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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상상하는 모든 것이 현실로 다가온다면? <레디 플레이어 원>은 그 이야기를 담은 영화이다. 모든 것이 가능한 가상세계인 <오아시스>를 만들어낸 천재 ‘제임스 할리데이’는 어느 날 사망하게 되고, 오아시스 속 세 개의 수수께끼(key)를 풀어낸 사람에게 오아시스와 그의 유산을 상속한다는 말을 남긴다. 주인공인 웨이드는 오아시스를 즐기고 할리데이를 선망하는 플레이어로서, 첫 번째 수수께끼를 푸는데 성공하며, 라이벌 회사인 IOI 가 웨이드를 쫓으면서 웨이드는 더 큰 사건에 휘말리게 된다.
이 영화에서 나오는 가상세계 '오아시스'는 다른 매체에서의 가상세계와는 매우 다른 속성을 띤다. 그 차이점은 '오아시스'가 일종의 게임이기 때문에 자신이 원하는 대로 캐릭터를 만들어낼 수 있고, 아이템을 수집하고 다양한 공간에서 아케이드를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오아시스’ 는 척박한 사막에서 유일하게 물이 샘솟아 마을을 형성하게 해준 곳과 같이 힘든 현실세계를 벗어나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웨이드 또한 현실은 차갑고 힘들게 묘사하며 ‘오아시스’는 새로운 친구와 자신의 모습을 찾아가는 곳이다.
게임의 경우 가장 매력적인 속성은 모든 플레이어가 ‘무 (無)’부터 시작한다는 것이다. 부익부 빈익빈에서 벗어날 수 있으며, 새로운 경제규칙에 따라 시간에 따른 숙련도의 보상이 현실에 비해 더욱 확연하게 비춰진다. 만약 가상현실에서 죽었다 하더라도, '레벨 1부터 다시 시작하라' 는 웨이드의 말과 같이 다시 시작할 수 있다. 이렇게 오아시스는 현실과 다르다는 점에서 매력을 갖지만 오아시스는 그와 동시에 현실과 매우 닮아가며 현실과 극도로 중첩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레디 플레이어 원>은 영화 속에서 계속 현실에서 VR 기기를 끼고 있는 모습과, 게임 속에서 캐릭터의 모습을 연달아서 보여주는 장면이 많이 들어있다. 결국 자신의 캐릭터는 현실 속에 ‘나’로 인해 움직인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현실에서 차가 흔들리면서 제대로 몸을 못 가누는 것이 가상 현실에서도 그대로 반영된다. 웨이드가 새로운 수트를 구매하는 장면도 매우 흥미로운 요소이다. 오아시스에서 물건을 사면 실제 현실에서도 배송이 되며, IOI 는 플레이어들에게 현실의 빚을 가상현실에서 갚아내게 한다. 절대적 엔터테인먼트로 시작되었던 게임도 현실과의 경계가 희미해지며 놀이와 노동의 경계 또한 희미해지게 된 것이다.
영화에서 할리데이의 이스터에그는 결국 이에 대한 할리데이의 메시지였다. 어린 할리데이는 'game over'라는 화면으로 게임을 끝마치고 게임기를 손에서 놓는다. 하지만 오아시스와 같은 요즘의 온라인 게임은 game over는 존재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연이어서 시작할 수 있으며, 게임 속 나와 다른 플레이어들이 있는 한 게임은 끝나지 않는다. 전자식 시대에서 온라인 시대로 넘어가면서, 유저가 있으므로 게임이 존재한다는 점은 중첩성의 하나의 요인이다.
영화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이에 대한 핵심 또한 던진다. 모든 테스트를 통과한 웨이드 앞에서 할리데이는 자신의 아바타 '아노락'이 아닌 본인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렇게 웨이드는 궁금해한다. 할리데이의 모습은 아바타인지, 아니면 실제인지. 하지만 할리데이는 그에 대한 답을 주지 않는다. 이것은 우리가 끊임없이 숙고해야 할 질문이기 때문이다.
내가 플레이 하는 게임 속 캐릭터는 나인가, 아니면 별개의 존재인가? <레디 플레이어 원>은 이와 같이 게임과 현실의 중첩성에 대한 본질적인 철학적 질문을 끄집어낸다. 그리고 이 영화는 중첩된 세계들 속에서 우린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할지도 해답에 대한 힌트 또한 던져주었다. 바로 'reality is real'이라는 한 문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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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떤 게임이나 영화를 보고 그거에 푹 빠지면, 간혹 그 ‘게임’이나 ‘영화’가 명작이었기 때문에, 그 대중매체들이 너무나 좋았기 때문에 기억나는 대중문화의 한 부분이라고 착각하게 된다. 하지만, 우리가 그것을 아름다운 추억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그 매체가 ‘좋을’ 뿐만이 아니라, 실제의 다른 사람과의 ‘소통’을 일구고 그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왜 극도로 기술이 발달한 오아시스에서 사람들은 80 90년대 게임을 꺼내 들으며 즐기겠는가?
대중문화는 괜히 ‘대중’문화가 아니다. 서로 향유하면서 자신의 생각, 말, 행동 등을 현실의 다른 사람과 공유하고 같이 즐기기에, 대중문화인 것이다. 하지만 정작 대중문화를 즐기기 위해 현실과의 소통을 단절시킨다면, 그것은 매우 모순되는 행동일 것이다. 영화 속에서 할리데이는 ‘아무리 힘들고 고통스러운 세상이라도, 밥 한끼 먹을 수 있는 유일한 곳’ 이라고 현실을 표현했다.
우리는 실제로 예전과는 달리 척박하고, 상상과는 다른 차가운 현실에 부딪혀 살고 있다. 웨이드의 말처럼 현실은 힘들지만, 영화나 게임에 빠져 있으면 더욱 더 새롭고 재미있는 세상에 뛰어들게 된다. 하지만 결국 그 세상도 다른 사람과 소통하고 만나면서 건설되는 것이며, 영화 속 홀리데이는 자신의 친구를 가장 중요시 했으며 웨이드 또한 오아시스의 친구들을 실제로 만나서 같이 IOI 를 물리친다. 결국 이 영화는 오아시스, 즉 대중매체 또한 결국엔 ‘실제’에서 비롯된 것이며, 우리에게 무엇이 중요한지, 무엇이 이 모든 대중문화들을 남겼는지 돌이켜보라는 메시지를 남긴다.
우리의 아름다운 추억을 지닌 대중문화를 스크린에 살리고, 우리에게 뜻 깊은 메시지 또한 전해준 <레디 플레이어 원>은 할리데이의 ‘내 게임을 플레이 해줘서 고맙다’ 라는 명대사를 남기며 결말에 다다른다. 이 대사는 할리데이를 포함한 모든 대중문화의 창작자가 대중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을 내포했을 것이다. 게임을 플레이 하는 것을 넘어서 그 픽셀 속 세상을 탐험하고 제작자에게 깊이 다가가는 것, 다른 사람들과 같이 소통해가며 확장적으로 즐기는 것. 그 매체를 힘들게 제작한 창작자에게 크게 다가올 것이다.
또한 창작자에게 또 다른 좋은 작품을 만들게 하는 동기가 될 것이며, 대중 또한 그 작품을 기대하면서 순기능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대중문화를 심도 있게 분석하고 열광하며, 매체 너머 현실의 사람들과도 열광하며 '같이' 향유하는 것. 이것이 앞으로의 우리가 이 중첩되어 가는 두 세계 속에서 살아가야 할 자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