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명씨네에 건네는 마지막 인사 [문화 공간]

문 닫은 아트하우스 전용 극장, CGV 명동역 씨네라이브러리
글 입력 2020.11.14 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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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GV 명동역 씨네라이브러리(이하 명씨네) 영업이 중단됐다.

 

10월 26일 CJ CGV는 대학로, 명동역 씨네라이브러리 포함 7개 지점에 대해 영업 중단을 선언했다. 코로나로 CGV 적자가 늘어나자 손실을 줄이기 위해 선택한 결과였다.

 

어쩌면 당연한 선택이지만, 명씨네와 대학로는 CGV의 몇 안 되는 아트하우스 상영관이라는 점에서, 특히 명씨네는 5개의 상영관이 모두 아트하우스관이라는 점에서 아쉬움이 크다.

 

 

 

아트하우스가 뭔데?


 

아트하우스는 CGV에서 만든 독립 예술 영화 전용 상영관이다. 2004년 CGV에서 개설한 ‘인디 영화관’이라는 예술 영화 상영관이 2014년 아트하우스로 이름을 변경한 바 있다.

 

KT&G 상상마당이나 아트하우스 모모, 씨네큐브 등 예술영화 전용 극장이 CGV 한 관으로 편성됐다고 생각하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아트하우스는 예술 영화, 독립 영화, 고전 영화 등 쉽게 만나기 어렵지만 작품성이 높은 영화들을 상영한다.

 

전국적으로 지점을 늘려간 아트하우스는 지난 달 기준 18개 지점에 전용극장을 보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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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하우스는 한때 독립영화 배급을 진행할 정도로 열성적으로 사업을 벌였다. 아트하우스가 배급한 작품으로는 <한공주>, <도희야>,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등 걸출한 작품이 많다. 하지만 경영난이 심해지자 2019년 10월 배급 사업을 중단했다.

 

명씨네는 작년 말 2개의 아트하우스 상영관을 5개로 늘렸다. 올해 아트하우스 전용 극장으로서 행보를 기대했지만, 코로나로 직격탄을 맞으며 씁쓸하게 문을 닫았다. 서울에서 10개도 안 되는 아트하우스 중 하나가 사라졌으니 예술영화에 애착을 갖는 관객으로서는 타격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독립영화 상영관을 살리자



아트하우스 이외에도 워너 브라더스 등 영화 배급사가 적자를 면치 못하고 국내 사업을 철수했다. 독립영화 제작지원과 배급사업, 극장 사업을 겸하던 상상마당도 현재 운영을 잠정 중단한 상태라 ‘철수설’까지 돌았다. 소식을 들은 영화 관계자들과 애호가들을 중심으로 상상마당을 살리자는 캠페인이 진행됐다.

 

이슈가 확산되자 상상마당 측에서는 ‘상상마당은 문을 닫지 않습니다’라는 성명을 발표해 공식적으로 재개관을 예고한 바 있다. 이와 대비되게 명씨네는 힘을 쓸 겨를도 없이 상영 중단이 선언됐다. 유예기간도 두지 않고 막을 내린 엔딩은 아쉽기만 하다.


물론 CGV 측에서는 근처 명동점에 아트하우스 관을 신설하는 등 명씨네의 허전함을 채우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전했다. 예술 영화 상영을 소홀히 하지 않겠다고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극장이 명씨네의 빈자리를 온전히 채우기는 힘들 것 같다.

 

내가 집에서 1시간이 걸렸음에도 명씨네를 찾았던 이유인 다름 아닌 영화관 안에 있는 도서관 때문이었다. 빼곡하게 영화, 예술 관련 도서로 채워져 있던 씨네라이브러리, 영화 시간이 애매하게 남은 사람들이 모여들어 시간을 보냈던 이 공간을 다른 영화관으로 옮기기는 어려울 것이다.

 

 

 

유일무이한 영화 도서관, 씨네라이브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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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라이브러리는 2015년 극장 한 관을 리모델링해 문을 열었다. 영화전문서, 시나리오, 미술, 인문 서적 등 1만 여권의 장서를 채워 넣은 국내 최초 영화 전문 도서관이다. 소파나 간이 책상도 편히 잘 마련되어 있다. 시간이 날 땐 잠시 들어가 책을 읽기 좋은 곳이었다.

 

너무 편한 나머지 이곳에서 책을 읽느라 <마더> 흑백판 상영 시간을 놓쳐버렸던 기억도 있다. 영화를 본 뒤엔 함께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으로 사용됐던 곳이다. 라이브러리톡이라는 전용 토크 프로그램이 진행됐는데 정성일, 이상용, 허남웅 평론가 등의 해설을 듣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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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씨네라이브러리는 영화와 사람, 사람과 사람을 연결해주던 소중한 공간이었다. 꾸준히 진행된 토크 프로그램으로 혼자 생각하기 어려운 영화에 대해 해설도 들을 수 있었고, 프로그램 안에서 자유롭게 개진된 의견 덕에 다각도에서 영화를 바라볼 수 있게 됐다.

 

나 외에도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한 공간에 있다는 동질감, 연대감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젠 그 공간은 사람의 발길이 끊긴 책들의 무덤이 되어버렸다. 그 많던 사람들이, 그 많은 책이 어디로 갈지 아직 행방은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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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기회, 서울국제프라이드영화제


 

서울국제프라이드 영화제는 2016년부터 명씨네와 함께 했다. 명씨네가 상영을 중단한 것은 10월 26일부터였지만, 예정돼 있던 영화제는 계획대로 11월 5일부터 11월 11일까지 열렸다.

 

내가 프라이드 영화제를 찾은 것은 재작년부터다. 2018년 우연찮은 기회로 해당 영화제를 찾아 <상속녀>를 봤다. 파라과이 영화라 조금 생소했지만, 영화가 끝난 후 허남웅 평론가의 해설을 들었던 게 참 좋았다. 작년에는 인기작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을 봤는데, 참혹한 매진 행렬을 마주하던 중 운이 좋게 맨 앞자리 취소표를 잡았다.

 

후미진 자리에서도 감동은 고스란히 전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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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놓치지 않고 영화제를 방문했다. 아쉽게 라이브러리에서 토크 프로그램을 듣지는 못했다. 코로나 때문에 미리 토크 프로그램을 신청한 사람만 입장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영화제 기간 틈날 때마다 방문해 영화를 봤다. 그러면서 마지막 인사를 하는 기분으로 영화관의 모습도 눈에 담았다.

 

1층 유니클로에서 영화관으로 연결되는 엘리베이터, 10층과 11층을 연결해줬던 계단, 한때 팝콘과 오징어 냄새를 풍기던 매점과 영화 굿즈를 받느라 줄 서 있던 공간. 그곳들을 차분히 살폈다.

 

 

 

명씨네, 정말 안녕


 

마지막 인사를 한 명씨네는 영화제 기간이라 평소 모습과는 거리가 있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도 감사했다. 이제 명씨네의 허전함을 또 다른 아트하우스 전용 극장인 압구정점에서 채우게 되겠지만, 명씨네의 추억들은 잊지 못할 것이다.

 

이 공간에 깃든 추억, 이곳에서 함께했던 사람들, 이곳에서 재밌게 봤던 영화들은 내가 간직해야지. 명씨네로 인해 존재를 당연하게 여겼던 내 곁의 소중한 것들이 사라질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뭐든 당연한 것은 없으니까.

 

그래도 다행인 것은 아직 남은 독립 예술 영화 극장들이 많다는 것이다. 아트나인, 서울아트시네마, 인디스페이스, 아트하우스 모모, 씨네큐브, 더숲 아트하우스, 에무시네마 등등. 이들은 사라지지 말고 곁에 오래오래 있어주면 좋겠다.

 

독립 예술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이는 공간이 더 이상 사라지면 안 된다. 온라인 상영 플랫폼이 무섭게 떠오르고 있는 지금, 독립 예술 영화를 받아줄 곳은 그리 많지 않으니까. 춥고 음산한 겨울을 허들링하는 펭귄처럼 함께 온기를 나누며 잘 이겨냈으면 한다.

 

 

[임채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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