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소외당하는 이에게 잔잔한 위로를 주는 ‘앙: 단팥 인생 이야기’ [영화]

글 입력 2020.10.22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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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 보고 단팥을 만드는 장인의 정성과 노력에 초점을 맞춘 이야기일 것이란 생각은 큰 오산이었다. 벚나무가 흐드러진 도로의 한 건물. 그곳의 1층에서 ‘도라하루’를 운영하는 센타로(나가세 마사토시). 하교하는 학생이나 몇몇 동네 주민이 가끔 들르는 동네의 조그만 도라야끼 가게다. 그곳의 주인인 센타로, 단골손님인 와카나(우치다 카라), 벚꽃이 핀 어느 날 아르바이트 공고를 보고 찾아온 도쿠에(키키 키린) 세 명의 이야기가 주요 내용이다. 도쿠에의 등장과 함께 센타로의 장사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 낮은 급료와 적은 시간이어도 상관없으니 그저 자신을 써달라는 고령의 할머니. 특이하기도 하고 손도 조금 불편해 보여 도쿠에의 제안을 거절하지만, 그녀가 만든 팥을 맛보고 아르바이트로 채용하게 되면서 내용이 전개된다.

 

 


1. 정성스런 요리 : 자신을 돌보다


 

사실 센타로는 직접 도라야끼를 굽고 판매하는데도 불구하고 도라야끼를 별로 먹어보지 않았다. 단것을 좋아하지 않을뿐더러 생계를 이어가기 위해 건물주가 내어준 가게가 우연히 도라야끼였기 때문이다. 본인이 좋아하지 않으니 당연히 맛도 그저 그럴 뿐, 장사가 그리 잘 되는 편은 아니었다. 빵은 괜찮게 구워왔지만, 앙금은 업소용 단팥을 쓰고 있던 센타로. 그 단팥을 맛보고 도쿠에는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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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이, 단팥은 마음으로 만드는 거야”


 

아침 해가 뜨기도 전부터 가게에 모인 두 사람. 팥을 불리고, 끓이고, 씻고. 물을 부을 때도 팥이 상하지 않도록 살살 부어준다. 또다시 끓이고 뜸들이기를 반복한다. 익은 팥은 부서지기 쉬우니 물기를 뺄 때도 조금씩 살살 부어줘야 한다. 다시 냄비에 설탕과 물, 팥을 넣고 기다리기를 2시간. 주걱 끝을 냄비 바닥에 대고 살살 저어준다. 팥이 으깨지지 않도록 조금씩. 새벽달이 사라지기 전에 시작한 단팥 만들기는 10시 반이 되어서야 끝이 났다. 참으로 복잡하고도 번거로운 과정이다. 팥도 힘들게 밭에서 여기까지 왔으니 극진히 다루어야 한다고 말하는 도쿠에. 오랜 정성을 들인 만큼 맛도 좋은 단팥이 완성되었다.


영화 리틀포레스트에서 요리는 마음을 비추는 거울이라고 말한다. 만드는 사람의 태도가 곧 요리에 그대로 나타난다는 말이다. 사실 센타로는 비밀이 있다. 도라하루를 운영하기 3년 전 일하던 술집에서 싸움을 말리다 주먹을 휘둘렀고 한 사람에게 심한 장애를 남기고 말았다. 그로 인해 감옥에 들어갔고, 어머니가 몇 번이고 면회를 왔지만 제대로 이야기를 들어줄 상태도 아니었을 뿐더러 출소 전 돌아가셨다는 자책감에 사로잡혀 자신을 돌보지 못하고 있었다. 깊이 들여다보면 아플 것이 분명할 자신의 마음을 외면한 채 업소용 단팥을 사용해 왔다.


요리를 하는 것은 곧 자신을 돌보는 일이라고 한다. 업소용 단팥은 간단하다. 뚜껑을 뜯고 구운 빵에 한 번 발라주기만 하면 끝나는 쉬운 일이니까. 하지만 그만큼 정성스럽지 못하다. 조심스레 저어주고, 시간을 들여 지켜봐주어야 제대로 된 맛을 낸다. 도쿠에를 통해 제대로 요리를 하고, 깊이 있는 맛을 직접 느끼면서 센타로는 자신을 치유해나간다. 집-가게의 반복이었던 일상에서 벗어나, 사람 사이의 따뜻한 온정과 아름다운 자연을 느끼고 주변을 돌아볼 수 있게 된다. 그리고 도라야끼에 대한 진정한 애정과 열정을 가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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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살라는 이야기야.

우린 자유로운 존재니까”


 

도쿠에가 떠나고 건물주에게 무리한 요구를 받은 센타로. 오코노미야끼도 추가해서 자신의 조카와 함께 동업하라는 말을 듣는다. 도쿠에에게 용기를 받은 센타로는 건물주의 요구를 거절하고, 도쿠에를 처음 봤던 날의 벚꽃처럼 아름다운 공원에서 자신만의 노점을 연다.




2. 소외당하는 이들 : 모두 가치 있는 사람이야


 

영화의 메인 인물인 센타로와 와카나, 도쿠에는 모두 사회에서 소외당하는 이들이다. 모두 사회가 정해놓은 ‘일반적인 루트’에서 벗어난 사람들이다.


모두를 따뜻하게 대해주던 도쿠에는 사실 나병을 앓던 환자였다. 한쪽 손이 불편했던 것도 나병에 걸려 손이 굽은 채로 굳어버렸기 때문이다. 나병은 신체가 아무 이유 없이 썩고 떨어져 나가는 것으로, 고통도 고통이지만 그 병을 바라보는 시선 자체가 곱지 않다. 결국, 도쿠에는 와카나 무렵의 나이에 나병 환자 격리 시설에 들어가, 도라하루에서 일하기 전까지 평생을 나오지 못하고 살아가야만 했다.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공부와 취업은 그녀에게 상상하기만 하던 행복한 일상이었을 것이다. 센타로가 출근하지 않은 날에도 도쿠에는 혼자서 재료를 준비하고 도라야끼를 만들어 판다. 힘들지 않았냐고 묻는 말에 도쿠에는 그저 웃는다. 힘들어도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기쁨이 더 크다고 말하는 듯이.


“큰 문제는 없는데 보기가 좀 흉하지”

“다 나았다고 했어요”

“본인은 그렇게 말하겠죠” 


도쿠에의 단팥 덕분에 도라하루의 인기가 올라갔음에도, 건물주는 센타로에게 찾아와 나병 환자가 팥을 만들고 있다는 게 주변에 알려지면 안 된다며 도쿠에 할머니를 자르라고 강요한다. 가게 주인의 만료에도 불구하고 도쿠에를 함께 가기로 결심한 센타로. 하지만 결국 도쿠에의 손에 관한 소문이 퍼지고 손님이 줄어들자, 그는 도쿠에를 자르고 만다. 그에게는 위자료를 대납해준 집주인에 대한 빚이 있었기 때문에 우선 장사가 잘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센타로 역시 다른 사람에게 주먹을 휘둘렀다는 이유로 사회에서 격리당하는 시기를 보냈다. 출소 후에도 그를 바라보는 시선은 곱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한 상황 속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자신을 고용해준 건물주의 요구에 그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현재 우리가 있는 사회도 별반 다르지 않다. 생계를 위해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고, 또 배신하는 악순환이 어디선가 이루어지고 있다. 이익을 위해 사람을 잘라낼 수밖에 없는 상황이 너무나 안타까웠다.


도쿠에를 자르고 후회와 상심에 빠진 나날을 보내는 센타로에게 편지가 도착했다. 도쿠에가 쓴 편지로, 그를 원망하지 않으며 당신만의 도라야끼를 만들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라는 내용이 담겨있는.


“아무 잘못 않고 살아가는데도 타인을 이해하지 않는 세상에 짓밟힐 때가 있습니다”

“소문은 무서운 거야. 하지만 이번 일에 있어서 세상보다 나빴던 건 바로 나야. 지켜줬어야 했는데. 내 잘못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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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라하루의 단골손님인 와카나는 중학생 3학년이다. 다른 친구들과 같이 학원도 다니고 고등학교에 다니는 평범한 일상이 그녀에게는 쉽지 않다. 그녀의 엄마는 가정에 관심이 없다. 동생을 돌보고 집안일을 하는 건 모두 와카나의 몫이다. 어질러진 집안을 보고도 엄마는 청소는커녕 애인과 놀러 다닐 생각만 한다. 동생이 좋아하는 그림책을 두고도 웬 그림책이냐 말 할 정도로 가족에게 신경을 쓰지 않는다. 맥주를 마시고 애인을 만나는 게 삶의 낙이라 믿고 있다. 돈만 벌어오면 다인 거 아니냐며 와카나에게 고등학교로 진학할 필요 없다며 취업하기를 강요한다. 그런 와카나가 마음을 놓을 수 있는 상대는 도라하루의 센타로와 도쿠에, 그리고 자신이 키우는 새인 마비가 전부이다.


이웃 주민의 신고로 마비를 쫓아낼 위기에 처하자, 와카나는 센타로와 함께 도쿠에가 있는 요양원에 찾아간다. 요양원은 커다란 나무들이 빽빽한 숲을 지나쳐야만 들어갈 수 있다. 일반적인 세상과의 경계를 보여주는 듯하다. 입구에 모여 단란하게 대화하는 나병환자들. 이곳에서는 아무도 그들을 혐오하지 않는다. 겉모습은 보통 사람과 다를지 몰라도,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차를 끓이고 대접하며 요리를 만든다. 그리고 도쿠에는 센타로에게 고마웠고 미안해하지 말라며 먼저 손길을 내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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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지 마. 우리는 이 세상을 보기 위해서, 세상을 듣기 위해서 태어났어. 그러니 특별한 무언가가 되지 못해도 우리는, 우리 각자는 살아갈 의미가 있는 존재야”


 

사회의 시선 때문에 평생을 자유롭게 살지 못한 도쿠에. 센타로를 원망할 법도 하지만 그녀는 모든 것을 마음에 품고 떠났다. 사람에게 받는 상처가 얼마나 큰지 누구보다 잘 알았을 테니까. 사회에서 특출난 무언가가 되지 못해도, 자신을 긍정하고 살아갈 힘을 주는 도쿠에.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는 사회에서 소외당하는 이들을 위한 찬가와도 같다고 감히 말해본다.

 


[최예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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