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작 엎드려 바라보는 고양이

타자로서의 고양이
글 입력 2020.10.22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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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고양이와 가까운 삶을 살고 있는가. 묻기 전에 먼저 나에게도 같은 물음을 던져본다. 나는 고양이와 가까운 삶을 살고 있는가? 답은 ‘아니오’. 아예 닿아본 적도 없는 존재냐 물으면 그것도 ‘아니오’.

 

고양이와의 경험이 있긴 하다. 길에서 나를 깜짝 놀라게 한 거친 눈동자의 고양이. 친구의 반려묘 감자. 그게 거의 전부다. 하지만 고작 그 정도의 만남으로 내가 고양이에 대해 조금 알 것 같다 한다면 그건 거짓말이다. 강아지 두 마리와 함께 지내고 있는 나로서는 고양이의 우아하고 은밀한 몸짓은 언제도 익숙해지지 않았다. 그저 뻣뻣하게 얼어있을 뿐이었다.

 

고양이는 나에게 철저하게 유리창 바깥의 존재였다. 우연히 마주친 고양이들도 내겐 찰나의 풍경 그 이상이 되어주진 못했다. 풍경. 그렇다. 나는 그들을 내 시선이 닿는 풍경처럼 대했다. 나는 매일 마주치는 그 모습들을 풍경답게, 무심하게 지나쳤다. 그렇게 지나친 풍경은 더 이상 내게 어떤 것으로도 남아있지 못했다. 순간적이고 납작한 것들이 되어 잊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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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건공이 / 오른쪽 도리

  

 

그런 내게 조금 익숙한 고양이가 있는데, 대학교 길냥이들이다. 특히 내가 주로 머무는 건물에 드나드는 주황색 고양이, 그리고 최근 보이기 시작한 회색 고양이. 둘 다 길고양이인데 학교 내에서 밥도 챙겨주고 물도 챙겨주고 다치면 병원도 데려가는 고양이들이다. 그들에겐 반려하고 있는 단 한 명의 인간은 없지만, 이름이 있다. 건공이와 도리. 그들의 이름이다.

 

주황색 고양이 건공이는 하루에 몇 번씩이나 건물 안으로도 불쑥불쑥 들어오고, 화장실로 학생들을 데려와 물을 틀어달라며 세면대 위에서 울어댄다. 건공이의 하루 동선은 ‘-에서 봤다.’ ‘-을 하고 있더라’ 등등 학생들의 제보를 통해 얼추 완성된다. 그 말들을 듬성듬성 조합하고 있자면 대충 건공이의 하루가 보인다. 반면에 회색 고양이 도리는 건물 안으로는 들어오지 않는다. 사람 손도 타지 않는다. 늘 조심스럽게 다가와서 조심스레 밥과 물만 먹고 떠난다. 나는 건공이의 동선, 끼니와 같은 면모가 인간인 나와 꽤 닮아있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대충 볼 땐 그랬다. 그래서 다른 고양이들도 그 정도의 루틴을 보내고 있겠거니, 대충 지레짐작해왔던 것 같다.

 

어느 날이었다. 어김없이 찾아온 회색 고양이 도리에게 밥과 물을 주고, 장난감까지 요리조리 흔들어 봤지만 그날따라 도통 반응도 없고 그렇다고 움직일 생각조차 없어 보였다. 결국 나는 도리를 남겨두고 건물 안에 들어갔다. 하지만 여전히 도리는 건물의 유리창 바깥에서 다소곳하게 앉아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는 것이었다. 고양이의 노골적인 시선에 익숙지 않은 나는 도대체 원하는 게 무엇일지 안절부절했다. 혹시 들어오고 싶다는 걸까? 조심스레 유리 문을 열었다.

 

도리는 열리는 문에 흠칫 놀라더니 슬며시 입구 쪽으로 다가왔다. 한걸음 한걸음 내딛는 고양이의 발에 내 몸은 잔뜩 긴장해 꿈쩍할 생각을 안 했다. 그때, 갑자기 도리가 방향을 바꿔 저 멀리로 냅다 뛰어갔다. 순식간에 도리는 시야에서 사라졌다. 갑작스러운 사라짐에 허공만 바라보던 나는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나의 시야, 그니까 밥도 주고 물도 주고 장난감도 흔들어줄 수 없는 내 시야 바깥의 고양이는 어디로 사라져 어떻게 시간을 보내고 있을지 알 길이 없었기 때문이다.

 

도리는 내가 감히 들어가지 못할 어떤 틈으로 사라져버린 걸까. 그제야 나는 인정하게 되었다.내 삶과 크게 다를 게 없다고 생각했던 그 고양이는 철저히 내 시선으로부터 그려진 고양이라는 것을. 돌봄의 영역 아래 끼워 맞춘 채 멋대로 그들을 안다고 자부했구나.

 

나의 눈으로부터 인간의 하루 일과 같은 필터들을 하나씩 제거해 내 그들을 바라보니, 무척 길다 못해 알 길이 없어 두려운 그들의 24시간이 보였다. 같은 시간도 나와 다르게 감각하고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들이 떠나버린 곳은 어쩌면 내게 달, 화성, 블랙홀 같은 시공간이었다.



노랭이와 함께 걸으며 아둔해진 감각을 벼려 세상을 다시 본다는 것은 아름다운 장면만 보게 되는 것은 아니다. 이 거대한 도시는 산도 강도 모두 도로로 분절한다. 동물들이 스스로 오롯하게 걸어갈 수 있는 길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 도시의 고양이들은 오늘도 차 밑으로 포복을 한다. 들어가 있는 것이 차에 남은 열기로 몸을 따듯하게 하거나 인간의 위협으로부터 손쉽게 피할 수 있는 장소여서라고만 생각했다. 물론 대부분 이런 이유로 도시의 고양이가 차 밑을 선호하고, 때로 차는 직사광선을 피할 수 있는 그늘막이 되어주기도 한다. 그런데 차 밑에 있던 노랭이에게 말을 걸려고 아스팔트에 엎드려 눈높이를 한번 맞췄다가 전혀 새로운 세상을 보았다. 나에게는 빡빡하게 주차된 답답한 상황이라 생각했는데 고양이의 눈높이로 차 밑을 바라보니 차와 차로 연결된 아랫부분이 마치 터널처럼 뻥 뚫린 길로 보였다. 자동차 그늘막 아래로 길 끝까지 보이는 시야. 고양이들은 그곳에서 수동적으로 숨어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골목이 초입부터 누가 진입하는지 한눈에 파악하고 있었던 것이다. 언제나 말하지만 고양이는 항상 상상 그 이상이고, 오늘도 인간보다 더 위에 있다.


- 「나는 있어 고양이」, p144~145

 


「나는 있어 고양이」. 그런 공포감이 들 때쯤 이 책을 접했다. 좋아하는 미술작가가 참여한 책이라는 말에 구매한 책이었다. 가벼운 이유로부터 읽게 된 책이었지만, 이 책은 생각보다 더 다양한 고양이의 면모를 알려주었다.

 

이들은 고양이들과 눈을 맞추기 위해 길바닥에서 기어코 몸을 잔뜩 구부리는 사람들이다. 실제로 여기 8명 모두가 그렇게 해봤는지는 사실 알 수 없지만, 그럴 사람들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그들은 그들 각자의 삶에 자리하고 있는 고양이에 대해 이야기한다. 함부로 판단하지 않고, 어떨 때는 본인이 어쩔 수 없는 ‘인간’임을 아주 분명하게 쾅 표시해놓기도 하고, 그래서 건강하고, 무해한 시선을 가진 사람들이다. 무해한 시선으로 고양이를 지켜보는 일, 책으로 그 일을 지켜보는 내내 형태를 모르겠을 간절한 사랑과 눈물을 느꼈다.

 

 

나의 20대의 시작에 나타난 외계인, 쥬니는 내가 가장 신비로워하는 행성을 두 눈에 품고 권태로운 아름다움, 우울 속에서 태어나는 창조력, 행복해도 흐르는 눈물을 알려줬다. 먹이를 똥으로 만드는 존재로서의 동질감으로 한 집을 공유하며, 침대라는 하나의 우주를 서로에게 양보해 추울 때는 온기를 나누고 더울 때는 서로가 침대 밖으로 떨어지지 않을 정도의 거리를 뒀다. 이렇게 쓰다 보니 쥬니도 나의 건강과 행복함을 바라는 것 같다. 가끔 보면 쥬니가 나를 사랑하는 것 같긴 하다.

 

- 「나는 있어 고양이」, p. 69



차에서 만난 고양이.jpg

 

 

보름 전, ‘양말’이라며 마냥 귀여워하던 고양이의 하얀 발에 거칠게 묻어있는 검은 때를 보았다. 집에 가던 길에 어두운 산속에서부터, 철조망 아래 틈으로 유유히 빠져나오던 고양이를 보았다. 나는 이제 내 시야 바깥 그들의 시간을 상상한다. 앞으로도 갈 일은 없을지도 모르는 철조망 바깥을. 더 이상 찰나의 납작한 풍경이 되어주지 못하는 고양이들이다. 나는 이제 그들을 잊지 않는다.

 

 

[최혜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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