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당신은 그림을 어떻게 읽어내는가? - 히에로니무스 보스의 수수께끼

글 입력 2020.10.26 1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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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_히에로니무스 보스의 수수께끼.jpg

  

 

히에로니무스 보스의 수수께끼

Reisen zu Hieronymus Bosch

 

세스 노터봄 | 금경숙 옮김 

 

 

미술 작품에서 재현의 문제는 아주 오래전부터 탐구의 대상이었다. 하나의 작품은 저마다의 시선을 통해서 새롭게 인식되고 해석되기 때문이다. 같은 장소에서 동일한 작품을 보았다 하더라도 서로 다른 평가를 한다. 이렇듯 재현은 단순히 다시 표현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보는 이로 하여금 제2의 탄생을 유도한다.

 

어떤 면에서 ‘작가’는 ‘매체’를 통해서 자신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사람이다. 문학가는 자신이 창조한 문장의 세계를 통해서, 미술가는 자신이 함축한 그림이란 세상의 요지경을 통해서 대화를 시도한다. 이따금 해석자의 위치에 서는 이들은 작가의 작품을 보면서 감응하고 판단을 내린다. 보편적으로는 작가의 메시지와 읽는 이의 인식은 상통하는 듯하나 작가의 말이 작품 속에 파묻혀 있을 때는 어쩔 수 없이 미로에 들어가야만 한다. 미로를 탐색해야만 작가와의 대화를 시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히에로니무스 보스의 수수께끼>는 동시대 작가의 시선에서 해체되는 보스의 작품세계를 설명하는 책이다. 네덜란드 출신의 세계적 작가 세스 노터봄이 15세기 네덜란드의 화가 히에로니무스 보스의 작품을 파헤친다. 작가는 공통된 문제에서 보스 개별의 특징으로 전개하는 방식을 취한다. 공통의 요소는 네덜란드 출신이라는 것, 그림을 그린다는 것이다. 그러나 세스 노터봄은 ‘작가’이고 히에로니무스 보스는 ‘화가’라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히에로니무스 보스는 화가로서 여러 장치를 만드는 데 그쳐 ‘수수께끼’를 남겼지만, 세스 노터봄은 보스의 작품을 해석하고 재현할 필요를 아는 ‘쌍방향의 소통’이 가능한 ‘작가’이기 때문이다.

 

여든두 살의 노장 작가가 15세기의 화가의 작품을 읽어내는 과정을 담았다. 스무 살 청춘에 본 보스의 작품과, 여든에 다시 보는 작품은 결코 이전과 같지 않으리라. 이 책은 2016년 히에로니무스 보스의 탄생 500주년을 맞이하여 프라도 미술관으로부터 관련 다큐멘터리 작업을 하자는 서신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노터봄은 제작진과 작업을 하기 전, 홀로 보스의 작품을 보러 떠난다. <성 안토니우스의 유혹>을 보면서 보스와의 대담을 시도한다.

 

 

 

당신은 그림을 어떻게 읽어내는가?


  

 

당신은 그림을 어떻게 읽어내는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다른 사람들은 어떤 방식으로 그림을 읽는가? 모자가 추기경의 붉은 색임을 보고, 나는 이 그림이 히에로니무스를 그린 것임을 알지만, 일본인도 그것을 알아보는가? 알아야만 하는가? 일본의 사찰에서는 온갖 수수께끼가 내 앞에 놓여있었는데, 그렇다면 그 수수께끼들로 인해 내가 그림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는 말인가?

 

- P.15

 

 

이 책은 미시적으로는 히에로니무스 보스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작품을 보고 이해하는 문제’로 확장된다. 아주 세밀한 부분에 대한 관찰로 전반적인 감상에 대한 논의를 제기하는 것이다. 사실 이 책은 작가 세스 노터봄의 노련함과 전문가로서의 심도 있는 접근을 바탕으로 히에로니무스 보스의 작품을 분석한다. 그렇기에 단순 에세이라기보다는 보스의 예술관을 분석한 페이퍼처럼 느껴진다.

 

어떤 부분에서는 이 정도의 박식함이 없으면 접근하기도 어렵겠다는 느낌을 준다. 하지만 ‘당신은 그림을 어떻게 읽어내는가?’라고 던진 물음 앞에서 보스를 이해하는 법을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해석과 이해의 과정에서 지식은 요구되긴 하나, 반드시 그것으로 인해 모든 문제를 충족하기란 쉽지 않다.

   

 

‘보스 자신은 그 어떤 말도 없이, 그림만 남겨놓았을 따름이다. 그는 다가올 날들을 미루어 짐작했던가? 그의 자취야 토지대장과 문서, 매매 서류에 남아있지만, 그는 자신의 예술에 관해서는 어떤 것도 말하지 않았다. 그는 그림을 그렸다. 우리 눈에서 사라진 한 남자는. 눈에 보이는 그 많은 것들 뒤에 어떤 것도 남기지 않았다.

 

- P.21

 

 

그러나 보스의 작품에 있어 면밀한 관찰이 필요한 이유는 다가오지 않은 세계, 보지 않은 현실을 그렸기 때문이다. 15세기의 작가가 여전히 수수께끼를 품고 있는 미스테리한 화가로 인식되는 까닭에는 보스의 특이한 표현과 해석이 있기 때문이다. 그의 작품은 전반적으로 디스토피아를 표현한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우울하거나 괴이하다. 그러나 그는 부유한 환경 속에서 삶을 살았다. 이 점에서 세스 노터봄은 한 번도 실제로 보지 못했을 것을 그렸다고 추측한다.

 

그가 남긴 것은 결국 ’그림‘이다. 이것에 대한 해석은 어떻게 접근하고 인식할지에 대한 방법이다. 물론 반드시 알아야 한다는 전제조건을 내세우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히에로니무스 보스의 수수께끼>는 작가의 관점에서 세밀한 접근을 시도하는 분석의 총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쾌락의 정원>, 히에로니무스 보스의 비밀정원


 

131.jpg

Hieronymus Bosch, The Garden of earthly delights,

oil on oak pannels, 1480 and 1505, Museo del Prado, Madrid

 

 

’쾌락의 정원‘은 히에로니무스 보스의 대표 작품으로 세폭으로 구성된 제단화다. 창세기에 있는 아담과 이브의 이야기서부터 혼란스러운 세상과 피조물, 나아가 마지막에서는 지옥을 형상화했다. 작품은 당대에도 논란이 되었고, 현재도 어떻게 접근할 것인지에 대한 해석의 여지를 자아내고 있다. 이른바 죄악이라 표현되는 것들은 너무나도 적나라하고 비현실적으로 표현하고 있으며, 작품 자체가 주는 교훈적인 의미나 상징에 대한 판단이 모호하기 때문이다.

 

또한, 당대에 표현되던 천국과 지옥에 비하여 너무나도 기괴하게 표현을 했다. 각 부분마다 개별의 해석과 작품 전체의 해석이 오가는데, 그중에서도 가운데 부분에 대한 해석은 학자마다 상이하다. 작품을 멀리서 보는 것과 안에 있는 세부적인 요소도 각각의 의미를 지닌다는 점에서 많은 분석과 관찰을 요구하기도 한다. 이에 세스 노터봄은 패널 곳곳에 숨은 의미를 해석하는 방식을 취한다.

 

이미 <쾌락의 정원>을 여러 번 본 경험이 있는 세스 노터봄은 작픔을 회고하면서 “그림은 언제 화가에게서 자유로워지는가, 동일한 그 재료는 언제 다른 생각이 되는가?”라고 물음을 던졌던 과거를 회상한다. 작품 속에 무수히 많은 상징을 남긴 보스의 의미는 보는 이들에 따라 해석이 달라지고, 시대에 따라 의미가 달라진다.

 

그럼에도 그림을 완성한 보스는 특정 시간과 공간에만 존재한다. 따라서 세스 노터봄의 접근은 보는 시간과 공간은 변화하지만 작품은 고정되어 있다는 것을 보면서 과거의 자신의 시선과 현재의 자신을 비교한다.

   

 

“그저 보게나, 당신이 보는 것을 당신은 보지 못하네” 그리고 내가 리스본·마드리드·헨트에서, 그리고 지금 여기에서 본 것이란 바로 그런 것이다. 내가 본 모든 것, 그럼에도 어쩌면 보지 못한 것. 가장 좋은 해답은 보스의 그림 하나 안에 들어가 살며 수수께끼와 더불어 여생을 보내는 것이리라.

 

산 루이스(San Luis), 2015년 10월 21일.

 

 

작가 세스 노터봄은 책의 시작과 끝에서 ’그저 보라는‘ 메시지를 던진다. 도상학적인 접근을 통해 히에로니무스 보스의 세계를 분석한다 하더라도 결국 보스는 그림만 남겼을 뿐이다. 남아있는 자들이 접근하는 한계는 그가 남긴 그림 한 점 뿐이다. 그렇기에 그림은 불변하나 보는 이의 관점과 해석은 계속해서 달라진다.

 

수수께끼는 정해진 답이 없기에 더 많은 해석과 접근을 요구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여전히 의문투성이인 보스의 작품은 결국 ’그저 보고 느껴라‘라는 가장 단순하고도 명쾌한 진리에 이르게 한다. 히에로니무스 보스의 작품을 통해 그림을 진정으로 이해하는 방법을 만나보는 건 어떨까.

 

 


저자 소개


 

지은이 세스 노터봄Cees Nooteboom

 

1933년 네덜란드의 헤이그에서 태어났다. 시인이고 소설가이다. 특히 여행을 많이 하는 작가로, 다른 문화와 다양한 사람들의 내면세계를 탐색하고 문학적 은유로 묘사한다. 1954년에 발표한 첫 소설 《필립과 다른 사람들Philip en de anderen》(1954)로 안네 프랑크 상을, 《의식Rituelen》(1980)으로 페가수스 상을, 《계속되는 이야기Het volgende verhaal》(1991)로 유럽 문학상 최우수 소설 부문을 수상하는 등, 다수의 문학상을 받았다. 간결한 문장과 철학적 사색으로 시간과 공간을 시적으로 그려낸 여행서 《산티아고 가는 길De omweg naar Santiago》(1992), 《유목민 호텔Nootebooms Hotel》(2002)은 여행 문학의 진수를 보여준다.

 

현재 네덜란드 암스테르담과 스페인 메노르카섬을 오가며 살고 있다.

 

 

옮긴이 금경숙

 

부산대학교 도시공학과를 졸업한 후, 10여 년 동안 도시를 계획하고 집 짓는 일을 했다. 2006년부터 15여 년 동안 네덜란드 남부 작은 도시 루르몬트에 살며, 북해 연안 저지대의 다양한 모습을 글로 기록하고, 네덜란드 작가들의 작품을 우리말로 옮겼다.

 

지은 책으로 플랑드르 화가들의 발자취를 따라가며 쓴 《플랑드르 화가들》과 네덜란드 생활기 《루르몬트의 정원》이 있고, 옮긴 책으로 네덜란드 작가 세스 노터봄의 《유목민 호텔》, 얀 볼커르스의 《터키 과자》 등이 있다.

 

 

 

아트인사이트 이다선 명함.jpg

 

 

[이다선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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