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모니터 속의 세상에서 나와

글 입력 2020.11.02 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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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써야겠다고 마음먹은 때는 없었다. 기억하기에 나는 늘 글을 쓰고 있었다. 아주 오래전부터 이어져 온 이 만성적 행위는 초등학교에 갓 입학한 해부터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는데, 도서관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된 것이 그 때였기 때문이다.

 

학교 2층에 도서관이라는 장소가 있다는 걸 언제 알게 되었는지, 또는 누가 나를 도서관에 데려갔는지는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 담임 선생님이었을 것이다. 그는 햇병아리들에게 보건실이니 과학실이니 하는 곳을 소개해주곤 했다) 다만, 처음 도서관을 마주했을 때의 충격과 흥분만은 아직도 선명하다.

 

순간의 기억이 가끔 사진처럼 한 장면으로 찍혀 머릿속에 오래도록 남기도 한다는 것을 여덟 살의 나는 3월의 도서관에서 처음 경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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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로 된 미닫이문을 열면 후끈한 라디에이터의 열기와 한낮의 맑은 햇빛이 동시에 쏟아져 내렸다. 커튼 사이로 스미는 공기는 연노랑이었다. 유난히 채광이 잘 되었던 도서관은 학교 안의 다른 장소와 달리 늘 끝없는 양달이었다. 천장까지 겹겹이 쌓인 것으로 모자라 북 카트 두 대를 빼곡히 채운 책에서는 무거운 종이 냄새가 풍겼고, 대출 창구에 놓인 사서 선생님의 머그잔에서는 둥굴레 향이 났다.

 

그 때부터 책이 뭔지도 잘 몰랐던 나의 가장 큰 유희 거리는 책이 되었다. 나는 읽다가 자다가 하며 하루를 보냈다. 글은 그 어떤 놀이보다 재미있었다. 그 때의 나는 대단한 속도로 책을 읽었는데, 책 보는 것 외에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어느 날에는 낮 동안 두 권을 끝내기도 했다. 지금 하라면 못할 일이다.

 

읽는 사람은 곧 자기 글을 쓰기 마련이라 자연스럽게 나는 어설픈 글을 썼다. 그게 시작이었다.  일기로 시작된 글은 독후감이 되었다가 짧은 동시도 되었고, 어느 날은 조잡한 소설이 되기도 했다. 취향도 기준도 없었던 나는 잡히는 대로 읽었으며, 책 속의 어떤 문장은 다른 문장보다 조금 더 오래 내 안에 머물렀다가, 나도 모르는 새에 새어 나와 일기장이나 연습장 위에서 풀어졌다. 무슨 목적 같은 건 없었다. 습작이라고 하기도 뭣한 일종의 모방이었다.

 

초기의 글쓰기를 거쳐 조금 자란 나는 제법 진지한 태도를 취하기 시작했다. 그 때 나의 동력은 작가가 되고자 했던 덜 여문 꿈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종이와 펜보다 컴퓨터로 글을 쓰는 것이 훨씬 더 효율적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아무 노트에나 되는대로 써 둔 것을 누군가에게 들키는 일이 몇 번 반복된 뒤였다. 글짓기에는 부끄러울 것이 하나도 없지만, 내 손으로 쓴 글을 남에게 보이는 것은 부끄러웠다. 그래서 내 글은 집에 딱 한 대 있었던 컴퓨터의 드라이브 깊숙한 곳, 또는 인터넷 어딘가로 조용히 옮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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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모니터 앞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기 시작했다. 아무에게도 보여주고 싶지 않아서 혼자 앉아 글을 쓰던 시간이 더 많이 지났고, 나는 컴퓨터로 할 수 있는 다른 일들에 대해 알게 되었다. 그렇게 블로그를 열고, 모은 용돈으로 앨범을 사서 시디로 음악을 듣고(그 때 나는 스트리밍 사이트의 존재를 몰랐다), 무료 게임을 하는 것에서 시작된 서툰 문화생활은 시간이 지나 넷플릭스, 왓챠, 유튜브 프리미엄과 벅스에 이르는 거대한 지출이 되었다. 이제 나는 문화 콘텐츠를 전공한다. 대단한 발전이 아닐 수 없다.

 

그러므로 글쓰기라는 오래된 취미와 그간 축적해온 온갖 사소한 취향은 모두 글을 쓰고 음악을 들으며 컴퓨터 앞에서 보냈던 그 시간이 빚어낸 것이나 마찬가지다. 모니터 너머에서 키운 세상은 내게 큰 의미를 가진다. 물론 이런 말을 직접적으로 해본 적은 한 번도 없다. 인터넷은 현실보다 중요하지 않으며, 컴퓨터 앞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보내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고, 나의 부모도 말하자면 그런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게 무조건 틀린 말은 또 아니기도 하고.

 

하지만 바이러스와 함께 우리의 일상이 완전히 달라지고, 문화를 즐기는 방식에도 변화가 찾아오며, 무엇이든 화면을 통해 보고 듣는 일이 당연해지기 시작했다. 숨을 맞대지 않고 사람을 만나는 일, 집에서 소중한 이와 시간을 보내는 일이 새로운 보통이 되었다. 그건 모니터 앞 붙박이로 사는 삶에 원래 익숙하던 나에게도 제법 새로웠다. 음악회나 뮤지컬 공연이 인터넷 실시간 방송을 거쳐 눈앞에 나타나는 것은 아주 색다른 일이었다. 도서관은 문을 닫았고, 영화관과 극장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 한 좌석을 꼭 비워 둬야만 했다. 이런 데에는 영 관심이 없던 엄마도 함께 왓챠 구독료를 나눠 내기 시작했다.

 

실재하는 삶과 실체 없는 인터넷은 다르다고 생각하면서도, 두 공간이 거의 같은 의미를 가지게 된 지금, 뭐가 그렇게 다르냐 하는 반항적인 마음이 든다. 친구와 나는 현실을 좀 살라는 의미에서 인터넷 세상 밖으로 나오라는 말을 서로에게 자주 던지곤 했다. 그러나 ‘밖’이라는 단어가 꼭 땅을 디디고 하늘을 위에 둔 공간을 뜻하는 것일까? 표준국어사전의 말마따나 '무엇에 의하여 둘러싸이지 않은 공간'이 밖이라면, 인터넷보다 그 정의에 잘 부합하는 공간은 없을 것이다. 코로나 시대를 지나며 나는 온라인과 오프라인이 같은 역할을 할 수 있겠다는 가능성을 느낀다. 그 차이가 아주 미세한 무언가라는 확신이 든다.

 

인정하기는 다소 민망하지만, 모니터 속 세상이 내 삶의 한 축을 만들었음을-그리고 지금도 만들고 있음을-부정할 수는 없는 일이다. 화면에서 깜빡이는 커서와 끊임없이 대화하고, 각각이 온전한 세상이 담고 있는 두 시간 남짓의 영상들을 보며 보낸 시간이 나는 소중하다. 나를 키우고 살찌운 이 시간은 아마 앞으로도 계속 소중하겠지. 그러니까 요점은, 모니터 속 세상에서 반드시 나올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당분간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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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다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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