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책을 읽고 나면... - 당신은 책과 눈이 맞아본 적이 있습니까?

글 입력 2020.11.03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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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책을 샀다. 새 책이 주는 기대와 설렘도 잠시 고민이 몰려온다. 이거 어디에 꽂아두지? 자취방의 책꽂이는 이미 책과 잡동사니들로 꽉 찼다. 아무래도 몇 권을 뽑아 본가에 가져다 놔야 하나 싶다. 그런데 본가도 사정은 비슷하다. 책꽂이 공간이 모자라서 몇몇 책은 서랍장에 보관해두고 있다. 스무 살 때부터 하나둘씩 사 모으던 책들이 책꽂이 하나를 가득 메우더니, 기존에 꽂혀 있던 책들의 자리까지 노린다.

 

그래서 EBOOK을 읽어볼까 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이책에 대한 나의 소유욕은 도무지 그칠 줄을 몰랐다. 이유는 간단하다. 책이란 단순히 텍스트를 엮어 놓은 산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종이책을 읽는 순간에 우리는 온몸으로 책과 소통한다. 눈으로는 활자를 읽고, 귀로는 책장이 넘어가는 소리를 듣는다. 손으로 표지를 쓰다듬고, 코로는 종이와 잉크의 냄새를 맡는다.

 

따라서 좋은 책은 읽는 것을 넘어 물성 자체를 소유해야 한다. 바로 이게 내가 책과 눈을 마주하는 방식이다. 내가 생각하는 독서의 낭만이다. 종이책을 손에서 놓지 못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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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책과 눈이 맞아본 적이 있습니까?>는 지식생태학자 유영만이 쓴 18편의 독서 일기다. <당신이 옳다>, <무관심의 시대>, <숨그네> 등을 읽으며 저자가 책과 함께 마주한 행복의 순간들과 사유의 흔적들을 빼곡하고 촘촘하게 엮었다. 여기서 제시된 모든 글은 책에 빠졌던 독자가 다시 자신의 삶으로 빠져나와 저자가 되어 지식을 창조하는 독서법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체험적인 기록이다.

 

물론 <당신은 책과 눈이 맞아본 적이 있습니까?>가 쉬운 책은 아니다. 단순히 책을 소개하는 글이 아니라 책을 읽고 떠오른 사유들을 토로하는 글이기 때문이다. 만약 여기서 등장하는 책들을 미리 읽어보지 않았다면 내용을 이해하기가 더 힘들 수도 있다.

 

또한 생각을 다루는 책이다 보니 관념적이고 철학적인 표현들이 많아 잘못하면 문장들 사이에서 길을 잃기가 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페이지 곳곳에 서린 책을 향한 저자의 애정과 삶에 대한 치열한 고민을 따라가다 보면 이 책을 손에서 놓기가 힘들어진다.

 

흥미로운 건 각기 다른 책을 다루는 18편의 에세이들이 언뜻 보면 서로 분리된 것 같지만 사실은 긴밀하게 짜여 있다는 점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을 읽다 보면 크게 4부로 이루어진 18편의 에세이가 아니라 4개의 각기 다른 이야기를 읽는 듯한 기묘한 느낌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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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저자는 정혜신 작가의 <당신이 옳다>를 읽고 쓴 첫 번째 에세이에서‘공감’에 대해 이야기를 꺼낸다.

 

 
"공감은 상처를 드러낼 수 있게 만들고 제대로 드러난 상처 위에서 녹아드는 연고다. 상처 위에 바로 스민다. 상처 부위를 덮고 있는 겉옷 위에 뿌리는 분무제가 아니라 옷을 젖히고 상처 난 바로 그 부위 맨살에 바르는 약이다." (P.18)
 

 

정혜신 작가는 의사로서 일하면서 환자를 치료해야 할 대상으로만 볼 뿐, 아무런 공감을 시도하지 않았던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한다. 그 경험을 읽으며 저자는 김훈 작가의 한 문장을 떠올린다. ‘나는 나의 병을 객관화하지 못하고, 대상화하지 못한다. 그러나 젊은 의사는 기어코 나의 병을 객관화하고 대상화하려고 덤빈다.’

 

결국 이를 통해 저자가 주목하는 건 공감의 부재다. 저자가 생각하기에 오늘날 우리의 공감 능력은 조금씩 사라지고 있다. 대신 그 공감을 외주화한다. 생각은 학원에, 몸은 체육관에, 병은 의사에게 맡기면서 정작 내 몸과 나의 감정과 소통할 기회는 사라져 간다. 하지만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 주는 전문가의 대부분은 나의 존재에 주목하지 않고, 내 아픔에 마음을 포개지 않는다. 그 속에서 우리는 더욱더 외로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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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악순환이 반복되다 보면 우리는 스스로를 넘어서 타인과 교감할 기회조차 갖지 못한다. 알렉산더 버트야니의 <무관심의 시대>를 읽고 쓴 에세이에서 저자는 공감의 부재는 무관심을 불러온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무관심은 나와 타인 사이에 놓인 차이에 주목하지 않게 만든다. 그리고 주목하지 않음은 결과적으로 이해와 공감의 부재로 회귀한다.

 

 
“무관심은 삶에 대한 열망을 절망으로 바꿔 놓고 관망하는 자세로 매사에 대한 관심의 끈을 끊어 놓게 만든다.” (p.36)

“무관심이란 모든 자발성과 이상, 책임감으로부터 만들어지는 더 나은 미래에 대한 모든 믿음을 파괴한다.” (p.36)
 

 

한 해 사고로 인한 사망자보다 자살로 인한 사망자가 더 많은 현실에 그가 쓴 두 편의 에세이는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만든다. 어쩌면 지나친 비약일지도 모르지만 또 모르지, 나비효과란 말도 있으니까.

 

 
“고통에 진심으로 주목하는 사람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것, 그것이 치유의 결정적인 요인이다. 말이 아니라 내 고통을 공감하는 존재가 치유의 핵심이다.” (p.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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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당연히 있다. 타인에 대한 관심과 반응이 바로 그 해결책이다. 그리고 이를 이야기하기 위해 저자는 헤르타 뮐러가 쓴 <숨그네>를 꺼내든다.

 

<숨그네>는 제 2차 세계대전 이후, 소련의 강제 수용소로 가게 된 독일 소년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수용소 이야기를 그린 작품답게 그 안엔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비극들이 가득하다. 다만 흥미로운 건 이렇게 비극적인 상황을 다루는 문학 치고, 책에 등장하는 모든 문장이 미학적으로 백미라는 것이다.

 

 
“상황은 처참했다. 문자는 아름다웠다. 나는 비극은 시의 옷을 입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처참함을 고발하기 위해서는 비극은 시의 옷을 입어야 한다는 것, 그것이 내 문학의 명예였다.” (p.58)
 

 

보통 이런 배경을 다루는 대부분의 작품은 담담한 문체로 내부의 비극을 전달한다. 이를 통해 독자로 하여금 문장과 소설 속 풍경의 대비를 느끼게 하여 안타까움과 탄식을 극대화한다. 반면 아름다운 문체는 그것을 뛰어넘어 독자를 수용소의 한 가운데로 데려다 놓는다. 마치 옆에서 들려오는 듯한 숨 막히는 실재감을 느끼며 독자를 수용소에 갇힌 사람들과 스스로를 동일시 시킨다. 말하자면 동기화, 공감을 이루어 내는 셈이다.

 

 
“공허한 관념적 주장보다 구체적으로 피부에 와닿는 주장이라야 피부를 넘어 폐부를 파고든다. 생활, 즉 삶이 활기를 띠려면 개념어보다 구체적인 실천 언어를 사용해야 한다.” (p.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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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당신은 책과 눈이 맞아본 적이 있습니까?>의 각 에세이들은 느슨하지만 분명한 인과관계를 갖는다. 그리고 그 인과 관계는 읽는 독자로 하여금 생각에 잠기게 한다. 저자가 책 속에서 반짝반짝 닦아 놓았던 사유의 길로 초대한다.


만약 시간이 없다면 에필로그라도 읽기를 바란다. 거기엔 저자가 진짜 하고 싶었던 말들이 빼곡하다. 물론 거기에 쓰인 모든 말에 동의하진 않는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읽기의 길이가 곧 사유의 길이다’라고 하는 말만큼은 인상적이다. 결국 생각을 하기 위해선 일단 읽어야 한다. 그것이 글자든, 영상이든, 타인의 감정이든, 또 무엇이든. 그래야 우리는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

 

그리고 책은 그 모든 것들의 출발점이 되어준다. 책을 읽고 사유에 잠기는 것.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저자가 말하고자 했던 책과 눈을 마주한 순간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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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책과 눈이 맞아본 적이 있습니까?

- 우리는 왜 종이책을 읽어야 하는가 -

 

 

지은이: 유영만

 

출판사: 카모마일북스

 

분야

인문>독서/글쓰기

 

규격

140*210*16.3mm

 

쪽 수: 348쪽

 

발행일

2020년 9월 25일

 

정가

16,000원

 

ISBN

978-89-98204-79-2 (03800)

 

 

[이중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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