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을지로'라는 드라마는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까 - 을지판타지아展 [시각예술]

<을지드라마> 관람기
글 입력 2020.11.08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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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부터 ‘힙지로’라 불리며 젊은 층의 사랑을 받기 시작한 을지로는 이전부터 미술작가, 디자이너, 기획자 등 젊은 예술가들이 자리를 잡고 전시공간과 상점 등을 운영해왔다. 입소문을 타고 확장된 ‘힙지로’의 영향력은 단순한 상권 조성을 넘어서서, 을지로에서 여가 소비 이상의 다양한 문화예술 활동들을 가능하게끔 했다. 그러면서도 또한 을지로는 여전히 재개발을 비롯한 다양한 이슈와 갈등이 충돌하는 현장이기도 하다.

 

「을지판타지아」展은 2020년의 을지로를 도심 산업 현장과 예술이 만나는 플랫폼으로서 조명하고자 한다. 크고 작은 철공소가 자리잡은 산림동 일대는 여전히 돌아가고 있는 산업의 최전선이지만, 좁은 골목 사이를 거닐며 우연히 마주치는 낯선 장면과 예술 작품들은 관객들이 일상을 새롭게 감각할 수 있도록 안내할 것이다. (보도자료)

 

 

을지로 산림동 일대에서 「을지판타지아」展이 열리고 있다. 3개의 전시로 구성된  「을지판타지아」展은 을지로를 “도심 산업 현장과 예술이 만나는 플랫폼”으로서 조명한다. 서로 다른 풍경이 공존하는 드라마틱한 을지로를 미술적 언어로 풀어낸 <을지드라마>, 을지로 일대 건물 외벽을 작품으로 감싸 색다른 도심 풍경을 제안하는 대형 옥외 전시 <을지산수>가 함께 열리고 있다. 지난 10월 17일 밤에는 <을지판타지아 : daydream>이 단 하루 동안 꿈처럼 반짝이듯 펼쳐졌다. 그중에서 이번 리뷰는 을지예술센터에서 열리고 있는 <을지드라마>에 초점을 맞추어 보려 한다.


장인의 흔적이 짙게 묻어난 도심 제조업 현장이라는 오랜 정체성과 트렌디한 감성이 공유되는 감각적 공간이라는 새로운 정체성이 오늘날 을지로 위에 교차되고 있다. 앞선 세대에겐 삶과 도시를 일으킨 노동의 장소로, 새로운 세대에겐 색다른 감각을 경험할 수 있는 장소로. 누군가의 삶의 일터인 동시에 다른 누군가에겐 ‘힙지로’로 존재하는 을지로. 낮과 밤을 오가며, 장인들과 젊은 힙스터들이 오고 가는 을지로. 그렇게 서로 다른 일상의 결이 옹기종기, 왠지 모르게 성긴 부분 없이 촘촘히 서로 뺨을 맞대며 건너지른다. 과거와 현재, 흔적과 새로운 스며듦, 익숙한 일상과 낯선 일탈이 오늘날의 을지로에 공존한다.


나는 이번에 을지로를 처음 가보았다. 지하철로 ‘을지로0가역’을 지나치곤 했으나 내린 적은 없었다. 조금 아이러니한 것은 나의 첫 을지로가 을지로다운 제조업 현장의 소음 가득한 을지로가 아닌 고요한 주말의 을지로였다는 것이다. 게다가 한동안 오지 않던 비가 억수로 쏟아지는 날이었다. 그렇게 물소리가 가득한, 왠지 정말 한 폭의 도시 산수처럼 서정적인 을지로가 나의 첫 을지로가 되었다.


을지로4가역 10번 출구로 나오니 도로 건너편으로 건물을 크게 감싼 회화 작품이 바로 눈에 띄었다. 보통 전시회는 사람이 먼저 찾아가거늘, <을지산수>는 자신이 먼저 사람을 찾아왔다. 빗물 속에서 우산 너머로 신호등 신호를 기다리며 가만히 그림을 살펴보았다.  「을지판타지아」展은 이미 그렇게 시작되고 있었다.


갑자기 많이 쏟아지는 비에 잠시 보았던 지도를 겨우 떠올리며, 골목길을 조심스럽게 가로질렀다. 탁한 색의 철제문들이 굳게 닫힌 골목. 중간중간 철제문 위에 그려진 그림들이 유독 우중충한 공기 속에서 더 낯설게 번뜩이는 것만 같았다. 곳곳에 드리워진 처마 위에서, 파이프 구멍에서 물줄기가 아스팔트를 한 겹 파내려는 듯 세차게 쏟아졌다. 이미 그 자체로 보기 드문 을지로의 ‘산수’ 속을 거닐고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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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코 걷다 보니 큰 창고가 나타났다. 올려다보니 비바람에 살풋 접힌 전시 현수막이 보인다. 잘 찾아왔다. 창고 입구 앞에는 전시를 보러 온 듯한 누군가가 핸드폰을 화면을 보며 들어가기를 망설이고 있었다. "전시회" 하면 연상되는 공간과 너무 다른 장소이긴 했다. 주말이라 온통 불까지 꺼져있으니 더 낯설게 느껴진다. 하지만 이런 상황이 익숙한(?) 나는 우선 비를 피하려고 창고에 들어섰다. 조명 하나 없이, 게다가 햇빛조차 없이 나타난 고요한 창고 풍경이 주는 쿰쿰한 생경함이 나를 반겼다. 잠시 두리번거리다 전시 포스터가 붙은 기둥을 찾아 그 앞에 하얀 문발이 드리워진 계단을 올라갔다. 내가 아무렇지 않게 손으로 거둬낸 문발은 박슬기 작가의 <바 람 난 사람>이었다(계단을 올라가는 동안 3점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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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슬기, 바 람 난 사람, 2019

 

 

"작가가 한 땀 한 땀 실로 그려낸 ‘바 람 난 사람’의 텍스트는 일탈을 의미하기도 하고 사람이 사람을 사람처럼 대하기를 바라는 ‘바람’을 나타내기도 한다. (전시 서문)"

 

계단을 끝까지 올라가면 크림색 벽 위 김한샘 작가의 <인도자의 환영> 속 캐릭터가 “Welcome”이라 창을 띄우며 인사를 건넨다. 갑자기 장소의 ‘장르’가 게임으로 바뀐 듯한 기분이 드는 동시에 잘 찾아왔다는 확신이 든다. 잠시 스태프를 통해 코로나19 예방 절차를 거친 후 간단한 전시 설명을 들었다. 그리고 좌우로 오고 가는 선풍기 바람에 솨르르 일렁이는 신단비 작가의 <윤슬>을 시작으로 작품 하나하나를 만나기 시작했다. 여기서는 몇몇 작품에 대한 감상을 잠시 나누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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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단비, 윤슬, 2019

 

 

: 햇빛 혹은 달빛이 비치어 반짝이는 잔물결을 의미하는 ‘윤슬.’ 신단비 작가의 <윤슬>은 단어 의미 그대로 빛에 반짝이는 수면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 수면은 수천 장의 종이에 담겨 선풍기 바람에 조용히 사각거리며 일렁이고 있었다. 그것은 우리가 쉽게 기대하거나 떠올릴 수 있는 ‘윤슬’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것을 바라보는 눈은 수면, 빛, 바람을 모두 인식하고 있으니 분명 ‘윤슬’이기도 했다. 수천 장에 빼곡히 강박처럼 반복되어 인쇄된 윤슬. 그렇게 바람을 맞으며 ‘일렁이기’까지 하는 <윤슬>. 이토록 윤슬을 고스란히 담아낸 것은 처음 보았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짜 윤슬이 될 수 없는 <윤슬>이 왠지 쓸쓸하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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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기종, 프로젝트: 자연모방의 어려움, 2017-현재

 

 

: <프로젝트 : 자연모방의 어려움>은 공간 전체가 하나의 작품이었다. 마치 생태학자의 연구실을 보는 듯한 <자연모방의 어려움>은 박제 작업을 진행하는 것으로 보이는 테이블을 중심으로, 낚시에 사용하는 플라이 훅(Fly Hook), 채집 기록 사진과 영상, 물고기를 사실적으로 묘사한 그림, 채집되어 병에 담긴 곤충 등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공간은 온통 박제되고 기록된 자연의 향연이었다"라고만 말하기에는 왠지 이질적이었다. 왜냐하면 진짜 곤충인 마냥 자연을 담은 기록 사이에서 아무렇지 않게 전시된 플라이 훅 때문이다(나는 처음에 이것이 실제 곤충을 박제한 건 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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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체 간에 놓인 모종의 체계를 생각하게 되는 작품이었다. 하위 개체인 곤충을 인위적으로 모방한 플라이 훅을 이용해 상위 개체인 실제 물고기를 얻어내는 그 상위 개체인 인간. 하위 개체가 상위 개체에게 포위되는 흐름은 꽤나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낚시라는 행위 역시 흔한 인간의 행위이다. 익숙한 구조와 행위로 나타난 <자연모방의 어려움>은 미묘한 지점에서 그 익숙함을 낯설게 드러내고 있었다.


“<자연모방의 어려움>은 절묘한 모방들로 실제를 얻어내는 과정에 머무르지 않고 인류가 생존을 위해, 혹은 놀이를 위해 발전시킨 기술에 대한 교묘함과 예술에 대응하여 진실과 사실을 추구하고 탐색하는 사고의 경로이다(전시 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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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찬, CREATURE, 2020

 

 

: ‘쉬익- 쉬익’거리며 거친 공기 소리같은 소음을 내던 주인공을 발견하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제목 그대로 무어라 표현하기 어려운 ‘크리쳐’가 몸을 부풀리고 수축하며 ‘호흡’하고 있었다. 크리쳐가 제 몸체를 밀어 넣은 공간으로 뻗쳐나온 촉수를 피해 조심히 다가가 보았다. 은빛으로 빛나는 몸 주변으로 번쩍이는 형형색색의 조명을 받으며 호흡하는 크리쳐의 모습이 주는 위압감은 상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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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크리쳐를 이루는 재료는 작은 날카로움에도 금방 구멍 나버릴 플라스틱 비닐과 어디선가 흔히 본듯한 구슬 끈에 불과했다. ‘바람’이 모두 빠져나가면 얼마든지 접혀서 상자에도 단번에 담겨버릴, 작은 불씨로도 금세 사라져버릴 그런 크리쳐였다. 그렇게 제 겉(위압감을 일으키는 모습)과 속(결국 연약한 재료로 이루어진)을 다 드러내면서도, 크리쳐는 자신의 ‘겉’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서슴없이 호흡하며 그 아우라를 뿜어내는 것만 같았다.

 

전시 현장에선 크리쳐의 기괴함에 압도되어 작품의 주제라는 ‘자본의 생태계’라는 코드가 단번에 이해되지 않았었다. 온 감각으로 전해지는 압박감에 생각할 겨를이 없었던 걸까. 하지만 작품 앞에서의 이런 경험 자체가 어쩌면 ‘자본의 생태계’ 앞에서 우리가 느끼는 무엇인가와 닮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병찬은 자본의 생태계를 주목해 왔다. 일회용 플라스틱으로 구성된 크리쳐 작업의 팽창과 사물에 대한 집착으로 만들어진 기복적 형태이며 자본이라는 보이지 않는 물질을 시각화하고 있다.(전시 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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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지예술센터 옥상에서 바라본 <을지산수> 일부

 

 

을지예술센터는 처음부터 예술을 위해 지어진 공간이 아닌, 기존의 창고 건물을 예술의 장으로 탈바꿈한 곳이다(이 자체로도 ‘을지로답다’는 생각이 든다). 예술적 공간이 되기 이전에 다른 맥락으로 존재했던 구조 위에 작품들이 저마다의 서사를 가지고 전시된다. 관람객인 나는 묵직한 커튼을 거둬내고, 문과 문 사이를 오가고, 다리를 올리고 내리며 턱을 넘어가고, 옥상으로 향하는 가파른 철제 계단을 오르며 작품들을 만난다.

 

매끄러운 이동이라기보다는 적극적인 몸짓으로 공간을 전환해야 하는 움직임이 <을지드라마>를 배회하는 사이에 계속해서 일어났다. 그래서 만약 관람객이 전시를 읽는 독자라면 <을지드라마>는 한 권의 전시회를 위해 구성된 작품을 한 장 한 장 넘겨 읽는 것이 아니라, <을지드라마>라는 책꽂이에 담긴 여러 권의 작품 한 권 한 권을 펼쳐 읽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을지로라는 장소성 위에서 흘러가는 <을지드라마> 속 작품들은 그렇게 서로 연결된 듯 혹은 그저 그 자체로 오롯이 존재하는 듯 한데 모여있었다.


전시가 전개됨에 따라 작품마다의 서사가 마음 한 켠에 하나씩 쌓여가는 것이 꼭 을지로가 제 공간으로 다가온 서로 다른 맥락들을 아우르며 존재하는 모습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의 서사(혹은 맥락)를 끈으로 비유한다면, 을지로는 서로 다른 끈들이 하나하나 덧대어지고 교차하는 모습이 떠오른다. 각각의 끈으로 오롯이 존재하는 상태로 서로 교차하고 건너지르며 어떤 덩어리를 형성해낸 을지로. 그렇게 생각하자니 <을지드라마>도 그러한 을지로라는 도시가 형성되는 방식과 닮은 방식으로 펼쳐진 전시라는 생각이 들었다.


서로 다른 맥락의 끈들이 얽혀 만들어진 을지로는 끄트머리를 매듭짓고 남은 실을 잘라낸 완성이 아닌, 여전히 짜이지 않은 끈과 곧 짜여질 새로운 끈이 들어올 지점들을 남긴 채 존재하는 것 같다. 계속해서 짜이고 새로워질 가능성을 가지고 존재하는 것이다. <을지드라마>라는 예술적 맥락을 통해 을지로를 사유하게 된 관람객들은 그 가능성을 새로이 저마다의 방식으로 엮어보는 주체가 그 순간에 잠시 되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을지로라는 드라마는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까. 이 드라마가, 을지로가 지닌 이 특별한 장소성이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이후로도 계속해서 새롭게 이어질 것이라면, <을지드라마>를 감상한 나는 그런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는 것 같다.


 



 

+

 

 「을지판타지아」展 정보

 

일시:

2020년 10월 16일(금) ~ 11월 14일(토)

 

운영시간:

12:00 ~ 21:00

(공휴일 및 월요일 휴관)

 

전시 현장 관람은 선착순 사전 예약제로 접수 받고 있다. 네이버에서 <을지판타지아>를 검색 후, 전시 관람 또는 도슨트 사전 예약을 신청하면 된다. 방역지침을 준수하여 회당 관람인원은 50명으로 제한한다. 매일 저녁 7시에는 을지로 4가 일대 지역과 전시에 대한 이해를 돕는 무료 도슨트 투어 프로그램도 진행한다. 온라인 사전예약을 우선으로 하며, 공석이 발생할 경우 현장 접수가 가능하다.


전시가 열리는 을지아트센터는 실내는 관람객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고려하여 전시 기간 동안 매일 방역 소독을 실시하고 입구에 손소독제를 비치해두는 등 위생 관리에도 만전을 기하고 있다. 입장을 원하는 모든 관람객은 마스크를 필수로 착용해야하며 거부할 시 관람이 제한된다.

 

 

[오예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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