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인간과 인간 사이의 경계를 질문하다 - 연극 아라베스크

타인과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글 입력 2020.11.12 1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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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여름, 561명의 예멘인들이 제주도로 입국했다.

 

한국과 문화적 유사성이 낮은 난민이 짧은시간에 대거 입국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었다. 이 사건으로 난민 수용에 대한 찬반 논란이 일었다. 하지만 유럽의 난민 사태, 이슬람 문화에 대한 거부감으로 예멘 난민에 대한 국내 여론은 좋지 않았다.

 

이에 난민법 폐지, 개헌 청원에 70만 명이 동의하며 청와대 국민청원 역대 최다 청원을 기록하기도 했다.

 

 

2020_놀땅_아라베스크(삼일로)_리허설사진 (2).jpg

 

 

연극 <아라베스크>는 이 난민 문제를 무대로 가져왔다. 연극은 제주도에 도착한 예멘인 마흐무드의 난민 인정 절차를 다룬다. 조사관과 보조, 통역관은 난민신청서류와 마흐무드의 진술을 토대로 그를 난민으로 인정할 것인지 판단한다.


마흐무드는 극 내내 아랍어를 사용했고 통역 없이 나는 그 말을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게다가 이국적인 외모, 하루 다섯 번의 기도 시간과 해가 떠 있는 동안 금식해야 하는 라마단 기간이 있는 아랍 문화, 그리고 전쟁이 일상인 나라에서 온 그는 우리와 너무 달랐다.

 

난민으로 제주도에 입국했지만 멀끔한 모습과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그의 모습 역시 낯설었다. 나는 한국인의 입장이었고 정말 도움이 필요한 것인지 의심스러운 이 사람을 난민으로 받아들여야 하는지 자주 갈등했다.

 

그런 나처럼 조사관과 보조, 통역관 역시 그들의 입장을 계속해서 번복했다. 하지만 앞뒤가 맞지 않고 감정적으로만 호소하는 마흐무드의 진술에 나는 공연장을 나오며 난민 인정을 반대하는 의견에 손을 들었던 것 같다.

 

그런 뒤에도 며칠 간은 내 선택을 줄곧 의심했다. 모든 사람의 평등과 인권이 가장 먼저 보장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왔으면서도 난민 문제에 있어서는 자국민의 주권을 더 우선시하는 나의 양면성에 혼란스러웠다.

 

 

2020_놀땅_아라베스크(삼일로)_리허설사진 (6).jpg

 

 

돌이켜보면 마흐무드가 예멘을 떠난 이유는 더 나은 삶을 위해서였다. 내전으로 생명의 위협을 받는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떠나온 것이다.

 

보조 역시 계약직이라는 불안정한 위치에서 벗어나 안정적인 삶을 꾸려나가고 싶어 했다. 조사관도, 통역관도, 그리고 우리 모두도 궁극적으로 원하는 것은 힘든 상황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마음이다. 행복하게 잘 살고자 하는 마음, 그 마음에는 경계가 없다.

 

 

우리는 상대를

다 알 수 없어요.

 

단지 다 알 수 없다는 사실을

확인할 뿐이지요.

 

 

상대를 다 알 수 없다는 사실을 확인할 때면 우리는 우리 안에 내재한 넘을 수 없는 벽을 목도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상대를 이해하고자 노력한다면 서로의 마음의 경계선을 넘을 수 있지 않을까.

 

보조가 서툰 아랍어로 마흐무드와 대화할 때, 조사관이 커피를 내리며 아랍의 커피 문화를 이야기할 때, 통역관이 마흐무드의 딸 사진을 흐뭇하게 바라볼 때. 그 순간에는 난민 인정 절차를 위한 형식적인 관계를 넘어서 인간 대 인간으로 친밀감을 느끼고 마음 속 경계가 흐려지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2020_놀땅_아라베스크(삼일로)_리허설사진 (7).jpg

 

 

난민 문제는 인권과 주권 문제가 얽힌 복잡한 문제이다. 그래서 쉽게 난민 수용에 찬성한다, 반대한다고 의견을 정하기 어렵다. 극 중 인물들 모두 이 갈등 속에서 자신의 입장을 계속해서 바꾼다. 극을 보는 나 역시도 한 쪽의 의견을 정하지 못하고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연극이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건 찬반을 가르는 문제가 아니다. 이 문제에 정답은 없다. 그보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찬반 논란 속에 내재한 혐오와 거부감을 인식하는 것이다.

 

그리고 땅의 경계가 사라져가는 지금의 시대에 낯선 이들과 함께 살아가는 우리가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할지 질문해보는 것. 그것이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이 아닐까.

 

 

2020_놀땅_아라베스크(선돌)_포스터(최종).jpg

 

 

 

신소연.jpg

 

 

[신소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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