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현대 사회에서 다시 마주한 코기토 - 데카르트의 성찰 입문

글 입력 2020.11.02 1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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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ego cogito ergo sum)'


 

데카르트의 철학을 읽지 않더라도, 이 명제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이 명제는 코기토 명제라고도 불리며, 근대의 정체성을 알리는 중요한 문장이다. 데카르트의 인식은 이전 시대와 다른 전환을 꾀함으로써 이전 시대를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으로 극복하게 되었다. 코페르니쿠스가 지구가 우주의 절대적인 고정된 중심이 아니라는 것을 인식할 때, 지구의 천구 운동이 관찰자의 운동 견지에 의해 설명될 수 있다고 인식했을 때, 근대 시대의 획기적인 전환이 이루어졌다.

 

코페르니쿠스적 시각 전환은 객관적 세계의 겉보기 조건이 주체의 조건에 의해 무의식적으로 결정된다는 비판적인 인식, 우주에서의 상대적이고 주변적인 위치로의 인간 지위의 이동, 자연 세계의 탈주술화에 대한 은유로 여겨진다. 이 코페르니쿠스적 혁명은 데카르트부터 시작되어, 칸트에서 완결된 지성적 진보다.

 

데카르트는 객관적 외부세계와 근본적으로 구분되고 분리되는 것으로 자율적인 근대적 자아에 대한 경험을 최로로 파악하고 구별한 인물로서, 데카르트의 인식론을 받아들인 후에야 인류는 우주 안에서 독립되었다. 세계에 대한 회의는 의심에서 시작해 코기토로 끝난다. 데카르트의 <성찰>은 그 과정의 중심에 있다. 데카르트는 모든 것을 회의하는 것부터, 회의할 수 없는 것을 탐색하는 과정을 기술한다.

 

 

 

가장 완벽한 데카르트의 성찰 교과서


 

데카르트의 철학은 때로 간단한 것으로 여겨진다. 이에 대해서는 가독성의 규범을 다소 어기더라도, 필자의 독서 과정을 조금 섞어서 이야기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필자가 <데카르트의 성찰 입문>을 읽게 된 계기는 근대지성의 탄생 과정에 관한 호기심이었다. 고백하자면 필자는 데카르트의 <성찰>을 철학의 가벼운 입문서로 생각했다.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데카르트의 성찰은 분명 근대철학의 탄생과 전환을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책이다. 하지만 결코 가벼운 입문서는 아니었다. 이에 대해 변명하자면, 내 선행지식이 쓸모없는 선입견을 만들었던 것 같다.

 

필자는 중학교 때 청소년 용으로 좀 더 쉽게 풀어쓴 데카르트의 <성찰>을 읽은 적 있다. 책 자체가 쉽게 쓰여있기도 했지만, 당시에는 형이상학적 코드를 잘 인지하지 못했다. 데카르트의 <성찰>은 크게 인식과 신에 대해 다루고 있었다. 회의하는 자아를 내세워 회의할 수 없는 것을 찾아가는 회의주의적 성찰적 과정은 흥미로웠으나, 회의의 결과로 다다른 결론인 '신'은 도저히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과학지식이 억압받던 시대에 종교는 인간의 확장에 기여하지 않았다. 당시 필자는 유일무이하고 전지전능한 신화로 존재하는 신-개인적으로 이것을 성찰하지 않는 신이라 부른다-은 불가해한 영역에 대해 인간이 갖는 환상이 만들어낸 지성의 억압도구에 불과하다고 믿었으며, 책을 모두 읽은 현재에도 그 생각을 좀 더 확장시켰을 뿐 온전히 변형시키지는 않았다. 그래서 필자가 읽은 데카르트는 얄팍했다. 데카르트는 근대시대의 인식론을 뒤집은 혁명가였지만 그 핵심이 되는 마지막 논증에는 실패한 철학자였다.

 

<데카르트의 성찰 입문>은 필자처럼 데카르트를 마지막 논증에 실패한 사람으로만 여겼던 사람들에게 부끄러움을 안겨준다. 책은 각 절에 대한 요약, 절에서 드러난 철학적 논쟁과 그에 대한 논의를 제시한다. 하나의 완성된 책이라기보다는, 완역본을 이해하는 교과서에 가깝다. 하지만 '입문'이라는 단어에 무색하게 책의 난이도는 결코 낮지 않다.

 

그래서 책의 내용은 가벼운 스낵같은 철학을 즐기려는 사람보다, 책상 위에서 본격적으로 데카르트의 성찰을 읽어보려는 사람에게 더 적절하다. 어려운 철학적 용어를 사용하지 않고 각 절에 대한 내용을 제공하고 있으므로, 너무 큰 걱정으로 이 책을 펼치지 않아도 괜찮다. 이런 방식으로 저자는 집요할 만큼 데카르트의 논쟁에 대해 분석하고, 독자가 어떤 점을 생각해볼 여지를 남긴다.

 

교과서라는 측면에서, 책은 적절하게 구성되어 있다. 책은 어떻게 읽혀야 하는지에 대해 제시하고, 데카르트 성찰의 영향력에 대해서 기술한다. 본문읽기 섹션에서 논의의 숫자를 더하는 방식은 직관성이 떨어졌지만, 소제목은 이하 내용을 잘 요약하고 있기 때문에 불편할 정도는 아니었다. 전체적으로 본문의 내용을 충실히 전달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좀 더 깊은 성찰이 가능하게 한다는 점에서 책은 교과서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 최소한 필자가 읽어온 다양한 철학 입문서 중에서 가장 충실했다.

 

 

 

현대사회에서 데카르트가 제시한 '생각하는 나'와 '진리'를 다시 마주하기


 

현대의 독자들이라면 데카르트의 성찰에서 전개되는 내용이 오늘과 동떨어져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오늘날 가상은 실재보다 생생하고, 더 영향력을 발휘한다. 무엇이 진짜고, 진짜가 아닌지가 중요하지 않다. 왜냐면 기술로 인해 일상에서 이미 가상은 실재를 넘어섰기 때문이다. 양자역학의 대중화는 철썩같이 믿어왔던 과학의 인과관계를 손쉽게 끊어버렸다. 현대의 과학적 발견은 하나의 올곧은 진리와 경계선을 해체했다.

 

현대인들은 그래서 어떤 진리를 고민하는 것보다, 가상과 실재과 뒤섞인 현실의 파편을 오가며 취합한다. 과학과 기술, 문화는 이미 이러한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데카르트의 성찰은 그래서 현대인에게 무언가 낯선 부분이 있다. 하지만 이 문장은 현대사회와 양립이 되지 않거나, 이미 반박된 사실에 대해 기술한다는 점에서 낯설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데카르트가 제시하는 성찰은 현대사회에서 잃어버린 질문을 다시 마주하게 한다. 바로 신과 존재와 같은 본유적 관념과 인식의 문제다.

 

데카르트의 <성찰>은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이 명제는 책에서 직접적으로 등장하지 않지만, 성찰 전반에 걸쳐 명확하게 등장한다-'라는 명제를 논증하는 과정이다. 이 명제는 데카르트 철학의 제 일 원리로써, '생각하는 지'에 의해 확산된다. 데카르트는 제 1성찰에서 감각은 물론이고 이성적인 지식, 예를 들어 삼각형이 세 변으로 이루어진 아프리오리한 지식 조차도 회의한다. 제 2성찰에서 데카르트는 회의하는 그 자신만은 회의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린다.

 

그는 정확히 '나는 있다. 나는 존재하는 것은 내가 이것을 말하거나 마음 속에 품을 때 마다 필연적으로 참이다'라고 표현한다. 데카르트의 코기토는 '내가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을 회의할 수 없다는 것'과 '만일 내가 생각하고 있다면 나는 존재해야한다'의 결합이다. 하지만 데카르트의 사고하는 자는 자신이 무엇을 생각하는지도 인식할 수 없는데 어떻게 사고와 존재를 규정하는 일반원리를 당연시할 수 있을까?이에 대해서 데카르트는 코기토를 아예 논증이 아닌 마음의 직관이라고 대답한다.

 

제 3성찰에서 데카르트는 '나는 있다. 나는 존재한다'를 통해 자신보다 어 완전한 신이 현존해야 함을 증명한다. 제 4성찰은 신의 현존을 기반반으로 진리 판단의 기준에 의한 참 거짓의 기준을 설명하고, 제 5성찰에서는 물질적 본성에 대한 논의를 이어간다. 마지막 성찰에서는 익히 알려진 것처럼 정신과 물체를 구별한다. 일련의 과정을 통해 데카르트는 성찰의 목표를 공고히한다. 데카르트는 확실성, 회의를 넘어선 확고하고 불변적인 지식을 발견하려 했다.

 

데카르트는 정신과 신에 대한 형이상학적 논증인 <성찰>을 통해 주관을 넘어서 객관적 지식을 확보한다. 그가 다다른 결론은 감각적 경험이 아닌 선험적으로 주어진 이성관념에 따라 실체를 구분하는 것이었다. 데카르트는 뛰어난 수학자이자 철학자로서 순수한 지성을 상상과 감각작용을 독립시켜 사유하는 본성으로 보았다. 감각은 우리의 정신을 속이기도 하지만, 그의 신학적 세계관에 의해 인간에게 주어진 순수한 정신은 자연의 암호를 풀 수 있게 한다. 하지만 반대로 이런 데카르트의 태도는 과학이 끊임없이 진화하고 발전한다고 믿는 태도와는 충돌한다. 아마 대다수의 현대인들은 후자에 손을 들어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가며


 

데카르트가 책을 저술할 때는, 앞서 필자가 기술했듯 종교가 과학을 억압할 때 였다. 그는 과학과 종교의 공존점을 찾고, 당시 사람들에게 과학적 사고의 중요성을 호소하기 위해 특별한 방식으로 글을 썼다. 한명의 지성인으로서 그는 마땅히 해야할 일을 했다. 그의 철학적 명제는 오늘날까지 회자되고 있다. 그러한 맥락에서 <데카르트의 성찰 입문>은 매우 충실할 뿐만 아니라 데카르트 이론에 대한 오해를 걷어내고 현대인이 할 수 있는 질문으로 전환시켜준다. 이러한 맥락에서 책은 데카르트의 <성찰> 읽기에 있어서 가장 적절한 시작점이라 할 수 있다.

 

데카르트가 우리에게 던지는 철학적 질문은 아직도 유효할 뿐만 아니라, 현대사회에서 더 깊은 성찰을 유도한다. 하지만 현대인의 입장에서 데카르트의 인과개념은 잘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그는 모든 것에 원인이 있음을 성공적으로 입증했지만, 무한한 신이라는 개념으로 난해한 인과법칙의 사슬을 끊었다. 데카르트가 신이라 이야기했던 것이 실제로는 어떤 본질적인 개념이라 하더라도, 그는 이미 주어진 관념에서 인식의 근거를 찾고 있다는 쇼펜하우어의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가 없다.

 

이것이 필자가 도달한 데카르트의 <성찰>이었다. 이 책의 가장 좋은 점은, 결코 결론을 스스로 내려주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성경공부나 깨작거리는 필자와 달리 독실한 기독교인이나, 꼼꼼한 논리학자에게 이 책은 또다른 논증으로 다가올지도 모르겠다.

 

데카르트는 무엇이 되었건 명료한 정신이 마침내 우주의 원리를 해석할 열쇠를 찾는다고 주장했다. 필자는 이러한 주장을 부분적으로 흡수한다. 우리는 모두 열쇠의 조각을 가지고 있고, 그것들이 차츰차츰 모이다보면 열쇠에 가까운 무언가가 만들어낸다. 앞서 기술했듯 우리는 구분된 세계에서 진리를 찾는 대신, 다양한 층위에서 실재보다 강력하고 생생한 가상, 가상같은 실재를 발견한다. 어쩌면 현대에서 실재에 가까운 가상은 가상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최소한 내가 도달한 답은 그렇다. 내가 이제 한 조각 모았으니, 당신이 하나 더 찾아보는건 어떨까? 반복해서 말하건대, 이 책은 정말 데카르트의 <성찰>의 첫번째 짝꿍으로 정하기엔 참 괜찮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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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카르트의 『성찰』 입문

Descartes’ Meditations

 

 

지은이

리처드 프랭크스(Richard Francks)

 

옮긴이

김성호

 

발행처

도서출판 서광사

 

발행일

2020년 9월 20일

 

면 수

328면

 

가 격

27,000원

 

ISBN

978-89-306-1053-7 93160

 

 

[손진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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