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더 많은 '우리'의 지지 않는 화력 [도서]

추적단 불꽃 <우리가 우리를 우리라고 부를 때>
글 입력 2020.10.25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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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레그램 N번방 사건을 처음 인지한 건 2019년 말에서 2020년의 초입, 겨울이었다. 트위터에서 많은 사람들이 리트윗한 게시물을 보게 되었고, 당시만 해도 언론에 크게 보도가 되지 않아 의아해했다. (후에 한 친구와 이야기를 나눠보니 당시 사건의 심각성에도 불구하고 크게 이슈가 되지 않아, 친구는 해당 사건이 가짜 뉴스인 줄 알았다고 한다.)

 

당시 접했던 이야기들은, 이 거대한 사건의 단편적인 부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충격적이라 머릿속으로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다. 감당이 되지 않았다는 표현이 정확할 것 같다. 그러다 2020년 3월, 관련 이슈들이 수면 위로 올라오기 시작했다. 많은 사람들이 공분했다. 그리고 그때, 사건을 최초로 세상에 알린 ‘추적단 불꽃’을 알게 되었다. 놀랍게도, 내 또래 여성이었고, 대학생이었고, 불과 단 둘이었다.

 

 

 

추적단 불꽃
        

‘불’과 ‘단’ 두 사람으로 이루어진 추적단 불꽃은 N번방 사건의 최초 보도자이자 최초 신고자다. 2019년 7월부터 텔레그램 방 잠입 취재를 시작하며 경찰에 신고했고, 같은 해 9월 뉴스통신진흥회가 주최한 탐사 심층 르포 취재물 공모전에서 「“미성년자 성착취물 파나요?”…‘텔레그램’ 불법 활개」라는 기사로 해당 문제를 보도했다.

 

그러나 당시 크게 보도되지 않았고, 추적단 불꽃의 최초 보도로부터 9개월이 지난 2020년 3월에 비로소 관련 이슈들이 세상에 알려졌다. 이후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미미한 사회적 인식이 강화되었고, 텔레그램 성착취 주요 가해자들이 재판에 넘겨졌다. 지난 5월, 20대 국회에서 성폭력범죄처벌특례법 개정안, 형법 개정안, 범죄수익은닉의 규제 및 처벌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 등이 포함된 ‘N번방 방지법’이 통과됐다. (‘N번방 방지법’은 디지털 성범죄를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지적을 받는다. 스토킹방지법, 그루밍처벌법, 디지털 성범죄 함정수사 법제화 등이 필요하다.) 9월 15일 대법원은 디지털 성범죄 양형기준 권고안을 발표했다. (이 또한 판사의 재량으로 법정형을 감경해주는 제도 '작량감경'으로 인해 유명무실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존재한다. 해당 양형기준은 의견조회, 공청회 행정예고 등의 절차를 거쳐 12월 최종의결이 되면 그 이후 기소된 사건부터 적용된다.)

 

이 모든 건 추적단 불꽃과 피해자들의 용기 덕분에 가능했다. 그리고 지난 9월 출간된 <우리가 우리를 우리라고 부를 때>에는 '불'과 '단'의 추적기가 담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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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3부로 이루어진 <우리가 우리를 우리라고 부를 때>의 '1부 2019년 7월 그날의 기록'에는 N번방 사건 추적 과정이, '3부 함께 타오르다'에서는 사건 공론화 이후의 활동이 담겨있다. '2부 불과 단의 이야기'에는 이들의 개인적인 이야기가 에세이 형식으로 담겨있다.

 

책의 1부는 N번방을 발견한 2019년 7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추적을 시작한 순간부터 지난 3월 '박사' 조주빈이 잡히기까지의 상황이다. 추적단 불꽃이 어떤 식으로 N번방을 추적했는지 상세하게 다루고, 사건을 체계적으로 정리한다. 언론 보도에서 접하지 못했던 이야기들까지 생생하게 녹아있다.

 

'불'과 '단'은 기자를 꿈꾸는 대학생이었다. 취업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공모전 준비를 하고 있었고, 불법촬영물이 유통되는 방식을 알아내려고 하던 중 '왓치맨'의 구글 블로그(AV-SNOOP)를 발견한다. '왓치맨'의 블로그에서 디지털 성착취가 발생하고 있는 N번방(총 8개 방으로 운영)에 대한 정보를 얻게 되고, '왓치맨'이 운영하는 텔레그램 고담방에 잠입한다. N번방에 입장하기 위해서는 고담방에서 파생된 대화방에 입장해야 한다. 추적단 불꽃은 불시에 올라오는 링크를 통해 파생방에 잠입했고, 파생방에서 비교적 간단한 미션을 수행하고 N번방의 링크를 얻는다.

 

텔레그램에는 N번방 말고도 성희롱과 강간 모의, 지인능욕 등 각종 성범죄가 판치는 대화방이 너무나 많았지만, N번방은 지옥 그 자체였다. '갓갓'의 협박으로 미성년자들이 성적으로 착취당하는 영상이 N번방에 올라왔다. 공모전을 통한 N번방 사건 보도가 피해자에게 2차 피해를 안길까 우려했지만, 이들은 눈앞의 1차 가해를 외면할 수 없었다. 추적단 불꽃은 기사 작성에 앞서 해당 사건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경찰에 고발한다. 이후 경찰과 공모해 실시간으로 벌어지는 가해 행위를 채증했고 일련의 과정을 기사로 써낸다.

 

2019년 9월 공모전에 당선된 기사가 공개됐을 때 언론이 반응해 주길 기대했지만 세상은 조용했다. 2019년 11월 한겨레신문이 (N번방을 모방해서 만들어진) 박사방과 관련한 기사를 보도했지만 반향은 기대만큼 크지 않았다. 2020년에 접어들며 기성 언론이 해당 사건에 관심을 보이지만, 여전히 피해자에 대한 배려는 부족했다.

 

2020년 3월 9일, 국민일보에서 'N번방 추적기' 기사를 내보였고, 3월 17일 '텔레그램 박사방' 유력 용의자가 검거된다. 3월 25일 조주빈의 신상이 공개된다. 텔레그램에 상주하던 회원들은 '박사'의 신상이 공개되는 순간 대거 탈퇴했다. 이후 몇 개월간은 수사기관의 단속이 심해서 성착취 영상 제작이나 유포는 줄었지만, 지인능욕 범행과 불법촬영물 유포는 멈추지 않았다고 한다. 추적단 불꽃에 따르면 탈퇴자들 또한 다시 돌아오는 분위기며, 텔레그램 외 다른 여러 플랫폼으로 퍼져나간 상태다. 새로운 유형의 디지털 성범죄가 양산되고 있다. '불'과 '단'은 아직 텔레그램 대화방을 떠나지 못하고 있고, 여전히 싸우고 있다.

 

추적단 불꽃의 N번방 추적 과정은 편하게 읽어 내려갈 수 없다. 가해와 피해가 어떤 식으로 일어나는지 알게 되는 건 정말 힘들고 불편하다. 상상만으로도 너무 가혹하기 때문에, 더 깊게 생각하거나 이에 대해 구체적으로 묻고 싶지 않았다. '디지털 성범죄' 혹은 '성착취'라는 언어를 상상할 뿐, 이 단순한 말로는 오롯이 설명할 수 없는 그 이면의 것들을 마주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추적단 불꽃은 증언한다. 이런 일이 일어났고, 그를 목격했다고. 지금 이 순간에도 일어나고 있는 일에 대해 침묵할 수 없다고.

 

피해 상황의 자세한 묘사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글을 읽어나가는 게 벅찼다. 기록만을 접하는 나 또한 이런데, 매일 텔레그램 방들을 모니터링하며 범죄를 추적했던 '불'과 '단'은 얼마나 지쳤을까 싶다. 사건을 복기하면서 얼마나 고되었을까 싶다. 그럼에도 추적단 불꽃이 다시, 계속해서 나설 수밖에 없는 이유는 분명하다. 여전히 일어나고 있고, 완전히 해결되지 않은 문제이기 때문이다.

 

'불'과 '단'의 의지는 3부에서 더욱 명확하게 드러난다. 이들은 사건 공론화 이후 다양한 매체와의 인터뷰를 통해 더 많은 이들에게 N번방 사건을 알리고, 자신들의 유튜브와 블로그를 통해 활동하며 사건이 현재 진행형임을 알린다. 또한 여성가족부 간담회, 국무조정실 회의, 서울중앙지검 간담회, 지역 성폭력 상담 센터에서의 강연 등을 통해 지속적으로 의견을 피력하고 대책을 제안하고 있다.

 

동시에 피해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우리가 어떻게 연대해야 할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제시한다. <우리가 우리를 우리라고 부를 때>에는 우리가 알고 배워야 하는 많은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다.


 

 

불과 단,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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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는 오롯이 '불'과 '단'의 이야기다. 각자의 어린 시절과 서로를 만나고 친해지기까지의 과정, 페미니즘을 접하고 공부하게 된 이유 등이 담겨있다. 같은 20대 여성으로서 공감할 수밖에 없는 내용들이었다. '불'과 '단' 서로가 서로와 다름은 물론, 책을 읽어나가는 '나'와도 너무나 다른 사람들이지만, 동시에 비슷한 경험을 겪고 같은 문제의식을 체화한 '우리'였다. 일상에 만연한 남성 중심적 문화와 그로 인한 여성 혐오 범죄들을 경험하고 목격한 '우리'였다.

 

'불'과 '단' 또한 서로가 있었기에, '우리'였기에 추적을 이어나가고 책을 완성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N번방 사건을 취재하며 공론화하기까지 추적단 불꽃은 꽤 오랜 시간 둘이서만 싸워야 했다. 취재하면서 생긴 트라우마와 번아웃은 온전히 둘의 몫이었다. 그래도 활동을 하면 할수록 더 많은 '우리'가 되었기에 위안을 얻었다고 한다. 사건에 분노하며 국민 청원에 서명하는 시민들, 재판 방청에 참여하는 사람들, 디지털 성범죄를 모니터링하는 시민단체 리셋 등. 더 많은 '우리'가 연대해 나가고 있기에 가능한 싸움이었다.

 

최근 검찰은 ‘갓갓’ 문형욱과 ‘박사’ 조주빈에게 무기징역을 구형했다. 당연히 여기서 끝은 아니다. 재판부의 선고가 나올 때까지 안심할 수 없다. 여전히 더 많은 가해자들이 존재하고, 또 다른 디지털 성범죄가 판을 친다. 이 싸움이 언제 끝날지 마냥 낙관하기는 어렵다. 추적단 불꽃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한다. 그때까지 피해자와 연대자, 함께 '우리'가 되어 지켜보자고. 같이 행동하며 동행하자고.

 

 

 

무디어진 나와 당신에게



사건의 본격적인 공론화 이후 나는 많은 사람들과 함께 분노했지만, 내 일상을 견딘다는 핑계로 조금씩 무뎌지고 무관심해졌던 것 같다. '잘 해결되겠지'라는 비겁한 안도 뒤에 숨었다. 책을 읽는 내내 마음 한 구석이 따끔거렸다. 나는 더 알고 싶지 않다는 괴로움에 그동안 내 눈을 스스로 가려버렸던 게 아닐까.


<우리가 우리를 우리라고 부를 때>의 서문에서 '불'과 '단'은 무디어진 나와 당신에게 꼭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한다. "책을 읽으시는 도중, 사건의 끔찍함에 마음이 힘드실 수 있습니다. 믿고 싶지 않은 이야기라, 알아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알고 싶지 않으실 수도 있습니다. 1년 넘게 사건을 취재한 저희조차도 때로는 사건이 주는 괴로움에 눈을 가릴 때가 있는 걸요. 그럼에도 감히 부탁드립니다. 사건을 받아들이고, 문제를 인지해주세요. 저희가 이 사건을 계속 취재하는 이유는 계속되는 묵인이 불러일으킬 폐해를 너무도 잘 알기 때문입니다."

 

책을 덮으며 "추적단 불꽃이 없었다면..."이라는 몹쓸 상상을 해본다. 정말로, 끔찍하고 참담하다. 새삼 추적단 불꽃의 존재와, 이들의 말로는 설명 못할 용기에 무한한 감사를 표하고 싶다. 추적단 불꽃의 고단하고 지난한 기록을 어루만지며 다짐해본다. 최전선에서 버텼던 '불'과 '단'의 용기를 되새기며 맹세해본다. 우리 곁에 있는 피해자를 상기하며 약속해본다. 절대 잊지 말자고. 영원히 기억하자고. 다시는 무뎌지지 않겠다고. 분노와 연대를 동력으로, '우리'의 지지 않는 화력을 보여주자고. 그렇게 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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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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