한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뉴욕에서 에스더가 인정받기는 매우 어려웠다. 글솜씨는 물론이고 성적, 외모, 재력, 대인관계까지 완벽한 어퍼 이스트사이드 인턴 동기들을 두고 자신을 비교하던 에스더는 인턴 생활을 마무리하고 집으로 돌아와서도 좋아하던 글쓰기마저 할 수 없는 비탄에 잠긴다.


고백하자면 나는 『벨 자』를 위로받기 위해 읽었다. 나 또한 에스더처럼, 운이 좋아 네임드 스타트업의 인턴으로 들어가 정신없는 첫 주를 보내고 있기 때문이다. 운이 좋아도 너무 좋았던 나머지 함께 일하시는 분들은 모두 적어도 3-4년 차 경력, 끝내주는 스펙, 친화력까지 두루 갖추고 있었다. 여기서 나는 아마추어 대학생으로 스스로 깎아 먹고 있다. 에스더가 그랬을 것처럼 말이다. 에스더의 방황하는 머릿속을 들여다보면 내 열등감을 다룰 방법도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사실 더 솔직하자면 『벨 자』의 에스더를 보며 누구나 이런 상황을 겪는다고 자위하고 싶었다. 별게 힐링책이 아니다.


스타트업은 뉴욕만큼 빠르다. 에스더가 (비교적) 시골에서 뉴욕으로 올라와 어리둥절한 감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에스더는 자신이 대학에서 차곡차곡 쌓았던 성공 경험이 뉴욕에서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평가한다. 하나의 능력뿐 아니라 다양한 능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자신이 성공하기에 현재 너무나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멋진 의자에 앉아 스크린 두 개를 앞에 두고 마우스를 도륵도륵 굴리며 패닉이 된 머릿속에서 했던 생각과 비슷하다. 나는 왜 포토샵을 할줄 모를까. 데이터 읽는 법은 왜 진작 배우지 않았을까. 올해 초부터 필요성을 인식했는데 난 아주 틀려먹었다. 다들 날 어떻게 생각할까. 자격이 없는 아마추어가 자리 차지하고 앉아있다고 생각하진 않을까? 난 여기 왜 있는 걸까?

 

지금의 나와 에스더가 일치하는 장면도 나온다. 에스더는 앞으로 꿈이 뭐냐는 잡지 편집장의 질문에 “잘 모르겠어요.”라고 답한다. 이전에는 “유럽에 가서 공부하며 글을 쓰고 싶어요.”라고 말하던 에스더였다. 나도 비슷한 질문을 받았다. 앞으로 뭘 하고 싶냐는 선배의 질문에 예전 같으면 “프로덕트 방향을 설정하고 조정하는 PM(Product Manager)이 되고 싶어요.”라고 대답했겠지만 내 모든 게 잘못됐다는 생각을 하면서 이런 꿈을 말하면 상대가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 무서웠다. 그래서 “잘 모르겠다”라고 답하고 말았다.


뉴욕에서 돌아온 후 글을 전혀 쓰지 못하고 우울감에 자살 시도까지 하게 된다. 자살 시도는 무거운 단어 같지만 자살까지 시도하는 감정을 우리가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벨 자』는 소설이면서, 실비아 플래스의 자전적 이야기이기도 하다. 에스더가 했던 뉴욕 인턴 생활도 실제 플래스가 유명 잡지 ‘마드모아젤’에서 했던 인턴십과 비교할 수 있다. 자전적 이야기, 주인공 1인칭 시점에서 에스더가 내래이터를 겸하는 작품이니만큼 『벨 자』를 읽으면 우리가 규정할 수 없었던 자기혐오와 정신병을 겪는 감정을 언어로 읽어낼 수 있다.


 

내가 끔찍하게 부족한 사람처럼 느껴졌다. (중략) 경마장이 아닌 거리에 던져진 경주마가 된 기분이었다. 대학 우승자인 풋볼 선수가 양복 차림으로 월 스트리트와 마주 선 느낌과 비슷했다.


- 실비아 플래스, 『벨 자』, 마음산책

 

 

아예 동작할 수 없는 필드에 던저져 혼란스러운 기분. 절대 잘 해낼 수 없는 기분. 내가 나를 통제할 수 없어 희망이 없는 기분을 심리학계보다 문학계에서 먼저 알아차린 듯하다. 문학은 이렇게 흐트러지는 감정을 정확히 언어화하는 방법으로 우리에게 위로를 준다. 자기혐오와 열등감에 시달리면서 자신을 가다듬고 정확한 문장으로 구현해내는 것이 문학이 가진 힘이다. 우린 그 힘에 기대어 위로와 용기를 받는다. 나를 힘들게 하는 어떤 것을 끌어내 문자에 가둔다. 문자화한 것은 더는 무섭지 않다.

 

 

소설이 주는 위로란 따뜻함이 아니라 정확함에서 오는 건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 김애란, 『아직 멀었다는 말』(권여선) 추천사 중

 

 

[유보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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