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욕심쟁이 시선에서 바라보면 - 당신은 책과 눈이 맞아본 적이 있습니까? [도서]

글 입력 2020.11.05 13:42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1889676345_1uSDmsX9_thinking.jpg

 

 

나는 욕심쟁이다. 다소 진부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어렸을 때부터 책을 좋아했다. 우리 할아버지는 내가 천재인 줄 알았다고 한다. 글자도 못 읽는 어린아이가 책을 똑바로 들고 읽는 척 흉내를 내어서.

 

책에 대한 집착과 욕심이 강했다. 자기 전에는 무조건 책을 한 권 읽고 자야 했다. 디지털에 홀리기 전에는 책을 항상 끼고 다녔다. 2주 동안 다 읽지도 못할 거면서 도서관에서 내가 읽고 싶은 책을 엄마와 아빠 도서관 카드까지 동원해서 무작정 많이 빌리곤 했다. 그렇게라도 많은 책을 내 곁에 두는 게 마음이 편했다.

 

책에 대한 사랑은 여전하다. 책에 대한 욕심은 어릴 때부터 이어진 오래된 나의 버릇이 되어 도서관만 가면 그렇게 한도 수를 맞춰 꽉꽉 빌린다. 진실인지 거짓인지 알 수 없는 정보의 바다에서 허우적대기보다는 일일이 눈을 맞춰가며 책으로 정보를 찾는 일이 아직은 더 좋달까.

 

물론 예전만큼 그 사랑이 남다르지는 않다. 한해를 거듭할수록 사회가 점점 디지털화될수록 컴퓨터에 시선이 뺏긴 나는 책과 조금씩 멀어지기도 했다. 그런데도 용수철처럼 튀어 올라 다시 책으로 향했다. 도서관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책이 주는 매력의 울타리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영상과 이미지의 시대에 책이란, 텍스트는 어떤 의미를 지닐까. 유튜브를 보는 게 일상인 Z세대들이 책의 매력을 알아주길 바랐다. 책을 사랑하는 덕후의 마음을 바라봤을 때 정말 사랑에 빠질 것만 같은 책이 나타났다.

 

당신은 책과 눈이 맞아본 적이 있습니까?

 

호기로운 질문이었다. 당연히 내 대답은 완전한 긍정이었다.

 

네!!!!!!!!!!!!!!!!!!!!!

 

프롤로그부터 에필로그에 이르기까지 저자가 말하는 모든 말에 수긍하게 되었다. 이거야! 머릿속에 내재하여 있던 생각들이 답답함을 이기지 못하고 튀어나오는 기분이었다. 재밌고 즐거웠다. 책을 사랑하는 욕심쟁이 시선에서 이 책을 마주하는 건 마치 몇십 년 동안 못 봤던 오래된 친구를 만나는 심정이다.

 

인용하고 싶은 문구가 많으나 몇 개를 추려 소개한다.


 

이제 책의 끝 장을 향해 옮겨가는 모습을 상상하며 책장을 넘기는 소리를 들을 때의 안도감과 다 읽어간다는 확신은 깊은 만족감의 물결을 치게 만든다. 조용하지만 책장 넘기는 소리는 침묵을 뚫고 허공으로 날아간다. 책과 눈이 맞은 독자는 책 속으로 빠져 들어가 책을 읽어버린다.

 

- 10P

 

 

이 책의 포문을 알리는 프롤로그에 이런 내용이 나왔다. 단숨에 결정했다. 저자가 의도했던 대로 이 책과 사랑에 빠지기로 결심했다. 책의 중심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그 무게감이 이동함에 따라 점점 더 끝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기대감을 표현한 이 문장들의 향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1부, 일상과 사유: 사소한 일상에서 비상하는 사유가 탄생된다>에는 공감이라는 키워드가 나온다. 시적이다. 이 책을 통해 일부분만 소개되었지만 꼭 한번 읽어보고 싶은 욕구가 샘솟았다.

 

 

공감 받으면 마음에 봄이 온다. 강물이 꽁꽁 얼었을 때 얼음을 깨겠다고 망치와 못을 들고 나선다면 어리석다. 망치와 못을 들고 나서는 것은 판단, 평가, 설득 같은 계몽을 하는 일이다. 힘만 들지 온 강의 얼음을 다 깰 수는 없다. 봄이 오면 강물은 저절로 풀린다. 공감은 봄을 불러오는 일이다.

 

- 정혜신 <당신은 옳다> (2018)

 

 

공감을 한다는 건 억지로 끌어내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서 진심으로 우러나옴을 얘기하는 듯하다. 성급하지 않고 기다렸다 그 마음이 느리게라도 나한테 왔을 때 공감은 이루어진다.

 

다 좋았지만 난 유난히도 4부에 소개되었던 책들이 계속 눈길이 갔다. 그동안 기회가 되면 꼭 읽어봐야지 하고 넣어뒀던 나의 독서 희망 목록에 있던 책들도 보였기 때문이다.

 

수잔 손택의 <타인의 고통>과 프리드리히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내용의 일부가 등장했다. 한참 타자와 타인이라는 단어에 꽂혀 고통과 결부시키면 얼마나 가슴 아픈 결과를 가져오게 되는지 깨닫던 시간이 있었다. 그 시간을 간직한 채 <타인과 고통>은 꼭 읽어야 하지 다짐했었다. 여기서 만나서 왠지 반가웠달까.

 

 

연민은 타자의 고통에 감정을 이입해서 같이 아파하는 감정이 아니다. 오히려 연민은 타자가 겪는 고통스러운 상황으로부터 나는 벗어나 있다는 일종의 안도감이나 만족감의 표현이다. 연민의 감정을 느끼는 현대인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타인이 겪고 있는 고통은 나로 인해서 발생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나는 아무런 책임도 없다고 생각하며 발을 빼려는 뻔뻔한 감정이라는 데 있다. 연민은 타자의 고통에 나는 아무런 죄가 없다는 무죄증명의 표식일 뿐이다.

 

- 248P

 

 

냉혹한 분석이다. 평소 연민에 대한 감정에 호의적이었던 나의 태도를 180도 바뀌게 했다. 연민을 느낌으로써 사회의 문제를 사회의 구성원 모두가 자각하고 헤쳐나가야 함을 망각하고 단지 이 감정을 느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나는 윤리적인 사람이라고 치부하는 거나 다름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사람은 다른 사람을 미소 짓게 만드는 사람이다. 힘든 삶을 살아가면서 나름 최선을 다하지만 늘 기대에 못 미쳐 속상한 사람에게 잠시 삶을 돌아보는 여유를 갖고 미소 짓게 만드는 깨달음의 유머를 제공하는 사람이야말로 체험적 지혜를 지닌 사람이다.

 

- 315P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내용을 언급하며 주장했던 문장들이다. 신체는 참 신비롭다고 느끼는 게 웃음이라는 표정이 신체에 긍정적인 효과를 불러일으키다니. 웃는다는 건 주변을 화사하고 행복하게 만드는 힘임을 또 깨닫고 간다.

 

책 뒤표지에도 쓰여 있듯이 궁극적으로 독서를 하고 글을 쓰는 행위가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를 저자는 힘주어 주장한다. 이에 나는 격하게 동의하는 바이고 사유의 중요성은 몇 번을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음을 말하고 싶다.

 

책과 사랑에 빠졌던 순간을 소개하며 종이에 찍힌 문장들이 온전히 자기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의미를 관통하는 사유의 세계에 빠져야 하며 그 사유가 제대로 발현되기 위해서는 글쓰기의 힘이 필요하다. 이 책이 그렇게 해야 함을 면밀히 보여주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이 책의 리뷰를 쓰는 것도 사유의 한 자락이 될 수 있다. 읽기의 길이가 길어지면 글을 쓰는 길이도 길어진다. 나는 얼마만큼 이 책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있는가? 문득 독서라는 행위의 숭고함을 마음속 깊숙이 묻어두고 싶어졌다.

 

 

당신은 책과 눈이-입체표지.jpg

 


[이지윤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19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