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우리는 연결되어 있습니다 [동물]

글 입력 2020.11.08 1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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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페스코 베지테리안을 만났다. 채식주의에는 여러 유형이 있는데 그중 페스코는 육류를 먹지 않고 생선까지만 허용하는 단계다. 채식하는 분을 미디어에서는 꽤 접했지만 실제로 만나는 것은 처음이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나와 내 친구들이 그분의 식사를 여러 끼 책임져야 하는 상황이었다. 식당을 예약할 때 은근 제약이 많았다. 제육볶음, 돈가스, 닭볶음탕 이런 것들은 가볍게 넘겨야 했다. 결국 우리가 찾은 곳은 한식 뷔페다. 최소 10가지가 넘는 다양한 반찬 중에 그분이 드실 수 있는 게 몇 개라도 있겠지 하는 마음에서였다.

 

 

[포맷변환]비건.jpg

 

 

 

'비건'으로 사는 건 주변에 피해를 준다고?


 

그런데 갑자기 같이 식당 예약을 담당한 친구가 볼멘소리를 했다. 한 번이면 몰라도 대여섯 번 밥 먹을 때마다 그분을 신경 쓰려니 번거롭고 귀찮다는 것이었다. 왜 개인적인 신념으로 다른 사람이 피해를 봐야 하냐고 이야기를 했다. 동경심이었는지 정의심이었는지는 몰라도 그분을 지켜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친구의 말을 “그래도 다양성은 존중해야 하지 않겠냐”고 반박했다. 다양성. 이것 말고는 다른 말이 떠오르질 않았다. 머릿속을 헤집어봐도 내게 채식주의를 제대로 변호할 지식은 없었다.

 

아쉬운 변호가 끝나고, 며칠 뒤 집에서 적당히 시간이나 때울 겸 넷플릭스를 켰다. 평소라면 메인화면에서 한참을 고민했겠지만, 본능적으로 다큐멘터리 카테고리에 들어갔다. 그리고 검색창에 ‘채식주의’라는 단어를 채워 넣었다. 생각보다 많은 영상이 키워드를 타고 등장했다. 직감적으로 가장 끌린 <몸을 죽이는 밥상>을 재생했다. 이 다큐멘터리는 음식에 대한 상식을 모조리 파괴했다. 진행자는 몸에 좋으리라 생각했던 고기가 오히려 건강에 독이 된다고 했다. 심지어는 해산물도, 우유나 계란도 몸에 좋지 않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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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위한 비건, 모두를 위한 비건


 

내용은 이게 끝이 아니었다. 항생제가 잔뜩 투여된 육류를 먹는 것은 결국 항생제를 먹는 격이고, 육류 섭취는 당뇨의 원인이라고 했다. 특히 소는 키우는 데 식량도 많이 들고, 식량을 재배하는 농장을 만들기 위해 자연이 파괴되며, 소 입에서 나오는 메탄가스는 오존층을 뚫는다고도 했다.

 

다큐멘터리에는 우유는 송아지들을 위한 것이지 인간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말도 나왔다. 굳이 인간이 지방 함량도 높고 소화 장애를 낳는 유제품을 먹을 이유가 없다는 말에 충격을 받았다. 지금까지 배우고 습득해온 ‘지식’이 올바른 것이 맞는지 의문도 들었다.

 

<몸을 죽이는 밥상>을 다 보고 나서 책을 한 권 주문했다. 비건에 대한 오해를 정리한 부분이 돋보이는 <아무튼, 비건>이라는 책이다. 저자 김한민은 “비건의 핵심은 거부가 아닌 연결에 있다”고 했다. 어쩌면 이게 내가 찾던 변호의 말이었다.

 

생각해보니 참 그렇다. 스님들이 고기 없이 사찰음식을 먹는 이유도 모두 연결되어 있다는 믿음 때문이지 않는가. 이렇게 보면 비건은 새롭게 뜨고 있는 트렌드나 흐름이 아니다. 우리가 나은 세계를 위해 점진적으로 실천해야 할 것이다.

 

 

 

1명의 완벽한 비건보다 10명의 느슨한 비건


 

비건을 단순히 고기를 거부한다는 차원에서 이해하면 안 된다. 동물과 나, 자연과 나, 세계와 나 사이에 놓여있는 선을 무심결에 지나치는 것이 아니라 지켜보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고통받는 동물이나 산림이 파괴되는 현장을 볼 때 눈 감고 모른 척하지 않는 것이다.

 

사실 완벽한 비건이 조금 느는 것보다 고기를 덜 먹는 사람이 많아지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그러니까 당장 고기를 먹지 말고, 아예 동물성 제품을 쓰지 말자는 것이 아니다. 조금씩 실천해 나가자는 것이다. 다 함께 고기 소비만 줄여도 지구는 달라질 것이다.

 

 

"참 피곤하게 사네."

"너 혼자 그런다고 변해?"

"세상은 하루아침에 변하지 않아."

 

<아무튼, 비건> 中

 


겨우 나 한 사람 동참한다고 뭐가 바뀌겠냐는 말은 지구는 절대 되살릴 수 없다는 말로 치환된다. 혼자사는 세계가 아니라는 것, 푸른 지구에 발을 딛고 선 모두가 소중하다는 것, 사람에 대한 상상력을 전 지구로 확장해 나가는 것. 이것이 우리가 알아야 할 진실이자 풀어내야 할 숙제다.

 

*


고기를 안 먹으면 불편하기도 하고 신경 써야 할 부분이 많다. 그렇다고 남들에게 피해를 준다고 생각하지 말자. 불편함이 쌓인 무게로 가속되는 지구 온난화에 조금이나마 제동을 걸 수 있다. 나를 위해서, 그리고 당신을 위해서. 우리는 연결되어 있으니까.

 

 

[임채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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