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시간 블렌딩 [도서]

어제를 맛있게 마시는 방법
글 입력 2020.10.28 1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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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블렌딩> 책을 선택한 이유는 내가 생각해도 참 단순하다. 커피에 대한 이야기, 카페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을까 봐. 그게 끝이었다.

 

요새 카페 가는 것을 자중하고 있기에 내게는 여러 카페를 보여줄 책이 필요했고, 간접 체험할 만한 게 필요했다. 하지만 책은 여러 카페를 보여준다거나, 커피를 어떻게 마셔야 할지, 그런 걸 얘기하고 있지 않다. '커피 한 잔의 여유' 시간에 '무엇을 생각'했는지, 를 담고 있다.

 

 

시간 블렌딩-표지.jpg


 

원하던 카페나 커피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서 실망했느냐, 물으면 아니다. 오히려 카페를 즐겨 찾던 예전이 새록새록 생각났고, 결국 너무나 오랜만에 카페에 가게끔 내 행동을 이끌었다. 그것도 사람 한 명 없는 아침 시간에 말이다.

 

비대면 수업 시작 이후로 내 생활 패턴은 크게 달라졌다. 원래라면 못해도 새벽 2시 안에 자고 오전 수업 있는 시간에 때맞춰 가고자 했던 게, 지금은 새벽 5시쯤, 혹은 더 넘어서 자고 오후 2시에 일어나는 걸로 바뀌었다. 한마디로 말해서, 아침에 일어나기 힘들어졌다는 것이다.

 

그런 내가 <시간 블렌딩>이라는 책을 읽고 전보다 더 카페에 가고 싶어져, 아침 일찍 일어나 사람 한 명 없는 카페에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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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펼치면 보이는,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를 담고 있는 글을 읽었기 때문이다. 자몽파인에이드 월요일, 화요일 점심과 에스프레소, 크루아상 수요일, 핸드드립 목요일, 금요일 패션 후르츠 10분, 토요일 오전 11시 스벅, 아포카토 일요일. 매일 카페에 갔던 작가를 생각하니, 나 또한 카페에 가고 싶어진 것이다.

 

 

하기 싫은 기분과 해야 하는 기분 사이를

슬며시 뭉개주는 듯한 1초 소통법


아미레카노나 먹자 싶은, 그냥 아메리카노 1초.


그냥 하는 거지 뭐.


- <시간 블렌딩> p.92

 

 

사람 한 명 없는 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던 중 그런 생각이 들었다. 작가는 카페에 가면 다양한 음료를 마시는구나.

 

나는 카페에 가면 늘 정해진 커피만 마신다. 아메리카노, 혹은 비엔나커피. 기본적으로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마시고, 당이 필요할 땐 생크림이 얹어진 비엔나커피를 찾는다. 왜 그것만 마시냐고 물으면 할 말이 없다. 어느새 습관이 되었기 때문이다.

 

 

내 입엔 맛있지만, 네 입엔 맛이 없다.

 

맛있다엔 기준이 없겠지. 마찬가지로 산다는 것에 기준이 있을까? 잘 산다고 하면 마치 사기치는 기분이 들거든.

 

왜냐하면 잘 산다에 대한 모델이 있을 것만 같지. 도대체 모델이 누굴까? 모르겠지만 모델이 없다는 것은 알겠다.

 

- <시간 블렌딩> p.114

 

 

처음 커피를 마셨던 때가 생각난다. 초등학생 저학년 때였다. 집 베란다에는 늘 레쓰비 커피가 한 박스씩 놓여있었다. 어머니가 마시던 거였다. 아직 초등학생인 내게, 커피는 금지된 음식이었고 그렇기에 더욱 탐이 난 음식이었다. 그래서 늘 어머니가 다 마시고 남은 한 방울의 커피를 찾아 커피 캔을 흔들었다. 가끔 입안에 떨어지는 달콤한 커피에 행복해하기도 했다. 그때 내게 있어 커피는 한 방울의 행복이었다. 삼키기도 전에 없어지는, 겨우 한 방울이었다.

 

시간이 지나자 나는 카라멜마끼아또를 마실 수 있게 되었다. 쓴맛 밖에 나지 않는 아메리카노는 입에도 대지 못했고, 그런 날 보고 친구가 애라며 놀리기도 했다. 그러다 대학생이 되고 나서 친구 따라 아메리카노에 헤이즐넛 시럽을 넣어 마시게 되었다. 조금씩 그것에 익숙해지게 되었고, 그 후엔 지금까지 아메리카노만 찾게 되었다.

 

변해간 입맛을 생각해보니 새삼 신기하다. 그렇게 단 것만 찾던 내가 이제는 카라멜마끼아또를 마시면 너무 달다고 기겁하는 모습이 놀라울 뿐이다. 언젠가 또다시 입맛이 바뀔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보다도 내 머릿속에 자리 잡고 있는 건 어릴 적 입에 댄 '한 방울의 커피'였다. 좀 더 정확하게 파고들자면 그것을 마실 때 행복해하던 '나'였다.

 

그 한 방울에서 행복을 얻었던 그때를 생각하고 지금을 보니, 왠지 참 씁쓸해진다. 그럼에도 '나는 나'라는 생각을 가져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과거의 '나'를 부러워할 필요는 없다. 과거의 나도 나고, 현재의 나도 나다. "아보카도 스무디는 모든 사람 입맛엔 맞지 않"지만, 카라멜마끼아또를 좋아했던 '나'도, 지금은 달아서 먹지 못하는 '나'도 결국 한 명이니까.

 

 

몇 개월 동안 나는 나의 색을 진하게 하기 위해

로컬 카페를 멀리하고 프랜차이즈 카페 위주로 다녀.

그곳에 가면, 보통스러움이 된다.

 

- <시간 블렌딩> p.147

 

 

예전에 나는 로컬 카페보단 프랜차이즈 카페를 자주 갔다. '보통스러움' 때문이었다. 나도 남들이 가본 곳에 가야만 하는 압박감. 이런 거라도 남들과 같아야지 하는 생각. 카페 뿐만이 아니라 다른 프랜차이즈 점도 마찬가지로 내게 있어 '나'를 보통스럽게 만드는 곳이었다. 나는 평범함이 좋았다. 남들과 다르다는 게 싫었고, 튄다는 말을 듣는 것도 싫었다.

 

그러던 내가 대학생이 되고 나서는 툭하면 로컬 카페를 찾아 나섰다. 꼭 '보통'이지 않아도 된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나는 '나' 대로 특별하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프랜차이즈보단 그 지역에 있는 로컬 푸드, 로컬 카페를 찾아 나서게 되었고 어느새 하나의 취미로 자리잡게 되었다. 억지로 '보통'이 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서 해방하자 카페 가는 걸 즐길 수 있게 된 것이다.

 

147 페이지에 있는 '블랙허니자몽티와 일몰'에서 작가는 이런 말을 한다. "모든 인간은 보통이면서 특별한 상황만 있지 않을까. 누군가로부터." 나는 이 말을 예전의 나처럼 '보통의 범주'안에 들고 싶어 한 당신에게 해주고 싶다. 애초에 '보통'이 된다는 건 할 수 없는 일이라는 걸 깨우치게 해주고 싶다. 누군가에게 있어 '나'는, 그리고 '당신'은 이미 특별한 사람이라는걸, 말해주고 싶다.

 

<시간 블렌딩>을 한 번 더 읽어보려고 한다. 작가가 쓴 글을 읽고 무언가 알아차린 부분도 있지만, 놓친 부분도 있기 때문이다. 다시 한번 더 차근차근 읽으며 생각에 잠기고 싶다. 그러니 다음에도 나는 아침 일찍 카페에 갈 거다. 내 시간을 블렌딩하여 커피로 내릴 것이다.
 
 
*
 
시간 블렌딩
- 화요일 점심과 에스프레소 -
 

지은이 : 영진

출판사 : 메이드인

분야
그림/사진 에세이

규격
152*225

쪽 수 : 192쪽

발행일
2020년 10월 01일

정가 : 13,000원

ISBN
979-11-90545-06-8 (03810)


[김승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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