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글쓰기에 대해 글 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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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글쓰기에 대해 이야기하는 건 어쩐지 낯간지럽다. 나를 구성하는 정체성에 '글'을 들이는 데엔 용기가 필요했다. 제목에 [ART insight]를 달고 시작하는 이 글은 '나의 글쓰기'를 주제로 하기에, 용기를 내기까지 시간이 좀 걸렸다. 많이 읽는 사람은 언젠가 쓰게 된다는 구절을 본 적이 있다. 세상을 읽는 사람과 읽지 않는 사람으로 단순 무식하게 나누면 나는 가까스로 전자의 그룹에 속할 정도지만 그래도 좋을 글을 골라 읽어 버릇해서인지 내가 가진 좋은 글에 대한 기준은 높다. 그렇기에 나를 '글 쓰는 사람'이라고 칭하는 것은 내 안의 수많은 타인의 글과 겨뤄야 한다는 데에서 오는 좌절감을 동반한다. 내가 글에 대해 높은 가치를 부여할수록, 글이 나에게 만만한 것이 아니게 되고, 나 자신으로 하여금 '글을 씁니다'하는 말을 하기 어렵게 만든다.
매주 한편 또는 두 편, 꼬박 4개월간 아트인사이트에 글을 쓰면서 깨달은 게 있다. 글은 쓰면 쓸수록 진심이 된다는 점이다. 진심이란 아무 때나 갖기 어려운 종류의 마음 상태이기에 반갑고 소중하면서도 동시에 제대로 지니고 있기엔 꽤나 괴로운 성질이라는 걸 안다. 네이버 웹툰 '유미의 세포들'을 보면 유미가 허기질 땐 출출 세포가 거대해지고, 유미가 사랑을 할 땐 사랑 세포가 무적이 되어 커다란 출출 세포까지 제압해버린다. 나의 경우 글쓰기에 대한 진심은 완벽주의 세포에 양분이 되어 완벽주의가 무럭무럭 자라난다. 완벽주의 세포는 기특하게 그럴듯한 결과물들을 만들어내지만 언제나 그 대가로 나를 갉아먹는다.
완벽주의 세포 때문에 받는 고통은 막상 키보드를 타닥거릴 때가 아니라 바로 그 직전까지의 순간일 때가 가장 큰데, 무엇에 대하여 어떻게 쓸지 고민할 때 약간의 긴장을 동반한 스트레스가 지속된다. 대학교 1학년 필수 교양으로 들은 글쓰기 수업에서 교수님이 항상 되뇌던 말씀이 있다. 글쓰기를 강의하는 교수가 학생들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은 '마감'이라는 것. 당시엔 피식 웃어넘기고 말았지만 아트인사이트에 일주일에 한편씩 글을 마감하면서 어느 때보다 실감 나게 이 선물의 감사함을 느낀다. 마감은 스트레스를 '무언가'로 바꿔놓고야 마는 힘이 있다.
글쓰기가 힘들다고 말하면서도 계속해서 쓰고 싶다는 마음이 강해지는 것은 한 편의 글을 무사히 기고하고 나면 따라오는 조용하고 충실한 성취감 때문이다. 심장이 터질 것 같은 폭발적인 감정은 아니더라도 착실하게 따라오는 좋은 기분. 첫 문단에서 글쓰기가 어렵고 힘들다며 찌질댄 것과 모순되게도 나는 내 글을 좋아해 여러 번 읽는다. 특히 마음에 들었던 기사는 틈 날 때마다 다시 읽어보고는 입꼬리를 실룩인다. 문장에 욕심을 갖고 일기장을 채우던 초등학교 시절에 딱 그랬다. 담임선생님이 조례 시간에 모두의 일기장을 걷어 '참 잘했어요' 도장을 찍고 종례 시간에 다시 나눠주던 그리운 시절, 글쓰기의 기쁨을 알아가던 때.
네모난 실내화 가방을 달랑달랑 들고 다니던 작은 시절을 지나자 인생엔 기쁨과 슬픔이 언제나 함께 있다는 걸 아는 어른이 되었다. 애매하게 슬프거나 흐리멍덩하게 기쁜 건 적어도 진심이 아니기 때문에 가능한 상태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기쁨과 슬픔이 선명해지는 일일수록 인생에서 소중하게 지켜나가야 하는 게 아닐까. 나에게 있어 글쓰기는 그런 의미다.
몇 해 전, 아트인사이트를 처음 만났을 때가 생각난다. 사랑하는 친구가 이곳에서 에디터 활동을 하던 때였는데 그의 글을 읽으러 들어왔다가 이 플랫폼에 마음을 빼앗겼다. 자신을 많이 드러내며 문학적인 글을 쓰는 분들, 예리하게 사회를 비판하는 칼럼이나 뚜렷한 신념을 갖고 해야만 하는 이야기를 풀어내는 글들도 있었다. 무엇보다 문화예술을 키워드로 다채롭게 뻗어나가는 사유가 반짝이는 문장으로 정리된 것을 보고 멋지다고 감탄했던 기억이 난다. 솔직히 조금은 슬펐다. 내가 좋아하고 잘한다고 여겼던 분야를 훨씬 더 좋아하고 훨씬 훨씬 더 잘하는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다니, 하는 유치한 질투심이 고개를 내밀었기 때문이다.
'나도 언젠간 이곳에서 에디터라는 직함을 달고 글을 기고해보고 싶다' 막연하게 생각했지만 어디까지나 '언젠가'라는 쉬운 단어로 먼 미래에 부쳐둔 일이었다. 조회수가 몇천에서 몇만까지도 올라가는 온라인 플랫폼, 그 조회수에 상응하는 가치의 글을 쓸 준비가 안되었다고 판단했다. 이것저것 하면서 경험을 쌓고, 준비가 되면 지원하자 마음먹고서는. 그렇게 시간은 흐르고 다시 에디터 모집이 열렸고, 스스로 글을 쓸 준비가 되기를 기다리고만 있었던 나는 그 전과 별반 달라진 바 없다는 걸 깨달았다. "준비는 영원히 되지 않아, 그냥 해!"
그렇게 시작한 에디터 활동이 벌써 마무리에 접어들었다. 글쓰기가 혼자만의 만족으로 그치지 않고 크게 퍼져나갈 수 있게 된 소중한 기회에 매번 감사하다. 아트인사이트에 기고한 같은 글을 블로그에도, 브런치에도 함께 올리면서 플랫폼의 힘을 느낀다. 내가 풀어낸 이야기가 일기장에 기록되는 개인의 이야기에 그치지 않고 세상을 향한 목소리가 되는 모습을 본다. 나의 글을 읽고 공감했다거나 감동했다는 피드백을 받을 때도 있었는데 이런 경험은 글쓰기의 기쁨을 선명하게 한다.
4개월 간 주로 문화예술에 대한 글을 써왔다. 나의 전공과 관심사가 자연스레 반영된 것이리라. 글만큼 자신을 드러내는 행위가 또 없기에 내 안의 있는 것들을 잡아내 문장으로 옮기다 보니, 지금까지 기고한 24편의 글을 모으면 자연스레 나의 얼굴을 하고 있다. 또한 에디터 활동을 하면서 일주일을 단위로 긴 글을 써나가기 위해선 어느 정도로 세상을 살피고 어느 정도로 내면을 들여다봐야 하는지, 외부의 자극과 내부의 반응 사이에 적절한 리듬이 무엇인지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다. 이제 막 손에 잡힌 듯한 이 리듬을 계속해서 연주하고 싶다.
아트인사이트에서 자유롭게 사유를 풀어내는 경험은 스스로를 글 쓰는 사람으로 뿌리내릴 수 있도록 따스한 용기를 심어주었다. 처음 기고한 글과 가장 최근에 기고한 글을 보면 그 짧은 사이에 많이 성장했음이 느껴진다. 글을 쓰기에 걸맞은 생활 리듬을 만들어가며 용기를 내 글쓰기를 나의 정체성 중 하나로 맞이해본다. 이 모든 과정에서 가장 감사한 것은, 스스로 내 안에서 나올 이야기에 기대하는 마음을 품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불안한 미래와 불확실함 투성이인 선택지들 사이에서 나 자신에 기대하는 마음을 품게 되었다는 것은, 기쁨과 함께 슬픔이 따르는 일이라 하더라도 온 마음을 다해 글쓰기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든다.
[송민형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글의 힘은 정말 대단한것 같습니다
늘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