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꼭두각시 황제의 삶은 얼마나 고독하오 [도서]

연랑아, 나를 보고 있느냐? 내 꿈이 현실이 된 것을 보고 있느냐?
글 입력 2020.11.13 0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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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제왕의 생애


 

어린 나이에 황제가 된 소년 단백의 이야기이다.

 

첩의 아들로 태어나 궁중 암투와는 먼 인생을 살아가던 그는 어느 날 갑자기 황위에 오른다. 당장 황제가 되어도 손색이 없던 장자 단문이 있었기에 갑작스러운 단백의 황위 계승은 본인조차 납득이 가지 않는 일이었다. 아무것도 준비되지 않은 채로 황위에 오른 그는 할머니의 수렴청정과 어머니의 권력 다툼 하에 꼭두각시의 삶을 영위한다.

 

 

어떤 울음이 환호이고 어떤 울음이 원한인지, 또 어떤 울음이 탄식이고 질투인지 분별할 수 있었다. 다만 오랜 옛날부터 전해 내려온 그 속임수를 폭로할 마음이 없었을 뿐이다.

 

 

단백이 유일하게 결정할 수 있었던 것은 신하들의 목숨이었다. 무엇 하나 바라는 대로 할 수 없던 궁궐에서 그는 온갖 패악질을 일삼았다. 후궁들의 혀를 자르고, 패장을 활로 쏘아 죽였으며, 무고한 대신들의 목을 베었다. 단백은 자신의 손짓 하나에 죽어가는 사람들을 보며 희열을 느꼈다. 그러나 그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것은 일개 궁녀과 신하들뿐이었다.

 

사실상 단백은 아무런 결정권도 없는 허수아비에 불과했다. 황보 부인과 맹 부인은 그를 자리에 앉혀두고 서로를 죽이지 못해 안달이었다. 두 여인에게 받는 구박이 심해질수록 단백은 더욱 잔인하게 신하들을 핍박했다. 백성들은 그를 미치광이 폭군이라 불렀다.

 

아이러니한 일이었다. 폭군이라는 칭호를 얻었음에도 단백이 휘두를 힘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에게 권력이란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았다.

 

 

 

하늘을 나는 새가, 외줄을 타는 광대가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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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하늘이 가까워서였는지 새가 나오는 꿈도 숱하게 꾸었다. 꿈에서 본 새들은 다 눈처럼 하얬다. 꿈에서 본 하늘은 다 끝없이 투명했다. 내가 꿈에서 본 새들은 다 하늘을 날아다녔다.

 

 

무력감이 들 때마다 단백은 스스로 새가 되어 하늘을 나는 상상을 하고는 했다. 소설에 자주 등장하는 '새'라는 매개체는 자유로워 지고자 하는 그의 내면을 형상화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타인에게 얽매여 사는 황제의 삶보다 넓은 하늘을 마음껏 누비는 새를 동경했다.


 

"줄을 타는 게 왕 노릇보다 멋있어 보이는걸. 그거야말로 영웅이잖아."

 

나와 줄타기꾼의 차이를 생각해보고서 진지하게 말했다.

 

"나는 섭왕보다 줄타기꾼이 더 좋아."

 

 

소설 후반부에서는 새뿐만 아니라 '광대'가 언급이 되는데, 단백은 외줄 타기를 하는 광대를 보며 유독 즐거워했다. 어쩌면 위태롭게 곡예를 하는 광대의 모습에서 자신을 발견한 것인지도 모른다.

 

허수아비 황제와 외줄 타기 광대를 바라보며 느낀 점은 황제보다 광대의 삶이 더 낫다는 것이었다. 최소한 광대는 언제든 자신이 원할 때면 외줄에서 내려올 수 있었다. 그리고 줄 하나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든 행복할 수 있었다.

 

외줄 위에서만큼은 광대야말로 그 세계의 왕이자 황제였다.

 

 

 

어디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황제의 삶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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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는 그대 자신이 텅 비어, 한 조각 나뭇잎처럼 바람 속을 떠돌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백성들은 점차 단문을 칭송했다. 단백은 이복형제인 그를 볼 때마다 유독 자신이 선황의 유언장 속 황위 계승자라는 사실을 언급했다. 그리고 단문에게 굴욕감을 주어 자신 앞에 무릎을 꿇는 모습을 즐겼다.

 

단문은 신하들을 멋대로 죽일 수 없었지만, 단백은 할 수 있었다. 그가 유일하게 살아있다고 느꼈던 순간은 신하들의 생명줄을 쥐고 휘두를 때뿐이었다.

 

만약 이 소설이 단백의 시점이 아닌 3인칭으로 서술되었다면 그 누구도 단백의 인생에 관심을 두지 않았을 것이다. 단지 단문이 언제 폭군의 시대를 뒤집어엎고 황제의 지위를 되찾을지, 단백의 몰락만을 기다렸을 것이다. 단백은 황제였지만, 자신의 나라에서 유일한 이방인이었다.

 

 

 

인생은 한바탕의 농담이었다



 

"이건 내가 너희 사내놈들과 즐긴 한바탕의 농담이니라. 나는 가짜 섭왕을 만들었다. 너를 조종하는 게 더 쉬웠기 때문이지."

 

"이게 뭡니까? 왜 당신의 음모와 죄악을 무덤까지 가져가지 않고 나에게 털어놓는 겁니까?"

 

분노와 참담한 슬픔이 봇물 터지듯 가슴속에서 터져나왔다.

 

 

이 소설을 통틀어 가장 가슴이 먹먹했던 장면이다. 단백은 단 한 순간도 자의에 의해 황제가 된 적이 없었다. 오직 선황이 그렇게 명령했기 때문에 황위에 올랐고, 그 지옥 같은 허수아비 노릇을 참아냈던 이유는 선황이 준 믿음 때문이었다.

 

죽은 자는 말을 할 수 없다. 그 사실은 누구보다 단백이 잘 알았을 것이다. 선황이 선택한 자는 본인이라는 사실을 증명해내기 위해 무고한 생명을 수없이 앗아갔다. 그의 유일한 희망은 갑작스럽게 내려진 황위 계승 유언장뿐이었다.

 

황보 부인이 죽기 전 그 사실을 털어놓은 이유는 소설에 나와 있지 않다. 단백이 그토록 부르짖었음에도 이미 그녀는 세상을 떠난 후였다. 추측하자면, 어설프게 황제 노릇을 하는 단백에게 현실을 일깨워주기 위해서였다고 생각한다.

 

황보 부인은 천하를 다스리고자 하는 욕심에 손자를 허수아비로 만들었다. 그러나 죽기 직전의 그녀에게 권력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아마 황보 부인이 살아있었더라면,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살아있는 동안의 나의 욕망은 모두 채웠으니, 내가 죽은 후의 세상은 원래대로 돌아가야 마땅하지

 

 

그녀가 생각한 정의로운 세상에 자신이 만들어 놓은 황제 단백은 없었다. 오직 살아생전 본인의 이기심을 위해 애초부터 일그러진 왕국을 세웠다. 자신이 세상을 떠난 후 남은 단백은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오직 수단이었을 뿐이다. 권력을 안겨주고, 죄책감을 덜게 해줄 도구.

 

 

"네가 바로 섭왕이다."

 

내가 말했다.

 

"그래, 내가 바로 섭왕이다. 이것이야말로 모든 세상이 내게 말해준 진실이다."

 

 


몰락한 황제, 주체성을 가진 광대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다. 비록 소설은 섭나라라는 가상 왕국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만약 역사가 쓰인다면 단백은 폭군이라는 한 줄로만 새겨졌을 것이다.

 

무덤덤하게 단문에게 황제 자리를 넘겨주는 모습은 오랜 고통에서 벗어나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황위에 오르고, 내려오는 순간까지 단백이 주체적으로 결정한 것은 단 하나도 없었다. 어떻게 보면 단문이 그를 해방해 주었다고 볼 수 있다.


 

모두들 나를 한 번 보시오, 내가 누구요? 나는 류공자도 아니고, 섭왕도 아니오. 나는 이 세상에 둘도 없는 줄타기 광대라오. 나는 줄타기 왕이오!

 

 

황위에서 쫓겨난 그는 그토록 꿈꾸던 외줄 타기를 한다. [나, 제왕의 생애]라는 제목과는 다르게 초라한 결말이다. 그러나 그의 인생에서 유일하게 해방감을 느꼈던 때는 외줄을 타는 순간이 아니었을까.

 

외줄은 그에게 처음 맞이하는 세상이었다. 타인에게 조종당하지 않는, 주체성을 가진 삶.



 

 

이 소설을 읽고 Vivalavida가 생각났다. 이 노래는 몰락한 귀족의 시각에서 쓰였다.

 

'성 베드로가 내 이름을 부르지는 않을 것이란 걸 알아'

'그때가 되어서야 깨닫네, 나의 성은 소금과 모래로 지은 기둥 위에 세워졌다는 걸'

 

라는 문구에서 한때 세상을 지배했지만 결국 남아있는 것은 공허함 뿐이라는 권력의 허망함을 보여준다.

 

단백도 죽은 후궁들과 신하들의 영혼에 시달리며 자신이 결코 축복받은 죽음을 맞이할 수 없다는 사실을 느꼈을 것이다. 누군가의 피로써 지위를 연명할 때마다 언젠가는 자신도 같은 방식으로 누군가에게 끌어 내려질 것을 직감했으리라.

 

제왕의 생애는 이토록 고독하고 비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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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향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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