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투쟁과 공동체 - 안티고네 [영화]

글 입력 2020.11.14 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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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게시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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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안티고네>를 관람했다.

 

안티고네라는 인물은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오이디푸스 왕의 딸로, 오빠인 폴리네이케스를 위해 희생하다 사형당한 이의 이야기에서 영감을 얻었다. 하지만 그리스 신화를 배경으로 한 작품이 아니라, ‘현대판 안티고네’라 볼 수 있다.

 

나는 사실 <오이디푸스 왕>의 면밀한 이야기는 알지 못한다. 그렇기에 영화의 첫 느낌은 ‘붉은 투쟁’으로 기억된다.

 

대략적인 줄거리는 이렇다.

 

캐나다 몬트리올, 평범한 일상을 보내던 안티고네에게 비극이 벌어진다. 두 오빠 중 하나가 경찰의 총에 맞아 사망하고, 하나는 그 자리에서 구속된 것. 사랑하는 가족을 지키고 싶은 안티고네는 오빠 대신 감옥에 들어가고, 용기 있는 그의 행동에 대중들은 안티고네를 SNS 영웅으로 만들기 시작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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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티고네 가족은 난민이다.

 

알제리 난민 가족이 캐나다 몬트리올로 이주하여, 각 구성원들이 ‘시민권’과 ‘가족’ 사이에서 갈등하는 모습을 보여 준다. 가정의 울타리를 지키고자 애쓰는 할머니와 안티고네와는 달리 오빠들은 갱 집단에 소속되어 여러 사회 문제를 야기한다.

 

결국 갱 집단에 대한 캐나다 공권력의 과대 진압으로 인해, 한 가정의 가장이 사망한다. 안티고네는 죽은 오빠를 위해, 그리고 감옥에 들어간 오빠를 위해 국가를 상대로 싸워나간다.

 

여기서, 내가 가진 투쟁의 역사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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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립 여자고등학교를 나왔고, 머리카락을 쇄골 너머로 기를 수 없었다. 당연히 염색과 파마는 금지였다. 심지어 한겨울에도 기모 소재인 검은 레깅스를 신을 수 없었고, 교복 바지를 입으려면 학생부장의 허락을 받아야 했다.

 

체육시간에 뺨을 때리는 머리카락이 싫어 일명 ‘똥머리’를 하고 싶었고, 겨울엔 건조하다 못해 찢어질 것 같은 정강이를 지키고 싶었다. 우리는 갖은 방법으로 선생님들과 투쟁했다.

 

‘학생답지 않다’의 기준을 명확히 세워 달라고 닦달했으며, 개학하는 날 눈에 띄는 머리 스타일을 한 친구들은 담을 넘었다. 하지만 권리를 찾는 과정은 생각보다 고단하고 성가신 일이었다. 우리는 포기했다.


여기서 말하고 싶은 것은, <안티고네>에 등장하는 투쟁은 발화점이 아주 분명했다는 점이다. 큰 오빠가 죽지 않았다면, 혹은 폴리네이케스가 감옥에 가지 않았다면 안티고네는 머리를 밀었을까? 안티고네는 SNS에서 적극적으로 지지 받는 ‘핫한 인물’이 되었을까?

 

개개인이 가지고 있던 응어리는 특정한 사건이 있을 때 집단이 된다. 그렇기에 누군가의 희생은 필수적이다. 그 사실이 내내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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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에서는 한 개인의 투쟁이 한 사회의 투쟁이 되는 과정을 힙합 뮤직비디오 방식으로 표현한다. 현대 사회에서 SNS의 거대한 힘, 어느새 청년층의 언론 역할을 하고 있는 영상 플랫폼을 나름 현실적으로 연출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안티고네를 지지하는 이들의 수는 점점 불어나고, 이른바 ‘인증샷’들을 통해 자신만의 개성을 표현하여 다른 이들에게 알린다. ‘알린다’라는 것이 안티고네를 지지하는 의미일 수도 있지만, 그저 청년층의 유행에 그치기도 한다.

 

그들은 행동했지만, 결과적으로 봤을 때 그러한 움직임들이 안티고네 가족의 결말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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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영화를 본 지인 혹은 같은 시간에 영화를 본 관객들은 일제히 ‘오빠들(안티고네의 형제들)이 답이 없네. 안티고네 불쌍하다.’라는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난 그보다, ‘오빠들’이 그렇게까지 행동하며 지키고 싶었던 건 무엇일까?라는 물음을 던지고 싶다.

 

폴리네이케스가 처음 갱에 들어갔을 당시, 온몸을 구타 당한 그는 “드디어 됐다”라며 기뻐했고, 안티고네는 웃지 않았지만 그를 필사적으로 막지도 않았다. 또, 큰 오빠가 갱 집단에서 불법적으로 수급한 돈으로 자신의 교육비를 지원한 사실을 듣게 되었을 때도 굳건히 자신의 의지를 지킨다. ‘답 없는 오빠들’ 또한 가족 공동체에 대한 애정을 기반으로 행동했다.

 

<안티고네>는 철없는 형제들 때문에 자신을 희생하기만 한 소녀의 이야기가 아니라, 자신의 정체성이자 가족을 지키기 위한 대항자였다. 같은 관점에서, 안티고네는 단지 난민 가족에서 유일하게 성공할 수 있었던 안타까운 인물이 아니다. 그들의 일부이다. 난민에 대한 낙인과 차별은 그들을 사회 변두리로 내몰았고, 또 구성원으로서의 자격을 강제로 박탈하여 추방했다.

 

사회와 국가의 역할은 무엇일까? 다시 한 번 의구심을 느끼며 글을 마친다.

 

 

*
 
안티고네
- Antigone -
  
 
감독 : 소피 데라스페
 

출연

나에마 리치


장르 : 드라마

개봉
2020년 11월 19일

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상영시간 : 109분

 

 

[이민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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