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얘 왜 이럴까? [영화]

한 걸음 더, 캐릭터 속으로
글 입력 2020.11.13 2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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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 왜 이럴까? 왜 이렇게 쿵쾅거리면서 제가 화났다는 걸 표시하고, 자다가도 돌아누워 한숨 쉬고.


 

영화 <아가씨>에서 아가씨 히데코(김민희)가 숙희(김태리)를 떠올리며 하는 독백이다.

 

대사만 떼어 놓고 보더라도 본격적인 사랑에 빠지기 전의 미묘한, 어찌 보면 미숙한 감정선을 잘 드러낸 예쁜 대사라고 생각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나에게 이 대사가 흥미로운 것은 무엇보다 내가 영화를 감상할 때 캐릭터에 파고들며 던지는 질문과도 똑닮아 있다는 점이다.

 

누군가가 나에게 영화를 감상할 때 제일 중점적으로 보는 부분이 어디인가 묻는다면 나는 주저 없이 캐릭터라고 말할 것이다. 영화는 세상의 거울이라는 말이 있지만 나에게 영화는 '세상'이라기보단, 좀 더 개별적인 '개인', 즉 캐릭터이다.

 

영화를 감상하는 순간은 관람자에겐 풍경일 뿐인 한 삶을 보다 적극적으로 들여다보는 순간이라고 생각하고, 그 삶의 선택과 반응에 있어 그만의 이유가 있는 캐릭터를 만날 때 나는 사랑에 빠진다. 처음으로 이해불가의, 그러나 정성 들여 이해하고 싶은 존재인 숙희를 마주친 히데코처럼 말이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은 하나같이 어딘가 이상하고, 일반적이지 않고, 어떻게 보면 문제가 있다. 캐릭터 자체가 그렇지 않으면, 적어도 캐릭터가 놓인 상황이라도 그렇다. 그러니까, 영화가 될 만한 순간을 살아가고 있는 캐릭터들이란 첫눈에 사랑하기 쉽지 않다는 말이다. 종국에는 서로의 구원자가 되는 숙희와 히데코마저도 그러했듯이.

 

그러나 그런 이해할 수 없는 숙희의 말과 행동에 질문을 달기 시작했던 히데코처럼, 좋은 캐릭터를 만난 관객은 캐릭터의 '이상한' 말과 행동의 근원에 대해 질문하기 시작하고 이것이 관객이 어떤 영화를 사랑하기 시작하는 순간이라고 정의해 보고자 한다.

 

물론 모든 영화가 '이상한' 캐릭터를 등장시키는 것은 아니지만, 사실상 우리 스스로부터 남들이 이해하기 어려울 만한 점 하나씩은 가지고 있고, 척 보기에 사랑스러운 캐릭터라고 해도 그런 점을 하나둘쯤 가지고 있으리라는 것도 당연하다. 그리고 그런, 인간의 가장 불가해한 면모는 그의 상처에서 시작한다고 생각한다.

 

그리하여 우리가 캐릭터의 불가해한 면모를 이해하고 납득할 때, 우리는 말 한 번 섞어 본 적 없는 캐릭터의 상처에 나도 모르게 공감하고 귀 기울이고 있는 것이다.


 

백작하고 마주칠 때마다 숙희의 눈은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당신이 싫어요.

 

 

글의 첫머리에서 들려주었던 히데코의 독백은 뒤이어 이렇게 이어지는데, 질문으로 시작한 히데코의 관심은 숙희의 말과 행동에 관한 나름의 해석으로 발전했다고 볼 수 있다. 처음 질문을 던졌던 관객도 마찬가지다. 도무지 불가해했던 캐릭터와 영화 자체에 대해 나름의 의미를 찾아내며 교감한다.

 

영화를 감상하는 일이 그 안의 한 개인을 만나는 일과도 같다고 말했다. 물론 어떤 사람과의 만남은 모든 인과를 무시한 채 먼저 나를 적셔 버리며 시작되기도 하지만, 우리가 살아가며 이루어지는 대부분의 유의미한 만남은 너의 세상 속으로 차근차근 걸어가는 일에서 시작한다고 믿는다. 이것은 스크린 속의 인물들에게 대입해도 여전히 유효한 믿음이다.

 

그래서 나는, 한 면의 스크린을 통해 마주치는 얼굴들에게 언제나 처음과 같은 마음으로 질문하고 싶다. 넌 왜 그러니, 하고. 무엇이 너를 그렇게 말하고 행동하도록 만들었냐고.



 

[김현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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