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시간의 물길이 그려내는 지도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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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지도를 그려내다 보면 시간의 지도를 펼쳐봐야 할 때가 있다. 내가 살아온 시간들을 겹겹이 쌓아내다 보면 어느 점에 모인 지금의 나를 발견한다. 그 사이사이를 메우는 흔적들을 다시 어루만지고 있노라면 그 순간들을 조금 더 아끼고, 그렇게 아껴서 기록해 놓을 걸,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나 막상 비어있는 페이지를 마주하는 건 부담스럽게 느껴진다
그림도 말을 하고 사진도 말을 하고 글도 말을 한다. 끄적였던 멜로디도 말을 하고 그 말은 또 다른 말을 낳는다. 시간의 생각이 충돌하는 가운데, 난 성장했고 혹은 그 자리에 머무르기도 했다. 우리 모두가 그렇다. 각자의 말은 '나'라는 존재에 어떤 형태든 물결을 남긴다. 그러나 그 속에 아무것도 담기지 않는다면 그저 둔탁한 소음만 잠시 머물렀다 사라질 뿐이다.
그래서 나는 남겨지는 물결을, 사색을 즐긴다. 언젠가는 나라는 인간의 존재함에 합당한 이유를 찾고자 결론 없는 말끝을 뱅뱅 돌기도 했었다. 책과 미디어가 던져대는 질문에 골머리를 앓거나 답답함에 무력감을 느끼기까지 했었다. 아직도 그렇다. 난 한낱 인간이고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질문을 모두 감내할 수도 없다. 그러나 그렇게 맴도는 생각들을 회피할 수도 없었다. 어쨌든 그것이 나의 내면과 정체성을 만들어 가는 소중한 과정이었기 때문이다.
가끔은 고요함을 건드리지 않게, 머릿속에 생각을 멈출 수 있는 스위치가 있었으면 한다
나는 미디어를 통해 문화예술을 향유한 세대이고 그 모든 것에 무수한 영향을 받았다. 그리고 그것을 다행이라고 여긴다. 이것저것 다양한 관심사를 가지고 있었던 덕분에 고여있지 않을 수 있었으니 말이다. 작았던 물길은 점점 불어나 창작물이라는 이름의 생명체가 유영하는 공간이 되었다.
그리고 그 생명의 그 끝자락을 잡고 존재를 이어나가려면 새로운 질문과 생각을 멈추지 않아야 했다. 나에게 있어선 모든 것이 자연스러운 흐름이라 지금까지 올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무엇이든 즐기던 것이 일이 되면 괴로워지기 시작하는 법이다.
창작물을 나만 즐기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공유하기 시작하는 순간 고민에 빠진다. 내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것을 해야 하는가, 많은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것을 해야 하는가? 지금 내가 전하려고 하는 메시지가 왜곡되지는 않을까? 누군가에게 상처가 될 여지가 있진 않은가? 그래서 무서워지기도 한다.
그래서 더 많이 공부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 생각들을 다시금 구체화해 새로운 지도를 그려낼 지점에 닿아있다고 생각한다. 글이든 무엇이든 새롭게 창작함에 있어 한계를 느꼈던 순간순간을 남겨, 다시금 충돌하게 될 시간 속의 나를 지켜보는 것도 즐거울 것이다.
이제 물길은 어디로 향하고, 그 안엔 어떤 생명이 숨쉬게 될까.
[김유이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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