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가장 따스한 음악적 순간: 2020 서울국제음악제 '버림받은 자의 구원'

글 입력 2020.10.31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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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SIMF 포스터(594X841) (최종).jpg

 

살아가다 보면 어느 순간 감정이 무뎌져 내가 지금 힘든지, 지쳤는지, 잠시 쉬어야 할 때인지의 여부조차 자각하지 못하고 그저 앞으로 나아가기만 할 때가 있다. 2020년 전 세계를 뒤엎은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일상을 살기 시작한 우리 모두가 그렇게 인생을 헤쳐나가고 있는 중이다. 특히 코로나 바이러스가 심각하게 전파되기 시작했던 2월부터 지금까지, 정부에서 내렸던 사회적 거리두기 지침을 준수하며 생활해 온 사람이라면 정말 형언할 수 없는 무언가에 내가 억눌려있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되곤 한다. 타지에 나와 생활하고 있기에 가족들조차 명절에 만나지 못했고, 국내 어디에도 여행이나 바람쐬러 드라이브조차 나가지 않았으며 그저 회사와 집만을 오간 사람들에게 얼마나 해소되지 못한 스트레스들이 쌓여있을지 상상할 수 있는가.


그런 상황 속에서 드물게나마 찾았던 음악회는 항상 큰 위안이 되었다. 이전에도 음악회에 가곤 하면 재충전이 되는 것을 느꼈는데, 올해엔 유독 그것이 생생하게 와닿았다. 음악회조차 이전보다 찾기 어려워진 만큼, 예전 이상의 의미를 갖게 되었기 때문이다. 지난 9월에는 다시 확진자수가 증가하여 공연들이 취소되곤 했었지만, 다행히 추석을 넘긴 10월에는 공연이 취소될 정도의 확산세가 보이지는 않았다. 그래서 지난 10월 30일, 예정대로 롯데콘서트홀에서 2020년 서울국제음악제 '버림받은 자의 구원' 공연이 정상적으로 개최되었다.


이번 서울국제음악제는 위대한 작곡가들이라는 테마 하에 베토벤을 중심으로 바로크와 낭만, 모더니즘과 현대를 아우르는 프로그램들을 구성하였다. '버림받은 자의 구원' 무대 역시 베토벤 탄생 250주년을 기념하여 베토벤의 작품들을 선곡한 가운데 이번 서울국제음악제에서 위촉초연하는 멘디 멘지치의 작품을 포함시켰다. 멘지치의 작품은 초연되는 작품인 만큼 사전에 들어볼 수가 없었는데, 그가 작곡한 다른 작품들을 들어보면서 과연 이번 무대의 작품이 어떨지를 상상하며 기다리게 되었다.


 



PROGRAM


멘디 멘지치(Mendi Mengjiqi) 버림받은 이들(Forsaken for String Orchestra)(위촉초연)


베토벤(L.v. Beethoven) 오페라 <피델리오(Fidelio)> 中 

No. 6(Marsch)

No. 7(Ha! Welch’ ein Augenblick!)

No. 9(Abscheulicher! Wo eilst du hin?)

No. 11(Gott! welch’ dunkel hier!)

 

INTERMISSION


베토벤(L.v. Beethoven) 교향곡 6번(Symphony No. 6. 'Pastorale')

 




멘디 멘지치의 은 현악기 오케스트라를 위한 작품이었다. 그래서 이번 공연의 첫 무대는 관악기와 타악기를 제외한 현악기 연주자들만 무대에 나섰다. 프로그램 북을 보니 총 3악장의 구성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현악기들만으로 어떤 소리를 전해줄 지 기대감이 고조되는 가운데, 음악이 시작되었다. 시작은 첼로와 콘트라베이스의 낮고 섬약한 소리로 콘서트홀을 서서히 채워나갔다. 첼로와 콘트라베이스의 선율을 그대로 비올라가 이어받아 연주하기 시작했다. 이어서 제2바이올린이 돌림노래를 시작했고, 최종적으로 그 선율에 제1바이올린까지 참여했다. 이 작품의 도입부는 카논의 형태였다.


1악장의 도입부 선율은 단조였으나 부드럽고 또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한 진행이었다. 그래서 이전의 작품들보다는 좀 더 안정감을 느끼며 들을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는데, 바로 그 순간부터 곡의 진행이 예상을 벗어나기 시작했다. 역시 현대 음악가가 이걸 그대로 둘 리가 없다. 점점 각 파트의 선율이 자유롭게 자신들의 선율을 찾아 떠나는 듯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인 소리는 아주 견고했다. 틈 하나 없이 끝없이 맞물려 들어가는데, 그 소리가 협화음과 불협화음을 순식간에 넘나들었다. 마치 어려움을 극복하는 듯 환희에 차다가도 또다른 역경을 맞이하는 것처럼 말이다.


1악장의 견조한 진행 끝에 맞이한 2악장은 다소 짧았다. 그러나 1악장의 느리고 섬약하면서도 부드러운 소리와 전개와는 달리, 아주 리듬감 있고 빠르고 힘 있게 진행되었다. 역동적이고 급진적이었다. 짧은 단상과도 같은 무언가를 아주 집약적으로 풀어내는 악장이었는데, 2악장을 들었을 때가 아니라 3악장이 되어서야 그 무언가가 구체화되는 느낌이었다.


3악장은 다시 한 번 분위기를 환기하였다. 1악장과 2악장에서와는 달리, 3악장은 장조를 활용하기 시작했다. 1악장에서는 버려지고 소외된 모든 것들의 단상을 현 시점에서 바라보며 있는 그대로 그려내는 듯했다. 그리고 2악장에서는 짧지만 굵게, 과거의 시점으로 거슬러 올라가 방치되었던 그 상황과 잊혀진 채로 소외되었던 그 순간들을 복기시키는 것 같았다. 이 모든 것을 이어받은 3악장에서는 드디어, 이를 실질적으로 위로하는 멘디 멘지치의 마음이 엿보였다.


선율적으로도 가장 확장된 3악장은 콘서트홀을 가장 부드럽게, 충만하게 가득 채우는 소리로 가득했는데 그 중에서도 두드러지는 것은 바로 허밍의 사용이었다. 작품의 말미에 부드럽게 잦아드는 현악기 소리와 함께 둥글게 모은 소리로 잠시 스몄다 사라지는 그 허밍소리는 상상 이상의 위로였다. 3악장의 현악 선율이 버려지고 소외된 모든 것들에 대하여 위로를 건네는 것이었다면, 작품의 끝을 가득 채웠던 그 허밍은 신께 이 모두를 긍휼히 여겨달라는 부르짖음이었다. 지휘자 윤호근의 손끝이 완전히 떨어지는 그 순간까지의 무음의 여백마저 완벽했다. 가슴 사무치게 와닿는 이 뜨거운 위로의 순간에 함께 할  수 있어서 벅찼다. 첫 작품부터 너무나 큰 위로가 되어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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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스 사무엘 윤)



두 번째 프로그램은 베토벤의 오페라 <피델리오> 갈라였다. 작품 중 6곡(제 1막의 행진곡)과 7곡(악역 피사로의 아리아), 9곡(레오노레의 아리아) 그리고 11곡(플로레스탄의 아리아) 이렇게 4곡이 준비된 상태였다. 원래 프로그램 계획으로는 테너 신동원이 무대에 설 예정이었는데 공연 당일에는 연주자가 변경되어 테너 국윤종으로 바뀌었다.


처음의 연주는 제 1막의 행진곡이었다. 팀파니의 부드러운 둥둥 소리와 함께 시작되는 행진곡은 부드러우면서도 힘 있었다. 긍정적인 지향이 점점 명약관화해져가는 가운데, 출연자 입구 문이 열리더니 베이스바리톤 사무엘 윤이 무대 위로 성큼 나섰다. 실제 오페라에서도 행진곡과 함께 피사로가 등장한다. 국왕의 특사에게 플로레스탄이 눈에 띄지 않길 바라며 복수를 꿈꾸는 피사로처럼 당당하게, 그러나 조심스럽게 무대의 중심부까지 그가 걸어나왔다.


그리고 이어지는 '아! 얼마나 좋은 기회인가!(Ha! Welch’ ein Augenblick!)는 사무엘 윤의 굵고 풍성한 목소리로 아름답게 울려퍼졌다. 플로레스탄에게 복수할 기회를 노렸던 그가 고양된 어조로 부르는 이 아리아는 바리톤의 굵직한 음성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잘 보여주는 아리아였다. 파이프오르간 위치에 걸려 있는 프로젝터 스크린을 통해 아리아의 가사를 확인하면서 들을 수 있었기에 사무엘 윤이 전달해주는 그 감정과 어조를 더욱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뜨겁고 힘 있는 아리아여서 뜨거운 박수를 보낼 수밖에 없었다.


다음으로는 소프라노 이명주가 무대 위로 나섰다. 레오노레의 아리아 '더러운 인간! 어디를 급히 가는가?(Abscheulicher! Wo eilst du hin?)'를 부르기 위해서였다. 레치타티보로 시작하여 아리아로 넘어와 이어지는 소프라노 이명주의 목소리는 부드럽고 여린 듯하나 강단이 있는 레오노레의 모습 그 자체였다. 신실한 부부의 사랑이 자신을 강하게 한다는 고백을 하며 남편 플로레스탄을 구해내리라 노래하는 소프라노 이명주에게 압도되는 무대였다.


<피델리오> 갈라의 마지막은 테너 국윤종이 부르는 '신이시여, 이곳은 어찌하여 이다지도 어두운가요(Gott! welch’ dunkel hier!)'로 마무리되었다. 다른 아리아와 달리, 플로레스탄의 이 아리아는 도입부(Introduction)가 있었는데, 어지간한 서주만큼이나 긴 도입부였다. 그 긴 도입부를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동안 테너 국윤종은 먼 곳을 바라보며 연기를 했다. 그리고 그가 첫 소절 Gott를 외치는 순간, 그 모든 도입부와 연기가 무엇을 향한 것이었는지를 깨달았다. 신이 더 많은 역경을 예비해 두었더라도 자신은 신을 원망하지 않겠다고 말하는 플로레스탄의 노래는 신실했고, 이를 말하는 국윤종에게는 진정성이 담겨 있었다. 그 뜨거운 열연에 객석에서는 수많은 남성 관객들의 브라보가 쏟아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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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프라노 이명주)



2부는 베토벤의 교향곡 6번 전원을 맞이하는 차례였다. 1부의 모든 감정들을 이어받아 객석에 또다른 풍요로움과 안식을 줄 2부의 프로그램이 6번이어서 너무 좋았다. 객석에게 아주 익숙한 레퍼토리이면서 동시에 현 시대 상황을 보았을 때 이 곡만큼 우리의 필요를 채워줄 곡이 없기 때문이다. 1악장의 그 긍정적이고 명랑한 감정이 객석에 울려퍼지자, 늘 전원 교향곡 1악장을 들을 때면 그랬듯이 마스크 속에서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짓게 되었다. 전원 교향곡의 1악장은 온전히 충만하고 무한한 생명력으로 가득하다. 모든 긍정의 총 집합체 같은 이 1악장은 롯데콘서트홀 특유의 울림과 함께 더욱 더 부드럽게 귓가를 간질였다.


이어지는 2악장은 아름다운 새소리가 직접적으로 그려지는 사랑스러운 악장이다. 회화적으로 자연을 그려내는 음화이기보다는 관념적인 차원에서 자연을 바라보는 교향곡 6번 속에서도, 누구나 경험했을 법한 자연친화적인 순간을 음악적으로 접목시켜 객석에서 더욱 가깝게 음악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한 것이다. 플루트의 꾀꼬리 같은 소리와 클라리넷의 묵직한 듯하면서도 둥근 노랫소리가 아름다운 시냇가에서 들려오는 새소리를 즐기는 듯한 평화로움을 배가시켜 주었다. 그 중에서도 백미는 오보에 소리였다. 2악장의 목가적인 분위기를 가장 배가시켜주는 아름다운 연주였다.


시골 농부들의 즐거운 한 때를 그려내는 3악장은 이전 악장들보다 훨씬 활기차고 시끌벅적하다. 주제 선율을 제시하고 이를 보다 활달하고 다양한 주제로 전개했다가 다시금 원 주제로 회귀하기까지, 오케스트라는 분명 즐거움을 노래한다. 그런데 마치 축제처럼 점차 풍성한 소리를 구성해가며 발전되어가던 3악장은 아주 자연스럽게 4악장으로 이어진다. 시골의 작지만 떠들썩한 한 때가 폭풍우를 만나 모든 상황이 전복되기 때문이다.


4악장은 교향곡 6번의 전체 악장 중에서 가장 짧다. 그러나 이 악장이 갖는 인상은 그 길이를 훨씬 뛰어넘을 정도로 강렬하다. 섬약하게 시작한 도입부에 뒤이어 곧바로 비바람이 휘몰아치는 폭풍을 격정적으로 그려내기 때문이다. 팀파니와 피콜로, 트럼본이 처음으로 가세하면서 더더욱 극적인 분위기가 고조된다. 그 휘몰아치던 선율이 점차 잦아들고 클라리넷과 플루트가 비구름 너머 비쳐오는 햇빛을 그려내는 순간, 이제 마지막 악장에 다다른 것을 눈치챌 수 있다.


마지막 악장인 5악장은 폭풍우가 지나간 뒤 다시금 충만해진 자연을 바라보는 목동의 노래다. 교향곡 전체의 여정 끝에 어쩌면 수미상관과도 같이 1악장의 정서로 다시금 회귀하는 것이다. 정서적으로 풍요롭고 평화로운 안온함이 가득한 이 음악적 세계를, 지휘자 윤호근과 서울국제음악제 오케스트라는 모든 것이 화합하는 상태 그 자체로 전달해 주었다. 광활한 자연 앞에서 완전한 아름다움 속에 파묻혀 모든 것이 승화되는 기분이었다. 마지막 음이 울려퍼진 그 뒤끝에 뜨거운 박수로 화답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테너 국윤종.JPG

(테너 국윤종)



본 프로그램이 모두 끝나고, 객석의 뜨거운 박수에 화답한 지휘자 윤호근과 SIMF 오케스트라는 앵콜곡으로 넬라 판타지아를 연주했다. 정의롭고 평화로운 세상, 자유롭고 밝은 세계를 꿈꾸는 넬라 판타지아의 가슴 뜨거운 가사가 오보에의 주선율로 연주되는데 너무나 가슴 벅찼다. 클래식 작품 중에 다른 곡이었어도 좋았겠지만, 이 작품은 가사가 원래 있는 곡인 만큼 연주자들이 어떤 의미로 이 곡을 앵콜로 연주했는지를 객석에서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기에 좋은 선곡이었던 것 같다. '버림받은 자들의 구원'이라는 이번 무대에 화룡점정으로 마지막 위로의 곡을 객석에 건넨 것이다.


서울국제음악제를 통해 생각했던 것보다도 더 큰 위로를 받았다. 음악만큼 사람의 감정을 즉각적으로 어루만질 수 있는 것이 없기에, 항상 음악회를 다녀오면 때로는 위로받기도 하고, 때로는 에너지를 나눠받아 새롭게 일어설 힘을 찾기도 한다. 그러나 그 수많은 음악회 중에서도 이번 서울국제음악제의 '버림받은 자의 구원' 공연은 가장 따스한 음악의 향연이었다. 초연된 멘지치의 작품 을 통해 위로 그 자체를 노래했고, 사랑을 통해 역경을 이겨낸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오페라 <피델리오>로 사람들의 가슴에 희망을 불어넣어 주었으며 마지막으로 베토벤의 교향곡 6번 <전원>을 통해 천국과도 같은 파노라마를 우리 모두에게 선사했다.


공연이 끝나면 항상 커튼콜 때 아티스트들의 사진을 남겨두는 편이었는데, 아쉽게도 이번 공연은 커튼콜을 포함하여 사진촬영이 전면 금지되어 있었다. 그래서 지휘자 윤호근을 포함하여 SIMF 오케스트라의 모습을 남기지는 못했다. 그러나 꼭 사진으로 남겨야만 그 날 음악회의 순간들이 기억에 남는 것은 아니다. 사진보다도 더 선명한 위로를 받은 2020년 10월 30일 서울국제음악제의 '버림받은 자의 구원'은 그 어느 공연보다도 오랫동안, 선명하게 기억에 남는 무대가 될 것이다.

 

 



[석미화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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