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걸그룹으로 산다는 것 [TV/예능]

<미쓰백>이 보여주는 아이돌 산업의 이면
글 입력 2020.11.11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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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개봉한 영화 <미쓰백>은 가정폭력과 아동학대를 주제로 여성의 연대를 다룬 영화다. 자신과 같은 아픔을 겪고 있는 가정폭력 피해 아동에게 손을 내미는 한 여성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치유와 연대의 가능성을 보여줬던 이 영화의 제목은 이미 많은 이들에게 익숙할 거라고 생각한다.

 

영화와 같은 이름으로 10월 8일 첫 회가 방송된 MBN 예능프로그램 <미쓰백(Miss Back)> 또한 영화와 비슷한 메시지를 전한다. 나인뮤지스, 애프터스쿨, 크레용팝, 달샤벳, 스텔라, 와썹, 디아크. ‘걸그룹 2세대’라 불리는 시기에 데뷔한 수많은 걸그룹 중 더는 그룹 활동을 하지 않는 일곱 팀의 이름이다. 그리고 세라, 레이나, 소율, 수빈, 가영, 나다, 유진. 앞서 나열한 걸그룹에서 활동했던 멤버들의 이름이자, <미쓰백> 참가자들의 이름이다.

 

<미쓰백> 1화에서 멘토 송은이가 “나는 너희들 이름을 최대한 많이 불러주고 싶다”고 말했듯 이 프로그램에서는 그룹명이 아닌 이들의 이름을 재발견하고, 크게 부르고, 대중에게 알리는 것이 중요하다. <미쓰백>의 큰 줄기는 걸그룹으로 활동했던 7명의 참가자가 경연을 통해 자신의 이름으로 된 ‘인생곡’을 찾는 인생곡 프로젝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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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그램명인 ‘미쓰백’은 프로그램의 주축이 되는 ‘2세대 걸그룹’ 멤버였던 7명의 참가자가 다시 일어선다는 프로그램의 취지와 이들의 멘토가 되는 가수 백지영의 존재감을 드러낸다.

 

이 프로그램은 오랜 기간 방송 활동을 쉬었던 출연자들이 다시 무대에 설 수 있도록 적응하는 과정부터 시작한다. 방송은 3회에 걸쳐 출연자들의 일상과 걸그룹 활동을 하며 겪었던 고충을 시청자들에게 보여주고, 송은이, 백지영, 윤일상 세 명의 멘토는 출연자의 사연에 공감하고 분노하며 그들을 위한 조언과 위로를 아끼지 않는다.

 

새로운 ‘인생곡’을 찾아주는 것이 프로그램의 목적이지만, 그에 앞서 먼저 이들이 다시 무대에 서야 하는 이유와, 무대에 대한 열정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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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빠빠>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그룹 크레용팝의 멤버로 활동했던 소율은 2017년 결혼한 뒤 육아와 가사노동으로 바쁘게 일상을 보내고 있는 모습이 공개됐다. 결혼 후에도 항상 무대를 꿈꿨지만 가정이 있어 쉽게 엄두를 내지 못했던 소율은 “누군가의 엄마, 누군가의 아내가 아닌 박소율로서의 자아를 찾고 싶다”고 말한다. <미쓰백>을 준비하며 결혼 후 처음으로 다시 춤을 배우러 학원에 가고, 배운 춤을 출연자들 앞에서 선보이는 소율의 모습은 누구보다 즐거워 보였다.

 

걸그룹 활동이 종료된 후에도 음악에 대한 열정을 이어가고 있는 것은 다른 출연자들도 마찬가지다. 달샤벳으로 활동했던 수빈은 가족들과 함께 사는 집에서 음악 작업을 하는 모습이, 디아크로 활동했던 유진은 보컬 트레이닝 아르바이트를 하며 열정적으로 노래를 가르치는 모습이 전파를 탔다.

 

소녀시대, 원더걸스의 등장 이후 수백 팀의 걸그룹이 탄생하고 지금까지도 무수히 많은 걸그룹이 만들어지고 있지만 그중 대중의 주목을 받는 그룹은 극소수라는 점, 또한 대중의 주목을 받는다고 해도 걸그룹 산업, 나아가 대중문화 산업 전체가 가진 문제점인 짧은 수명 탓에 활동을 오래 이어갈 수 없다는 점은 무대 위에서 마냥 빛나 보이는 걸그룹 세계가 가진 어두운 이면이다.

 

아이돌 산업이 가진 문제는 짧은 수명뿐만이 아니다. 아이돌을 철저히 상품화하고, 대중의 관심을 끌기 위해 자극적인 컨셉을 내세우는 것 또한 심각한 문제다. 미성년자인 멤버들이 가터벨트를 착용하고 뮤직비디오를 촬영하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던 세라와 사전 합의 없이 수영복 의상을 입고 촬영한 사진이 앨범에 실려 ‘노출 그룹’이라는 꼬리표에 시달려야 했던 가영의 이야기는 아이돌 산업의 폭력성을 여실히 보여준다.

 

가수라는 꿈을 위해 아이돌에 도전했지만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는 ‘을’의 위치에서, 성공해야 한다는 명목하에 당연한 것으로 여겨졌던 폭력을 감내해야 했던 이들에게는 걸그룹 활동이 크나큰 상처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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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의미에서 <미쓰백>은 단순 경연 프로그램보다 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출연자들이 자신이 원하는 모습으로 무대에 설 기회를 제공할 뿐 아니라, 걸그룹 산업의 폭력성과 불공정성에 문제를 제기하고, 분노하고, 감정을 나누며 과거의 트라우마를 극복할 수 있는 장(場)을 마련한다.

 

출연자들은 자신과 같은 상처를 가진 이들을 통해 위안을 얻고,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받으며 다시 무대에 설 힘을 얻는다. 3화에서는 ‘버리고 싶은 과거’와 ‘꿈꾸는 미래’라는 두 가지 주제로 프로필 촬영을 하는 장면을 통해 트라우마로 남은 과거와 마주하고, 그것을 극복하고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물론 이들의 가슴 아픈 사연이 프로그램의 중점은 아니다. 4,5화에서는 첫 번째 인생곡인 <투명소녀>를 두고 경연하는 모습을 통해 출연자들의 개성과 음악적인 역량을 보여줬다. 무대를 준비하는 과정에서도 서로를 적극적으로 돕는 모습은 한 그룹처럼 보이기도 했다.

 

지금까지의 <미쓰백>이 출연자들이 걸그룹으로 살아온 시간과 그 고충을 보여주었다면, 앞으로의 <미쓰백>은 자신의 이름으로, 자신이 원하는 모습으로 무대에 서는 모습을 보여줄 거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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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혜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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